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의 소설들은 20세기 작품임에도, 중국 4대 기서인 삼국지·수호지·서유기·금병매와 더불어 국내에서는 이른바 ‘고전’으로 널리 읽힌다. ‘아Q정전’은 루쉰문학의 대표작으로, ‘광인일기’는 문제작으로서 거론된다.
국내의 ‘아Q정전’ 번역본만 해도 50종을 훨씬 상회하는데, 일어중역본이 아닌 전공자들의 본격적인 번역은 1980년대 이후의 일이다. 문학가이면서 사상가로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독특한 문체로서 문자 하나하나에 상징적인 의미가 숨겨져 있는 까닭에 신뢰를 받는 번역은 비교적 최근 중문학자들이 해낸 번역물들이다. 총 11명에게 ‘아Q정전’과 ‘광인일기’ 번역에 관한 의견을 들어보았다.
직역에 초점 둔 충실함 돋보여
‘가장 추천하고 싶은 번역’으로는 김시준 前 서울대 교수와 전형준 서울대 교수의 책이 나란히 꼽혔다. 각각 7명이 이를 추천했다. 유중하 연세대 교수 등은 김시준 역이 루쉰문학에 대한 이해가 높다며 학문적인 신뢰를 나타냈다. 또 번역의 기본 조건인 ‘오역의 최소화’와 “누락된 구절이 거의 없다”라는 점에서 ‘가장 표준적인 번역’으로 평가했다. 1980년대 이후 전공자의 첫 번역서로서 이전 일본어 중역본들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박운석 영남대 교수는 아Q의 ‘정신승리법’을 그 예로 든다.
“阿Q在形式上打敗了.… ‘我從算被兒子打了, 現在的世界眞不像樣…’ 於是也心滿意足的得勝的走了”(아큐는 형식상으로는 패배한다. …‘내가 자식놈에게 얻어맞은 걸로 치지. 요즘 세상은 돼먹지 않았어…’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서는 그도 만족해서 의기양양해 가버린다)라는 구절을 예로 들어 김시준 역의 ‘충실함’을 평가한다. 일전에 김회준 부산대 교수가 한 논문을 통해 ‘국내의 번역서들이 누락시키고 있는 핵심 구절’로 지적한 바 있던 ‘阿Q在形式上打敗了’라는 부분을 김시준 교수는 ‘그러나 아큐는 형식상으로 패배했다’로 빠뜨리지 않고 번역함으로써 “아큐의 정신승리법에 대한 독자의 순조로운 이해를 돕는다”라는 것이다(이 점은 전형준 역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전공자들이 하나같이 루쉰소설 번역은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았다”라고 아쉬움을 나타내는 가운데, 김시준 역에 대한 비판도 덧붙여졌다. 김영문 경북대 연구원은 “루쉰 문체의 특징인 시니컬하고 풍자적인 어투를 잘 살려내지는 못했다”라고 지적한다.
즉 “직역위주라 문장이 딱딱하다”라는 것. 최환 영남대 교수는 “반드시 설명을 해야만 일반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는데, 주가 없어 아쉽다”라고 말한다. 박운석 교수는 “음역과 의역이 통일됐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견해를 덧붙인다.
전형준 교수는 김시준 교수의 제자로 후발주자이면서, 그의 번역 역시 “루쉰의 문학적 배경을 충실히 이해한 가운데 이뤄진 것”이라는 의견들이 나왔다. 유세종 한신대 교수, 김하림 조선대 교수 등이 전형준 역을 김시준 역에서 진일보했다고 꼽는 이유는 “문장이 훨씬 유려하다”는 점 때문이다. “오랫동안 문학평론을 해온 이답게 문장이 깔끔하다”라는 것.
그러나 번역자가 의역이나 문학적 효과보다는 여전히 ‘충실한 직역’에 초점을 두고 번역했기 때문에 “어색하다”라는 지적을 비껴가진 못했다. 최환 교수는 “‘재수없음’, ‘나두창의 부스름’, ‘수재라는 것’ 등 중국어투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으며, ‘十分’, ‘九分’을 ‘백프로’, ‘구십프로’로 번역한 것은 너무 직역이다”라며 아쉬움을 나타낸다. 또한 대부분의 취재원들은 번역의 ‘정당성’이란 측면을 문제삼았다.
다시 말해, 후발주자는 先번역의 성과를 뛰어넘어야 ‘정당성’을 획득하는 것인데, “전형준 역이 문장의 매끄러움을 제외하곤 김시준 역을 뛰어넘는 성과가 없다”라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 유세종 교수는 “문장을 해석하는 데는 전형준 역 역시 기존 것을 답습하는 수준”이라며, “현재의 연구경향들을 반영한 번역들이 이어져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문체를 살리는 번역 시급해
그 외 홍석표 이화여대 교수 역, 박성순 역이 각각 한 명으로부터 추천됐다. 구문규 우석대 교수는 “홍석표 역은 원문에 충실하고 루쉰 문학의 행간에 담긴 다층적인 의미를 살려내려 한 노력이 돋보이며, 나아가 용어해설과 시대상황을 설명한 역주를 높이 살만하다”라고 평가한다.
박성순 역은 “문장이 비교적 문학적으로 잘 구사됐다는 점”에서 추천됐다. 그러나 중국어 고유명사를 우리말 한자음으로 표기한 것인 “눈에 거슬린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비판할 만한 번역본들로 꼽힌 것도 여러 있다. 홍석표 교수는 “‘노신선집’ 번역은 의미전달은 잘 하고 있으나, 연변교포의 익숙치 않은 언어들이 문장을 어색하게 하고 있다”라고 지적한다.
박운석 교수는 “김정화 역은 한문과 한글을 혼용하고 있어 읽어내려가다 보면 상당히 당혹스럽다”라고 말한다. “상당히 많은 어휘들이 중국 한자를 원문 그대로 옮겨 놓아, 중국어를 모르는 독자들에게는 스토리의 전개조차 파악되지 않는다”라는 것. 이런 점은 역자가 번역상의 난점들을 피해간 것 아니냐라는 오해를 사기에 충분한 것이다.
최환 교수는 “박운석 역은 추천할 만하고, 중국의 유명한 판화가 짜오이옌니엔의 판화가 덧붙여져 흥미롭지만, 우리말 앞뒤 연결이 매끄럽지 못한 것은 아쉽다”라며 덧붙인다.
가령 “그는 오른손을 들어 힘껏 자기 뺨을 두 번 후리쳤고, 그의 뺨은 얼얼하게 아파왔다. 때리고 나니 곧 마음이 가라앉고, 마치 때린 것은 자기이고…”(30쪽)에서 ‘~고’라는 문장형식이 세 번이나 쓰였다는 지적이다.
중국현대문학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한 건 1980년대 이후로, “루쉰 문학에 대한 새로운 문제의식도 지금에야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실정”이라고 전공자들은 말한다.
사실 얼마 전부터 중국현대문학회에서 루쉰전집을 새롭게 번역해보려 모임을 꾸린 것처럼, 루쉰 번역은 여전히 쟁점적인 부분들이 많다. 서광덕 연세대 강사는 “대표적인 문제는 어떻게 하면 분위기를 잘 표현할 수 있을것인가 인데, 루쉰의 소설이 1920년대에 발표된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문장이 너무 현대적이어서는 곤란하다”라고 강조한다.
서 씨는 “적절히 우리의 1920~30년대를 상정해 고어와 당시의 속어를 적절히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덧붙인다. 그러려면 식민지 시기와 해방이후 루쉰 소설번역본을 검토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이욱연 서강대 교수 역시 문체를 거론한다.
이 교수는 “아Q에 대한 비판과 동정이라는 이중적 시선을 잘 포착해 이를 문체로 드러내는 일이 중요한데, 기존 번역서들 대개가 아Q에 대한 풍자와 비판의 차원으로 해석해 번역문체를 조정하는 경우가 있다”라며 아쉬움을 나타낸다.
문체와 관련해 ‘번역불가능성’의 문제 역시 끈질기게 제기된다. 양태은 가톨릭대 강사는 “루쉰 소설의 문제는 가독성이나 정확성의 여부가 아니라, 상징성, 중의법, 반어법 등의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다”라고 강조한다. 그렇기에 아직 국내에 만족할만한 번역본은 없다는 것.
유세종 교수는 “국내 번역서들은 아큐가 내뱉는 욕이 너무 점잖게 번역되어 표현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라고 비판한다. 더불어 “새로운 연구결과가 번역에 반영되지 않는 점 또한 문제”라고 지적한다. 최환 교수는 “제목부터 고민해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는데, “‘正傳’이라는 말이 우리말에는 없는 것으로, ‘아Q이야기’ 정도로 붙이는 것은 어떤가”라는 제안을 한다.
이번 취재에서 ‘광인일기’의 번역에 대한 의견도 함께 들었는데, 대부분 ‘아Q정전’의 최고 번역으로 추천된 김시준, 전형준 역과 그 외 허세욱 역 등이 ‘광인일기’ 번역으로 추천할만하다라는 의견을 보내왔다.
그러나 마지막 구절 “有了四千年吃人履歷的我, 當初雖然不知道, 現在明白, 難見眞的人”에서 ‘難見眞的人’에 대해 한 일본학자가 ‘참 사람을 볼 면목이 없다’라고 해석해 설득력을 얻는 반면, 추천 번역본들은 여전히 ‘참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라고 해석해 “아쉽다”는 견해가 제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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