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트라우스는 조숙한 천재였다. 그보다 네 살 많았던 말러가 (지휘자로서 인정받은 것과는 별개로) 오랫동안 몰이해와 맞서 싸워야 했던 것과는 달리, 슈트라우스는 처음부터 눈부신 속도로 정상을 향해 달려갔다. 서른 두 살의 나이로 [차라투스트라]를 쓰고 있었던 1896년 당시 그의 명성과 창작력은 이미 정점에 달해 있었다. 1895~98년 사이에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 [차라투스트라], [돈 키호테], [영웅의 생애]가 잇달아 나왔던 것이다. 이들은 모두 교향시였으며, 이 가운데서도 특히 [차라투스트라]는 웅대하고도 풍부한 악상과 치밀한 묘사력, 탁월한 관현악 기법으로 이 장르의 최대 걸작으로 일컬어진다.
슈트라우스는 니체의 장대한 철학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큰 감명을 받은 뒤로 이 작품에 기초한 교향시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이 곡은 1896년 2월에 착수되어 8월에 완성되었으며, 같은 해 11월에 작곡가 자신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의아하게 들리겠지만, 이 곡은 처음에 찬사만큼이나 비난도 많이 받았다. 당시까지는 누구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철학의 음악화’를 시도했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이에 대해 슈트라우스는 “나는 철학적인 음악을 쓰려 한 것이 아니며, 인류가 그 기원에서부터 여러 단계를 거쳐 발전해가는 모습을 음악이라는 수단으로 표현하려 했던 것이다.”라고 해명했다.
자유롭게 확대된 소나타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교향시에는 여덟 개의 작은 표제가 붙어 있으며, 이들 각각은 니체의 철학시에 대응하지만 굳이 해당 대목을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책 자체를 읽지 않았더라도 곡을 감상하는 데 큰 지장은 없다(물론 알면 더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다만 이 곡에서는 자연을 나타내는 C장조 및 C단조와, 조성 체계상으로는 여기서 가장 멀면서도 한편으로는 반음으로 가까이 있는 B장조 및 B단조가 서로 대립하며 발전해 간다는 사실 정도는 알아두는 게 좋을 것이다.
인류의 기원에서 발전까지의 과정을 그린 철학적인 교향시
이 곡은 C장조 4/4박자로 시작한다. 서주 부분에는 표제가 달려 있지 않지만 니체 작품과 관련하여 ‘일출’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많다. 첫머리지만 니체 철학시에서는 맨 마지막 장면에 해당한다. 오르간의 지속음 위로 트럼펫이 ‘자연의 주제’를 연주하고, 이 주제가 힘찬 팡파르로 이어졌다가(아무리 클래식을 모르더라도 이 부분은 들어봤을 것이다) 잠잠해진 뒤 ‘후세 사람들에 대하여’로 이어진다. 여기서는 저음현이 우주의 수수께끼를 풀고자 하는 인간의 갈망을 상징하는 ‘동경의 주제’를 노래한다. 이외에도 신앙심을 상징하는 종교적인 선율을 비롯해 다양한 동기가 등장하면서 일단 클라이맥스를 형성한 뒤 ‘위대한 동경에 대하여’로 넘어간다. 화사한 느낌으로 시작했다가 다른 동기들이 가세하면서 복잡하게 발전해가며, 템포가 급류를 타듯 빨라지면서 무겁고 밀도 높은 악상과 더불어 ‘환희와 열정에 대하여’로 이어진다. 여기서는 현 위주의 새로운 주제가 중간에 등장해 관능적이고 애절한 노래를 들려준 뒤, ‘매장의 노래’로 넘어가 ‘동경의 주제’가 목관을 중심으로 한층 더 애수 띤 형태로 제시된다.
악상이 가라앉아 ‘과학에 대하여’로 넘어가면, 어둡고 불길한 선율로 시작해 다양한 악상이 얽히는 가운데 까다로운 조성적 실험이 이루어지는 기교적인 푸가가 전개된다. 갑자기 악상이 일변해 템포가 급박해지면서 ‘병이 치유되는 자’가 시작되는데, 장대하고 입체적인 짜임새를 지닌 이 대목이야말로 전곡 가운데 가장 큰 클라이맥스에 해당한다.
관현악 총주가 ‘자연의 주제’를 모든 것을 쓸어버릴 듯한 포르티시모로 연주한 뒤 침묵에 빠졌다가(이 대목에서 박수를 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다시 어둠 속에서 꾸물거리며 일어나듯 악상이 이어진다. 그러나 곧 명랑하면서도 밝은 분위기로 바뀌며, 트럼펫이 ‘자연의 동기’를 조용히 되풀이하면서 ‘춤의 노래’가 시작된다. 이전에 제시된 여러 동기가 왈츠 리듬에 맞춰 변형된 채 재등장하며, 그 가운데서도 호른의 은은한 독주(‘밤의 노래’)는 무척 아름답다. 이 주제가 기존의 여러 주제와 맞물려 발전한 뒤 악상이 갑자기 힘을 얻어 가파르게 고조된 뒤 종소리와 함께 다시 한 번 클라이맥스에 도달한다. 바로 이 클라이맥스가 마지막 대목인 ‘밤의 나그네의 노래’로, 이제 음악은 길고 완만한 하강을 거쳐 B장조와 C장조가 엇갈리면서 인간과 자연의 영원한 대립을 암시한 뒤 C장조의 저음으로 무겁게 끝난다.
굴레를 벗어던지고 진정한 초인으로 거듭나다
“이것은 나의 아침이다. 나의 낮이 시작된다. 솟아올라라, 솟아올라라, 너, 위대한 정오여!”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고는 그의 동굴을 떠났다. 컴컴한 산 뒤에서 솟아오르는 아침 태양처럼 불타는 모습으로 늠름하게.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대미를 장식하는 이 마지막 장면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자신을 얽어매고 있던 마지막 굴레(그것은 ‘연민’이었다)를 벗어던지고 진정한 초인으로 거듭나 세상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다. 이 대목을 읽은 다음, 슈트라우스 교향시의 첫머리를 다시 들어보라. 전과 똑같이 들리는가? 그렇지 않다면, 이제 큐브릭의 그 인상적인 장면으로 되돌아갈 준비가 된 것이다. 유인원에서 인간으로 거듭나는 그 장면은 인간이 초인으로 거듭나는 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차원의 비약을 그려내고 있다. 그렇다면 그러한 의미를 상징적으로, 그러면서도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음악으로 달리 어떤 곡을 고를 수 있었겠는가? 큐브릭은 [차라투스트라]의 첫머리를 골랐을 때 그 효과뿐만 아니라 그 대목이 지니는 의미 역시 깊이 고려했을 것이며, 아마도 이 곡을 통해 자신의 영화가 니체의 철학시와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이렇듯 고전은 시공과 장르의 경계를 넘어 서로 교차하고 관류하게 마련이며, 그 숨은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것은 열정과 탐구심을 지닌 이에게만 허락되는 특전이자 기쁨이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05.17 2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