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혜수(46)는 관능미와 지성적 매력을 동시에 발산한다.
화려하고 과감한 드레스는 매번 관심을 받고, 똑소리 나는 말솜씨로 공식석상에서 당당함을 과시하기도 한다. 30년간 대중의 사랑을 받는 톱 여배우.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사는 기분은 어떨까?
김혜수는 “사랑만 받진 않았다”며 “미움, 질타도 있었다”고 짚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가까운 예로 3년 전, 논문 표절 논란이 있었다. 질타를 받은 그는 드라마 제작보고회 공식 행사 자리에 나서 잘못했음을 인정하고 머리를 숙이며 “다른 이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사과했다. 석사학위는 반납했다.
“배우로서 누리는 좋은 것과 나쁜 것들이 있지만 그 많은 ‘종합선물세트’ 중에 전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제가 가진 자격으로는 누릴 수 없는 축복이었죠. 아마도 제가 계속 그런 자격을 훌륭하게 갖추진 않았을 거예요. 누군들 열심히 안 하겠어요. 심지어 저보다 더 잘하는 사람, 열심히 하는 사람도 있었을 텐데 절 사랑해주시고 기다려주시니 고마울 따름이죠. 저희 일이란 게 지켜보는 사람이 없으면 의미가 없잖아요. 대중과 소통하고 우리를 드러내야 하는 일이니까요. 봐줄 가치가 없는 사람이 되면 그야말로 의미를 상실하죠.”
믿고 보는 여배우의 새로운 도전
김혜수는 연예인이기 때문에 과도한 비난과 욕을 듣는 것에 대해서는 억울해하지 않았다. 그는 “배우만 억울하고 힘들까요? 물론 억울한 상황도 있겠지만 그 반대급부가 큰 직업인 것 같다”며 “내가 행동한 이상의 혜택을 받고 많은 지지도 받는다. 당연히 힘들 때도 있지만 이 직업이 가진 태생적인 운명 같다”고 웃었다.
논란은 있었지만 드라마 <직장의 신>에서 김혜수의 연기가 호평을 받았고, 이후 그는 줄곧 칭찬을 들었다. 최근 한 일간지의 설문조사에서 믿고 보는 여배우로 꼽히기도 했다.
특히 최근작들을 보면 ‘도전의 아이콘’이라는 별명을 하나 더 붙여줘야 할 것 같았다.
일단 지난해 영화 <차이나타운>은 꽤 충격적이었다. 살집을 늘렸고, 머리도 며칠은 못 감은 뒷골목 세력의 보스는 기존 김혜수라면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비주얼이었다.
<타짜>와 <관상>, <도둑들> 같은 주인공이 여럿인 작품으로도 관객을 찾아 유연한 모습을 보였다.
사실 <타짜>의 정마담은, 주인공이 아니었음에도 김혜수가 처음으로 욕심을 낸 캐릭터이기도 하다. 그는 또 유명 배우들이 꺼려했던 케이블채널 드라마에도 참여하며 흥행에 도움을 줬다.
<시그널> 속 차수현 형사는 관객을 뭉클하게 했다. 근작 영화 <굿바이 싱글>도 특별하다.
모든 걸 가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던 여배우가 ‘온전한 내 편 만들기’를 위해 거짓으로 임신했다고 이야기하며 벌어지는 일들을 담은 이 영화는 김혜수인 듯 김혜수 아닌 캐릭터가 관객과 마주했다. 김혜수는 “굿바이 싱글은 배우 김혜수의 다큐가 아니다. 캐릭터로만 접근했다”고 선을 그었다.
본인이 아니라 철저히 연기한 것이라고 하긴 했으나, 극 중 20년차 여배우 고주연이 “너무 너무 이해가 됐다”고 몰입한 김혜수.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 “정말 뻔했던, 신선하지 않은 이야기”였으나 진정성 있게 다가온 이유는, 논문 표절 등 본인이 힘든 일을 겪을 때 친구들로부터 받은 위로와 믿음을 느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세상에 드러난 일도 있고 아닌 일도 많지만 힘든 일을 겪었을 때 내게도 진짜 내 편이 있고, 그들이 나를 살려준다는 고마움을 느꼈죠. 초등학교 친구들부터 내 옆에 존재하는 많은 이들이 소중하게 느껴져요.”
미혼모라는 사회적 이슈를 살짝 버무린 것도 좋았다. 정서적으로 미성숙한 여배우가 뒤늦게 철들고 성장하는 이야기가 웃음 짓게 하고 눈물 흘리게도 했다. 김혜수는 “진정성만 있다면 어떻게 말하든 진심을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또 “<굿바이 싱글> 이야기는 배우에 국한한 이야기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고도 했다. “영화 주인공의 직업이 배우일 뿐이지 전문 직종 여성들의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지 않나요? 실력 있는 사람들 중 심리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이들도 있잖아요. 실력과 성숙도가 정비례하지 않는 경우요. 특히 아이와 관련된 것은 여성이라면 생각하고 고민할 수 있는 이야기였죠.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가족이나 친구, 애인이 있어도 뭔지 모를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느끼기도 하잖아요.”
‘외로움’이라는 단어에서 묘한 이질감이 느껴진다.
왠지 쓸쓸함이 묻어나는 단어, 이 단어는 30년을 배우로 살아온 김혜수도 피할 수 없었다. “제가 외롭다고 느끼는 건 꼭 배우여서가 아닌 것 같아요. 아마 많은 사람이 그런 기분을 느끼지 않을까요? 청춘은 청춘이어서 고독이 강렬하고, 나이 들면 들수록 고독이 더 쓸쓸할 것 같아요. 풍요로운 노년이 되어도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감정이죠. 옆에 누가 있어도 그렇게 느낄 수 있지 않나요?”연인이나 가족으로 외로움을 상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는 오히려 가족에게는 외로움을 털어놓지 않는 편이란다.
“속상하고 깊은 이야기는 더 잘 안 하게 되더라고요. 살갑게 얘기하지 않다가 어느 날 난데없이 큰일을 얘기하면 너무 걱정할까 봐 말 못 하겠더라고요. 또 지난 1년 동안 형제를 만난 것보다 더 많이 만난 사람이 매니저인 것 같아요. 제 매니저도 이제 곧 결혼하는데 색시될 사람보다 절 더 많이 만났을 거예요.(웃음)”
16살 중3 때 데뷔 “이렇게 오래할 줄은…”
1986년 영화 <깜보>로 데뷔해 다양한 모습을 선보인 김혜수는 “이렇게 이 일을 오래 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처음에 일을 시작하고 몇 년은 아무것도 몰랐어요. 이렇게 하라고 하니 했고, 저렇게 하라고 해서 했죠. 어린 시절을 그렇게 보냈어요. 일상은 너무 평범하고 단조로웠고 학창 시절 경험도 별로 없죠. 그러다 보니 사춘기도 늦게 왔고, 자의식에 대한 인식 혹은 고민도 늦었어요. 늦게 하면 더디고 길잖아요. 굉장히 헤맸고 힘든 시간을 보냈죠. 외로움도 있었고요. 그래도 다행히 전 운이 무척 좋았던 것 같아요. 좋은 분도 있었을 것이고, 아닌 분들도 있었을 텐데 좋은 분들이 어떤 식으로든 저를 지켜준 것 같거든요.”
요즘 연기 잘하는 이들이 눈에 들어온다는 그는 <굿바이 싱글>로 호흡을 맞췄던 김현수를 언급하며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16살이라는데 내 데뷔 나이가 중학교 3학년이었거든요. 현수를 보면서 내 과거가 떠오르기도 했어요. 시키는 대로만 했거든요. 현수는 이미 배우로서 자질을 갖춘 무서운 아이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어린 나이에 데뷔해 오랜 시간 동안 시행착오를 겪는 등 고민을 많이 한 듯한 인상이다. 마흔을 넘겼으니 어떤 답을 찾아냈을까? 고민이 줄어들진 않았을까?
김혜수는 “자기도 마흔 넘어 봐요”라며 슬쩍 팔을 잡고 웃으며 말을 이었다. “공적이든 사적이든 거센 파도를 맞으면 좀 더 강해지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게 또 안 그렇더라고요. 심지어 겪은 감정이기 때문에 더 겁나기도 해요. 일종의 트라우마로 작용하는 거죠. 시간과 비례해 자연스럽게 얻는 것도 있지만 반대로 반드시 노력해야만 얻어지는 것도 있어요. 시련이 왔을 때 극복하는 게 답인 줄 알았는데 극복하지 않고 그 시간을 견디기만 해도 괜찮은 것 같아요.”
카메라 밖에서는 동네친구 ‘친근한 매력’
김혜수는 선배 배우 손숙과 과거 드라마 <짝>에서 모녀로 만난 인연도 공개했다. 과거를 떠올리며 기분이 좋았는지 60분 남짓한 인터뷰 시간 중 가장 환하게 웃으며 일화를 전했다.
“선배는 누구에게도 가르치려고 하지 않더라고요. 권위의식도 없고 정말 따뜻하셨어요. 누가 조언을 얻으려고 하면 항상 미소로 ‘그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고 말씀 하시는데 힘이 되더라고요. 수양딸처럼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었죠. 또 선생님은 공연 때문에 촬영 못 하고 가야 하는데 그걸 말씀을 못 하시더라고요. 다른 사람이나 촬영에 피해를 줄까 봐요. 또 항상 대본 아니면 책을 보셨는데 존경심과 경외심이 느껴졌죠.”
그런 손숙에게 비록 영화 속 대사이긴 하지만 “너 이제 배우 같다”는 말을 들었다.
“평생을 공개적으로 살아내고 버텨주신 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가슴이 찡하더라고요.”
본인 스스로는 언제 배우 같다는 생각을 했을까? “그건 잘 모르겠어요. ‘배우라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이걸 해야 하나?’ ‘연기 잘하는 사람은 어떻게 하는 걸까?’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요.
솔직히 얘기하면 최근에 <시그널> 이후로 그런 의미의 이야기를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 말은 누군가의 시점에서 말해주는 게 맞는 거니까요.”
김혜수는 여배우가 참여할 작품이 없는 영화계에 대해서도 짚었다. 안타까움과 배우로서의 욕심, 바람이 온전히 드러났다. “오래간만에 만나도 ‘맞다. 이 배우 있었지!’라고 할 정도로 연기를 잘하는, 좋은 배우들이 많아요. 세상에 얼마나 여성 군상이 많아요. 새롭게 만나고 싶은 캐릭터를 관객도 보고 싶고, 실제 여성 연기자들도보여주고 싶어할 거예요. 하지만 준비된 여배우는 많은데 실제작품이 많지 않긴 하죠.” 그런 의미에서 현재 촬영 중인영화 <소중한 여인>은 고마운 작품이다. 그는 “시나리오를 받은 지 벌써 3년이 다 된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그 말을 다시하면 그만큼 투자가 어렵다는 말이죠. 운이 좋아 결국 <굿바이 싱글>, <소중한 여인>이 영화화된 거지, 안 되는 작품들도 많아요. 소위 내로라하는 유명한 배우들이 출연한다고 해도 투자 안 되는 영화도 있죠. 물론 우리나라만 그러는 건 아닌 것 같아요. 할리우드도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30년을 잘 버텨온 그는 향후 30년을 더 기대해도 되느냐는 말에 “그건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30년차 여배우는 모든 질문에 편안하게 답했다. 질문을 꺼려하진 않았다. 옆자리에 앉은사람을 툭 건들면서 편하게 답하는 모습이 동네 친구를 만나는 듯한 감정도 들게 했다. 카메라 밖에서 그는 여배우가 아니었다. “전 항상 성장하고 잘하길 바라지만, 당연히 퇴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이니까요.”
(인용: 진현철,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좋아하는 배우이고, 정리한 글도 좋아 인용했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