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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산청→함양) 지리산 ; 신비한 공개바위와 빨치산루트 노장대와 선녀굴 (07. 6. 17)
*가현교-공개바위-베틀재-노장대-고열암터-선녀굴-견불사-송대마을-용유교
*산행시작~종료시간 ; 09시 09분 ~ 4시 29분
*총 산행시간 ; 7시간 20분 = 산행 3시간 40분 + 정지 3시간 40분
*GPS 실거리 약 11.9 km (도상거리 약 10.5 km)
◎ <일시> 2007. 6. 17.(일) 흐리다가 맑음
◎ <인원> 7 명 (육호, 육호2, pk산장, 프리덤, 옐로우, 명숙, 갈대)
◎ <산행 코스 및 주요지점 통과시간... ( )안은 구간별로 휴식 제외한 소요시간>
(出)- 가현교.. 포장길 시작 (09*09)
(19분)- 비포장 임도 시작
(8분)- 임도4거리(차량통제용쇠줄)에서 직진.. 외딴집을 지나가야한다.
(19분)- <←공개바위 입구>안내판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산길 진입
(11분)- 공개바위 (10*08~28)
(4분)- 능선 3거리(''T)에서 좌~
(22분)- 베틀재(-↑)에서 직진 (좌;오봉리) (10*58~11*52)
(36분)- 상내봉,새봉/노장대 삼거리(|→)에서 우~ (12*59)
(5분)- 말뚝이정표 삼거리("Y)에서 좌~
(좌우 길은 송대마을(선녀굴)갈림길 前에 다시 만남)
(5분)- 송대마을(선녀굴) 갈림길(-↑)에서 직진~
(2분)- 안락문
→ 이정표 삼거리에서 우~
(1분)- 함양독바위(노장대) 안내문, (노장대 밑 공터) (1*14~2*22)
→ BACK하여 이정표 삼거리에서 선녀굴 行
(3분)- 말뚝이정표 사거리에서 40m직진하면 고열암터 (2*25)
(좌上 ; 송대마을(선녀굴)갈림길 / 우 ; 선녀굴)
(1분)- 노장대 전망대(빨치산루트 전망대)
(9분)- 솔봉 갈림길(←|)에서 좌~
(2분)- 공터에서 좌로 10m 가면 선녀굴, 굴비트 (2*52~57)
(공터에서 우로 가면 송대마을)
(12분)- 계곡 진입
(5분)- 빨치산 마네킹 2人
(6분)- 계곡 건너다(1)
(3분)- 계곡 건너(2) 바위비트
(7분)- 철망 설치된 묘
(7분)- 지리산 빨치산 루트 안내소 (3*49~51)
(1분)- 송대마을, 사거리(포장길)에서 직진
(4분)- 견불사 입구 표석(1)
(4분)- 견불사 입구 표석(2)
(2분)- 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견불사 실상선원
(16분)- 모전동, 대련사 앞에서 좌(下길)(←|)로 내려간다.
(6분)- 용유교 (4*29)
◎ <산행지 소개>
* 공개바위(755m) : 경남 산청군 금서면 방곡리
.인적이 드문 깊은 숲 속, 미스터리한 바위 탑, 사람이 쌓았다고 하기엔 그 크기가 너무나 거대하고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기엔 그 형상이 너무나 신비로운 바위 탑. 비스듬히 쌓인 채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있는 이 바위 탑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채 지리산 깊은 숲 속 오랜 세월 숨어있던 거대 5층 바위 탑의 실체를 SBS '순간포착 ! 세상에 이런 일이‘ 에서 그 미스터리를 공개 했다.
2006년 3월 17일 조선일보에서도 기사화된 경남 산청군 금서면 병곡리 지리산 자락에 소재한 공개 바위로서 산청군은 이 탑을 경상남도 지정문화재 지정신청을 하기위해 2007.1.12 계명대, 경상대 교수님 두 분과 경남 문화재 담당 공무원 까지 실사를 마쳤고 2007년3월 24일 경상남도 문화재 관리위원회에서 도 기념물로 지정 하였다. 일본의 문예춘추 사진부 기자도 직접 와서 사진을 촬영해 갔고 나중에 잡지에 실렸다고 한다.
.피사의 사탑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5층 바위탑으로 산청군 금서면 방곡리 야산 755m 능선상에 있는 이 바위탑은 5개의 육면체의 바위로 이뤄져 추정 무게만 100톤. 높이 12.7m. 둘레가 12.4m 나 된다. 산비탈 경사가 60도나 되는 곳에 서있는 5개 돌덩이는 25도 각도로 곧 기울어져 넘어질 듯 아슬아슬한 모습이다.
등산로에서 벗어나 있어 그동안 인근마을 주민들만 그 존재를 알다가 최근에야 모습이 공개 되었다. 하지만 자연석인지 아니면 토속신앙을 위해 만든 인공 탑인지 알려지지 않았으며, 언제 만든 것인지 산청군에도 기록은 없다.
.다만 마고할미라는 거인이 5개 바위로 공기놀이를 한 뒤 떠나 공개바위로 불렀다는 전설이 있을 뿐이어서 지역주민들도 이 바위 탑을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로 여기고 있다. “사람이 쌓았다기에는 너무 거대하고 자연이 만들었다기엔 형상이 너무 신비스럽다며” 전문가 등의 현장 확인결과 지렛대로 바위를 이동 시킬 수 없을 만큼 가파른 지점에 있어 자연풍화작용으로 돌탑이 형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공개바위라는 확실한 어원은 공기 돌 놀이(5개)의 경남 서북부 방언은 공개놀이라 하며 아주 오래전부터 이 지방 사람들은 이에 연유되어 공개바위라고 불렀다. 방언에서 유래된 것이지만 이미 고유명사화 된 것이어서 공개바위라고 합니다. (퍼온 글)
◎ <산행 개요>
.최근 지리산행이 잦아지고 있다. 해야 할 숙제는 자꾸 미뤄지고 새로운 숙제를 향해 또다시 정조준 한다.
마침 육호님의 공개바위 산행을 하고자 한다는 pk산장님의 제보를 받고 어차피 공개바위도 해야 할 숙제이니 이참에 함께 가고자 본궤도를 수정하여 동참하고자 한다. 단, 코스는 약간 변경하여 선녀굴까지 접수코자 한다.
육호님외 일행은 오봉리를 들머리로 하고 명숙이랑 나는 가현교에서 들머리로 하여 공개바위를 거쳐 베틀재부터 함께 산행 후 노장대에서 다시 헤어진다. 산행 후 하이트 내외분을 만나는 각본까지 이어진다.
.가현교에서 포장길 따라~ 임도길 따라~ 외딴집을 지나 공개바위입구에서 산길로 오르면 공개바위이다.
포장길, 임도길이 버겁다면 외딴집까지 차량으로 올라가도 된다.
군계능선을 따라 남쪽으로 가면 베틀재를 지나 상내봉과 새봉 갈림길 前 지능선삼거리(노장대 行)에서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지능선3거리에서 직진하면 오뚜기(?)바위가 나오는데 그렇다면 잘못 온 것이니 반드시 우측으로 내려가야 한다.
현재 함양독바위(노장대)는 함양군에서 세운 안내문이 있으며 벽송사능선 및 선녀굴~송대마을까지 빨치산루트를 재현한 여러 안내문과 마네킹이 있다.
노장대에서 선녀굴 방향으로 잠시 가면 말뚝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사거리) 우측으로 내려가야 한다. 직진은 고열암터이다.
솔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선녀굴로 향하면서 계곡으로 내려가게 된다. 빨치산의 흔적이 여기저리 묻어있다.
송대마을에 이르면서 포장길 따라 용유교까지 걸어가야 한다.
오늘 코스는 들/날머리 모두 포장길이라는 점에서 다소 지루하거나 힘들 수도 있지만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하루였다.
식당에서 만난 기쁜인연님 첫인상이 넘 인자하신 모습이었습니다.
잘 알지는 못하지만 투병생활을 하시는 하이트 사모님과 취운님, 함께 산행한 육호님의 빠른 쾌유를 간절히 바랍니다.
◎ <산행 길잡이>
* 가는 길 ; 화원 나들목(06*15)-지리산 나들목(07*25)-월광가든식당에서 아침식사(07*35~08*15)-60번도로 진행-오도재 갈림길(Y")(08*24)-용유교 갈림길(↑-)(08*27)-엄천교(08*35) 건너 좌회전-삼거리에서 우회전(방곡마을 표석 有)(T'')(08*38)-산청함양사건 추모공원(08*40)-가현교(08*42)(가현교 건너 직진하면 가현마을/우회전하면 화림사, 오봉리)
* 가현교-(19분)-비포장 임도-(8분)-임도4거리-(19분)-<←공개바위 입구>안내판 삼거리-(11분)-공개바위
.가현교 건너기 직전에 좌측에 <공개바위 8 km →> 안내판이 있고 우측에 집이 한 채있다. (공개바위까지 실제로 3.4 km가 조금 넘는 거리이다)
집을 우측에 둔 채 시계방향으로 우회전하듯 돌아가면 이내 <임도시설>표석을 지나면서 시멘트 포장 길 따라 쭈욱~ 올라가면 포장길이 끝나고 비포장 임도를 따라 가면 임도 4거리에 이르는데 직진방향으로 외딴 집이 보인다. 차량통제용 쇠줄을 통과하여 외딴집(고사리 재배지 민가?) 옆을 지나가면 이내 공터에 이르고 이제 임도 수준의 넓은 오솔길을 따라 더 올라가면 <←공개바위 입구> 삼거리에서 좌측 산길로 진입하게 된다. (임도는 계속 우측으로 이어진다.)
본격적인 오름길이 시작되면서 제법 빡시게 쳐 올라가면 공개바위의 윗돌이 보이자마자 바위터에 이르러서야 공개바위의 전모를 볼 수 있다. 5개의 바위가 얹혀있는 공개바위는 지금은 아랫부분이 잡목 때문에 잘 보이지 않으나 뒤로 돌아 보면 그나마 잘 보인다. 잡목과 쓰러진 나무만 없으면 확연히 잘 보일 텐데...
* 공개바위 들머리 ; 가현교 건너기 전 우측으로 간다.
* 공개바위 들머리 ; 가현교 건너기 전 우측으로 간다
* 임도 4거리에서 직진하여 차량통제용 쇠줄을 통과하여 외딴집(고사리 재배지 민가?) 옆을 지나간다.
* <←공개바위 입구> 삼거리에서 좌측 산길로 진입하게 된다
* 바위터에서 본 공개바위
* 공개바위 뒤에서 본 모습
* 바위터
* 공개바위-(4분)-능선 3거리-(22분)-베틀재
.공개바위 좌측으로 산길이 계속 이어지는데 약간 비스듬하게 산사면으로 가면 이내 산죽군락을 만나면서 잠시 오르면 산죽으로 덮인 능선 3거리(''T)에 이르러 좌측으로 서서히 오르기 시작하면서 12분 후 등로 우측에 조그마한 전망바위가 있는데 건너편에 노장대가 바라보인다.
곧 이어 넓적한 바위를 지나고 간간이 바위 옆을 지나가면서 완만한 능선을 따라가면 지능선 갈림길을 만나는데 조그마한 공터인 베틀재(-↑)이다. (좌 ; 오봉리) 직진한다.
* 베틀재(-↑)
* 베틀재에서 휴식 중~~
* 베틀재-(36분)-상내봉,새봉/노장대 삼거리
.베틀재에서부터는 오름길이 상내봉,새봉/노장대 삼거리 前 언덕봉우리까지 계속 이어진다.
베틀재에서 7분후 길 좌측으로 조그마한 전망바위(1)를 지나고 계속 이어지는 오름길 도중에 바위군을 여러 차례 지나간다. 커다란 바위군 아래 제법 그럴듯한 터가 있고 바위 위로 조그마한 전망바위(2)도 있다. (전망바위(1)에서 21분)
여기서 조금 더 오르면 산죽군락을 잠시 지나 언덕봉우리를 내려가자마자 상내봉,새봉/노장대 삼거리(지능선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내려간다.
* 커다란 바위군 아래 제법 그럴듯한 터가 있고 바위 위로 조그마한 전망바위(2)
* 상내봉,새봉/노장대 삼거리-(5분)-말뚝이정표 삼거리-(5분)-송대마을(선녀굴) 갈림길-(2분)-안락문
.5분 후 <선녀굴/벽송사> 말뚝이정표 삼거리에서 등로는 둘로 나뉘는데 어느 쪽으로 가든 다시 만나게 되어있다. 좌측으로 4분여 가면 우측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나고 (↑-) 이내 송대마을(선녀굴) 갈림길(―↑)이 나타난다. <←송대 2.4 / ↑안락문.노장대 0.1 /↓벽송사 5.6>
직진하면 이내 커다란 바위틈새로 된 안락문(安樂門)이다. 바위틈새처럼 생긴 이 석문은 현재까지 알려진 지리산 석문 중에 길이가 가장 길고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安樂門이라고 쓰인 붉은색의 각자가 다른 각자보다 특이하다.
이 석문이 왜 안락문일까 ? 지리산 토벌작전 때 이 문을 통해서 내려오면 안락한 생활을 보장해 준다고 회유한 데서 유래 되었다나 ? 믿거나 말거나 ... 언제 누가 뭐 땜에 쓴 것인지 궁금할 뿐이다.
거대한 바위를 왼편으로 돌아나가면 <노장대/통락문> 말뚝이정표가 있다. 같은 장소를 두고 통락문으로도 부르는 것은 안락사(安樂死)가 실패하면 통락사가 될 수도 있음에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 말뚝이정표 삼거리에서 등로는 둘로 나뉘는데 어느 쪽으로 가든 다시 만나게 되어있다.
* 송대마을(선녀굴) 갈림길(―↑)이 나타난다. <←송대 2.4 / ↑안락문.노장대 0.1 /↓벽송사 5.6>
* 안락문(安樂門)
.안락문을 통과하니 <노장대 / 통락문> 말뚝이정표가 있고 왼쪽으로 바위를 돌아가니 커다란 바위 아래 <←선녀굴 0.6 / ↗노장대 0.1 / ↓안락문 50m> 이정표(삼거리)가 있다. 우측으로 몇걸음 가면 <함양독바위>안내문이 있는 노장대 아래 공터에 닿고 노장대로 오르는 밧줄이 바위에 설치되어 있다. 예전엔 알루미늄 사다리가 있었으나 공단에서 제거한 듯 하다. 노장대로 오르는 밧줄아래 왼쪽 下길은 운서리로 이어진다.
<함양 독바위 안내문 내용 ; 함양독바위에서 생성한 상대날등과 황새날등을 좌우로 거느린 음달골이 오죽 깊고 험했으면 “그곳에 가면 사흘 안으로 나오기 힘들다” 는 말까지 전해져 올 지경이다. 한국동란 지리산 전사에도 등재되어 있는 노장동 전투에서는 골짝의 요새 같은 지형 탓에 피아간에 수없는 혈전이 수 없이 이루어져 아군의 피해가 막심했었다고 한다. - 함양군 ->
.노장대 ; 다섯 개의 거대한 바위로 구성된 노장대는 한 부인이 이 바위 사이에 돌을 쌓아 거처를 만들고 그 안에서 혼자 살며 도를 닦아 허공으로 날아올랐다고 하여 독녀암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돌을 쌓아 놓은 것이 여태 남아 있어 독녀암의 [독]자를 인용하여 독바위라 전해졌을 수도 있을 것이고 늙은 장군의 묘터가 있어서 노장(老將)대라 불리어졌다고도 한다. 노장대는 노장군의 지휘소가 있었고 그의 무덤이 있었다고 전해온다.
* 커다란 바위아래 <←선녀굴 0.6 / ↗노장대 0.1 / ↓안락문 50m> 이정표(삼거리)
* 함양 독바위 안내문
* 노장대로 오르는 밧줄
* <함양독바위>안내문이 있는 노장대 아래 공터
* 함양독바위(노장대)-(3분)-고열암터
.<←선녀굴 0.6 / ↗노장대 0.1 / ↓안락문 50m> 이정표(삼거리)로 되돌아 나와 선녀굴 방향으로 산죽 길을 잠시 내려가다가 올라가듯 잠시 가면 <↓함양독바위 0.1 /←벽송사 5.7>말뚝이정표가 있는 사거리에 이른다. (좌 ; 송대마을(선녀굴) 갈림길에서 내려오는 길<←송대 2.4 / ↑안락문.노장대 0.1 /↓벽송사 5.6>이정표 있는 곳/ 우 ; 선녀굴)
직진 40m정도 가면 <고열암에서 자다>안내문이 있고 주변엔 기와조각이 여러 널려있으며 왼쪽에 커다란 병풍처럼 둘러진 바위 아래 터가 있으며 샘터가 있으나 고여 있는 물이라 식수라는 곤란할 것 같다. 고열암터이다.
고열암은 예전에 일반대중의 기도 도량이었다기보다는 학승이나 구도승의 도량이었을 것이다.
사거리로 되돌아 나와 선녀굴로 향한다.
<고열암에서 자다[宿古涅庵]> 안내문 내용
병든 몸을 지탱하고자 하여
잠시 포단을 빌려 깔고 자는데
소나무 파도가 달빛 아래 들끓으니
구곡에 노니는 듯 착각케 하네
뜬구름은 또한 무슨 뜻인고
한밤중엔 바위 골짜기 닫혀 있구나
오직 정직한 마음을 가진다면
혹 산신령의 비록(備綠)을 얻을는지
-김종직의 “유두루록” 중에서-
위의 글은 <김종직 ; 조선초기 성리학자, 호는 점필재, 함양군수 역임(1470년~1475년), 1472년 지리산 기행문 “유두루록” 지음> 선생이 함양관아에서 출발하여 지장사, 선열암, 신열암 등 세 암자를 거쳐 그 날의 숙박지인 고열암에서 산행 첫 밤을 묵은 후 지은 時이다.
* <↓함양독바위 0.1 /←벽송사 5.7>말뚝이정표가 있는 사거리
* 말뚝이정표가 있는 사거리에서 직진 40m정도 가면 <고열암에서 자다>안내문
* 고열암터
* 샘터가 있으나 고여 있는 물이라 식수라는 곤란할 것 같다.
* 커다란 병풍처럼 둘러진 바위 아래 터가 있다
* <고열암에서 자다>안내문 주변엔 기와조각이 여러 널려있다.
* 고열암터-(1분)-노장대 전망대(빨치산루트 전망대)
.사거리에서 1분 후 커다란 바위 좌측에 <경관안내도>가 있으며 옆에 조그마한 공터가 있어 노장대를 바라보기엔 좋은 장소이고 그 옆으로 <노장대 독바위 조망안내도, 빨치산루트 조망안내>안내도가 있는데 이쪽에서는 노장대가 안보이고 대신 상내봉 및 벽송사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슬랩지대에 소나무가 있는 좋은 자리이다.
<노장대 독바위 조망 안내 내용 ; 노장대는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들의 활동거점으로서 세동마을로부터 시작되는 등산로와 송대에서 올라오는 등산로가 있다. 계곡과 어우러진 등산로를 따라 올라오다 보면 선녀굴(이은조 사살지) 등 당시 빨치산들의 은거지(산죽비트, 바위비트 등)를 찾아 볼 수 있다>
여기가 의논대가 아닌가 짐작된다. (수 십 명이 앉아서 쉴 수 있는 면적의 너럭바위가 있으며 절벽 아래에 석굴(石窟)이 있는데, 노숙(老宿) 우타(優陀)가 그 곳에 거처하면서 인근의 세 암자 선열암, 신열암, 고열암의 중들과 함께 이 돌에 앉아 대승(大乘), 소승(小乘)을 논하다가 갑자기 깨달았으므로 의논대라 한다.)
* 커다란 바위 좌측에 <경관안내도>가 있으며 옆에 조그마한 공터가 있다.
* 조그마한 공터가 있어 노장대를 바라보기엔 좋은 장소
* <노장대 독바위 조망안내도, 빨치산루트 조망안내>안내도
슬랩지대에 소나무가 있는 좋은 자리이다.
* <노장대 독바위 조망안내도, 빨치산루트 조망안내>안내도
* 노장대 전망대(빨치산루트 전망대)-(9분)-솔봉 갈림길-(2분)-선녀굴, 굴비트
.슬랩지대를 내려가 숲속 길을 내려가면 5분 후 이정표를 지나고 다시 이정표를 지나 오솔길처럼 포근한 숲속길이 계속 이어지는 도중에 총이 달린 이정표<←송대 , 선녀굴>가 있는 솔봉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간다. (직진은 솔봉(916m)으로 이어지는 능선)
2분 후 <선녀굴>이정표가 떨어진 공터(삼거리-우측은 송대)에서 좌측으로 10m 가면 선녀굴이다.
바위틈에서 선녀가 목욕을 했던 전설이 있던 곳으로 빨치산 이은조가 1963년 2월경 사살된 곳으로서 절벽 아래에 동굴이 있고 굴 앞에는 바위가 가로막아 바깥쪽에서는 눈에 잘 띄지 않은 은신처로 적당한 곳이다. 바위 안쪽에는 제법 널따란 공간이 있으며 옆에는 샘물까지 있어 빨치산이 은둔하기에는 정말 좋은 장소였던 것 같다. 바위 앞에는 네모반듯한 터가 있으며 마네킹이 있는 굴비트와 샘터도 있지만 식수로는 어려울 것 같다.
.선녀굴 : 선녀굴은 바위틈에서 선녀가 목욕을 하던 전설이 있으나 예쁘고 고운 이름에 걸맞지 않게 처절한 한국전쟁의 비화를 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함양군 휴천면 송전리 송대마을 뒤 해발 약 1000m에 위치한 선녀굴은 마지막 빨치산이었던 정순덕, 이홍이, 이은조 3인방이 10여년 동안 은거해 있었던 곳이며 여기서 정순덕과 함께 했던 마지막 빨치산 이은조(45세. 이북출신의 남파 공비)가 1963년 2월 토벌대에 사살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1963년 11월 정순덕이 체포되면서 증언하였다고 한다. 한때는 부처님의 도량이었던 작은 무명암자 터 이곳도 지리산의 여느 사찰들과 마찬가지로 전쟁의 참화는 피해갈 수 없었다. 이 암자 터는 해방직전 까지만 해도 작은 암자가 있어서 스님이 가끔씩 송대리에 내려와서 소금을 얻어가고 했다고도 한다.
* 총이 달린 이정표<←송대 , 선녀굴>가 있는 솔봉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간다.
* <선녀굴>이정표가 떨어진 공터(삼거리-우측은 송대)에서 좌측으로 10m 가면 선녀굴이다.
* 선녀굴 안내문
* 마네킹이 있는 굴비트
* 샘터도 있지만 식수로는 어려울 것 같다.
* 선녀굴, 굴비트-(12분)-계곡 진입-(5분)-빨치산 마네킹 2人
.이정표가 떨어진 공터로 되돌아 나와 송대쪽으로 잠시 가면 등로 우측에 석축이 반듯하게 쌓인 곳을 지나 말뚝이정표<송대 1.3 / 선녀굴 0.4>를 지나면 이내 너덜바위를 건너고 다시 너덜바위를 지나자마자 좌측으로 등로는 휘어진다. 곧 <선녀굴 / 송대>총이 달린 이정표를 지나 계곡에 닿으면서 <송대 1.1 / 선녀굴 0.6>말뚝이정표를 만난다.
그렇지만 이내 계곡을 좌측에 둔 채 점차 멀어지더니 이정표<송대 1.0 / 벽송사 7 선녀굴 0.7>를 지나면 갑자기 마네킹 2개를 만난다. 깜짝 놀란 만하다.
이후 석축 흔적이 있거나 돌담터를 여럿 지나간다. 여기저기 바위군이 있지만 군데군데 나무숲에 가려있어 과연 빨치산이 은폐 엄폐하기에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드는데 여기가 선녀골 독거촌인 듯하다.
여순반란 이후 잔여병력 200명과 좌익세력이 합쳐 2병단 지리산 유격대를 결성하여 1953년 8월 병단장 이현상이 사살된 후에도 격전이 이어졌는데 이 독거촌은 20여 가구가 살았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고 낮에는 토벌대, 밤에는 빨치산이 점령하여 양민들은 양쪽에서 의심을 받아 괴롭힘을 당했다고 전해진다.
내려가는 돌길이 조금은 조심스럽다.
* 마네킹 2개를 만나면서 이후 석축 흔적이 있거나 돌담터를 지나간다
* 빨치산 마네킹 2人-(6분)-계곡 건너다(1)-(3분)-계곡 건너(2) 바위비트-(7분)-철망 설치된 묘-(7분)-지리산 빨치산 루트 안내소
.처음으로 계곡을 건너 3분 후 다시 계곡을 건너자마자 <바위비트> 안내문이 있다. 주변의 바위가 은폐장소로 사용된 것이다. 마네킹이 보이질 않는다.
이후 등로는 산사면으로 편한 오솔길이 이어지는 가운데 산죽에 가린 마네킹 2개에 또 한 번 더 놀라게 되고 총이 달린 이정표<선녀굴 / 송대>를 지나 다시 말뚝이정표<선녀굴 / 송대>를 지나니 철망이 설치된 묘를 지나 내리막길이 이어지더니 좌측으로 갈림길 2곳(-↑)을 연속적으로 지나 공터가 나타나더니 이내 지리산 빨치산 루트 안내소에 이른다. 빨치산 자료 전시실과 화장실이 있다. 이후 포장길이 이어진다.
* 계곡을 2번 건너자마자 <바위비트> 안내문이 있다
* 산죽에 가린 마네킹 2개
* 지리산 빨치산 루트 안내소에 이른다. 빨치산 자료 전시실과 화장실이 있다.
* 지리산 빨치산 루트 안내소-(1분)-송대마을-(4분)-견불사 입구 표석(1)-(4분)-견불사 입구 표석(2)-(2분)-견불사 실상선원-(16분)-대련사-(6분)-용유교
.지리산 빨치산 루트 안내소에서 잠시 내려가면 송대마을이다. 사거리(포장길)에서 직진하면 견불사 입구 표석을 두 번 지나는데 아마 굉장한 규모의 절인가보다. 포장길은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법화도량 견불사 삼성각”이 있고 “천연와불성지 견불사 실상선원”이 있다.(고양터마을) 얼핏 보기에도 대규모의 불사를 이룬 사찰이다.
계속되는 내리막 포장길은 모전동마을 대련사(조그마한 암자) 앞에서 좌로 내려가면 아스팔트도로로 바뀌면서 모전마을회관.노인회관을 지나 모전교를 건너면 이내 임천강이 흐르는 용유교에 이르면서 산행은 종료된다.
* 송대마을이다. 사거리(포장길)에서 직진한다.
* 견불사 입구 표석을 두 번 지나간다.
* 포장길은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삼거리(←|)에서 좌회전
* 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법화도량 견불사 삼성각”이 있고 “천연와불성지 견불사 실상선원”
* 임천강이 흐르는 용유교가 보인다
* 모전동마을 대련사(조그마한 암자) 앞에서 좌로 내려간다.
* 모전교를 건너면 이내 임천강이 흐르는 용유교에 이르면서 산행은 종료된다.
* 용유교
* 용유교 아래 임천강이 흐르고...
* 용유교 아래 임천강이 흐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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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ail ; galdae803@hanmail.net
http://cafe.daum.net/galdae803
첫댓글 상세한 후기글 감사합니다^^ 영남알프스 집중 탐구에 이어,,,지리산 99 골짜기 모두 접수해 보려하는데,,,갈대님의 후기글은 신선한 먹거리로 다가옵니다,,,,늘 안전하고거운 산행하세욤
인사가 늦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자주 놀러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