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람
시각장애인 위해 점자자료를 만드는 점역교정사 박경화 씨
- “뛰어난 기술과 뜨거운 열정으로 장애인에 대한 편견 해소할 것”
점역교정사 박경화 씨 앞에 각종 인쇄물이 수북이 쌓여 있다. 그가 점자로 제작해야 할 자료들이다. 타이핑 및 점역 작업 끝에 점자 프린터에서 올록볼록한 점자가 새겨진 인쇄물이 출력되기 시작했다. 나사렛대학교 장애학생지원센터에서 일하는 박 씨는 시각장애인이 촉각을 이용해 자료를 읽을 수 있도록 각종 묵자 인쇄물과 도서 출판물의 점역을 수행한다. 힘들 법도 한데 박 씨는 “통로자로서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라며 “점자 인쇄물을 통해 보다 많은 학생이 꿈을 실현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Q. 만나서 반갑습니다.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나사렛대학교 장애학생지원센터에서 점역교정사로 일하는 박경화입니다. 장애 학생의 특성에 맞게 학업을 지원하는 것이 저희 센터의 주요 목적이기에 시각, 청각, 지체·뇌병변, 기타 장애 등 파트별로 나뉘어 체계적으로 학생들을 지원합니다. 저는 그중 시각장애 학생들을 위해 점자자료를 제작해요. 실수가 없어야 하기에 약간의 긴장감은 늘 안고 살아요. 또 점자 교재 제작은 일반 묵자책 제작보다 시간이 배로 소요되기에 시간적 압박도 다소 있는 편입니다. 그 외에도 지역사회 장애인 인식개선사업 중 하나인 점자명함, 쌍용2동 편의시설 점자지도 제작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어요.
Q. 새 학기 준비로 분주하겠어요.
A. 그렇습니다. 방학 기간을 ‘다음 학기를 준비하기 위한 시간’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그 말이 딱 맞아요. 다음 학기에 시각장애 학생들이 사용할 전공서와 토익 교재, 사회복지사나 특수학교 교사 임용 등 각종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을 위한 수험서를 점자자료로 제작해야 하거든요. 장애인의 온라인 접근성을 배려해 비장애 학생보다 조금 더 빨리 수강 신청을 하도록 하거든요. 장애 학생 우선 수강 신청 제도를 통해 다음 학기 시간표가 정해지면, 그때부터 전공·교양과목 등의 교재 신청을 받아 점역 작업에 들어갑니다. 한편 방학 기간 중에 센터 내에서 진행하는 점자 기초반 교육도 있어서 꽉 찬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학기 중에는 교재뿐 아니라 매주 등록되는 교수님들의 PPT 강의 자료, 중간·기말고사 시험지 등을 점역합니다. 제가 만든 점자 교재가 1년에 100여 권, PPT 강의 자료는 2천여 건 정도 됩니다.
Q. 어마어마한 양이네요. 시각장애 학생들이 큰 도움을 받겠어요.
A. 많은 양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우리나라의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자료 등 대체자료 전환 비율이 10%에 불과하거든요. 즉 출판물이 나오면 10권 중 1권만이 시각장애인이 접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집니다. 특히 전공 서적에 대한 점자도서는 찾기가 매우 어려워 개인적으로 필요한 책을 골라 의뢰해야 하는 실정이에요. 졸업한 친구들이 가장 아쉬운 게 장애학생지원센터라고 하더군요. 대학생으로 있을 때는 센터에서 점자자료를 빠르게 제작해 줘서 크게 인식하지 못했는데, 사회에 나가 자기 계발을 하려니 자료 구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요. 그때마다 제가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인식합니다. 장애·비장애에 관계 없이 모두가 다양한 꿈을 꾸고 자신을 계발할 수 있도록 점자도서를 비롯한 특수도서가 많이 제작되어야 해요. 조금이나마 이에 도움이 된다는 게 저의 큰 보람입니다.
Q.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A. 저는 지체장애 5급과 저신장 장애를 갖고 있습니다. 비록 장애가 있지만 그것을 이유로 도움만을 받아야 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나사렛대학에서 사회복지학과 재활학을 공부했지요. 저 역시 장애학생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았는데, 그때마다 “나도 이곳에서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웠어요. 점자는 센터 선생님께 배웠어요. 점자 인쇄물이나 스티커 등이 시각장애 학생에게 일상에 편의를 주는 작은 통로가 된다는 점에 매력을 느꼈지요. 열심히 준비해 점역교정사 3급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교직원으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Q. 점역교정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우리나라엔 500여 명이 점역교정사로 활동 중인데요, 다른 나라에 비해 그 수가 현저히 부족하다고 해요. 점역교정사가 되려면 점자를 외운 뒤 점역실기, 교정실기 등으로 구성된 시험에 응시해 자격증을 취득해야 합니다. 자격증은 1급, 2급, 3급으로 나뉘어 있고, 시험은 연 2회 진행돼요. 국어와 영어 등 과목별로, 장애·비장애, 또 점역과 교정 분야별로 배점이나 시험 시간이 차이가 있어요. 3급에 해당하는 국어의 경우, 객관식 점자상식 문제와 묵자를 점자로 옮기는 점역실기, 점자로 오기된 부분을 바로잡는 교정실기로 나눌 수 있어요. 보통 비시각장애인은 점역을 위주로, 시각장애인은 교정이 주가 되는 문제가 나옵니다. 점역사는 점자를 입력하는 시간 싸움이고, 교정사는 틀린 맞춤법과 점역 오기를 찾는 게 관건이에요. 어렵고 복잡할 것 같지만, 꼼꼼하고 세심한 성격을 지닌 사람이라면 도전해볼 만한 일입니다. 다만 전공 서적은 그림, 도식, 도표가 많으니 전공자가 점역하는 게 유리하고, 일본어나 중국어 등 제2외국어로 된 교재를 점역할 때는 해당 언어 전공자가 점역하는 게 좋은 듯해요.
Q. 이 일을 하면서 어렵거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요.
A. 원본 파일을 제공받을 수 없을 때가 가장 아쉬워요. 미국의 경우 시각장애인이 책을 구매한 뒤 그 책의 파일을 달라고 출판사에 요청하면 파일을 제공해 줍니다. 그러면 파일을 점역교정사가 점자도서로 빠르게 제작하지요. 우리나라는 출판사로부터 파일을 쉽게 제공받을 수 없다 보니 일반 도서를 타이핑해 한글 파일로 만드는 작업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요. 보통 이 작업은 학기 초에 교내 학생들을 대상으로 선발한 봉사 인원이 맡는데, 학사 일정 등 시간이 촉박한 경우 제가 직접 타이핑해 그 파일을 바로 점역하기도 해요. 교내 도서관에 자료가 축적되다 보니, 점자자료 제작을 위한 일반 도서를 구하는 일이 과거보다 수월하긴 합니다. 하지만 원본 파일에 대한 아쉬움은 늘 존재해요. 원본 파일이 있다면 곧장 점역 프로그램을 통해 작업할 수 있으니, 시각장애 학생이 좀 더 빠르게 원하는 자료를 받아볼 수 있을 테니까요. 시각장애인의 정보 접근성 향상을 위해서라도 꼭 개선되었으면 좋겠어요.
Q.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요.
A.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수업이 비대면으로 바뀌었을 때를 빼놓을 수 없어요. 화면낭독 프로그램 스크린리더와 웹 사이트 간의 호환성 등 비장애 학생에 비해 장애 학생의 학습권에는 더 많은 문제가 발생했거든요. 다행히도 학교에서 발 빠른 대처를 했고, 저는 시각장애 학생의 강의 교재와 강의 노트를 점역했습니다. 학생들이 “점자자료 아니었으면 공부가 더 어려웠을 거예요. 자료 만들어 주실 때마다 놀라고 있어요”라면서 고마움을 표현할 때마다 ‘내가 이 일을 하길 참 잘했구나’ 생각합니다. 특수교사 임용에 합격한 학생도 떠올라요. 관련 교재를 제작해 주며 응원했는데 임용에 한 번에 붙었다며 인사하러 왔어요. 어려운 전공 용어를 풀어낼 때마다 ‘이게 맞을까? 잘 하고 있는 걸까?’ 고민이 많았는데, 그 말을 듣고 자신감과 자부심이 솟았어요.
Q. 올해 목표와 바라는 희망이 궁금합니다.
A. 점역된 책으로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학생들을 보면, 절로 힘이 닿는 한 돕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난해한 도표나 해석이 어려운 악보 등을 점역하며 한계를 느낄 때도 있지만,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학생들처럼 저 또한 성장하고 있음을 깨달아요. 더 많은 책을 제공할 수 있도록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경험과 지식을 쌓고 싶습니다. 점역교정사 자격 급수를 높여 제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노력할 거예요. 학생들의 학업이 향상할 수 있게끔 통로자 역할을 하고 싶어요.
<박스>
○ 점역교정사란?
점역교정사는 간행물, 민원 안내, 학습서와 소설 등 일반 자료를 시각장애인의 문자인 점자 형태로 제작하는 직업이다. 인쇄물 형태의 점자도서뿐 아니라 파일 형태인 전자 점자도서, 묵자와 점자가 혼용된 점묵자도서 또한 포함된다. 점자도서관, 복지관, 특수학교, 사회적기업 등에 취업이 가능하다.
○ 점역교정사 자격(2024년 1월 기준)
보건복지부가 공인한 민간자격으로 사단법인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에서 관리 운영한다. 점역교정사 자격은 점역·교정 가능한 과목 유형 수에 따라 1, 2, 3급으로 분류하고, 자격시험은 4월과 10월에 치러진다. 과목은 국어, 수학·과학·컴퓨터, 음악, 영어, 일본어가 있다. 점역실기와 교정실기 등의 점수를 합산해 60점 이상이어야 합격이다.
국어 과목 취득 시 3급이 되는데, 3급 자격시험 응시 제한은 없다. 2급은 국어에 합격 후 수학·과학·컴퓨터, 음악, 일본어, 영어 과목 중 하나를 취득해야 한다. 1급은 국어 과목 점역교정사 자격 소지자가 2급에 해당하는 과목 중 2과목 이상 합격하면 된다. 이때 1급 자격에서 영어는 필수이다.
○ 응시 유형별 시간과 과목별 배점
점역사(비시각장애인): 1시간 20분
교정사(시각장애인): 2시간
○ 3급 국어
점역사: 점자상식 20점, 점역실기 60점, 교정실기 20점
교정사: 점자상식 20점, 점역실기 20점, 교정실기 60점
○ 수학·과학·컴퓨터, 영어, 음악, 일본어
점역사: 점역실기 70점, 교정실기 30점
교정사: 점역실기 30점, 교정실기 70점
자세한 사항은 http://jum.kbuwel.or.kr 참고
김수정·신혜령 기자
* <손끝으로 읽는 국정> 01월호 통권 제195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