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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 하려면 일단 술부터 줄이세요" 누구나 알 수 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조언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알콜은 영양분이 아니라서 지방으로 전환되지 않는다던데요?' '알콜은 분해과정에서 칼로리 소모가 많아서 살 안찐다던데요?' '알콜 중독자들은 오히려 비쩍 말랐던데요? '술먹으면 오히려 체중 줄던데요? '제가 듣기로느는 카더라..카더라..카더라..'
레퍼런스를 '카더라 통신'으로 삼는 이런 질문들의 속내는 한결같다. '그러니까, 술 마시고 싶다구요! 마셔도 된다고 말해주세요! 네에?'. 인간은 누구나 질문에 앞서 자기가 기대하는 답을 가슴에 품고있기 마련이다. 그래도 이건 좀 심하다. 처음 술맛을 배운 날 이래로 한번도 줄어든 적 없는 자신의 허리사이즈를 생각하면 TCA니 탈수효소니 동원할 필요도 없이 그냥 피부로 와닿을 텐데, 왜 기어이 '술먹어도 된다고 말해주세요!' 라고 하는걸까... 다들 기대했던 대답이 아니라서 유감이겠지만 결론은 심플하다. 술먹으면, 살찐다. 무조건.
1. 영양소? 독소! '술은 음식이다' 사케나 와인붐을 따라 널리 퍼진 말이다. 맞다. 술은 식문화의 일부이며 그 자체가 요리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술에 들어있는 알콜까지 '영양소'로 착각하면 곤란하다. 영양학이든 생화학이든 생물학이든 뭐 어느 분야라도 좋다. 체내에서 알콜이 처리되는 과정을 '소화'라고 표현하는 교과서가 있는지 찾아보자. 점잖게 표현하면 '대사(metabolize)', 아예 대놓고 '해독'이라고 표현하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알콜은 영양소가 아니라 아예 영양소의 소화흡수를 방해하는 反영양성분(antinutrient)으로 분류된다.
알콜은 일단 체내에 들어오면 일반적인 에너지원인 3대영양소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대사된다. 아주 즉각적으로 분해가 시작되고 몸에 쌓이지도 않는다. 몸이 대사시키지 못할 정도로 과량의 알콜이 들어왔다고 이를 축적시키는 알콜 주머니 따위는 없다. 어떻게 해서든 최종분해 산물인 '물과 이산화깨쓰.. 아니 이산화탄소'가 될 때까지 몸은 100% 대사를 향해 질주한다. 만약 실패하면.. 이제 9시 뉴스에 나오는 유명인사가 되는거다. '대학 새내기, 선배가 강권한 술먹고 급사' 이런 식으로. 급성 알콜 중독으로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사실만봐도 알콜에 대한 설명은 반쯤 끝난 것 같다. 인체는 알콜을 '독소'로 받아들이고 해독하려고 든다. 알콜대사는 소화보다 해독에 가깝다.
2. 기본 시나리오 술을 마시면 위나 장에 있는 점막을 타고 알콜 (정확하게 말하면 에탄올, 메탄올-공업용 알콜 마시면 그냥 골로가는거야!)이 체내에 흡수된다. 흡수된 알콜은 혈액속에 녹아 혈관을 타고 간, 뇌, 폐 등으로 이동한다. 술먹으면 혈중 알콜 농도가 증가한다는게 바로 이런 것이다. 뇌로 들어간 술은 뇌기능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키고 (술먹으면 혀꼬부라진 소리가 나고, 스텝이 꼬이며, 다음날 필름이 끊기는 등등) 폐로 들어간 미량의 알콜은 호흡을 통해 대사되지 않고 바로 배출된다. 이래서 고주망태가 된 아저씨는 옷에 술을 흘린 것도 아닌데 몸에서 술냄새가 진동을 하는 것이다. 날숨으로 혈중 알콜 농도를 측정하는 경찰의 음주단속도 같은 원리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처리되는 알콜은 총 섭취량의 2,3% 정도. 대부분의 알콜은 이제 혈액에 실려 간으로 이동된다.
이제 간은 각종 효소를 동원해 알콜을 '인체에 덜 유해한 최종분해산물'로 분해시킨다. 최종 목표는 물과 이산화탄소인데 그 사이에 나오는 중간 분해산물인 '아세트알데히드'가 적절히 처리되지 못하고 몸에 쌓이면 숙취의 원인이 된다. ( 메탄올의 경우 이 중간 분해산물이 포름알데히드 - 포르말린의 원료- 이기 때문에 먹으면 죽는다...) 아세트알데히드는 다시 아세테이트와 초산을 거치고 초산은 TCA회로에 편입되어 물과 이산화가스... 탄소로 분해되면 미션 석세스. 그 과정을 표현한 모식도를 아래에 마련했으니 한 번 주욱 훑어보자.
3. 태클과 빽태클 이제 이를 놓고 들어오는 태클과 다시 역으로 거는 빽태클을 살펴보자. 일단 알콜 자체는 '영양소' 는 아니지만 '에너지' 는 있다. 알콜 1g을 태우면 7Kcal라는 꽤 많은 열량이 발생된다. 인간이 평소에 영양분으로 쓰는 탄수화물(4Kcal)의 두배에 가깝고 지방(9Kcal)에 근접한 고칼로리다. 그러나 이 안에 영양성분이 없어서 체지방으로 축적되지 않고 문자그대로 열, 몸에서 열로 방출되는데다가 심지어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간에서 알콜을 아세트알데히드로, 아세트산으로 이러쿵 저러쿵 분해하느라 에너지를 쓰기 때문에 살은 도리어 빠진다...! 이것이 주당들의 희망사항되겠다. 그러나 알콜의 가장 큰 문제는 거기에 포함된 칼로리의 숫자가 아니라 '신진대사'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데 있다. 그것도 당연히 부정적인 영향을.
몸은 진동한다. 당신의 몸뚱아리는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늘도 체성분을 구성하는 수십억개의 세포를 부수고 다시 만들고 하면서 '총량'이 보존될 뿐이지 '변화'는 이어지고 있다. 그 변화의 결과만 놓고 봤을 때 제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당신의 몸은 지금 이 순간에도 소리없이 진동중이다. 균형이란 어느 균형점에 딱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목표를 향해 물러섰다 나아가면서 얻어지는 것이다. 당신의 뱃살도 마찬가지다. 마우스 휠을 굴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몸안의 체지방은 분해되었다 다시 재조합되면서 총량을 유지한다. 근데 술을 마시면 이 균형이 '작살'나서 문제다.
알콜은 영양소의 소화와 '경쟁관계'에 있다고 앞서 말했다. '독소'라서 일단 몸에 들어오는 순간 인체는 체지방분해나 소화같은 기존의 신진대사는 내팽겨치고 알콜대사를 0순위로 돌린다. 위의 모식도에서 아세트알데히드를 분해하는데 쓰이는 NADH라는 효소가 보일 것이다. 술이 들어오면 NADH의 농도가 높아진다. 이는 지방 합성을 촉진하고, 젖산의 제거를 막는다. 더불어서 당신생과정을 방해한다. 용어빼고 간단히 설명하면 우리몸의 각종 신진대사가 올스톱되고 알콜을 분해하는데 올인하는데 이 과정이 죄다 '살찌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1.체지방이 분해되지 않는다-> 체지방이 늘어난다. 여러분이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체지방은 어느정도 분해되고 있다! 희소식이긴 하지만 너무 좋아할 필요까진 없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가만히 잠만 잘 때, 이 때 혈당이 떨어지고 공복을 느낄만도 한데 왜 우리는 곤히 잘 수 있는 걸까? 이는 간에서 지방을 쪼개 당분을 만들어 공급해주기 때문이다. 당신생과정(Gluconeogenesis)라 하는데 단백질이나 지방처럼 탄수화물 이외의 것들을 쪼개서 혈당을 올리는 것이다. 측 체지방이 분해되어 그 급부로 혈당이 오른다. 문제는 술이 들어가는 순간 이런 과정이 중단된다는 것이다. 즉 당신이 평소대로 먹고 생활할 때 몸은 100의 체지방이 분해시켜 에너지로 쓰다가 다시 100을 재합성해서 균형을 맞춰놓는다. 그런데 술이 들어가면 이 흐름이 깨진다. 결국 평소에 늘 태워야 할 지방을 안태우니 살이 찌는 셈이다.
2.같이 먹는 것은 죄다 살로 간다! 알콜은 열량이 꽤 높은데다 다른 영양소에 비해 '먼저' 대사된다고 미리 말했다. 그러니까 술자리에서 같이 먹는 안주는 알콜이 모두 분해되지 않는 한 죄다 체지방으로 가서 쌓인다. 이제 슬슬 꿈과 희망을 접어야 할 타이밍.
3. 그런데 탄수화물이 땡긴다! 단골집에서 오늘 한 번 죽어보자 부어라 마셔라! 하다보면 새벽녘에 서비스로 밥이나 라면을 내오는 경우가 종종있다. 경험많은 주인장은 오랜시간 수많은 술꾼들을 겪으면서 '알콜성 저혈당' 을 피부로 체감했기 때문이다. 깡소주만 먹다보면 배가고파진다. 아니 알콜에도 열량은 있다며, 뭔가를 먹고 있는데 배가 고프다니 이 무슨 말도안되는..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이런 알콜성 저혈당의 원인은 크게 두가지. 답 하나는 바로 위에 나와있다. 평소에 체지방을 분해해서 혈당을 끌어올리는 작용을 간에서 하는데 지금 간이 알콜을 분해시키느라 급하다. 결국 혈당이 떨어진다. 두번째. 간이 그 중노동을 하느라 자체적으로 비축하고 있던 글리코겐(간과 근육에 저장되는 동물성 탄수화물)을 소모해 몸이 추가로 탄수화물을 필요하게 된다. 이 두가지 요인이 겹쳐져 술을 계속먹다보면 에너지는 충분한데(몸에서 열은 나는데) 혈당은 떨어지고 배는 고픈 기현상이 벌어진다. 술먹고 나면 해장용으로 주스, 아이스크림, 밥, 라면 생각이 유독 심해지는 이유다. 그리고 이들은 공히 살찌기 좋은 식품이다.
4. 심지어 술 자체에도 이미 당질이 들어있다! 그럼 의지력으로 술만 마시면 되는거 아니야!! 라고 항변해 보겠지만 공대 실험실에서 에탄올 증류해 희석해먹는 순도 100%짜리 증류주가 아닌이상 모든 술에는 '알콜'이외의 잉여칼로리가 이미 포함되어 있기 마련. 과일이 원료인 과실주, 곡류가 원료인 전통주 모두 알콜 이외에도 적절한 녹말이나 설탕을 함유하고 있다. 세상일은 당신 꿈처럼 호락호락하지 않다.
5. 알콜 그 자체가 체지방으로 축적되기도 한다! 위의 모식도에서 최종 분해 산물 옆에 '중성지방'이 위치한 걸 이미 다들 봤을게다. 과거엔 '알콜의 최종 분해 산물은 물과 이산화탄소기 때문에 순수하게 알콜만 먹어선 체지방 축적이 일어나지 않는다' 라고들 했으나 2000년대 들어선 소량이지만 아세테이트 자체가 체지방으로 축적된다는게 중론이다. 물론 전체 알콜의 양에 비하자면 5%정도의 미미한 양이지만 문제는 술을 먹으면서 원래 분해되었어야할 체지방 분해가 중단 + 5% 적립금 = 베둘레헴 이라는 결론이 나온다는 것. 이제 꿈도 희망도 없다.
더 무서운 이야기... 그러니까 술꾼은 그냥 살이 찔 수밖에 없다. 알콜은 체지방으로 축적되지 않아요? 5%라는 보너스가 있습니다. 플러스 알파로 과음하다 보면 알콜성 저혈당을 극복하기 위해 뭔가 더 먹고 싶어지고 먹은 안주는 모두 체지방으로 갑니다 호갱님. 그래도 초인적인 의지로 진짜 "깡소주"만 먹었다손 치자. 그래도 본디 일어나야 할 체지방분해가 일어나지 않은거니까 결과적으론 살이 찐다. 알콜 분해과정에서 일어난 에너지소모는 모두 글리코겐 분해라 체지방 분해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제 피고측 최종변호의 순서다. "술먹으면 다음날 체중이 줄어있어! 사실이라고!" 네 사실입니다. 과음하면 다음날 체중이 줄어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이어트는 체지방감소지 체중감소가 아닙니다. 과음으로 인한 체중감소는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1.알콜 대사를 위해서 간에 비축된 글리코겐 소진. 글리코겐은 체중과 체질별로 비축량의 차이가 나지만 성인남자의 경우 3-5kg정도. 이건 일종의 '방전'이지 살빠진 게 아님. 밥먹고 하루정도 지나면 다시 그만큼 '충전'됨
2.알콜의 이뇨작용. 알콜은 항이뇨호르몬을 억제. 술을 마시면 소변을 많이 보게 되고 그에 따라서 탈수가 유발된다. 결과적으로 체중이 줄어들지만 역시 하루정도 지나면 다시 회복.
즉 과음으로 인한 체중변화는 모두 '수분변화(글리코겐은 질량의 70% 정도가 또 수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라 극히 일시적인 현상이며 24시간 정도 지나면 원상복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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