16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화가 산치오 라파엘로(Sanzio Raffaello)의 <라 포르나리나, 혹은 젊은 여인의 초상(La Fornarina or a Portrait of a Young Woman, 1518-1519)>. 터번을 곱게 두른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의 이 아름다운 여인은 가슴을 훤히 드러내었으나 오른손은 가슴에 얹고 왼손은 아랫부분을 가리는 자세인 '비너스 푸디카(Venus Pudica)', 즉 '순결하고 정숙한 비너스'의 도상을 취하고 있다. 오른쪽 팔에 걸쳐진 투명한 옷감은 그녀의 배를 덮고 명치 부분으로 살짝 치켜올려져 있지만, 오히려 가리려는 부분들을 더 강조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편안히 앉아서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정면을 바라보는 매혹적인 여인을 그린 이 작품의 제목 '라 포르나리나'는 '제빵사의 딸'이라는 뜻으로, 화가의 연인으로 알려진 시에나 출신의 마르게리타 루티(Margherita Luti) 를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여인의 왼팔에 둘러진 푸른 팔찌에는 '우르비노의 라파엘(RAPHAEL VRBINAS)'이라는 서명이 남겨져 있으며, 복원 과정에서 왼손 약지의 반지까지 나타나 있는 것으로 보아 둘은 오랫동안 연인관계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림 속 여인은 '시스티나의 성모', '작은 의자의 성모'의 모델이기도 했다. 시스타나의 성모, 의자의 성모가 그녀를 모델로 한 작품이다. 라파엘로는 그의 뜻대로 성모 마리아를 아름다움면서도 인간냄새가 나는 관능적인 여인으로 그렸다. 화가와 모델로 만난 두 사람은 서로 가까워지면서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나 화가로서 명성을 쌓아 유명인이 되었던 라파엘로와 제빵사의 딸인 마르게리타는 하층민 계급이었던 터라 이런 신분차이 때문에 그녀와 관계가 밝혀지면 자신의 명성이 떨어지고 후원이 떨어질 것을 염려해서 자신의존재를 감추고자 했다. 라파엘로가 자신의 존재를 숨기자 슬퍼했던 마르게리타는 라파엘로 곁을 떠나고 만다.
라파엘로가 그녀를 붙잡고자 그린 그림이 제빵사의 딸이라는 뜻의 「라포르나리나」다. 마르게리타는 반 누드의 모습으로 앉아있다. 그녀의 검은 눈동자와 검은 머리카락은 흰 피부를 더욱 부각시킨다. 그녀는 오른 손으로는 가슴부위를 살짝 가리고 다른 손은 다리 사이에 두는 전형적인 비너스의 자세를 하고 있다. 마리가리타의 상체를 덮고있는 가느다란 천은 반나의 상체를 더욱 두드러지게 한다. 그녀의 눈은 정면이 아닌 약간 오른 쪽을 향해 있다. 속마음은 자신을 외면하면서 자신을 그리고 있는 라파엘로를 보고 있는 듯하다. 그녀의 얼굴은 아름답고 관능적이지만 라파엘로를 향한 사람의 감정을 담고 있다. 다시 마르게리타를 붙잡고 싶은 라파엘로는 이 그림에 자신의 사랑의 징표를 그려넣는다. 마르게리타는 머리에 갈색 터번을 두르고 진주 장식을 하고 있다. 진주는 사람의 결혼식을 의미한다. 또 팔에는 우르비노의 라파엘로라고 하는 팔찌를 차고 있다. 우르비노는 라파엘로의 고향이다. 그녀의 왼손 약지에는 반지가 끼어있다. 그녀의 뒤 배경에는 비너스를 상징하는 물매화나무와 세속적인 사랑의 뜻하는 모과나무가 배경으로 그려져 있어 아름다운 마르게리타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은연중에 표현하고 있다. 나르게리타는 이 작품을 보고 감동하여 떠난 연인 라파엘로 곁으로 돌아온다. 이 작품을 그린 후 1년 후에 라파엘로는 고열을 앓다가 서른 일곱 살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고 만다. 마르게리타는 라파엘로가 열병을 앓다 죽은 원인으로 지목돼 라파엘로 죽게 만든 여인이라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 이후 라파엘로의 제자 로마노는 스승을 사망의 원인이 된 마르게리타가 끼고 있던 반지를 덧칠해 지우게 된다. 라파엘로 영감의 원천이자 뮤즈였던 마르게리타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진정 행복한 여인이었을까?
그녀는 라파엘로가 37세로 요절한 이후 트라스테베레의 산타폴로니아 수녀원으로 들어간 지 2년만에 사망했다고 한다. 실제 그들이 연인 관계였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그림 속에서, 자신을 정성스럽게 그리는 화가를 사랑이 담긴 눈으로 바라보는 여인의 미소는 화가에게 가장 큰 선물이 아니었을까?.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함께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 산치오 라파엘로는 우르비노 출신으로, 페루자에서 활동하던 페루지노의 제자이기도 하다. 스승과 마찬가지로 부드러운 화풍을 이어가던 그는, 1504년 피렌체로 이주하였고 이곳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명암법과 스푸마토 기법, 미켈란젤로의 인체 지식을 습득하면서 페루지노의 영향을 벗어나게 되었다고 한다. 1508년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부름을 받아 로마로 간 그는 1520년 사망할 때까지 교황의 화가로 작품 활동을 수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골수였고 고집불통인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나 괴짜였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는 달리, 라파엘로는 부드럽고 신사적인 태도에 타고난 외모로 모두의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교황의 화가로 이상적인 성모자 상을 구현하였으며, 르네상스 시대를 통해 신화와 고전의 세계를 되살려내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영향을 받았지만 섬세한 색조와 자연스럽고 고요한 분위기의 초상화를 개척한 라파엘로는 아카데미 미술의 모범으로 일컬어진다. 1520년 37세에 요절한 그는 로마의 판테온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