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사이 전세계를 휩쓸었던 라틴 음악의 열풍. 삼바니 살사니 하는, 리우 카니발에서나 볼 수 있었던 댄스 리듬은 라틴 문화권을 벗어나 팝 음악과 결합되면서 대중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라틴 리듬을 록과 결합시켰던 선구자에 속하는 산타나가 뒤늦게서야 그래미를 휩쓸 수 있었던 것도 물론 잘 나가는 록과 팝, 힙 합 등 다양한 장르의 후배 뮤지션들과 함께 ''동시대적 현실성''을 음악에 가미한 덕분도 있겠지만 리키 마틴이 촉발시킨 라틴 팝 열풍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된 것은 부인하지 못할 사실이다. 이 라틴 리듬이 세계적으로 인기 상품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체의 매력도 있겠지만 여러 형태의 다른 장르의 음악들과 쉽사리 융화될 수 있었다는 가변성에서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백지영이나 ''리틀 리키 마틴''을 표방한 홍경민 같은 우리 대중 가수들도 라틴 리듬에 큰 덕을 본 것이 사실이니...
하지만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하던 이 라틴 팝의 광풍도 올들어서는 다소 시들해진 듯 하다. 라틴 음악을 댄스 뮤직과 동의어로 생각하던 우리 시장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라틴 팝이란 리키 마틴의 ''Livin'' La Vida Loca''처럼 미친 듯이 눈 앞의 쾌락을 좇는 인생에나 어울리는 향락적 음악이 아니었음이 판명된 것일까?
하지만 이처럼 라틴 팝의 바람이 일기 전부터 많은 팬들을 확보하고 있던 라틴 리듬이 있다. 바로 보사 노바가 그것. 미국 팝과 결합된 삼바나 살사, 맘보 등의 라틴 리듬이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쾌락적 요소를 지니며 뜨거운 태양 빛 아래 펼쳐지는 모래사장을 떠올리게 한다면 웨스트 코스트 재즈로부터 영향받은 보사 노바는 초여름 산들바람 같은 부드러움과 고급스러움을 지닌 음악으로 해변 휴양지의 야자나무 그늘 아래 한가로이 누워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1950년대 브라질 작곡가 앙토니우 까를로스 조빔(Antonio Carlos Jobim) 등에 의해 브라질 전통 리듬과 웨스트 코스트 재즈의 결합이란 형태로 나타난 이 새로운 장르는 부드러운 리듬과 감미로운 멜로디를 지닌 작품으로 역시 대표곡이라고 하면 보사 노바의 대표적인 뮤지션인 재즈 색소포니스트 스탄 게츠(Stan Getz)와 기타리스트 겸 보컬리스트 주아웅 질베르뚜(Joao Gilberto) 그리고 그의 아내 아스트루드 질베르뚜(Astrud Gilberto)가 함께 했던 ''The Girl From Ipanema)를 꼽는다. 보사 노바를 좋아하건 아니건 웬만한 음악 팬이라면 한 번쯤은 이 곡을 들어보았지 않을까 싶다.
앙토니우 까를로스 조빔과 주아웅 질베르뚜가 공동 창시자 격으로 추앙받고 있는 이 보사 노바는 1960년대 중반 융성기를 지나 오늘날에도 여전히 새로운 형태로 변이해 가며 인기 장르로 대접받고 있다. 그리고 그 보사 노바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인물 중에는 바로 이 앨범 [Tanto Tempo]의 주인공 베벨 질베르뚜가 있다. ''네오 보사(Neo Bossa)의 정형을 제시하는 미래의 거장''으로 거창하게 소개되고 있는 베벨 질베르뚜는 지난해 이 데뷔 앨범을 내놓을 당시 나이가 벌써 서른 넷이나 되었다는 것이 눈길을 끄는데 한편으로는 위의 보사 노바에 대한 사전 설명을 읽은 분들이라면 그녀가 보사 노바의 명가(名家) 인 질레르뚜 가문과 뭔가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그녀는 바로 보사노바의 선구자인 주아웅 질베르뚜의 딸인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아스트루드 질베르뚜가 아니다. 주아웅 질베르뚜가 이혼한 뒤 가수 뮤차(Miucha)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다(뮤차와 오누이간인, 즉 베벨에게는 삼촌이 되는 소설가이자 가수인 치코 부아르키(Chico Buarque) 역시 보사 노바의 초기 중요 인물 중의 하나다).
가수 데뷔 치고 서른 넷은 좀 많은 나이이긴 한데 그러면서도 그녀가 ''미래의 거장''으로 대접받는데는 이유가 있다. 그녀가 그 동안 데이빗 번(David Byrne), 디 라이트(Deee-Lite)의 DJ 토와 테이(Towa Tei), 아르토 린제이(Arto Lindsay), 케니지 등의 뮤지션 등의 작업에 세션으로 참여했던 만만치 않은 경력 때문이다. 아버지가 일구어놓은 보사노바란 텃밭에 그녀는 힙 합, 트립 합, 하우스 뮤직 등의 아티스트들과 함께 작업하며 보사 노바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데 일조를 해온 것이다. 게다가 아버지 주아웅 질베르뚜와 듀엣으로 카네기 홀 무대에 서기도 했었다
이처럼 그녀가 높이 평가받는 데는 아버지의 후광도 어느 정도 작용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녀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실력이 항상 누군가의 이름 아래 가려진다는 것이 썩 달갑지만은 않을 듯 하다. 베벨 질베르뚜 본인도 솔로 데뷔를 늦게 한 이유를 ''주아웅 질베르뚜의 딸이라는 사실이 엄청난 부담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녀가 고국 브라질을 떠나 자신이 태어났던 뉴욕으로 다시 건너간 것도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 원점에서 시작해 자력으로 성공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포르투갈어 ''tanto tempo(오랜 시간)''을 타이틀로 한 이 앨범은 브라질 사웅 파울루에서 레코딩 되었고 일렉트로니카 계열을 주로 작업했던 유명한 브라질 프로듀서 수바(Suba)가 프로듀싱을 맡았다. 베벨의 독자적인 해석이 담긴 네 곡의 스탠더드 보사 노바와 오리지널 일곱 곡을 담고 있다.
이번 앨범은 ''neo bossa''란 설명에 어울리게 기존에 우리가 접해왔던 보사 노바 음악과는 달리 변화 발전하는 보사 노바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트립 합적인 성향을 지닌 ''lonely'' 같은 곡 외에도 군데 군데 베벨 질베르뚜의 속삭이는 듯한 보드러운 보컬과 어우러지고 있는 프로듀서 수바의 키보드 샘플과 드럼 루프 등등...
수작으로 꼽을 작품은 단연 첫 트랙으로 담긴 감미로운 리메이크 넘버 ''Samba De Bencao''일 것인데 그 외에 베벨 질베르뚜는 아버지의 전처였던 아스트루드 질베르뚜가 불렀던 ''So Nice(Summer Samba)''를 영어로 리메이크해내고 있어 눈길을 끌기도 한다. 이 밖에 ''Samba E Amor'', ''Bananeira'' 역시 리메이크 곡. 역시 영어로 불러주고 있는 엔딩 트랙 ''Close Your Eyes''는 삼바 리듬을 가미한 트랙. 확실히 포르투갈어로 된 보사 노바에 익숙한 팬들에게는 영어 버전이 색다르게 느껴질 법 하다. ''라운지 계열의 ''August Day Song''과 ''So Nice'' 등도 관심있게 들을 트랙.
굳이 외지의 평을 인용할 필요없이 베벨 질베르뚜의 음악은 낭만적이고 감성적이다. 그녀의 음악을 들으며 눈을 감으면 석양 무렵 인적이 드문 남국의 어느 해변을 한가로이 거닐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떠오른다. 무더위를 식히는데는 이런 음악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글.원용민(wonster@oi.co.kr)
oimusic 2001년 07월호 원용민
Joao Gilberto e Caetano Veloso - O Pato
1990년의 마지막 날 한 스포츠신문에는 이런 타이틀의 기사가 실렸다. 세계 ''깜짝'' 빌보드 차트 4위정동화-레코드 1백만 장 돌파 한국인 가수혼성트리오 ''디 라이트'' 리더 데뷔 곡 ''groove is ...'' 미국 열풍내용은 ''한국인 가수가 처음으로 미국의 저명한 인기가요 순위 빌보드 팝 싱글 차트에서 4위까지 올랐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뉴욕시의 한 미술학교에 다니던 정동화는 밤에는 아르바이트로 디스코 클럽의 DJ로 일하다가 그룹의 여성 멤버 레이디 미스 키어와 남성 멤버 슈퍼 디제이 디미트리를 만나 디 라이트를 결성했고 컴퓨터와 신서사이저 등 하이테크의 기재로 작곡을 하는데 천재적인 소질을 갖고 있다''는 것(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스포츠 신문의 문체는 이렇다). ''정동화''라는 한국 이름을 가진 재일교포 아티스트 토와 테이(Towa Tei)는 이렇게 한국에 처음 알려졌다. 그로부터 12년 만에 그가 본격적으로 한국에 상륙한다. 토와 테이는 그간 디 라이트의 멤버로 두 장의 앨범을, 솔로로 세 장의 앨범을 그리고 스위트 로보츠 어겐스트 더 머신(Sweet Robots Against The Machine:이하 SRATM)이라는 예명 아래 두 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최근작인 SRATM으로서의 2집 [Towa Tei], 토와 테이로서의 베스트 앨범의 국내 라이선스 발매 그리고 8월 24일로 예정된 DJ 토와 테이로서의 한국 공연을 앞두고 그를 미리 만난다.
Interview With Towa Tei
일본의 사운드 박물관장, 한국에 오다!아무래도 토와 테이는 우리 주위에서 몰래 신분을 숨기고 살아가는 외계인이 아닐까 하는 망상을 안고 강남 한 호텔의 비즈니스 센터로 그를 만나러 갔다. 역시 단정하게(?) 자른 바가지 머리를 하고 있을까? 손가락 두 개로 턱을 받치고선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진 않을까? 맘에 안 드는 질문을 하면 입술을 쭉 내민 채 ''예, 아니오'' 하는 게 아닐까?어쨌든 몽땅 쓸데없는 생각들이었다. 앞의 인터뷰어가 ''시부야-케(Shibuya-Kei)''는 무엇이냐고 물었던지, 그의 새로운 뮤직 비디오를 다 함께 감상하고 나서 토와는 ''그냥 저런 게 바로 시부야-케''라면서 껄껄 웃었다. 작고 마른 체구, 자연스럽게 헝클어진 머리, 편안해 보이는 단색 티셔츠 차림의 그는 생각보다 아주 훨씬 더 보통 사람처럼 보였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그는 ''정동화''라는 한국 이름을 또박또박 써서 보여주면서 깜찍한 자기 소개를 했다. 인터뷰를 하는 틈틈이 그는 호텔 편지지에 낙서를 하고, 답변과 관련해 ''기술과 위험''이라는 문구를 써서 보여주기도 했다. 당신의 낙서를 기념으로 가지겠다고 했더니 그러라고 줬다가는, 슬그머니 다시 집어든다. 남기고 싶은 것만 남기고, 남기고 싶지 않은 것들은 골라 은색 마카로 꼼꼼히 지워버리는 모습, 역시 스타일리스트다!
이번에 베스트 앨범과 같이 SRATM 2집이 곧 한국에서 발매된다. 두 장의 SRATM은 토와 테이의 다른 일련의 작품들과는 별도로 이어지고 있는데 굳이 그렇게 한 건 어떤 생각에서였나? 토와 테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하지 않고, 다른 기분으로 변신을 하고 싶었다. 기분 전환 같은 거다. 예명으로 하게 되면 아무래도 ''토와 테이''라는 이름이 갖고 있는 기존의 선입견과 압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니까. 이렇게 생각해보자. 내가 쌍둥이인데, 오늘은 남자 친구를 만나러 가야 하는데 좀 귀찮다.. 그래서 쌍둥이 동생보고 네가 좀 대신 가라 그런 느낌. 하하...그 결과 ''토와 테이''의 이름으로 나온 다른 작품들과 만족스럽게 다른가?그렇다. 이번 앨범은 제작하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이 걸린 앨범이다. ''99년부터 시작했으니 그 중간에 세기도 바뀌었고, 3년이나 걸렸다.그간 세계도 변했고 내 자신도 많이 변했다. ''98년 발매한 [Last Century Modern] 같은 경우는 시대 상황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타이틀도그렇지만 아무래도 ''세기말''분위기로 많이 치우쳤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 반동으로 ''음악'' 자체를 순수하게 추구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SRATM 1집의 커버 안쪽을 보면 ''We Are Living With Green''이라는, 마치 ''자연보호'' 캠페인 같은 문구가 쓰여 있던데?최근에 사실 ''자연''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 나는 동경 출신으로 젊은 시절을 그 곳에서 보냈는데 그 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음악을 만들 때도 그런 도회적인 환경들, 도시에서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정보로부터 영감을 얻곤 했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 가면서 우리가 동물들, 식물들 이런 자연 환경과 함께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걸 자연스레 많이 의식하게 되었다. 동경엔 녹지가 별로 없다. 도시는 밤이 무척 밝다. 식물은 ''어두운 밤''이 되어야 산소를 방출할 수 있고, 사람들은 또 그 산소를 마시며 살아가야 하는데 말이다. 이런 식이다. 사람들은 자기들 편의를 위해 밤을 밝게 만들었지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또 스스로를 죽여가고 있는 거다. 자연을 희생시키는 것은 결국 인간 자신을 희생시키는 결과로 돌아온다. 그런 메시지를 좀 전달하고 싶었다.그렇다면 ''Sweet Robots Against The Machine''이라는 건 역시 ''테크놀로지''와 ''인간성'' 혹은 ''자연''과의 충돌인가?인간의 테크놀로지가 궁극적으로 도달하는 것이 있다면 그건 로봇이라든가 클론 같은 거라는 생각이었다. 영화 ''스페이스 오디세이(Space Odyssey)''를 보면 그런 로봇이 등장한다. 우주선을 멋대로 제어하던 그 컴퓨터 ''Hal'' 말인가?맞다. 편리를 좇다가 거기에 당한 꼴이다. 나는 뭐, 로봇이나 기계가 좋다든가 자연이 좋다든가 그런 게 아니라, 그 모든 것이 균형을 맞추어 함께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거다. 2년 전에 녹지가 많은 나가노로 이사를 했는데, 인터넷이라는 인간의 테크놀로지가 없었다면 그렇게 할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 덕분에 도시에 꼭 살지 않으면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일들이 모두 가능하게 되었으니까.앨범에 수록된 ''Latte & Macaron''은 어떤 기계를 위해 만든 곡으로 알고 있는데...그 곡은 소니 사의 ''아이보(Aibo)''라는 기계와 연관이 있는 곡이다. 처음부터 소니의 부탁을 받고 만든 곡이다. 아이보라는 기계를 움직이게 하는 동작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그걸 가지고 음악을 좀 만들어 달라고 했다. 그래서 이 음악을 틀어놓으면 아이보가 어떤 식으로 동작하도록 고안된 것이다.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악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기계음들을 음악의 요소로 만드는데 관심이 있나? 예를 들어 ''Chatr'' 같은 곡도 그랬고.그래요. 내 생각에 우리가 하는 모든 게 음악이니까(I think, Everything we do is music). 주변의 모든 소리들이 음악이 될 수 있지만, 단지 그걸 느끼기가 힘들 뿐이다.홈페이지에 보면 ''Hawaiian Tabla Chapa''에 대해서 ''Neo-Chanko Music''이고 ''Gal Electronica''다, 라는 설명이 붙는데 그게 뭔가?YMO(Yellow Magic Orchestra, 일본 테크노 신의 기원으로까지 이야기되는 일본의 전자 음악 트리오. 사카모토 류이치 역시 이 그룹의 멤버, ''83년 해산했다가 10년 뒤 재결성 후 한 장의 앨범을 내고 다시 해산)의 호소노 하루오미가 처음 시작한 스타일의 음악이다. ''창코나베''라는 음식이 있는데 스모 선수들이 즐겨 먹는 잡탕찌개를 의미한다. 그렇게 여러 가지 음악 스타일을 섞어서 만든 음악이라는 의미다. 거기에 ''Neo''를 붙인 거다. ''걸 일렉트로니카''는, ''Girl'', 즉 여자 취향의 일렉트로니카라는 의미다.''Wake up'' 은 아침에아들이 잠을 깨우는 소리에서 영감을 얻어 곡을 썼다는 설명이 있는데 사실 토와 테이라는뮤지션이 가진 이미지를 생각하면 당신이 결혼을 했고 아들도 있다는 것은 좀 놀라운 사실이다. 아내는 내 음악에 대해서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이다. 내가 작업을 하고 있을 때 옆에 있어도 이건 어떻고 저건 어떻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거 어떠냐고 내가 물어도, ''네, 뭐 말이에요?'' 한다. 전혀 듣고 있지 않았다는 듯이. 하지만 어쩐지 싫은 건 그대로 이야기 하더군. 오히려 그런 면에서는 도움을 주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나도 아내를 위해서 음악을 만드는 건 아니니까. 그런 점은 서로 존중해 주는 관계다. 서로 가장 중요한 사람인 동시에 타인이기도 하니까, 간접적으로는 음악을 만드는 데 영향을 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생겼다고 해서 아이를 위한 음악을 만든다거나 하는 생각은 전혀 해 본적이 없지만 음악을 만들 때 또 다른 에너지가 되어준다는 면에서는 마이너스보다는 플러스가 훨씬 많다고 생각한다.
토와 테이를 생각하면 손가락 두 개로 턱을 괴는 듯한 모션이 떠오르는데 이런 트레이드 마크는 직접 연출한 건가?키치라고나 할까? 디라이트 시절, 처음에는 별 뜻 없이 한 것이었는데 그 앨범이 히트를 했고 반응도 좋았다. 때문에 제작자 측에서 그런 이미지 메이킹을 해주길 바라기도 했고. 나도 답례하는 의미로 계속 하게 됐다.그런 반복되는 연출이라든가 패션 스타일 그리고 스튜디오의 인테리어라든가 앨범 커버 등을 보면 굉장히 스타일리시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시각적인 면에 스스로도 많이 신경을 쓴다고 생각하나?그렇지는 않다. 사실 디라이트 시절 보여졌던 모습은 신경 써서 연출했다기보다 그 당시 평소에 내가 하고 다니던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런데 마치 그것이 ''토와 테이 스타일''처럼 여겨지다 보니까 오히려 평소에는 그런 모습을 할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스스로는 패션이나 스타일에 특별히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하지만 앨범 커버 디자인을 ''타이쿤(Tycoon)''이라는 곳에서 계속 맡고 있어서 개인적으로 특별한 관계가 있는 디자인 회사인가 생각하게도 하는데.그냥 친한 친구들 같은 느낌이다. 그렇다고 늘 함께 하자, 하는 동반자 개념은 아니고. 다만 세대가 같다 보니 같이 뭔가 할 수 있는 범위가 넓고, 또 그 친구들은 일본 프로 디자인 업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능력 있는 사람들이니다. 마치 디 라이트 때 같이 음악 하던 아티스트들의 그래픽 버전이라고나 할까. 내가 먼저 아이디어를 내면 그것을 그래픽으로 구현시켜주는 사람들이다.아, 디 라이트 시절 멤버들과는 지금도 교류가 있나?없다.당시 디 라이트를 탈퇴해 솔로로 나서게 된 것은 어떤 이유에서였나?내가 만든 음악을 밴드의 나머지 멤버들이 이해를 못 했어다. 그래서 고민하던 중에 사카모토 류이치가 그럼 솔로로 활동해보라고 권유했다.혼자서 활동을 하면서 많은 게스트들을 출연시키곤 했는데, 제작과정에서 피처링할 아티스트를 먼저 생각하고 곡을 만든 적도 있나? ''아, 카일리 미노그의 목소리로 노래를 한 번 만들어보자'' 이런 식의...아니다. 그보다는 먼저 멜로디나 리듬을 만들고 협력자들에게 요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제작과정에 대한 예를 들어보자. 나는 주로 컴퓨터로 작업을 하니까, 단계별로 파일을 저장 하게 된다. 처음에는 날짜를 붙여봤지만 나중에 이름만 봐서는 어떤 작업물인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예를 들어 그 곡''German Bold Italic'' 같은 경우 처음에는 ''German''이라는 이름으로 저장을 했다가 다음에 업그레이드 하면서는 ''German Bold''로 저장하고 다음에는 ''German Bold Italic'' 이런 식이었어다. 음악의 이미지로 제목을 붙였는데, 어쩐지 서체 이름 같더군. 정말 이런 서체가 있나 찾아봤더니 없었다. ''그럼 이런 느낌의 서체를 위한 곡을 만들자''라고 생각했죠. 그 때 마침 카일리 미노그 쪽에서 제안이 들어와 있는 상태였고 곡하고도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카일리가 노래를 하게 된 것이고.피지카토 파이브의 마키 노미야가 첫 앨범에 피처링을 하기도 했었는데 코넬리우스(Cornelius)가 당신의 곡을 리믹스하기도 했고. 이런 교류들과 음악적 성격을 묶어서 당신을 시부야케 뮤지션이라고 부르는데, 이런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그런 장르에 대해서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상관 없다. 그리고 이미 지금은 토와 테이라는 이름이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받아들여 주었으면 더 좋겠고.그렇다면 최근의 일본 음악에서 멋지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하우스 음악과 투 스텝. 그 반대는? 보사노바.하하, 의외인데?최근 몇 년 동안 도쿄나 하라주쿠 같은 데 가면 야외로 테라스가 나와 있고 남자들과 여자들이 한껏 차려입고는 분위기를 잡는 카페들이 아주 붐을 이룰 정도로 많다. 문제는 왜 그런 덴 하나 같이 보사노바가 흘러 나오느냐는 거다. ''아직도'' 말이다. 이젠 멋지게 보이지 않는다는 걸 왜 모를까?마지막으로, 뮤지션으로서 스스로 ''토와 테이''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나?''다른 음악''을 하는 사람. 사람들은 이름도 얼굴도 목소리도 틀리지 않은가. 다른 사람과도 다른 음악을 했으면 좋겠고 토와 테이라는 사람이 만드는 음악 자체도 늘 달랐으면 좋겠다. 같은 스타일의 음악을 계속 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한국말 할 줄 아나?모른다. ''할머니'' ''할아버지'' 뭐 그 정도, 하하.
오랜 시간 음악계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쳐온 그와의 40분 가까이 진행된 대화에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그것이 12년만의 첫 인터뷰였기 때문이다. 이번 앨범에만 집중을 할 수도, 그렇다고 지난 시간에 대한 궁금증을 다 해결할 수도 없었기에 이야기는 과거로 갔다 현재로 왔다 산만하기만 했다. 한국 팬들에게 한 마디 해 달라는 말에 그는 ''제발 한국 팬이 있기라도 하면 좋겠다''며, ''안녕'' 그리고 ''Peace''라는 어린아이처럼 간단한 메시지를 남겼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모든 정보는 www.towatei.com을 통해 접할 수 있다는 사실을 꼭 알려달라는 말도...
아직도 끝나지 않은 탐구와 도전
SRATM 2 : Towa Tei
이번 SRATM 2의 [Towa Tei](그러니까 이게 앨범 타이틀)는 시리즈의 전작으로부터는 5년만에, 그리고 토와 테이로서의 최근작 [Last Century Modern]으로부터는 3년만에 발매된 작품이다. 또한 [Avex]로 음반사를 이적한 뒤 처음으로 발매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Audio Sex''라는 오프닝 트랙의 타이틀은 음향을 가지고 장난한다는 아이디어를 오디오와 섹스를 한다는 개념으로 확장시킨 것. 앨범의 제작 과정을 상징하고 있다. 데니스 윌리엄스(Dennis Williams)의 리메이크 ''Free''는 그가 최근 가장 멋지다고 생각하는 소위 투 스텝(2 Step) 비트를 적극 도입한 곡이다. ''The End Of A Love Affair'' 역시 커버 곡으로 원래는 스탠더드 재즈 넘버다. 토와 테이가 가장 좋아하는 로레즈 알렉산드리아(Lorez Alexandria)가 부른 버전을 바탕으로 리메이크했다. 이 두 곡의 리메이크로 ''로봇''이 ''사랑''을 노래하고 ''자유''를 부르짖는 아이러니가 만들어졌다. 한편 토와 테이 솔로의 초창기에 브라질 음악이 그를 사로잡았다면 지금 그를 매혹시키고 있는 것은 인도네시아인 것 같다. ''Manis''는 인도네시아어로 ''달콤한(Sweet)''이라는 의미다. 앨범 작업에 들어가면서 가장 처음 만들었다는 이 곡에는 전작의 영향이 다소 남아있는데 ''Sweet Robots Against The Machine''의 전작이 ''기계에 대항하여''라는 이미지에 더 치중했다면 이번 작품은 ''달콤한 로보트''쪽에 더 가깝다는 설명이다. 명상음악 같은 ''Pitamaha Bamboo''는, 인도네시아의 발리에서 달빛 아래 빗줄기를 맞으며 또 곤충들을 친구 삼아 녹음한 곡이라고 한다.''Batik''은 인도네시아의 전통 의상 바틱 그리고 그것을 포함한 인도네시아의 총체적인 문화로부터 깊은 인상을 받고 만든 곡이다. 생활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그 감각과 패턴은 그에게 몹시 고급스러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귀여운 느낌'', ''스위트한 느낌''에 집중해 만들어냈다고 스스로 이야기하는 이번 앨범의 제작 과정에서는 전작들에 비해 게스트 뮤지션들이 줄어든 점, 대신 혼자서 기계를 붙들고 실험했던 시간이 많았던 점 등이 두드러진다. 그 사이 도시를 떠나 녹지가 많은 환경으로 거점을 옮긴 그는, 덕분에 음악으로부터 위안을 얻어야 했던 종래의 생활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나 오히려 이제는 사운드와 음악으로부터 자극을 얻는 마인드로 돌아갈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다른 또 하나는 보컬 멜로디가 중점적인 ''노래''를 이전보다도 훨씬 배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운드 실험가로서 그는 ''말''로 전달되는 이미지가 주도적인 것보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운드 자체를 통해 듣는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수 있는 동시에 전인류적으로 공통일 수도 있는 감각을 만들어 내려고 했다. 사실 이것은 ''주위의 모든 것이 음악이 될 수 있다''는, 그가 가진 작곡 정신의 핵심이다.
Sweet Musical Android With The Machine
Towa Tei
토와 테이는 ''일본 테크노''의 발전에 있어서도 그리고 ''90년대 이후 일본 음악의 새로운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는 ''시부야케(Shibuya-Kei)''를 이야기하는데 있어서도 반드시 언급해야 하는 주요 인물이다.
''80년대 말 뉴욕의 디자인 명문 ''Parsons School Of Design''에 재학 중이었던 토와 테이는 클럽에서 디제잉을 하던 중 정글 브라더스(Jungle Brothers)의 아프리카 밤바타(Afrika Bambaataa)를 만나게 된다. 토와는 디제이가 필요하면 불러달라며 명함을 건네줬는데, 아프리카는 디제잉 대신 명함 디자인이 맘에 든다며 정글 브라더스의 두 번째 정규 앨범 [Done By the Forces Of Nature]의 앨범 커버 디자인을 의뢰하게 된다. 토와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디자인 뿐 아니라 그들의 앨범 사전 작업에 자신의 음향 장비들을 이용하도록 하면서 관여하고, 이런 노력으로 말미암아 나중에는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A Tribe Called Quest)의 앨범 작업에도 참여하게 된다. 디 라이트(Deee-Lite)라는 한 댄스 밴드의 초창기 클럽 공연을 본 토와는 디미트리(Dimitri) 그리고 레이디 키어(Lady Kier)와 뭉쳐 곧 그들의 클래식이 되는 ''Groove Is In The Heart''를 발표한다. 이 곡이 영국 싱글 차트에서는 2위, 그리고 빌보드 차트에서는 4위까지 오르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디 라이트의 데뷔 앨범 [World Clique]는 ''90년대 초 멀티 플래티넘을 기록했다. 다국적 멤버가 만들어내는 음악은 디스코, 하우스, 소울, 재즈가 혼합된 잡종으로 당시로서는 매우 획기적이었다. 이후 디 라이트는 [Infinity Within](1992)과 [Dewdrops In The Garden] (1994) 등 두 장의 앨범을 더 발표했는데 토와는 이미 2집 발매 이후 밴드를 떠난 상태였다.
토와 테이는 ''95년에 첫 번째 솔로 앨범 [Future Listening!]을 발매했고, 평론가들의 극찬을 이끌어냈다. 여기에는 피지카토 파이브(Pizzicato Five)의 마키 노미야(Maki Nomiya), 보사노바의 전설적인 인물인 조앙 질베르투(Joao Gilberto)의 딸 베벨 질베르투(Bebel Gilberto) 등이 참여했다. 특히 이 베벨 질베르투가 노래한 ''Technova''와 ''Batucada''는보사노바와일렉트로니카를 결합한 토와의 섹시한 그루브와 매끄럽고 모던한 어레인지 그리고 감성적인 보컬로 클럽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질베르투와의 이런 성공은''98년 [Sound Museum]에서 또 한 차례의 협연으로 이어졌다. 바로 홀 앤 오츠(Hall and Oates)의 클래식을 보사노바 풍으로 리메이크한 ''Private Eyes''가 그것. 보사노바적인 색채도 강하고 보컬 멜로디도 이후의 작품들에 비하면 많은 비중을 차지한 데뷔 앨범에 비해 한층 본격 일렉트로니카로 치우친 이 작품을 발표하면서 그는 공히 테크노와 R&B, 힙 합과 재즈 등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적극적인 믹스 감각을 발휘했고 곧 전세계적인 명성을 이룩하게 되었다. GBI에서는 카일리 미노그(Kylie Minogue)가 그리고 중독적인 BMT에는 랩의 전설 비즈 마키(Biz Markie)가 등장하고 있었다. 이 앨범에서 특히 ''Happy''는 빌보드 댄스 차트에서 3위에 올랐고 프랭키 너클즈(Frankie Knuckles)의 리믹스 버전은 그 해의 베스트 리믹스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으며, GBI는 영국와 호주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세 번째 솔로 작품인 [Last Century Modern]은 일본에서는 1999년에 그리고 전세계적으론 이듬 해 봄에 발매되었다. 비스티 보이즈의 ''Body Movin'' Remix''에서 래핑을 했던 위스덤 라이프(Wizdom Life), 토와 테이와는 이미 ''Happy''에서 함께 일한 바 있으며 마이클 잭슨 그리고 사카모토 류이치 등 많은 유명 아티스트들과 작업해 온 비비엔(Vivien Sessoms) 그리고 YMO의 두 멤버인 유키히로 타카하시와 하루미 호소노 등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절충주의자로서 토와는 자신의 곡에 들어맞는 다양한 아티스트들을 불러모았다. 특히 독특한 개성으로 마니아를 갖고 있는 일본의 싱어 차라(Chara)가 노래한 ''Let Me Know''는 아들의 잠자는 얼굴을 보면서 만들었다는 감성적인 곡으로 큰 인기를 불러모았다. 한국 팬들 사이에서는 단연 ''Chatr''라는 곡이 화제였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Chatr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Chatr는 일본의 ATR에서 만든 다원음성합성시스템입니다''라는 어린아이의 한국말이 같은 내용의 일본어 그리고 영어와 함께 등장하는 이 곡은 바로 그 자동 번역 시스템을 이용해 만들어졌다. 음향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대한 토와의 탐구정신과 특유의 귀여운 음악 센스가 더해진 예쁘장한 소품.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일본 전자제품의 기술과 다양한 악기들, 그 배경의 중심에서 토와 테이는 자신이 만들어낸 ''Musical Android'' 혹은 ''Sweet Robot'' 그 자체인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그가 전세계에서 가장 독창적인 사운드를 창조해 내고 있는 프로듀서들, 리믹서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티스트들 중 하나라는 점이다.
글.장은비
oimusic 2002년 07월호 장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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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ao Gilberto e Caetano Veloso - Garota de Ipanema
올해 8월, 재즈와 삼바를 융합시킨 브라질의 독자적인 음악 보사노바가 탄생 50주년을 맞이한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보사노바의 대표곡이라 할 수 있는 '이파네마의 여인(The Girl From Ipanema)'을 전세계에 알린 보사노바의 창시자 중 한 명인 77세의 호아오 질베르토(Joao Gilberto)가 5년만에 무대에 선다.
■보사노바의 창시자 중 최후의 1인, 5년만에 무대에 서다
리우데자네이루(Rio de Janeiro)와 상파울루(Sao Paulo)에서 총 세번에 걸쳐 열릴 예정이었던 공연의 티켓은 14일 발매를 시작한 지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모두 매진되었다. 이로 인해 보사노바의 부드러운 사운드에 더해 귀 언저리를 간지럽히는 듯한 질베르토의 감미로운 음색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보사노바 초창기에 큰 역할을 맡아온 3명 중, 질베르토 이외에 작곡가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Antonio Carlos Jobim), 시인인 비니시우스 데 모라에스(Vinicius de Moraes)는 이미 세상을 떠났으며, 질베르토 또한 과거 5년간 공적인 장소에서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그러나 질베르토에 대한 평가는 1958년 8월에 조빔과 모라에스 콤비 작사 작곡의 '체가 데 사우다데(Chega de Saudade·슬픔이여 안녕)'를 기타 솔로로 부른 이후 지금까지도 결코 흔들림이 없다.
'체가 데 사우다데(Chega de Saudade·슬픔이여 안녕)'는 보다 심플한 삼바 리듬을 복잡화하여 독특하면서도 깊은 하모니를 처음으로 전개한 보사노바 제1호로 알려지며 지금까지 수십년에 걸쳐 음악계에 큰 영향을 미쳐온 재즈를 새로이 진화시켰다. 미국 재즈계의 거장인 스탄 게츠(Stan Getz)와 찰리 버드(Charlie Byrd)또한 그 매력에 감흥을 받아 보사노바 보급에 앞장 서왔다.
■ 세계적으로 보사노바를 알린 '이파네마의 여인(Garota De Ipanema)'
하지만, 보사노바를 세계적으로 알리고 그 후에 이 장르의 스탠다드가 된 곡은 질베르토와 게츠의 공동 작품으로 질베르토의 당시 아내였던 아스트루드 질베르토(Astrud Gilberto)가 부른 1962년의 '이파네마의 여인(Garota De Ipanema)'이다. 포르투갈어의 곡명인 '가로타 데 이파네마(Garota De Ipanema)'를 영어 제목 'The Girl from Ipanema'로 바꾸어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를 시작으로 곧 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를 해서 불렀다.
Joao Gilberto e Caetano Veloso - Acontece que eu sou baiano
Joao Gilberto - Sampa
João Gilberto - O Amor em Paz
João Gilberto - Meditação
João Gilberto - Esperança Perdida
João Gilberto - Boas Festas
João Gilberto - Lá vem a baiana
이 곡은, 조빔과 모라에스가 자주 다니던 리우데자네이루의 해변인 이파네마(Ipanema)의 카페에서 자주 보던 키가 크고 아름답던 15세의 소녀에게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으며 "그녀가 걸을 때/그녀는 삼바와 같이/멋지고 아름답게 흔들렸네"라고 노래하고 있다. 영어판 곡이 세계의 히트차트에 갑작스럽게 이름을 올리기 시작한 것은 1963년의 일이다.
조빔은 후에 당시를 회상하며 "우리들의 위에 있던 건 비틀즈 뿐이었다. 그들은 우리보다 하나 많은 4명이었으니깐"라며 농담섞인 말을 했다고 한다.
■본가 브라질에서는 '향수(郷愁)'가 되어가지만
보사노바의 탄생을 되돌아 보면 그곳에는 브라질의 젊은이, 특히 당시 중산계층의 젊은이들 사이에 팽배해 있던 권태감과 변화에 대한 절망이 응축되어 있다.
'이파네마의 여인(Garota De Ipanema)'은 1959년 프랑스 영화 <흑인 오르페(Black Orpheus)>의 사운드트랙에 수록되면서 많은 청중을 얻게 되었고, 이로 인해 삼바 가수이자 여배우인 카르멘 미란다(Carmen Miranda)가 정착시킨 "과일이 달린 모자를 쓰고 춤추고 노래하는 트로피컬한 브라질"이라는 할리우드적 선입관을 바꾸어 놓았다.
1960년대 중반, 보사노바는 코파카바나(Copacabana)해변의 아파트 창가에서 뉴욕의 재즈클럽까지 여러 다양한 곳에서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보사노바의 계승자로서 현재 가장 잘 알려져있는 카에타노 벨로조(Caetano Veloso)는 "호아오 질베르토(Joao Gilberto)의 노래를 듣는 것은 마치 어떠한 계시를 받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체가 데 사우다데(Chega de Saudade·슬픔이여 안녕)'를 계속해 몇시간이고 반복해서 들었다. 이런 식으로 노래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질베르토, 조빔 그리고 카를로스 리라(Carlos Lyra)와 세르지오 멘데스(Sergio Mendes), 루이스 본파(Luiz Bonfa) 등의 브라질 출신 뮤지션 일파는 뉴욕의 카네기홀에서 대대적인 보사노바 콘서트를 열었다. 이때, 미국 재즈계의 대표적인 두 거장, 전설적인 트럼펫 연주자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와 디지 길레스피((Dizzie Gillespie)도 공연을 감상했다.
오늘날 리우데자네이루(Rio de Janeiro)에서는 삼바에서 새로 생겨난 장르와 미국의 힙합과 록 등 다른 음악 장르에 치여 보사노바가 점차 바뀌어 가고 있다. 하지만 브라질을 상징하는 해안가의 아름다운 거리를 묘사하는 음악으로의 보사노바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뿌리깊게 남아있다.
보사노바에 관한 저서를 쓴 작가 루이 카스트로(Ruy Castro)는 "40년전에 비하면 지금은 너무나 많은 음악 앨범이 있다보니 보사노바가 음악 차트의 상위권에 있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되었다. 하지만 보사노바 스타일은 지금도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즐겨 부르고 있다"고 말했다.
46년 전, 카네기 콘서트 무대에도 선 적이 있는 싱어송라이터 카를로스 리라는 보사노바가 처한 현 상황을 좀 더 냉정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지금 리우데자네이루의 어디에 가면 보사노바를 들을 수 있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그런 곳은 없을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브라질 보다도 일본과 유럽 쪽에서 더욱 인기가 많은 것이 보사노바의 현 상황이다" (c)AF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