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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죽산안씨 안국선(安國善,1878~1926)과 금수회의록(禽獸會議錄)
안국선(安國善, 1878∼1926) 신소설가. 호는 천강(天江). 경기도 고삼(古三) 출생. 저술로는 《외교통의 外交通義》·《정치원론 政治原論》·《연설법방 演說法方》 등이 있으며, 신소설 〈금수회의록 禽獸會議錄〉과 〈공진회 共進會〉가 있다. 일본유학을 한 개화기의 대표적인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 1895년(고종 32) 관비유학생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전문학교(東京專門學校)에서 정치학을 수학하였으며, 귀국 후 독립협회에 가담하여 국민계몽운동에 헌신하다가 1898년 독립협회 해산과 함께 체포, 투옥되어 참형의 선고를 받았다가 진도에 유배되기도 하였다. 1907년부터 강단에서 정치·경제 등을 강의한 그는 교재로 《외교통의》·《정치원론》 등을 저술하였으며, 《연설법방》은 당시 유행하던 사회계몽 수단인 연설 토론의 교본으로 저술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야뢰 夜雷》·《대한협회보 大韓協會報》·《기호흥학회월보 畿湖興學會月報》 등에 정치·경제·시사 등의 시사적인 논설도 발표하였으며, 대한협회의 평의원도 역임하였다. 그가 관계에 몸을 담게 된 것은 1908년 탁지부(度支部) 서기관에 임명되면서부터이다. 1911년부터 약 2년간 청도군수를 역임하기도 하였다. 그는 형무소에 수감중 기독교에 귀의하였고 계명구락부의 회원이기도 하였다. 관직에서 물러난 뒤 금광·개간·미두·주권 등에 손을 대었으나 실패하고 일시 낙향하여 생활하였으나 자녀의 교육을 위하여 다시 상경하였다. 그의 소설로는 〈금수회의록〉·〈공진회〉 외에 필사본으로 〈발섭기 跋涉記〉 상·하 2권과 〈됴염전〉이 있다 하나 전하여지지 않고 있다. 그의 소설과 저술물의 기저를 이루는 사상으로 유교적 윤리와 기독교적 윤리사상을 들 수 있는데, 이는 당대의 혼란한 국가와 사회를 바로잡고자 한 그의 현실관에서 나온 것으로 판단된다. 정신개조를 통한 자주독립과 국권회복을 이루려는 그의 태도는 동도서기론(東道西器論)의 개화파와 같은 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금수회의록(禽獸會議錄)
서언(序言)
머리를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니 일월과 성신이 천추의 빛을 잃지 아니하고, 눈을 떠서 땅을 굽어보니 강해와 산악이 만고의 형상을 변치 아니하도다. 어느 봄에 꽃이 피지 아니하며, 어느 가을에 잎이 떨어지지 아니하리요.
우주는 의연히 백대(百代)에 한결같거늘, 사람의 일은 어찌하여 고금이 다르뇨? 지금 세상 사람을 살펴보니 애달프고, 불쌍하고, 탄식하고, 통곡할 만하도다.
전인의 말씀을 듣든지 역사를 보든지 옛적 사람은 양심이 있어 천리(天理)를 순종하여 하느님께 가까웠거늘, 지금 세상은 인문이 결딴나서 도덕도 없어지고, 의리도 없어지고, 염치도 없어지고, 절개도 없어져서, 사람마다 더럽고 흐린 풍랑에 빠지고 헤어나올 줄 몰라서 온 세상이 다 악한 고로, 그름?옳음을 분별치 못하여 악독하기로 유명한 도척(盜甁)이 같은 도적놈은 청천백일에 사마(士馬)를 달려 왕궁 극도에 횡행하되 사람이 보고 이상히 여기지 아니하고, 안자(顔子)같이 착한 사람이 누항(陋巷)에 있어서 한 도시락밥을 먹고 한 표주박물을 마시며 간난을 견디지 못하되 한 사람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니, 슬프다! 착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거꾸로 되고 충신과 역적이 바뀌었도다. 이같이 천리에 어기어지고 덕의가 없어서 더럽고, 어둡고, 어리석고, 악독하여 금수(禽獸)만도 못한 이 세상을 장차 어찌하면 좋을꼬? 나도 또한 인간의 한 사람이라, 우리 인류사회가 이같이 악하게 됨을 근심하여 매양 성현의 글을 읽어 성현의 마음을 본받으려 하더니, 마침 서창에 곤히 든 잠이 춘풍에 이익한 바 되매 유흥을 금치 못하여 죽장망혜(竹杖芒鞋)로 녹수를 따르고 청산을 찾아서 한곳에 다다르니, 사면에 기화요초는 우거졌고 시냇물 소리는 종종하며 인적이 고요한데, 흰 구름 푸른 수풀 사이에 현판(懸板) 하나가 달렸거늘, 자세히 보니 다섯 글자를 크게 썼으되 '금수회의소'라 하고 그 옆에 문제를 걸었는데, '인류를 논박할 일'이라 하였고, 또 광고를 붙였는데, '하늘과 땅 사이에 무슨 물건이든지 의견이 있거든 의견을 말하고 방청을 하려거든 방청하되 각기 자유로 하라' 하였는데, 그곳에 모인 물건은 길짐승?날짐승?버러지?물고기?풀?나무?돌 등물이 다 모였더라. 혼자 마음으로 가만히 생각하여 보니, 대저 사람은 만물지중에 가장 귀하고 제일 신령하여 천지의 화육(化育)을 도우며 하느님을 대신하여 세상 만물의 금수?초목까지라도 다 맡아 다스리는 권능이 있고, 또 사람이 만일 패악(悖惡)한 일이 있으면 천히 여겨 금수 같은 행위라 하며, 사람이 만일 어리석고 하는 일이 없으면 초목같이 아무 생각도 없는 물건이라고 욕하나니, 그러면 금수?초목은 천하고 사람은 귀하며 금수?초목은 아무것도 모르고 사람은 신령하거늘, 지금 세상은 바뀌어서 금수?초목이 도리어 사람의 무도패덕함을 공격하려 하니, 괴상하고 부끄럽고 절통(切痛) 분하여 열었던 입을 다물지도 못하고 정신없이 섰더니,
개회 취지(開會趣旨)
별안간 뒤에서 무엇이 와락 떠다밀며,
"어서 들어갑시다. 시간 되었소."
하고 바삐 들어가는 서슬에 나도 따라 들어가서 방청석에 앉아 보니, 각색 길짐승?날짐승?모든 버러지?물고기 등물이 꾸역꾸역 들어와서 그 안에 빽빽하게 서고 앉았는데, 모인 물건은 형형색색이나 좌석은 제제창창(濟濟璽璽)한데, 장차 개회하려는지 규칙 방망이 소리가 똑똑 나더니, 회장인 듯한 한 물건이 머리에는 금색이 찬란한 큰 관을 쓰고, 몸에는 오색이 영롱한 의복을 입은 이상한 태도로 회장석에 올라서서 한 번 읍하고, 위의(威儀)가 엄숙하고 형용이 단정하게 딱 서서 여러 회원을 대하여 하는 말이,
"여러분이여, 내가 지금 여러분을 청하여 만고에 없던 일대 회의를 열 때에 한마디 말씀으로 개회 취지를 베풀려 하오니 재미있게 들어주시기를 바라오.
대저 우리들이 거주하여 사는 이 세상은 당초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 지극히 거룩하시고 지극히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조화로 만드신 것이라. 세계 만물을 창조하신 조화주를 곧 하느님이라 하나니, 일만 이치의 주인 되시는 하느님께서 세계를 만드시고 또 만물을 만들어 각색 물건이 세상에 생기게 하셨으니, 이같이 만드신 목적은 그 영광을 나타내어 모든 생물로 하여금 인자한 은덕을 베풀어 영원한 행복을 받게 하려 함이라. 그런고로 세상에 있는 모든 물건은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초목이든지 무슨 물건이든지 다 귀하고 천한 분별이 없은즉, 어떤 것은 높고 어떤 것은 낮다 할 이치가 있으리요. 다 각각 천지의 기운을 타고 생겨서 이 세상에 사는 것인즉, 다 각기 천지 본래의 이치만 좇아서 하느님의 뜻대로 본분을 지키고, 한편으로는 제 몸의 행복을 누리고, 한편으로는 하느님의 영광을 나타낼지니, 그 중에도 사람이라 하는 물건은 당초에 하느님이 만드실 때에 특별히 영혼과 도덕심을 넣어서 다른 물건과 다르게 하셨은즉, 사람들은 더욱 하느님의 뜻을 순종하여 천리정도(天理正道)를 지키고 착한 행실과 아름다운 일로 하느님의 영광을 나타내어야 할 터인데, 지금 세상 사람의 하는 행위를 보니 그 하는 일이 모두 악하고 부정하여 하느님의 영광을 나타내기는 고사하고 도리어 하느님의 영광을 더럽게 하며 은혜를 배반하여 제반 악증이 많도다. 외국 사람에게 아첨하여 벼슬만 하려 하고, 제 나라가 다 망하든지 제 동포가 다 죽든지 불고(不顧)하는 역적놈도 있으며, 임금을 속이고 백성을 해롭게 하여 나랏일을 결딴내는 소인놈도 있으며, 부모는 자식을 사랑치 아니하고, 자식은 부모를 효도로 섬기지 아니하며 형제간에 재물로 인연하여 골육상잔(骨肉相殘)하기를 일삼고, 부부간에 음란한 생각으로 화목지 아니한 사람이 많으니, 이 같은 인류에게 좋은 영혼과 제일 귀하다 하는 특권을 줄 것이 무엇이오. 하느님을 섬기던 천사도 악한 행실을 하다가 떨어져서 마귀가 된 일이 있거든 하물며 사람이야 더 말할 것 있소. 태고적 맨 처음에 사람을 내실 적에는 영혼과 덕의심을 주셔서 만물 중에 제일 귀하다 하는 특권을 주셨으되 저희들이 그 권리를 내어 버리고 그 성품을 잃어버리니 몸은 비록 사람의 형상이 그대로 있을지라도 만물 중에 가장 귀하다 하는 인류의 자격은 있다 할 수가 없소. 여러분은 금수라, 초목이라 하여 사람보다 천하다 하나, 하느님이 정하신 법대로 행하여 기는 자는 기고, 나는 자는 날고, 굴에서 사는 자는 깃들임을 침노치 아니하며, 깃들인 자는 굴을 빼앗지 아니하고, 봄에 생겨서 가을에 죽으며, 여름에 나와서 겨울에 들어가니, 하느님의 법을 지키고 천지 이치대로 행하여 정도에 어김이 없은즉, 지금 여러분 금수?초목과 사람을 비교하여 보면 사람이 도리어 낮고 천하며, 여러분이 도리어 귀하고 높은 지위에 있다 할 수 있소. 사람들이 이같이 제 자격을 잃고도 거만한 마음으로 오히려 만물 중에 제가 가장 귀하다, 높다, 신령하다 하여 우리 족속 여러분을 멸시하니 우리가 어찌 그 횡포를 받으리요. 내가 여러분의 마음을 찬성하여 하느님께 아뢰고 본회의를 소집하였는데, 이 회의에서 결의할 안건은 세 가지 문제가 있소.
제일, 사람 된 자의 책임을 의론하여 분명히 할 일, 제이, 사람의 행위를 들어서 옳고 그름을 의론할 일. 제삼, 지금 세상 사람 중에 인류 자격이 있는 자와 없는 자를 조사할 일.
이 세 가지 문제를 토론하여 여러분과 사람의 관계를 분명히 하고, 사람들이 여전히 악한 행위를 하여 회개치 아니하면 그 동물의 사람이라 하는 이름을 빼앗고 이등 마귀라 하는 이름을 주기로 하느님께 상주(上奏)할 터이니, 여러분은 이 뜻을 본받아 이 회의에서 결의한 일을 진행하시기를 바라옵나이다."
회장이 개회 취지를 연설하고 회장석에 앉으니, 한 모퉁이에서 우렁찬 소리로 회장을 부르고 일어서서 연단으로 올라간다.
제1석, 반포의 효(反哺之孝 : 까마귀)
프록코트를 입어서 전신이 새까맣고 똥그란 눈이 말똥말똥한데, 물 한 잔 조금 마시고 연설을 시작한다.
"나는 까마귀올세다. 지금 인류에 대하여 소회(所懷)를 진술할 터인데 반포의 효라 하는 문제를 가지고 잠깐 말씀하겠소. 사람들은 만물 중에 제가 제일이라 하지마는, 그 행실을 살펴볼 지경이면 다 천리(天理)에 어기어져서 하나도 그 취할 것이 없소. 사람들의 옳지 못한 일을 모두 다 들어 말씀하려면 너무 지리하겠기에 다만 사람들의 불효한 것을 가지고 말씀할 터인데, 옛날 동양 성인들이 말씀하기를 효도는 덕의 근본이라, 효도는 일백 행실의 근원이라, 효도는 천하를 다스린다 하였고, 예수교 계명에도 부모를 효도로 섬기라 하였으니, 효도라 하는 것은 자식 된 자가 고연(固然)한 직분으로 당연히 행할 일이올시다. 우리 까마귀의 족속은 먹을 것을 물고 돌아와서 어버이를 기르며 효성을 극진히 하여 망극한 은혜를 갚아서 하느님이 정하신 본분을 지키어 자자손손이 천만 대를 내려가도록 가법(家法)을 변치 아니하는 고로 옛적에 백낙천(白樂天)이라 하는 분이 우리를 가리켜 새 중의 증자(曾子)라 하였고,『본초강목(本草綱目)』에는 자조(慈鳥)라 일컬었으니, 증자라 하는 양반은 부모에게 효도 잘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요, 자조라 하는 뜻은 사랑하는 새라 함이니,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함이 하느님의 법이라. 우리는 그 법을 지키고 어기지 아니하거늘, 지금 세상 사람들은 말하는 것을 보면 낱낱이 효자 같으되, 실상 하는 행실을 보면 주색잡기(酒色雜技)에 침혹하여 부모의 뜻을 어기며, 형제간에 재물로 다투어 부모의 마음을 상케 하며, 제 한 몸만 생각하고 부모가 주리되 돌아보지 아니하고, 여편네는 학식이라고 조금 있으면 주제넘은 마음이 생겨서 온화?유순한 부덕을 잊어버리고 시집 가서는 시부모 보기를 아무것도 모르는 어리석은 물건같이 대접하고, 심하면 원수같이 미워하기도 하니, 인류사회에 효도 없어짐이 지금 세상보다 더 심함이 없도다. 사람들이 일백 행실의 근본 되는 효도를 알지 못하니 다른 것은 더 말할 것 무엇 있소. 우리는 천성이 효도를 주장하는 고로 출천지효성(出天之孝誠) 있는 사람이면 우리가 감동하여 노래자(老萊子)를 도와서 종일토록 그 부모를 즐겁게 하여 주며, 증자의 갓 위에 모여서 효자의 아름다운 이름을 천추에 전케 하였고, 또 우리가 효도만 극진할 뿐 아니라 자고 이래로『사기(史記)』에 빛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오니 대강 말씀하오리다.
우리가 떼를 지어 논밭으로 내려갈 때 곡식을 해하는 버러지를 없애려고 가건마는 사람들은 미련한 생각에 그 곡식을 파먹는 줄로 아는도다! 서양책력 일천팔백칠십사년의 미국 조류학자 피이르라 하는 사람이 우리 까마귀 족속 이천이백오십팔 마리를 잡아다가 배를 가르고 오장을 꺼내어 해부하여 보고 말하기를 까마귀는 곡식을 해하지 아니하고 곡식에 해되는 버러지를 잡아먹는다 하였으니, 우리가 곡식밭에 가는 것은 곡식에 이가 되고 해가 되지 아니하는 것은 분명하고, 또 우리가 밤중에 우는 것은 공연히 우는 것이 아니요, 나라에서 법령이 아름답지 못하여 백성이 도탄에 침륜(沈淪)하여 천하에 큰 병화가 일어날 징조가 있으면 우리가 아니 울 때에 울어서 사람들이 깨닫고 허물을 고쳐서 세상이 태평무사하기를 희망하고 권고함이요, 강소성(江蘇省) 한산사(寒山寺)에서 달은 넘어가고 서리친 밤에 쇠북을 주둥이로 쪼아 소리를 내서 대망에게 죽을 것을 살려 준 은혜를 갚았고, 한나라 효무제(孝武帝)가 아홉 살 되었을 때에 그 부모는 왕망(王莽)의 난리에 죽고 효무제 혼자 달아날새, 날이 저물어 길을 잃었거늘 우리들이 가서 인도하였고, 연(燕) 태사 단이 진(秦)나라에 볼모 잡혀 있을 때에 우리가 머리를 희게 하여 그 나라로 돌아가게 하였고, 진문공(晉文公)이 개자추(介子推)를 찾으려고 면상산〔恥山〕에 불을 놓으매 우리가 연기를 에워싸고 타지 못하게 하였더니, 그 후에 진나라 사람이 그 산에 '은연대'라 하는 집을 짓고 우리의 은덕을 기념하였으며, 당나라 이의부는 글을 짓되 상림에 나무를 심어 우리를 준다 하였었고, 또 물병에 돌을 던지니 이솝이 상을 주고, 탁자의 포도주를 다 먹어도 프랭클린이 사랑하도다. 우리 까마귀의 사적(事蹟)이 이러하거늘, 사람들은 우리 소리를 듣고 흉한 징조라 길한 징조라 함은 저희들 마음대로 하는 말이요, 우리에게는 상관없는 일이라. 사람의 일이 흉하든지 길하든지 우리가 울 일이 무엇 있소? 그것은 사람들이 무식하고 어리석어서 저희들이 좋지 아니한 때에 흉하게 듣고 하는 말이로다. 사람이 염병이니 괴질이니 앓아서 죽게 된 때에 우리가 어찌하여 그 근처에 가서 울면, 사람들은 못생겨서 저희들이 약도 잘못 쓰고 위생도 잘못하여 죽는 줄은 알지 못하고 우리가 울어서 죽는 줄로만 알고, 저희끼리 욕설하려면 염병에 까마귀 소리라 하니 아, 어리석기는 사람같이 어리석은 것은 세상에 또 없도다. 요?순(堯舜) 적에도 봉황이 나왔고, 왕망이 때도 봉황이 나오매 요?순적 봉황은 상서라 하고, 왕망 때 봉황은 흉조처럼 알았으니, 물론 무슨 소리든지 사람이 근심 있을 때에 들으면 흉조로 듣고, 좋은 일 있을 때에 들으면 상서롭게 듣는 것이라. 무엇을 알고 하는 말은 아니요, 길하다 흉하다 하는 것은 듣는 저희에게 있는 것이요, 하는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어늘, 사람들은 말하기를, 까마귀는 흉한 일이 생길 때에 와서 우는 것이라 하여 듣기 싫어하니, 사람들은 이렇듯 이치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동물이라, 책망하여 무엇 하겠소. 또 우리는 아침에 일찍 해뜨기 전에 집을 떠나서 사방으로 날아다니며 먹을 것을 구하여 부모 봉양도 하고, 나뭇가지를 물어다가 집도 짓고, 곡식에 해되는 버러지도 잡아서 하느님 뜻을 받들다가 저녁이 되면 반드시 내 집으로 돌아가되, 나가고 돌아올 때에 일정한 시간을 어기지 않건마는, 사람들은 점심때까지 자빠져서 잠을 자고, 한번 집을 떠나서 나가면 혹은 협잡질하기, 혹은 술장보기, 혹은 계집의 집 뒤지기, 혹은 노름하기, 세월이 가는 줄을 모르고 저희 부모가 진지를 잡수었는지, 처자가 기다리는지 모르고 쏘다니는 사람들이 어찌 우리 까마귀의 족속만 하리요. 사람은 일 아니하고 놀면서 잘 입고 잘 먹기를 좋아하되, 우리는 제가 벌어 제가 먹는 것이 옳은 줄 아는 고로 결단코 우리는 사람들 하는 행위는 아니하오. 여러분도 다 아시거니와 우리가 사람에게 업수이 여김을 받을 까닭이 없음을 살피시오."
손뼉 소리에 연단에 내려가니, 또 한편에서 아리땁고도 밉살스러운 소리로 회장을 부르면서 강똥강똥 연설단을 향하여 올라가니, 어여쁜 태도는 남을 가히 호릴 만하고 갸웃거리는 모양은 본색이 드러나더라.
제2석, 호가호위(狐假虎威 : 여우)
여우가 연설단에 올라서서 기생이 시조를 부르려고 목을 가다듬는 것처럼 기침 한 번을 캑 하더니 간사한 목소리로 연설을 시작한다.
"나는 여우올시다. 점잖으신 여러분 모이신 데 감히 나와서 연설하옵기는 방자한 듯하오나, 저 인류에게 대하여 소회가 있삽기 호가호위라 하는 문제를 가지고 두어 마디 말씀을 하려 하오니, 비록 학문은 없는 말이나 용서하여 들어 주시기 바라옵니다.
사람들이 옛적부터 우리 여우를 가리켜 말하기를, 요망한 것이라 간사한 것이라 하여 저희들 중에도 요망하든지 간사한 자를 보면 여우 같은 사람이라 하니, 우리가 그 더럽고 괴악한 이름을 듣고 있으나 우리는 참 요망하고 간사한 것이 아니요, 정말 요망하고 간사한 것은 사람이오. 지금 우리와 사람의 행위를 비교하여 보면 사람과 우리와 명칭을 바꾸었으면 옳겠소.
사람들이 우리를 간교하다 하는 것은 다름아니라『전국책(戰國策)』이라 하는 책에 기록하기를, 호랑이가 일백 짐승을 잡아먹으려고 구할새, 먼저 여우를 얻은지라, 여우가 호랑이더러 말하되, 하느님이 나로 하여금 모든 짐승의 어른이 되게 하였으니, 지금 자네가 나의 말을 믿지 아니하거든 내 뒤를 따라와 보라. 모든 짐승이 나를 보면 다 두려워하느니라. 호랑이가 여우의 뒤를 따라가니, 과연 모든 짐승이 보고 벌벌 떨며 두려워하거늘, 호랑이가 여우의 말을 정말로 알고 잡아먹지 못한지라. 이는 저들이 여우를 보고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 여우 뒤의 호랑이를 보고 두려워한 것이니, 여우가 호랑이의 위엄을 빌려서 모든 짐승으로 하여금 두렵게 함인데, 사람들은 이것을 빙자하여 우리 여우더러 간사하니 교활하니 하되, 남이 나를 죽이려 하면 어떻게 하든지 죽지 않도록 주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호랑이가 아무리 산중 영웅이라 하지마는 우리에게 속은 것만 어리석은 일이라. 속인 우리야 무슨 불가한 일이 있으리요.
지금 세상 사람들은 당당한 하느님의 위엄을 빌려야 할 터인데, 외국의 세력을 빌려 의뢰하여 몸을 보전하고 벼슬을 얻어 하려 하며, 타국 사람을 부동하여 제 나라를 망하고 제 동포를 압박하니, 그것이 우리 여우보다 나은 일이오? 결단코 우리 여우만 못한 물건들이라 하옵네다. (손뼉 소리 천지 진동)
또 나라로 말할지라도 대포와 총의 힘을 빌려서 남의 나라를 위협하여 속국도 만들고 보호국도 만드니, 불한당이 칼이나 육혈포를 가지고 남의 집에 들어가서 재물을 탈취하고 부녀를 겁탈하는 것이나 다를 것이 무엇 있소? 각국이 평화를 보전한다 하여도 하느님의 위엄을 빌려서 도덕상으로 평화를 유지할 생각은 조금도 없고, 전혀 병장기의 위엄으로 평화를 보전하려 하니 우리 여우가 호랑이의 위엄을 빌려서 제 몸의 죽을 것을 피한 것과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그르오? 또 세상 사람들이 구미호(九尾狐)를 요망하다 하나, 그것은 대단히 잘못 아는 것이라. 옛적 책을 볼지라도 꼬리 아홉 있는 여우는 상서라 하였으니,『잠학거류서』라 하는 책에는 말하였으되, 구미호가 도(道) 있으면 나타나고, 나올 적에는 글을 물어 상서를 주문에 지었다 하였고, 왕포『사자강덕론』이라 하는 책에는 주(周)나라 문왕(文王)이 구미호를 응하여 동편 오랑캐를 돌아오게 하였다 하였고,『산해경(山海經)』이라 하는 책에는 청구국(靑丘國)에 구미호가 있어서 덕이 있으면 오느니라 하였으니, 이런 책을 볼지라도 우리 여우를 요망한 것이라 할 까닭이 없거늘, 사람들이 무식하여 이런 것은 알지 못하고 여우가 천 년을 묵으면 요사스러운 여편네로 화한다 하고, 혹은 말하기를 옛적에 음란한 계집이 죽어서 여우로 태어났다 하니, 이런 거짓말이 어디 또 있으리요. 사람들은 음란하여 별일이 많되 우리 여우는 그렇지 않소. 우리는 분수를 지켜서 다른 짐승과 교통하는 일이 없고, 우리뿐 아니라 여러분이 다 그러하시되 사람이라 하는 것들은 음란하기가 짝이 없소. 어떤 나라 계집은 개와 통간한 일도 있고, 말과 통간한 일도 있으니, 이런 일은 천하 만국에 한두 사람뿐이겠지마는, 한 숟가락 국으로 온 솥의 맛을 알 것이라. 근래에 덕의가 끊어지고 인도(人道)가 없어져서 세상이 결딴난 일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소. 사람의 행위가 그러하되 오히려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짐승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대갓집 규중 여자가 논다니로 놀아나서 이 사람 저 사람 호리기와 각부아문(各部衙門) 공청에서 기생 불러 놀음 놀기, 전정(前程)이 만리 같은 각 학교 학도들이 청루(靑樓) 방에 다니기와, 제 혈육으로 난 자식을 돈 몇 푼에 욕심나서 논다니로 내어놓기, 이런 행위를 볼작시면 말하는 내 입이 다 더러워지오. 에 더러워, 천지간에 더럽고 요망하고 간사한 것은 사람이오. 우리 여우는 그렇지 않소. 저들끼리 간사한 사람을 보면 여우라 하니, 그러한 사람을 여우라 할진댄 지금 세상 사람 중에 여우 아닌 사람이 몇몇이나 있겠소? 또 저희들은 서로 여우 같다 하여도 가만히 듣고 있으되, 만일 우리더러 사람 같다 하면 우리는 그 이름이 더러워서 아니 받겠소. 내 소견 같으면 이후로는 사람을 사람이라 하지 말고 여우라 하고, 우리 여우를 사람이라 하는 것이 옳은 줄로 아나이다."
제3석, 정와어해(井蛙語海 : 개구리)
여우가 연설을 그치고 할금할금 돌아보며 제자리로 내려가니, 또 한편에서 회장을 부르고 아장아장 걸어와서 연단 위에 깡충 뛰어올라간다. 눈은 톡 불거지고 배는 똥똥하고 키는 작달막한데 눈을 깜작깜작하며 입을 벌죽벌죽하고 연설한다.
"나의 성명은 말씀 아니하여도 여러분이 다 아시리다. 나는 출입이라고는 미나리논밖에 못 가본 고로 세계 형편도 모르고, 또 맹꽁이를 이웃하여 산 고로 구학문의 맹자왈 공자왈은 대강 들었으나 신학문은 아는 것이 변변치 아니하나, 지금 정와의 어해라 하는 문제로 대강 인류사회를 논란코자 하옵네다.
사람들은 거만한 마음이 많아서 저희들이 천하에 제일이라고, 만물 중에 저희가 가장 귀하다고 자칭하지마는, 제 나랏일도 잘 모르면서 양비대담(攘臂大談)하고 큰소리 탕탕 하고 주제넘은 말 하는 것들 우습디다. 우리 개구리를 가리켜 말하기를, 우물 안 개구리와 바다 이야기 할 수 없다 하니, 항상 우물 안에 있는 개구리는 우물이 좁은 줄만 알고 바다에는 가보지 못하여 바다가 큰지 작은지, 넓은지 좁은지, 긴지 짧은지, 깊은지 얕은지 알지 못하나 못 본 것을 아는 체는 아니하거늘, 사람들은 좁은 소견을 가지고 외국 형편도 모르고 천하 대세도 살피지 못하고 공연히 떠들며, 무엇을 아는 체하고 나라는 다 망하여 가건마는 썩은 생각으로 갑갑한 말만 하는도다. 또 어떤 사람들은 제 나라 안에 있어서 제 나랏일도 다 알지 못하면서 보도 듣도 못한 다른 나라 일을 다 아노라고 추척대니 가증하고 우습도다. 연전에 어느 나라 어떤 대관이 외국 대관을 만나서 수작할새 외국 대관이 묻기를,
'대감이 지금 내부대신으로 있으니 전국의 인구와 호수가 얼마나 되는지 아시오?'
한데 그 대관이 묵묵히 무언하는지라, 또 묻기를,
'대감이 전에 탁지대신(度支大臣)을 지내었으니 전국의 결총(結總)과 국고의 세출?세입이 얼마나 되는지 아시오?'
한데 그 대관이 또 아무 말도 못하는지라, 그 외국 대관이 말하기를,
'대감이 이 나라에 나서 이 정부의 대신으로 이같이 모르니 귀국을 위하여 가석하도다.'
하였고, 작년에 어느 나라 내부에서 각 읍에 훈령하고 부동산을 조사하여 보아라 하였더니, 어떤 군수는 보하기를, '이 고을에는 부동산이 없다' 하여 일세의 웃음거리가 되었으니, 이같이 제 나라 일도 크나 작으나 도무지 아는 것 없는 것들이 일본이 어떠하니, 아라사가 어떠하니, 구라파가 어떠하니, 아메리카가 어떠하니 제가 가장 아는 듯이 지껄이니 기가 막히오. 대저 천지의 이치는 무궁무진하여 만물의 주인 되시는 하느님밖에 아는 이가 없는지라,『논어(論語)』에 말하기를 하느님께 죄를 얻으면 빌 곳이 없다 하였는데, 그 주(註)에 말하기를, 하느님은 곧 이치라 하였으니 하느님이 곧 이치요, 하느님이 곧 만물 이치의 주인이라. 그런고로 하느님은 곧 조화주요, 천지만물의 대 주제시니 천지만물의 이치를 다 아시려니와, 사람은 다만 천지간의 한 물건인데 어찌 이치를 알 수 있으리요. 여간 좀 연구하여 아는 것이 있거든 그 아는 대로 세상에 유익하고 사회에 효험 있게 아름다운 사업을 영위할 것이어늘, 조그만치 남보다 먼저 알았다고 그 지식을 이용하여 남의 나라 빼앗기와 남의 백성 학대하기와 군함?대포를 만들어서 악한 일에 종사하니, 그런 나라 사람들은 당초에 사람 되는 영혼을 주지 아니하였더면 도리어 좋을 뻔하였소. 또 더욱 도리에 어기어지는 일이 있으니, 나의 지식이 저 사람보다 조금 낫다고 하면 남을 가르쳐 준다 하고 실상은 해롭게 하며, 남을 인도하여 준다 하고 제 욕심 채우는 일만 하여, 어떤 사람은 제 나라 형편도 모르면서 타국 형편을 아노라고 외국 사람을 부동하여, 임금을 속이고 나라를 해치며 백성을 위협하여 재물을 도둑질하고 벼슬을 도둑하며 개화하였다 자칭하고, 양복 입고, 단장 짚고, 궐련 물고, 시계 차고, 살죽경 쓰고, 인력거나 자행거 타고, 제가 외국 사람인 체하여 제 나라 동포를 압제하며, 혹은 외국 사람 상종함을 영광으로 알고 아첨하며, 제 나라 일을 변변히 알지도 못하는 것을 가르쳐 주며, 여간 월급냥이나 벼슬낱이나 얻어 하느라고 남의 나라 정탐꾼이 되어 애매한 사람 모함하기, 어리석은 사람 위협하기로 능사를 삼으니, 이런 사람들은 안다 하는 것이 도리어 큰 병통이 아니오?
우리 개구리의 족속은 우물에 있으면 우물에 있는 분수를 지키고, 미나리논에 있으면 미나리논에 있는 분수를 지키고, 바다에 있으면 바다에 있는 분수를 지키나니, 그러면 우리는 사람보다 상등이 아니오니까. (손뼉 소리 짤각짤각)
또 무슨 동물이든지 자식이 아비 닮는 것은 하느님의 정하신 뜻이라. 우리 개구리는 대대로 자식이 아비 닮고 손자가 할아비를 닮되, 형용도 똑같고 성품도 똑같아서 추호도 틀리지 않거늘, 사람의 자식은 제 아비 닮는 것이 별로 없소. 요 임금의 아들이 요 임금을 닮지 아니하고, 순 임금의 아들이 순 임금과 같지 아니하고, 하우 씨와 은왕 성탕(成湯)은 성인이로되, 그 자손 중에 포학하기로 유명한 걸(桀)?주(紂) 같은 이가 났고, 왕건(王建) 태조는 영웅이로되 왕우(王偶)?왕창(王昌)이 생겼으니, 일로 보면 개구리 자손은 개구리를 닮되 사람의 새끼는 사람을 닮지 아니하도다. 그러한즉 천지 자연의 이치를 지키는 자는 우리가 사람에게 비교할 것이 아니요, 만일 아비를 닮지 아니한 자식을 마귀의 자식이라 할진대 사람의 자식은 다 마귀의 자식이라 하겠소.
또 우리는 관가 땅에 있으면 관가를 위하여 울고, 사사(私私) 땅에 있으면 사사를 위하여 울거늘, 사람은 한 번만 벼슬자리에 오르면 붕당(朋黨)을 세워서 권리 다툼하기와, 권문세가에 아첨하러 다니기와, 백성을 잡아다가 주리 틀고 돈 빼앗기와 무슨 일을 당하면 청촉 듣고 뇌물 받기와 나랏돈 도적질하기와 인민의 고혈을 빨아먹기로 종사하니, 날더러 도적놈 잡으라 하면 벼슬하는 관인들은 거반 다 감옥서 감이요, 또 우리들의 우는 것이 울 때에 울고, 길 때에 기고, 잠잘 때에 자는 것이 천지 이치에 합당하거늘, 불란서라 하는 나라 양반들이 우리 개구리의 우는 소리를 듣기 싫다고 백성들을 불러 개구리를 다 잡으라 하다가, 마침내 혁명당이 일어나서 난리가 되었으니, 사람같이 무도한 것이 세상에 또 있으리요? 당나라 때에 한 사람이 우리를 두고 글을 짓되, 개구리가 도의 맛을 아는 것 같아여 연꽃 깊은 곳에서 운다 하였으니, 우리의 도덕심 있는 것은 사람도 아는 것이라. 우리가 어찌 사람에게 굴복하리요. 동양 성인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는 것은 안다 하고, 알지 못하는 것은 알지 못한다 하는 것이 정말 아는 것이라 하였으니, 저희들이 천박한 지식으로 남을 속이기를 능사로 알고 천하 만사를 모두 아는 체하니, 우리는 이같이 거짓말은 하지 아니하오. 사람이란 것은 하느님의 이치를 알지 못하고 악한 일만 많이 하니 그대로 둘 수 없으니, 차후는 사람이라 하는 명칭을 주지 마는 것이 대단히 옳을 줄로 생각하오."
넙죽넙죽 하는 말이 소진?장의가 오더라도 당치 못할러라. 말을 그치고 내려오니 또 한편에서 회장을 부르고 나는 듯이 연설단에 올라간다.
제4석, 구밀복검(口蜜腹劒 : 벌)
허리는 잘록하고 체격은 조그마한데 두 어깨를 떡 벌리고 청랑(淸朗)한 소리로 머리를 까딱까딱하면서 연설한다.
"나는 벌이올시다. 지금 구밀복검이라 하는 문제를 가지고 잠깐 두어 마디 말씀할 터인데, 먼저 서양서 들은 이야기를 잠깐 하오리다.
당초에 천지개벽할 때에 하느님이 에덴 동산을 준비하사 각색 초목과 각색 짐승을 그 안에 두고 사람을 만들어 거기서 살게 하시니, 그 사람의 이름은 아담이라 하고 그 아내는 하와라 하였는데, 지금 온 세상 사람들의 조상이라. 사람은 특별히 모양이 하느님과 같고 마음도 하느님과 같게 하였으니, 사람은 곧 하느님의 아들이라 하는 뜻을 잊지 말고 하느님의 마음을 본받아 지극히 착하게 되어야 할 터인데,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지라, 우리 벌의 조상은 죄도 아니 짓고 하느님의 뜻대로 순종하여 각색 초목의 꽃으로 우리의 전답을 삼고 꿀을 농사하여 양식을 만들어 복락을 누리니, 조상 적부터 우리가 사람보다 나은지라, 세상이 오래되어 갈수록 사람은 하느님과 더욱 멀어지고, 오늘날 와서는 거죽은 사람의 형용이 그대로 있으나 실상은 시랑(豺狼)과 마귀가 되어 서로 싸우고, 서로 죽이고, 서로 잡아먹어서, 약한 자의 고기는 강한 자의 밥이 되고, 큰 것은 작은 것을 압제하여 남의 권리를 늑탈하여 남의 재산을 속여 빼앗으며, 남의 토지를 앗아 가며, 남의 나라를 위협하여 망케 하니, 그 흉측하고 악독함을 무엇이라 이르겠소? 사람들이 우리 벌을 독한 사람에게 비유하여 말하기를, 입에 꿀이 있고 배에 칼이 있다 하나 우리 입의 꿀은 남을 꾀이려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양식을 만드는 것이요, 우리 배의 칼은 남을 공연히 쏘거나 찌르는 것이 아니라 남이 나를 해치려 하는 때에 정당방위로 쓰는 칼이요, 사람같이 입으로는 꿀같이 말을 달게 하고 배에는 칼 같은 마음을 품은 우리가 아니오. 또 우리의 입은 항상 꿀만 있으되 사람의 입은 변화가 무쌍하여 꿀같이 단 때도 있고, 고추같이 매운 때도 있고, 칼같이 날카로운 때도 있고, 비상같이 독한 때도 있어서, 마주 대하였을 때에는 꿀을 들어붓는 것같이 달게 말하다가 돌아서면 흉보고, 욕하고, 노여워하고, 악담하며, 좋아 지낼 때에는 깨소금 항아리같이 고소하고 맛있게 수작하다가, 조금만 미흡한 일이 있으면 죽일 놈 살릴 놈 하며 무성포(無聲砲)가 있으면 곧 놓아 죽이려 하니 그런 악독한 것이 어디 또 있으리요. 에, 여러분, 여보시오, 그래, 우리 짐승 중에 사람들처럼 그렇게 악독한 것들이 있단 말이오? (손뼉 소리 귀가 막막)
사람들이 서로 욕설하는 소리를 들으면 참 귀로 들을 수 없소. 별 흉악망측한 말이 많소. '빠가', '갓뎀' 같은 욕설은 오히려 관계치 않소. '네밀 붙을 놈', '염병에 땀을 못 낼 놈' 하는 욕설은 제 입을 더럽히고 제 마음 악한 줄을 모르고 얼씬하면 이런 욕설을 함부로 하니 어떻게 흉악한 소리오. 에, 사람의 입에는 도덕상 좋은 말은 별로 없고 못된 소리만 쓸데없이 지저귀니 그것들을 사람이라고? 그것들을 만물 중에 가장 귀한 것이라고? 우리는 천지간의 미물이로되 그렇지는 않소. 또 우리는 임금을 섬기되 충성을 다하고, 장수를 뫼시되 군령이 분명하여, 다 각각 직업을 지켜 일을 부지런히 하여 주리지 아니하거늘, 어떤 나라 사람들은 제 임금을 죽이고 역적의 일을 하며 제 장수의 명령을 복종치 아니하고 난병도 되며, 백성들은 게을러서 아무 일도 아니하고 공연히 쏘다니며 놀고 먹고 놀고 입기 좋아하며, 술이나 먹고, 노름이나 하고, 계집의 집이나 찾아다니고, 협잡이나 하고, 그렁저렁 세월을 보내니, 집이 구차하고 나라가 간난하니 사람으로 생겨나서 우리 벌들보다 낫다 하는 것이 무엇이오? 서양의 어느 학자가 우리를 두고 노래를 지었으니, 아침 이슬 저녁 볕에 이꽃 저꽃 찾아가서 부지런히 꿀을 물고 제 집으로 돌아와서 반은 먹고 반은 두어 겨울 양식 저축하여 무한 복락 누릴 때에 하느님의 은혜라고 빛난 날개 좋은 소리 아름답게 찬미하네
그래, 사람 중에 사람스러운 것이 몇이나 있소? 우리는 사람들에게 시비 들을 것 조금도 없소. 사람들의 악한 행위를 말하려면 끝이 없겠으나 시간이 부족하여 그만둡네다."
제5석, 무장공자(無腸公子 : 게)
벌이 연설을 그치고 미처 연설단에 내려서기 전에 또 한편에서 회장을 부르고 나오니, 모양이 기괴하고 눈에 영채(映彩)가 있어 힘센 장수같이 두 팔을 쩍 벌리고 어깨를 추썩추썩하며 하는 말이,
"나는 게올시다. 지금 무장공자라 하는 문제로 연설할 터인데, 무장공자라 하는 말은 창자 없는 물건이라 하는 말이니, 옛적에 포박자(抱朴子)라 하는 사람이 우리 게의 족속을 가리켜 무장공자라 하였으니 대단히 무례한 말이로다. 그래, 우리는 창자가 없고 사람들은 창자가 있소. 시방 세상 사는 사람 중에 옳은 창자 가진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소? 사람의 창자는 참 썩고 흐리고 더럽소. 의복은 능라주의로 지를 흐르게 잘 입어서 외양은 좋아도 다 가죽만 사람이지 그 속에는 똥밖에 아무것도 없소. 좋은 칼로 배를 가르고 그 속을 보면, 구린내가 물큰물큰 나오. 지금 어떤 나라 정부를 보면 깨끗한 창자라고는 아마 몇 개가 없으리다. 신문에 그렇게 나무라고, 사회에서 그렇게 시비하고, 백성이 그렇게 원망하고, 외국 사람이 그렇게 욕들을 하여도 모르는 체하니 이것이 창자 있는 사람들이오? 그 정부에 옳은 마음 먹고 벼슬하는 사람 누가 있소? 한 사람이라도 있거든 있다고 하시오. 만판 경륜(經綸)이 임금 속일 생각, 백성 잡아먹을 생각, 나라 팔아먹을 생각밖에 아무 생각 없소. 이같이 썩고 더럽고 똥만 들어서 구린내가 물큰물큰 나는 창자는 우리의 없는 것이 도리어 낫소. 또 욕을 보아도 성낼 줄도 모르고, 좋은 일을 보아도 기뻐할 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이 있소. 남의 압제를 받아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되 깨닫고 분한 마음 없고, 남에게 그렇게 욕을 보아도 노여워할 줄 모르고 종 노릇 하기만 좋게 여기고 달게 여기며, 관리에 무례한 압박을 당하여도 자유를 찾을 생각이 도무지 없으니, 이것이 창자 있는 사람들이라 하겠소? 우리는 창자가 없다 하여도 남이 나를 해치려 하면 죽더라도 가위로 집어 한 놈 물고 죽소. 내가 한번 어느 나라에 지나다 보니 외국 병정이 지나가는데, 그 나라 부인을 건드려 젖통이를 만지려 하매 그 부인이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한즉, 그 병정이 발로 차고 손으로 때려서 행악(行惡)이 무쌍한지라, 그 나라 사람들이 모여서서 그것을 구경만 하고 한 사람도 대들어 그 부인을 도와 주고 구원하여 주는 사람이 없으니, 그 사람들은 그 부인이 외국 사람에게 당하는 것을 상관없는 줄로 알아서 그러한지 겁이 나서 그러한지 결단코 남의 일이 아니라 저의 동포가 당하는 일이니 저희들이 당함이어늘, 그것을 보고 분낼 줄 모르고 도리어 웃고 구경만 하니, 그 부인의 오늘날 당하는 욕이 내일 제 어미나 제 아내에게 또 돌아올 줄을 알지 못하는가? 이런 것들이 창자 있다고 사람이라 자긍(自矜)하니 허리가 아파 못 살겠소. 창자 없는 우리 게는 어찌하면 좋겠소? 나라에 경사가 있으되 기뻐할 줄 알지 못하여 국기 하나 내어 꽂을 줄 모르니 그것이 창자 있는 것이오? 그런 창자는 부럽지 않소. 창자 없는 우리 게의 행한 사적을 좀 들어 보시오. 송나라 때 추호라 하는 사람이 채경에서 사로잡혀 소주로 귀양 갈 때 우리가 구원하였으며, 산주구세라 하는 때에 한 처녀가 죽게 된 것을 살려 내느라고 큰 뱀을 우리 가위로 잘라 죽였으며, 산신과 싸워서 호인의 배를 구원하였고, 객사한 송장을 드러내어 음란한 계집의 죄를 발각하였으니, 우리의 행한 일은 다 옳고 아름다운 일이오. 사람같이 더러운 일은 하지 않소. 또 사람들도 우리의 행위를 자세히 아는 고로 '게도 제 구멍이 아니면 들어가지 아니한다'는 속담이 있소. 참 그러하지요. 우리는 암만 급하더라도 들어갈 구멍이라야 들어가지, 부당한 구멍에는 들어가지 않소. 사람들을 보면 부당한 데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소. 부모 처자를 내버리고 중이 되어 산 속으로 들어가는 이도 있고, 여염(閭閻)집 부인네들은 음란한 생각으로 불공한다 핑계하고 절간 초막으로 들어가는 이도 있고, 명예 있는 신사라 자칭하고 쓸데없는 돈 내버리러 기생집에 들어가는 이도 있고, 옳은 길 내버리고 그른 길로 들어가는 사람, 옳은 종교 싫다 하고 이단으로 들어가는 사람, 돌을 안고 못으로 들어가는 사람, 섶을 지고 불로 들어가는 사람, 이루 다 말할 수 없소. 당연히 들어갈 데와 못 들어갈 데를 분별치 못하고 못 들어갈 데를 들어가서 화를 당하고 패를 보고 해를 끼치니, 이런 사람들이 무슨 창자 있노라고 우리의 창자 없는 것을 비웃소? 지금 사람들을 보면 그 창자가 다 썩어서 미구(未久)에 창자 있는 사람은 한 개도 없이 다 무장공자가 될 것이니, 이 다음에는 사람더러 무장공자라 불러야 옳겠소."
제6석, 영영지극(營營之極 : 파리)
게가 입에서 거품이 부걱부걱 나오며 수용산출(水湧山出)로 하던 말을 그치고 엉금엉금 기어 내려가니, 파리가 또 회장을 부르고 나는 듯이 연단에 올라가서 두 손을 싹싹 비비면서 말을 한다.
"나는 파리올시다. 사람들이 우리 파리를 가리켜 말하기를, 파리는 간사한 소인이라 하니, 대저 사람이라 하는 것들은 저의 흉은 살피지 못하고 다만 남의 말은 잘하는 것들이오. 간사한 소인의 성품과 태도를 가진 것들은 사람들이오. 우리는 결단코 소인의 성품과 태도를 가진 것이 아니오.『시전(詩傳)』이라 하는 책에 말하기를, 영영한 푸른 파리가 횃대에 앉았다 하였으니, 이것은 우리를 가리켜 한 말이 아니라 사람들을 비유한 말이오. 옛글에 '방에 가득한 파리를 쫓아도 없어지지 않는다' 하는 말도 우리를 두고 한 말이 아니라, 사람 중의 간사한 소인을 가리켜 한 말이오. 우리는 결코 간사한 일은 하지 아니하였소마는, 인간에는 참 소인이 많습디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여 임금을 속인 것이 비단 조고 한 사람뿐 아니라, 지금 망하여 가는 나라 조정을 보면 온 정부가 다 조고 같은 간신이요, 천자를 끼고 제후에게 호령함이 또한 조조(曹操) 한 사람뿐 아니라, 지금은 도덕은 떨어지고 효박한 풍기를 보면 온 세계가 다 조조 같은 소인이라 웃음 속에 칼이 있고 말 속에 총이 있어, 친구라고 사귀다가 저 잘되면 차버리고, 동지라고 상종타가 남 죽이고 저 잘되기, 누구누구는 빈천지교(貧賤之交) 저버리고 조강지처 내쫓으니 그것이 사람이며, 아무아무 유지지사(有志之士) 고발하여 감옥서에 몰아넣고 저 잘되기 희망하니, 그것도 사람인가? 쓸개에 가 붙고 간에 가 붙어 요리조리 알씬알씬하는 사람 정말 밉기도 밉습디다. 여러분도 다 아시거니와 그래 공담(公談)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소인이오, 사람들이 간물(奸物)이오? 생각들 하여 보시오. 또 우리는 먹을 것을 보면 혼자 먹는 법 없소. 여러 족속을 청하고 여러 친구를 불러서 화락한 마음으로 한가지로 먹지마는, 사람들은 이(利) 끝만 보면 형제간에도 의가 상하고 일가간에도 정이 없어지며, 심한 자는 서로 골육상쟁하기를 예사로 아니, 참 기가 막히오. 동포끼리 서로 사랑하고, 서로 구제하는 것은 하느님의 이치어늘 사람들은 과연 저의 동포끼리 서로 사랑하는가? 저들끼리 서로 빼앗고, 서로 싸우고, 서로 시기하고, 서로 흉보고, 서로 총을 놓아 죽이고, 서로 칼로 찔러 죽이고, 서로 피를 빨아 마시고, 서로 살을 깎아 먹되 우리는 그렇지 않소. 세상에 제일 더러운 것은 똥이라 하지마는, 우리가 똥을 눌 때 남이 다 보고 알도록 흰 데는 검게 누고, 검은 데는 희게 누어서 남을 속일 생각은 하지 않소. 사람들은 똥보다 더 더러운 일을 많이 하지마는 혹 남의 눈에 보일까, 남의 입에 오르내릴까 겁을 내어 은밀히 하되, 무소부지(無所不知)하신 하느님은 먼저 아시고 계시오. 옛적에 유형이라 하는 사람은 부채를 들고 참외에 앉은 우리를 쫓고, 왕사라 하는 사람은 칼을 빼어 먹을 먹는 우리를 쫓을새, 저 사람들이 그렇게 쫓되 우리가 가지 아니함을 성내어 하는 말이, 파리는 쫓아도 도로 온다 미워하니, 저희들이 쫓을 것은 쫓지 아니하고 아니 쫓을 것은 쫓는도다. 사람들은 우리를 쫓으려 할 것이 아니라, 불가불 쫓아야 할 것이 있으니, 사람들아, 부채를 놓고 칼을 던지고 잠깐 내 말을 들어라. 너희들이 당연히 쫓을 것은 너희 마음을 수고롭게 하는 마귀니라. 사람들아 사람들아, 너희들은 너희 마음속에 있는 물욕을 쫓아 버려라. 너희 머릿속에 있는 썩은 생각을 내어 쫓으라. 너희 조정에 있는 간신들을 쫓아 버려라. 너희 세상에 있는 소인들을 내어 쫓으라. 참외가 다 무엇이며, 먹이 다 무엇이냐? 사람들아 사람들아, 우리 수십억만 마리가 일제히 손을 비비고 비나니, 우리를 미워하지 말고 하느님이 미워하시는 너희를 해치는 여러 마귀를 쫓으라. 손으로만 빌어서 아니 들으면 발로라도 빌겠다."
의기가 양양하여 사람을 저희 똥만치도 못하게 나무라고 겸하여 충고의 말로 권고하고 내려간다.
제7석,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 호랑이)
웅장한 소리로 회장을 부르니 산천이 울린다. 연단에 올라서서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고 좌중을 내려다보니 눈알이 등불 같고 위풍이 늠름한데, 주홍 같은 입을 떡 벌리고 어금니를 부지직 갈며 연설하는데, 좌중이 종용하다.
"본원의 이름은 호랑인데 별호는 산군이올시다. 여러분 중에도 혹 아시는 이도 있을 듯하오. 지금 가정이 맹어호라 하는 문제를 가지고 두어 마디 할 터인데, 이것은 여러분 아시는 것과 같이, 옛적 유명한 성인 공자님이 하신 말씀이라. 가정이 맹어호라 하는 뜻은 까다로운 정사(政事)가 호랑이보다 무섭다 함이니, 양자(楊子)라 하는 사람도 이와 같은 말이 있는데 혹독한 관리는 날개 있고 뿔 있는 호랑이와 같다 한지라, 세상에 사람들이 말하기를, 제일 포악하고 무서운 것은 호랑이라 하였으니, 자고 이래로 사람들이 우리에게 해를 받은 자가 몇 명이나 되느뇨? 도리어 사람이 사람에게 해를 당하며 살륙을 당한 자가 몇억만 명인지 알 수 없소. 우리는 설사 포악한 일을 할지라도 깊은 산과 깊은 골과 깊은 수풀 속에서만 횡행할 뿐이요, 사람처럼 청천백일지하에 왕궁 국도에서는 하지 아니하거늘, 사람들은 대낮에 사람을 죽이고 재물을 빼앗으며 죄 없는 백성을 감옥서에 몰아넣어서 돈 바치면 내어 놓고 세 없으면 죽이는 것과, 임금은 아무리 인자하여 사전(赦典)을 내리더라도 법관이 용사(用事)하여 공평치 못하게 죄인을 조종하고, 돈을 받고 벼슬을 내어서 그 벼슬한 사람이 그 밑천을 뽑으려고 음흉한 수단으로 정사를 까다롭게 하여 백성을 못 견디게 하니, 사람들의 악독한 일을 우리 호랑이에게 비하여 보면 몇만 배가 될는지 알 수 없소. 또 우리는 다른 동물을 잡아먹더라도 하느님이 만들어 주신 발톱과 이빨로 하느님의 뜻을 받아 천성의 행위를 행할 뿐이어늘, 사람들은 학문을 이용하여 화학이니 물리학이니 배워서 사람의 도리에 유익한 옳은 일에 쓰는 것은 별로 없고, 각색 병기를 발명하여 군함이니 대포니 총이니 탄환이니 화약이니 칼이니 활이니 하는 등물(等物)을 만들어서 재물을 무한히 내버리고 사람을 무수히 죽여서, 나라를 만들 때의 만반 경륜은 다 남을 해하려는 마음뿐이라. 그런고로 영국 문학박사 판스라 하는 사람이 말하기를, 사람이 사람에게 대하여 잔인한 까닭으로 수천만 명 사람이 참혹한 지경에 들어갔도다 하였고, 옛날 진회왕이 초회왕을 청하매 초회왕이 진나라에 들어가려 하거늘, 그 신하 굴평이 간하여 가로되, 진나라는 호랑이 나라이라 가히 믿지 못할지니 가시지 말으소서 하였으니, 호랑이의 나라가 어찌 진나라 하나뿐이리요. 오늘날 오대주(五大洲)를 둘러보면, 사람 사는 곳곳마다 어느 나라가 욕심 없는 나라가 있으며, 어느 나라가 포악하지 아니한 나라가 있으며, 어느 인간에 고상한 천리를 말하는 자가 있으며, 어느 세상에 진정한 인도를 의론하는 자가 있느뇨? 나라마다 진나라요 사람마다 호랑이라. 세상 사람들이 말하기를, 호랑이는 포악무쌍한 것이라 하되, 이것은 알지 못하는 말이로다. 우리는 원래 천품이 은혜를 잘 갚고 의리를 깊이 아나니, 글자 읽은 사람은 짐작할 듯하오. 옛적에, 진나라 곽무자라 하는 사람이 호랑이 목구멍에 걸린 뼈를 빼내어 주었더니 사슴을 드려 은혜를 갚았고, 영윤 자문을 나서 몽택에 버렸더니 젖을 먹여 길렀으며, 양위의 효성을 감동하여 몸을 물리쳤으니, 이런 일을 보면 우리가 은혜를 감동하고 의리를 아는 것이라. 사람들로 말하면 은혜를 알고 의리를 지키는 사람이 몇몇이나 되겠소? 옛적 사람이 말하기를, 호랑이를 기르면 후환이 된다 하여 지금까지 양호유환(養虎遺患)이라 하는 문자를 쓰지마는, 되지 못한 사람의 새끼를 기르는 것이 도리어 정말 후환이 되는지라. 호랑이 새끼를 길러서 덕을 모으는 사람은 있으되 사람의 자식을 길러서 덕을 보는 사람은 별로 없소. 또 속담에 이르기를, 호랑이 죽음은 껍질에 있고, 사람의 죽음은 이름에 있다 하니, 지금 세상 사람의 정말 명예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소? 인생 칠십 고래희라, 한세상 살 동안이 얼마 되지 아니한데 옳은 일만 할지라도 다 못 하고 죽을 터인데 꿈결같은 이 세상을 구구히 살려 하여 못된 일 할 생각이 시꺼멓게 있어서, 앞문으로 호랑이를 막고 뒷문으로 승냥이를 불러들이는 자도 있으니 어찌 불쌍치 아니하리요. 옛적 사람은 호랑의 가죽을 쓰고 도적질하였으나, 지금 사람들은 껍질은 사람의 껍질을 쓰고 마음은 호랑이 마음을 가져서 더욱 험악하고 더욱 흉포한지라, 하느님은 지공무사(至公無私)하신 하느님이시니, 이같이 험악하고 흉포한 것들에게 제일 귀하고 신령하다는 권리를 줄 까닭이 무엇이오? 사람으로 못된 일 하는 자의 종자를 없애는 것이 좋은 줄로 생각하옵네다."
제8석, 쌍거쌍래(雙去雙來 : 원앙)
호랑이가 연설을 그치고 내려가니 또 한편에서, 형용이 단정하고 태도가 신중한 어여쁜 원앙새가 연단에 올라서서 애연(哀然)한 목소리로 말을 한다.
"나는 원앙이올시다. 여러분이 인류의 악행을 공격하는 것이 다 절당한 말씀이로되 인류의 제일 괴악한 일은 음란한 것이오. 하느님이 사람을 내실 때에 한 남자에 한 여인을 내셨으니, 한 사나이와 한 여편네가 서로 저버리지 아니함은 천리(天理)에 정한 인륜(人倫)이라. 사나이도 계집을 여럿 두는 것이 옳지 않고 여편네도 서방을 여럿 두는 것이 옳지 않거늘, 세상 사람들은 다 생각하기를, 사나이는 계집을 많이 두고 호강하는 것이 좋은 것인 줄로 알고 처첩을 두셋씩 두는 사람도 있으며, 어떤 사람은 오륙 명 두는 자도 있으며, 혹은 장가 든 뒤에 그 아내를 돌아다보지 아니하고 두번 세번 장가 드는 자도 있으며, 혹은 아내를 소박하고 첩을 사랑하다가 패가망신하는 자도 있으니 사나이가 두 계집 두는 것은 천리에 어기어짐이라. 계집이 두 사나이를 두면 변고로 알고 사나이가 두 계집 두는 것은 예사로 아니, 어찌 그리 편벽되며, 사나이가 남의 계집 도적함은 꾸짖지 아니하고, 계집이 남의 사나이를 상관하면 큰 변인 줄 아니, 어찌 그리 불공하오? 하느님의 천연한 이치로 말할진대 사나이는 아내 한 사람만 두고 여편네는 남편 한 사람만 좇을지라. 무론 남녀 하고 두 사람을 두든지 섬기는 것은 옳지 아니하거늘, 지금 세상 사람들은 괴악하고 음란하고 박정하여 길가의 한 가지 버들을 꺾기 위하여 백년해로하려던 사람을 잊어버리고, 동산의 한 송이 꽃을 보기 위하여 조강지처를 내쫓으며, 남편이 병이 들어 누웠는데 의원과 간통하는 일도 있고, 복을 빌어 불공한다 가탁(假託)하고 중서방 하는 일도 있고, 남편 죽어 사흘이 못 되어 서방해 갈 주선 하는 일도 있으니, 사람들은 계집이나 사나이나 인정도 없고 의리도 없고 다만 음란한 생각뿐이라 할 수밖에 없소. 우리 원앙새는 천지간에 지극히 작은 물건이로되 사람과 같이 그런 더러운 행실은 아니하오. 남녀의 법이 유별하고 부부의 윤기(倫紀)가 지중한 줄을 아는 고로 음란한 일은 결코 없소. 사람들도 우리 원앙새의 역사를 짐작하기로 이야기하는 말이 있소. 옛날에 한 사냥꾼이 원앙새 한 마리를 잡았더니 암원앙새가 수원앙새를 잃고 수절하여 과부로 있은 지 일 년 만에 또 그 사냥꾼의 화살에 맞아 얻은 바 된지라, 사냥꾼이 원앙새를 잡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서 털을 뜯을새, 날개 아래 무엇이 있거늘 자세히 보니 거년(去年)에 자기가 잡아온 수원앙새의 대가리라. 이것은 암원앙새가 수원앙새와 같이 있다가 수원앙새가 사냥꾼의 화살을 맞아서 떨어지니, 그 창황중에도 수원앙새의 대가리를 집어 가지고 숨어서 일시의 난을 피하여 짝 잃은 한을 잊지 아니하고 서방의 대가리를 날개 밑에 끼고 슬피 세월을 보내다가 또한 사냥꾼에게 얻은 바 된지라, 그 사냥꾼이 이것을 보고 정절이 지극한 새라 하여 먹지 아니하고 정결한 땅에 장사를 지낸 후에 그때부터 다시는 원앙새는 잡지 아니하였다 하니, 우리 원앙새는 짐승이로되 절개를 지킴이 이러하오. 사람들의 행위를 보면 추하고 비루(鄙陋)하고 음란하여 우리보다 귀하다 할 것이 조금도 없소. 사람들의 행사를 대강 말할 터이니 잠깐 들어 보시오. 부인이 죽으면 불쌍히 여기는 남편이 몇이나 되겠소? 상처한 후에 사나이 수절하였다는 말은 들어 보도 못 하였소. 낱낱이 재취(再娶)를 하든지 첩을 얻든지, 자식에게 못할 노릇 하고 집안에 화근을 일으키어 화기(和氣)를 손상케 하고, 계집으로 말하면 남편 죽은 후에 수절하는 사람은 많으나 속으로 서방질 다니며 상부한 지 며칠이 못 되어 개가할 길 찾느라고 분주한 계집도 있고, 또 자식을 낳아서 개구멍이나 다리 밑에 내버리는 것도 있으며, 심한 계집은 간부에게 혹하여 산 서방을 두고 도망질하기와 약을 먹여 죽이는 일까지 있으니, 저희들의 별별 괴악한 일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소. 세상에 제일 더럽고 괴악한 것은 사람이라, 다 말하려면 내 입이 더러워질 터이니까 그만두겠소."
원앙새가 연설을 그치고 연단에서 내려오니, 회장이 다시 일어나서 말한다.
폐 회
"여러분 하시는 말씀을 들으니 다 옳으신 말씀이오. 대저 사람이라 하는 동물은 세상에 제일 귀하다 신령하다 하지마는, 나는 말하자면, 제일 어리석고 제일 더럽고 제일 괴악하다 하오. 그 행위를 들어 말하자면 한정이 없고, 또 시간이 진하였으니 그만 폐회하오."
하더니 그 안에 모였던 짐승이 일시에 나는 자는 날고, 기는 자는 기고, 뛰는 자는 뛰고, 우는 자도 있고, 짖는 자도 있고, 춤추는 자도 있어, 다 각각 돌아가더라.
슬프다! 여러 짐승의 연설을 듣고 가만히 생각하여 보니, 세상에 불쌍한 것이 사람이로다. 내가 어찌하여 사람으로 태어나서 이런 욕을 보는고! 사람은 만물 중에 귀하기로 제일이요, 신령하기도 제일이요, 재주도 제일이요, 지혜도 제일이라 하여 동물 중에 제일 좋다 하더니, 오늘날로 보면 제일로 악하고 제일 흉괴하고 제일 음란하고 제일 간사하고 제일 더럽고 제일 어리석은 것은 사람이로다. 까마귀처럼 효도할 줄도 모르고, 개구리처럼 분수 지킬 줄도 모르고, 여우보담도 간사한, 호랑이보담도 포악한, 벌과 같이 정직하지도 못하고, 파리같이 동포 사랑할 줄도 모르고, 창자 없는 일은 게보다 심하고, 부정한 행실은 원앙새가 부끄럽도다. 여러 짐승이 연설할 때 나는 사람을 위하여 변명 연설을 하리라 하고 몇 번 생각하여 본즉 무슨 말로 변명할 수가 없고, 반대를 하려 하나 현하지변(懸河之辯)을 가지고도 쓸데가 없도다. 사람이 떨어져서 짐승의 아래가 되고, 짐승이 도리어 사람보다 상등이 되었으니, 어찌하면 좋을꼬? 예수 씨의 말씀을 들으니 하느님이 아직도 사람을 사랑하신다 하니, 사람들이 악한 일을 많이 하였을지라도 회개하면 구원 얻는 길이 있다 하였으니, 이 세상에 있는 여러 형제자매는 깊이깊이 생각하시오.
[출전 : 황성서적조합(1908.1)]
한말 안국선(安國善)의 기독교 수용
최기영(서강대 사학과 강사) 1. 머리말
1870년대 말부터 기독교(개신교)를 수용한 한국에서, 지식인들의 기독교 수용은 대체로 1900년대에 이르러 본격화하였다. 특히 1900년대 전반기에 종로감옥에 수감되어 있던 정치범들이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지식인들의 기독교 수용이 두드러지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천강(天江) 안국선(安國善, 1879~1926)은 1900년대 후반기부터 1910년대에 걸쳐 활동한 신소설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금슈회의록》이나《共進會》와 같은 소설집 뿐 아니라, 정치·외교·경제·법률·연설·역사 등에 관련된 적지 않은 논설과, 저술 및 번역서를 남긴 한말의 대표적인 계몽론자이기도 하였다. 그러한 그가 바로 1900년대 전반기 종로감옥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정치범 가운데 하나였음은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더욱이 그는 1900년대 후반기에 한국민의 기독교 신봉을 적극 주장하였고, 그가 쓴《금슈회의록》은 바로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당시의 현실을 논의한 신소설이기도 하였다.
이미 필자는 안국선의 생애와 계몽사상을 다루면서, 기독교에 관련된 문제를 소략하지만 정리해 본 바 있다. 본고에서는 그 부분을 좀더 상세하게 다루어 비록 중복되는 논의도 있겠지만, 안국선의 기독교 수용에 대한 관심에 주목하여 한말 지식인들이 기독교를 어떻게 접하고 이해하였는가 하는 하나의 사례로 살피고자 한다.
2. 안국선의 기독교로의 개종
안국선은 1879년 12월 5일(음)에 죽산(竹山)을 본관으로 한 안직수(安稷壽)의 장남으로 경기도 양지군 봉촌(鳳村, 현 안성군 古三面 鳳山里)에서 태어나, 1926년 7월 8일에 서울에서 사망하였다. 그의 가계는 7대조부터 벼슬에 전혀 나아가지 못한 잔반가문이었으나, 그의 종증조부(從曾祖父)의 손자, 즉 안국선에게 재종백부(再從伯父)가 되는 안경수(安駉壽, 1853-1900)가 1895년 군부대신에 오르게 된 것이, 안국선의 생애에도 매우 중요한 일이 되었다.
그는 17세가 되던 1895년에, 갑오경장(甲午更張)의 수행과정에서 정부가 일본에 파견한 관비유학생으로 선발되었는데, 바로 안경수의 추천에 의한 것이었다. 그해 8월에 경응의숙(慶應義塾) 보통과에 입학한 안국선은 1896년 7월에 졸업하고, 이어 8월에 동경전문학교(東京專門學校, 현 早稻田大學)의 방어정치과(邦語政治科)에 진학하여 1899년 7월에 졸업하였다. 그는 귀국한 그 해 11월경에 경무청에 체포되었는데, 그것은 박영효(朴泳孝)와 관련된 역모사건에 연루되었기 때문이었다. 즉 그는 귀국하면서 경응의숙의 동기로 동경제국대학 농과대학에 다니던 오성모(吳聖模)와 동행하였다. 그런데 오성모는 박영효의 정권장악에 필요한 자금을 국내에서 조달하고자 한 인물이었다. 이 사건이 고발되면서 안국선도 체포되어, 1904년 초까지 미결수로 종로감옥에 수감되어 있었다.
이들에 대한 재판은 수감된 지 만 4년이 지난 1904년 3월에 있었다. 오성모는 사형이 선고되었고, 안국선은 笞 100에 종신유형이 선고되어 1904년 3월 전라도 진도군 금갑도(金甲島)로 종신유배되었다. 그는 바로 이 감옥에 있던 4년 반동안에 기독교로 개종하였던 것이다.
안국선이 감옥에 있던 시기에는 정치범들이 매우 많았다. 널리 알려진 인물만해도 독립협회 관련사건으로 1899년 1월에 체포되었던 이승만을 비롯하여, 1902년 6월 이른바 개혁당사건(改革黨事件)으로 체포되었던 이상재(李商在)·유성준(兪星濬)·이원긍(李源兢)·김정식(金貞植)·홍재기(洪在箕)·이승인(李承仁)과, 그 밖의 여러 사건으로 신흥우(申興雨)·양기탁(梁起鐸)·김린(金麟)·박용만(朴容萬)·이준(李儁)·정순만(鄭淳萬)·나유석(羅裕錫) 등이 감옥에 있었다.
그런데 안국선이 종로감옥에 있던 시기인 1902년 10월, 감옥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바로 감옥학교가 설립되어 국문·영어·일어를 비롯하여, 역사·지리·작문 등을 죄수들에게 가르쳤던 것이다. 교사는 물론 정치범인 이승만·신흥우·양기탁 등이 맡았다. 이승만과 신흥우는 배재학당에서 수학한 인물이었고, 양기탁은 관립영어학교를 마치고 일본 나가사키(長崎)의 학교에서 한문을 가르친 바 있었다. 그리고 일요일에는 벙커목사가 와서 성경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러나 안국선은 이 감옥학교에 관여한 것 같지 않다.
학교와 함께 감옥 안에 도서실도 1903년 1월 경에 설치되었다. 초기에는 250여권이 수장되었다가, 1904년 8월말에는 294종 523권이 이르렀다고 한다. 이 서적들은 죄수 이외의 간수나 면회객에게도 대출되었는데, 총 229명이 연 2,000권 이상 대출하였던 것으로 나타난다. 그 대부분은 벙커목사와 외국의 선교사들이 기증한 기독교 관계서적이었다. 일부 영어책도 있었지만, 국문서적과 한문서적이 주를 이루었다. 안국선도 이 도서실에서 서적을 대출하고 있었다. 1904년 1월 25일에《텬료력뎡》을 빌린 이래 1905년 3월 21일까지 약 1년 2개월동안 모두 27회에 걸쳐 서적을 대출하였는데, 안명선(安明善)의 이름으로 되어 있었다. 개혁당사건 관련자들의 대부분이 90회에서 40회 이상 도서를 대출한 것에 비하면 안국선의 독서열은 그리 높은 편이 되지는 못하였다고 하겠다. 그가 대출한 서적을 보면《텬로력뎡》.《興華新義》.《列國變通興盛記》.《近代敎師列傳》.《路得改敎紀略》.〈그리스도신문〉.《中東戰紀》.《신약젼서》.《威廉振興荷蘭紀略》.《主僕談道》.《太平洋傳道錄》.《孩訓喩說》.《時事新論》.《救世敎成全儒敎》 등이었다. 가장 여러 차례 대출하였던 서적은 청일전쟁사를 다룬《中東戰紀》로 8회(24일간) 대출하였으며, 대출도서 가운데 상당 부분이《텬로력뎡》.《近代敎師列傳》.《路得改敎紀略》.〈그리스도신문〉.《신약젼서》.《主僕談道》.《太平洋傳道錄》.《孩訓喩說》.《救世敎成全儒敎》등 기독교에 관련된 서적들이었다. 특히 그는《신약젼셔》를 모두 4차례에 걸쳐 총 57일간 대출하고 있었다. 감옥의 도서실에는 선교사들이 기증한 기독교 관련서적이나 잡지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으므로, 정치범들도 주로 이것들을 읽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많이 대출되었던 서적이《신약젼셔》였는데, 안국선 역시《신약젼서》를 여러 차례 오랫 동안 읽고 있었다. 그와 함께 수감되어 있던 김정식의 경우에는《신약젼서》를 7회 통독하고 8회째 읽다가 석방되었으며, 유성준도 1년 동안에 성경을 7번이나 읽었다고 한다. 이상재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이처럼 정치범들이 성경을 열심히 읽은 것은 격리된 감옥에서 기독교 서적을 읽고, 선교사의 방문을 받을 수 있던 상황과 무관하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이들의 상당수는 1904년에 석방되어 기독교로 개종하였던 것이다.
정치범으로 감옥에 수감되어 있다가 기독교로 개종한 이원긍의 장남 이능화(李能和)는《朝鮮基督敎史及外交史》에서 이러한 사실을 잘 정리하고 있다.
光武五年 辛丑之春三月에 先考府君(寫眞右三 號取堂 前韓從二品嘉善大夫法部協辦) 及李商在氏(號月南 前韓從二品嘉善大夫議政府參贊) 兪星濬氏(號兢齋 前韓從二品嘉善大夫內部協辦) 金貞植氏(號三省 前韓警務官) 李承仁氏(號竹史 月南先生之次子 前韓爲扶餘郡守 卒于官) 洪在箕氏(號斗庭 前韓開城郡守 卒于官) 李承晩氏(哲學博士) 安國善氏(曾經郡守) 金麟氏(官歷未詳) 等이 一時被拘?야 同逮牢獄?니 本無罪案之可構오 唯有官歷之是咎니 此所謂莫須有之事也라 三個星霜 鐵窓生活에 幽鬱慘憺?야 苦惱畢備러니 幸而獄法에 許看宗敎書籍?고 亦許洋人入獄布敎라(時米國人宣敎師 房巨氏(A.D.Bunker)入獄傳道矣) 於是에 同監諸公이 相與硏究新約全書?야 誓心決志?야 領洗守戒?니 是爲官紳信敎之始라 光武八年甲辰歲初에(日露戰役開始之際) 始得釋放?야 復見天日?야 遂相率從事于京城蓮洞敎會?니(時奇一(Gail;Gale의 誤)牧師主管蓮洞敎會)‥‥後自蓮會로分向各方?야 獻身於宗敎事業?야 用力於精神指導 ……
즉 감옥에서 기독교로 개종하였던 인물로 이원긍·이상재·유성준·김정식·이승인·홍재기·이승만·안국선·김린 등을 들고, 이들이 '관신신교지시'(官紳信敎之始)였다고 표현하였다. 감옥에 수감되어 있던 정치범의 거의 모두가 기독교로 개종한 셈이었다. 이 이전에도 개인적으로 기독교에 입교한 전·현직관리들이 없지는 않았으나, 이들처럼 같은 시기에 많은 인원이 개종한 경우는 없었던 것이다. 감옥에 있던 정치범, 즉 지식인들이 기독교 신자가 된 것은 여러 이유가 있었을 것이나, 특히 감옥 안에서의 여러 가지 상황이 이들을 자성(自省)케 하기도 하고 절대자에게 귀의하게 한 심리적인 측면이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또한 이들은 신학문에 의한 개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던 유학자들이었는데, 이 시기에 서양기술의 수용만으로는 국가의 발전이 어려울 것이라고 인식하지 않았나 한다. 안국선 또한 다른 정치범들과 다름 없이 감옥에서 기독교를 신봉하고 개종하였을 것이 틀림없다.〈皇城新聞〉1904년 10월 19일자 잡보의 "天荒漸聞"이라는 기사는 안국선의 개종을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珍島난 千里化△에 民愚俗昧하더니 數月前붓터 有志數人이 新學硏究와 風俗改良의 目的으로 親睦會를 組織하였 其會員은 安天江·朴鳳禹·蘇文奎·朴永培·崔基元等 二十餘人이오 每月一次式開會하야 講演責善한다난 ……
진도에 신학연구와 풍속개량을 목적으로 친목회가 조직되었는데, 그 회원의 대표로 '安天江'이라는 인물이 이 기사에서 찾아진다. 안국선은 1906년 이후 天江이라는 호를 사용하여 여러 편의 글을 발표하는데, 예컨대〈가뎡잡지〉에 게재된 것들이 그렇다. 아직 진도에서 유배중이던 그는〈가뎡잡지〉제4호에 "가뎡경졔론"(1906. 6), 제5호에 "부 런 일"(1906.10), 제7호에 "부인을 낫게 봄이 불가? 일"(1907. 1)을 '안텬강'·'安天江'이라는 필명으로,〈大韓每日申報〉1906년 11월 1일자에는 "日本行爲에 對? 國際法 解釋"을 '天江生'으로 발표하였다. 그리고 1907년 5월에 발간된〈夜雷〉 제4호에 게재된 "豊年不如年凶論"에는 필자를 '天江 安國善'이라고 밝혔던 것이다. 그러한 천강이라는 이름이 진도에서 조직된 친목회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미루어, 안국선은 이미 1904년 진도에 유배된 시기부터 '천강'이라는 호를 사용했음이 확인된다. 그런데 천강이라는 호가 안국선의 기독교 신앙과 관련이 된다는 것은 그 뜻이 '天國의 生命水'라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바로 그같은 뜻의 천강이라는 이름을 진도에서부터 사용하였다는 사실은 그가 감옥에서 기독교로 개종하였음을 알려주고, 뿐만 아니라 그만큼 기독교의 수용에 열렬하였음을 드러내는 일이라 하겠다. 즉 그 스스로가 기독교인임을 내세운 이름을 사용한 것은 기독교로의 개종이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1907년 3월에 유배에서 풀린 안국선은 이후 정력적으로 저술과 번역을 하며, 아울러 다채로운 사회활동을 전개하였다. 돈명학교(敦明學校)와 광신상업학교(廣信商業學校)의 교사로도 재임하고, 대동상회(大東商會)의 회계와 창신사(彰信社)의 지배인과 같은 회사의 중역도 맡았다. 그리고 국채보상찬성회 발기인·대한중앙학회 평의원·대한협회 회원·기호흥학회 월보저술원·소년동지회 실업부장 등 사회단체의 임원도 역임하였다. 그의 이러한 활동은 1900년대 후반기에 널리 전개되던 국권회복운동인 이른바 애국계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울러 그는 신문과 잡지에 20편에 달하는 논설을 발표하였고, 8종 10책의 저술과 번역서를 간행하였다. 대체로 1907·8년의 일이었다. 그 내용은 대체로 국민계몽에 관련된 것으로, 정치·경제·법률·역사 등의 분야였다. 동시에 안국선은 1907년 11월부터 1개월간 제실재산정리국(帝室財産整理局)의 사무관으로 재임한 이후 1908년 7월부터 한일합병에 이를 때까지 탁지부(度支部)의 서기관으로 이재국(理財局) 감독과장과 국고과장에 있었다. 2년 조금 넘게 관직에 있던 시기에 그는 국권회복에 관련된 논의를 거의 하지 않고, 풍속개량과 같이 정치와 무관한 문명개화를 언급할 뿐이었다. 일제의 통감부에 의하여 통제되던 친일정부의 관리가 지니는 한계였던 것이다. 한일합병 이후에 그는 청도군수(淸道郡守)로 2년 3개월간 재임하여 조선총독부의 중간관리로 근무하였던 것이다. 관직에 있으며 안국선은 기독교 신앙에 열심이었다. 언제 그가 세례를 받았는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지만, 1910년 2월 현재 그가 유성준과 함께 연동교회(蓮洞敎會)에 출석하고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연동교회에서 게일목사에게 세례를 받았을 것으로 믿어진다. 그것은 시기는 다르지만 1904년 감옥에서 석방된 정치범들인 이상재·이원긍·김정식·홍재기 등이 바로 연동교회에서 세례를 받았고, 또 유성준도 황해도 철도(鐵島)에서의 유배에서 벗어난 직후인 1905년에 연동교회에서 세례를 받았기 때문이다. 안국선도 1907년 3월 유배에서 풀리자 상경하여, 그들의 권유로 연동교회에서 세례를 받았을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1908년에는 관직에 있으면서도 4차례나 황성기독교청년회(皇城基督敎靑年會)에서 풍속개량에 관하여 '根本的 文明'·'迷信論'·'風俗改良' 등의 제목으로 연설을 하였다. 또 1908년 12월 1일에 있은 황성기독교청년회관 개관식에서도 일본인의 연설을 통역하였고, 합병 직후 청년회관의 운동실을 건립하기 위한 1만원 모금운동에 수금위원으로도 활동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이미 1900년대 후반기에 이르면 기독교의 지도적인 신자가 되어, 특히 YMCA의 활동에 깊이 관여하였음을 알 수 있게 한다. YMCA에는 안국선이 감옥에서 함께 있던 이상재·유성준·김정식·이원긍·김린·홍재기 등이 관여하였던 점도, 안국선의 참여와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이처럼 연동교회에 출석하면서 YMCA에 참여하였던 것은 정치운동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자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미 1900년대 후반에 이르면 감옥에서 기독교를 수용한 지식인들은 적극적으로 반일정치운동에 참여한 이준·이승만·정순만·박용만 등과 같은 부류와, 정치운동보다는 종교계몽운동에 관심을 가진 YMCA 참여층으로 나뉘고 있었다고 하겠다. 그렇지만 이러한 구별에도 불구하고 안국선은 1900년대 전반기 감옥에 함께 수감되어 있던 정치범들과 1910년대 초까지 교유하였던 것으로 나타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발행되던 교포신문이었던〈新韓民報〉1911년 3월 8일자 내보 "輪回通信"이라는 기사가 그러한 사실을 전하여 준다.
본국셔 국 범으로 다년 옥듕에셔 고 ?고 시방 교육과 져슐에 열심으로 죵 ? 안국션씨는 당시에 감옥셔에 잇던 여러 친고들과 친근? 졍을 서로 통코져 ?야 륜회통신이라 졔도 마련?엿 ‥‥그 통신? 사 은 달젼일국 와 졍 범으로 안국션씨와 옥듕에 잇던 쟈ㅣ니 본국에 안국션 유셩쥰 리원긍 량긔 리상 김린 리승만 졔씨요 미국에 신흥우 박용만 두 사 과 일본에 김졍식씨라
안국선이 주도하여 유성준·이원긍·양기탁·이상재·김린·이승만·신흥우·박용만·김정식 등 10명이 서신왕래를 하였다는 것이다. '윤회통신'이란 안국선이 다른 사람에게 편지를 내면, 받은 사람은 안국선의 편지와 자신의 편지를 다음 사람에게 우송하는 형태로 이루어지는 것이었는데,〈新韓民報〉의 주필이던 박용만에게까지 그러한 형태로 편지가 전달되고 있었다. 이미 지적한대로 그 대상자의 대부분이 정치범으로 감옥에 있으면서 기독교로 개종한 인물이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아무튼 1907년 이후 1910년대 중반까지 안국선의 신앙생활은 독실하였던 ㅇ것으로 보인다. 1910년대 중반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으로 짐작되는 안국선의 아들 안회남(安懷南)의 기록을 보면,
나의 先親께서 基督敎信者이신 時節이 있었다. 少年인 그 때의 나는 每日 朝飯 前에 아버님과 함께 聖經을 읽고 讚頌歌를 불으고 祈禱를 하고 했다. 내 누이동생도 參席을 하고 其外 食客들도 끼었다 그렇건만 우리 어머님은 除外되었든 것이다. 勿論 그 時刻에 어머님께서는 食母를 다리고 아츰밥을 지으시는 것이다 나는 어머님이 그 職責 때문으로 하여서 아츰 禮拜에 빠즈시는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었다
라고 한 것에서 안국선이 매일 아침 식사 전에 가족예배를 보았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안회남도 예배당에 데리고 다니며 세례까지 받게 하였으나, 부인은 교회에 출석하지 않았던 것 같다. 1900년대 전반기 감옥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안국선은 1907년경 연동교회에서 세례를 받았고, 이후 기독교 신앙을 유지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는 1910년대 말을 전후하여 사업실패로 음주를 하는 등 일시적으로 신앙의 회의도 있었던 것 같지만, 죽는 날까지 신앙을 버린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3. 안국선의 기독교 수용론
안국선은 흔히 신소설작가로만 알려져 왔으나, 동시에 국민계몽을 통한 실력양성론을 주장한 계몽론자이기도 하였다. 우선 그는 전통유교를 배척하고 서구학문의 수용을 내세웠다. 예컨대〈皇城新聞〉1904년 10월 19일자 잡보 "天荒漸聞"에 소개된 진도 친목회의 취지문은 안국선 작성한 것으로 짐작되는데,
又 今也諸時局이 新開하야 東西ㅣ 互通하니 舊不可以敵新이니 只要維新이라 有識之士난 務究新學하야 先去各自之舊染하고 改良世俗之腐敗한 不暇어 豈可逐流 俗하야 同歸一轍耶아
라고 신학 즉 서구학문의 수용을 강조한 바 있었다. 그러한 배경에서 을사조약 이후의 민족현실과 관련되어 파생되는 주제는 마땅히 국권회복을 위한 실력양성론이었고, 그것이 교육과 실업이 중심되었음은 다른 계몽론자와 다르지 않았다. 1907년 안국선이 경응의숙 보통과의 동창인 김대희(金大熙)와 가진 인터뷰가 참고된다.
二十世紀의 朝鮮은 敎化朝鮮이오 實業朝鮮이오, 此ㅣ 朝鮮에 對? 二十世紀의 大勢니 二十世紀의 大韓人士 此大勢를 適應?여야 것이오, 設使 政治上에 從事 지라도 此를 忘?야 不可?오…… 二十世紀의 事業은 根本的으로 敎化가 是也오 實際的으로 實業이 是也니, 余 信?오, 如此히 ?면 我國이 復興?리라 余 信?오
안국선은 교화와 실업이 한국의 부흥을 이룰 수 있는 가장 필요한 일임을 강조하여, "敎化로 因?야 根本的 文明을 發達?고 實業으로 因?야 實際的 權力을 養成?면 二十世紀의 韓國은 吾輩의 理想? 國家가 될" 것이라고 결론내린 바 있다. 특히 그는 국가발전과 문명발전의 실제는 실업발달이라고 보았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교화에 있음을 강조하여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 사회문명의 근본이라는 교육과 종교를 제시하였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다른 계몽론자들과는 달리 교화의 실천을 교육에 국한시키지 않고, 오히려 종교를 강조하였다는 점이다. 안국선이 기독교 신자였던 사실이 이 부분에서 매우 중시되지 않을 수 없다.
大抵 我韓에 宗敎가 無 은 知者의 慨嘆? 바이라, 何國을 勿論?고 文明은 宗敎로 因?야 發達됨이 原則이니…… 今日 歐美의 文明을 輸入?랴 진 耶蘇敎 信?야 宗敎 改良 이 必要?오…… 西洋文明을 輸入?랴면 人民의 性質을 全然 感化?여야 터이닛가, 宗敎 지 改宗?야 二十世紀의 大勢를 適應?면 國家의 獨立과 社會의 文明이 自然히 成就될 것이오
그는 서구문명의 수용을 위해서는 종교까지 개종하여 기독교를 신봉해야 하고, 그것이 20세기의 대세에 적응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바로 국가의 독립과 사회문명이 기독교의 신봉으로 이루어진다고 믿은 기독교구국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전통사회를 지배해 온 유교를 종교로 인정하지 않고 철학으로 이해하면서, 유교가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설명하였지만 사람과 천주(天主), 사람과 물질에 관해서는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아울러 일본의 경우도 종교의 개종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물질적인 발전은 이루었으나 도덕적인 문명은 이루지 못했다고 평가하였다. 이것은 안국선이 기독교인으로 물질문명의 발전보다도 오히려 정신문명의 발전을 중시하지 않았나 짐작케 한다. 그리고 유교를 종교가 아닌 철학으로 이해한 것은, 전통적인 유교국가인 한국에 종교가 없었다고 이해하여 기독교의 수용이 가져 올 유교와의 마찰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자 한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따라서 서구문명의 수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인식된 상황에서 국가의 독립과 사회의 문명화라는 지상의 목적을 얻기 위해서는 기독교의 수용이 이루어져야만 한다는 입장을 밝힐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 기독교를 신봉하는 지식인이 증가하고 있었지만, 안국선과 같이 이처럼 기독교의 신봉을 통해서만 국가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한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는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전도하는 차원이 아니라, 한국의 기독교국화를 주장한 것이었다. 이같이 기독교의 수용이 국가발전의 기초가 될 것이라는 주장은 물론 안국선만이 내세운 것은 아니었다. 이승만도 기독교를 받아들이면서, "대한 사람들의 새 물줄기는 예수교회"라고 언급하며,
이 세대에 처하야 풍속과 인정이 일제히 변하야 새거슬 숭상하여야 할터인대 새거슬 행하는 법은 교화로써 근본을 아니삼고는 그 실상 대익을 엇기 어려온대 예수교는 본래 교회 속에 경장하는 주의를 포함한 고로 예수교가 가는 곳마다 변혁하는 힘이 생기지 아는 대 업고 예수교로 변혁하는 힘인즉 피를 만히 흘니지 아니하고 순평히 되며 한번 된 후에는 장진이 무궁하야 상등문명에 나아가나니 이는 사람마다 마음으로 화하야 실상에서 나오는 연고ㅣ라
고 기독교를 통한 점진적 개혁이 한국의 장래에 기초가 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또 이원긍도 기독교가 교육의 근본이라는 전제에서, 기독교 정신을 기초로 한 국민교육을 강조하여, 1905년 9월 30일에 개최된 국민교육회 친목회에서 그 취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던 것이다.
文明之原意가 首在敎育이오 敎育原意가 在於基督敎인바 試觀今日各國 皆以上帝極世效靈하며 愛人如己하심으로 體認宗敎 故로 基督敎ㅣ 幾握全地구敎育權하야 文化日進이 如風潮하니 卽世界人類에 自由釋放之時代也어날 我國이 尙無敎育 故로 以至今日此境하니…… 普願我 官諸公으로 以及平民하야 凡我同胞 基督敎 新舊約眞理 講明하시오
이원긍은 문명의 본래 뜻이 교육에 있고 교육의 본래 뜻은 기독교에 있다고 하면서, 기독교의 신구약진리로 국민교육에 진력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최병헌(崔炳憲)도 널리 알려진 "論政敎關係"라는 연설에서 "耶蘇敎理 目下西學而不取?고 但取西人之兵器與機械?야 設電話與語學?니 此 不務其本而取其末이라 豈可成就文明哉아"라고, 기독교의 수용이 문명성취의 근본이라고 내세운 바 있었다. 모두 기독교가 교화의 근본이고 문명의 선도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었다. 이들이 적극적으로 기독교의 수용을 주장하였지만, 안국선처럼 기독교국화만이 문명화의 유일한 방안이라고까지 극단적으로 논의를 전개한 것은 아니었다. 아무튼 이승만이나 이원긍, 그리고 안국선 등의 이러한 주장을 통하여 감옥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인물들이 기독교를 한국사회가 받아들여야 할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명제로 인식하였던 사실은 알 수 있다. 그런데 안국선은 한국의 기독교국화를 주장하면서, 동시에 본인 스스로 기독교적인 가치관을 현실인식의 기준으로 삼고자 하였다. 바꾸어 말하면 당시 사회의 현실과 풍습을 논의하면서, 그 판단기준을 기독교적인 윤리와 도덕에 두었던 것이다. 그것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금슈회의록》이라는 신소설이다. 이 소설집은 동물을 등장시켜 당시의 현실을 비판한 것이었는데, 1908년 2월에 간행되었다. 발간된 지 3개월만에 재판을 찍을 만큼 널리 읽혔으나, 1909년 5월 출판법에 의하여 압수된 8종의 서적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일본의 대한정책과 친일정부의 대신을 비판하였다는 치안방해가 그 이유였다. 《금슈회의록》의 시작 부분에 실린 " 회취지"는 사실상 안국선의 신앙고백이나 다름 없었다.
대뎌 우리들이 거쥬?야 사 이 셰샹은 당쵸브터 잇던 거시 아니라 지극히 거룩?시고 지극히 션(젼)능?신 하나님 셔 조화로 만드신 거시라 셰계 만물을 창조?신 조화쥬를 곳 하나님이라 ?나니 일만 리치의 쥬인되시 하나님 셔 셰계를 만드시고 만물을 만드러 각 물건이 셰샹에 기게 ?셧스니 이갓치 만드신 목뎍은 그 영광을 나타 여 모든 물로 ?여곰 인 ? 은덕을 베프러 영원? 복을 밧게 ?랴 이라
즉 안국선은 창조주로서의 하느님을 신앙한다고 밝히면서, 이 소설에서 "사 된 쟈의 임을 의론?야 분명히 일·사 의 위를 들어셔 올코 그름을 의론 일·지금 셰상 사 즁에 인류 격이 잇 쟈와 업 쟈를 됴사 일"을 논의할 것이라고 하였다. 바로 그는 인간의 책임과 행위의 선악, 그리고 인간의 자격을 논의한다고 밝혔던 것이다. 따라서《금슈회의록》이 정치현실을 다룬 것으로 인식되어 판금조치를 받았지만, 기본적으로는 국민의 도덕적 변혁을 주된 목적으로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금슈회의록》에서 다루고 있던 내용을 살펴보면, 도덕적인 문제들이 주제로 제시되었음이 쉽게 드러난다.
《금슈회의록》의 내용
《금슈회의록》에 수록된 8편의 글이 다룬 주제는 효도·분수·의리·정절과 같은 인간의 갖추어야 할 덕목과, 인간의 간사함·부패·이중성·악독함·아부·포학·음란과 같이 버려야 할 사악함이었다. 동물들의 연설을 통하여, 안국선은 인간의 사악함이 동물보다 더하다는 사실을 드러내고자 하였던 것이다. 결국 안국선이 주장하는 바는 인간의 도덕성 회복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가 교육 가운데 "第一緊重? 것은 德育"이라고 한 것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안국선이 인간의 도덕성을 강조한 것은
사 이라 ? 물건은 당초에 하나님이 만드실 에 특별이 령혼과 도덕심을 너허셔 다른 물건과 다르게 ?섯신 즉 사 들은 더욱 하나님의 을 슌죵?야 텬리졍도를 직히고 착? 실과 아름다온 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 여야 할 터인 지금 셰샹 사 의 위를 보니 그 ? 일이 모다 악?고 부졍?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 기 고사?고 도로혀 하나님의 영광을 더럽게 ?며 은혜를 반?야 졔반 악증이 만토다
라고 한 것에서도 짐작되듯이, 인간의 하느님에 의하여 특별히 영혼과 도덕(덕의심)을 지니고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도덕의 문제는 인간사회에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인데, 실제 인간은 악과 부정으로 하느님의 영광과 은혜를 돌아보지 않는 존재인 경우가 많았고, 따라서 그는《금슈회의록》과 같이 영혼과 도덕이 없는 동물을 의인화하여 추락된 인간의 도덕을 비판하였던 것이다. 안국선은《금슈회의록》보다 앞서
今日 歐米의 文明을 輸入?랴 진 耶蘇敎 信?야 宗敎 改良 이 必要?오, 我韓이 與外通商?지 于今五十餘年에 改革을 實施?고 雜(維의 誤)新을 主張?야 舊日의 面目이 未嘗不改新?얏스나, 社會의 狀態 如前히 腐敗?고 人民의 思想은 依舊히 固陋?야 野蠻의 批評을 尙此不免?니 此ㅣ 何故오, 無他라 根本的 文明을 實施치 못? 所以오, 그 , 政府의 官制나 改?고 人民의 衣冠이 新?면 文明이 되겟소? 人民의 性質을 全然히 改變?야 病의 根源을 痛除치 아니?면 眞開化를 待望키 難?오, 社會人民의 病이 今日에 至?야 俱深?얏시니 人民의 依賴心과 心과 倨傲心과 懶怠心과 欺狂心과 猜忌心과 淫慾과 亂俗을 一切拔去?고 正道와 德義를 養成치 아니?면 人民의 獨立心이 生?기 難?고 勤勉心이 發?기 不能?고 合衆心을 見?기 不能?리니 此 人民의 性質을 感化?여야 것이라, 感化性質은 宗敎에 依치 아니?야 不可?오
라고 외형적인 개혁으로는 참된 개화가 이루어질 수 없음을 지적하고, 내재적인 개혁으로 인민의 성질을 감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었다. 인민의 감화가 바로 기독교의 수용으로 가능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도덕성의 회복, 인간성의 개조, 나아가 한국민의 풍속개량이 기독교적인 윤리와 도덕을 기준으로 하여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안국선은《금슈회의록》을 통하여 그 자신의 신앙을 드러내면서, 기독교가 인간세계 모든 질서의 근본임을 강조하고자 하였다. 그가 지칭한 '하나님(하 님)'은 창조주이며 모든 세상사를 주재하는 신이었다. 그리고 인간의 존재는 창조주의 영광을 드러내는 피조물에 지나지 않았다.
대저 텬디의 리치 무궁무진?야 만물의 주인되시 하나님 밧게 아 이가 업 지라 론어에 말?기를 하 님 죄를 엇으면 빌 곳이 업다 ?엿 그 주에 말?기를 하 님은 곳 리치라 ?얏스니 하 님이 곳 리치오 하 님이 곳 만물리치의 쥬인이라 그런고로 하 님은 곳 조화쥬오 텬디만물의 대쥬 시니 텬디만물의 리치를 다 아시려니와 사 은 다만 텬디간의 ? 물건인 엇지 리치를 알 수 잇스리오
그는 유교경전인《論語》를 이용하여 하느님의 존재를 설명하였는데,《금슈회의록》전반의 논조가 도덕적이었던 것과 관련하여 이해한다면 바로 하느님은 도덕과 윤리를 가장 으뜸의 덕목으로 지니고 있다는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또 그는 인간을 "모양이 하나님과 갓고 마 도 하나님과 갓"은 '하느님의 아달'로 이해하였으므로, 마땅히 인간은 도덕과 윤리가 생활의 규범이 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금슈회의록》은 도덕과 윤리가 타락한 인간의 도덕성 회복을 강조한 것이었고, 인간의 타락을 현실적인 상황과 대비시켜 하느님에게의 순종을 요구한 것이었다. 따라서 안국선은 결론으로
가마귀쳐럼 효도할 줄도 모로고 개고리쳐럼 분수 직힐 줄도 모로고 여호보담도 간샤?고 호랑이보담도 포악한 벌과 갓치 졍직하지도 못하고 파리 갓치 동포 사랑할 줄도 모로고 창자 업는 일은 게보다 심하고 부졍한 행실은 원앙새가 붓그럽도다 여러 짐승이 연설할 때 나는 사람을 위하야 변명 연셜을 하리라 하고 몃번 생각하야 본 즉 무슨 말노 변명할 수가 업고 반대를 하려 하나 현하지변(懸河之辯)을 가져드고도 쓸 데가 업도다 사람이 쓰러져셔 즘생의 아래가 되고 즘생이 도로혀 사람보다 샹등이 되얏스니 엇지하면 조흘고 예수씨의 말삼을 드르니 하나님이 아직도 사람을 사랑하신다 하니 사람들이 악한 일을 만히 하엿슬지라도 회개하면 구완 잇는 길이 잇다 하얏스니 이 셰상에 잇는 여러 형졔자매는 깁히깁히 생각하시오
라고 하였다. 인간이 동물보다 도덕적으로 타락한 현실이지만, "하나님이 아직도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결론은 결국 인간의 부정적인 현실을 기독교라는 종교로 극복해 나가야 할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현실극복의 방법으로 기독교의 수용과 신봉을 주장한 것은 안국선이 물질문명의 수용보다 정신문명의 수용을 더욱 중시하였고, 나아가 실제적으로 현실문제에 접근하였기보다는 도덕을 중시한 관념적인 도덕개조론의 입장을 드러내었다고 볼 수 있다. 실제《금슈회의록》에 수록된 8편의 이야기 가운데, 도덕적인 개조와 함께 '하나님(하 님)'이라는 표현이 나오지 않는 부분은 전혀 없었다. 인간행위의 판단기준을 기독교적인 견지에서 찾았음이 다시 한번 확인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악한 일을 만히 하엿슬지라도 회개하면 구완 잇을 길이 잇다"고 하였는데, 바로 안국선은 기독교에서 요구하는 '회개'를 현실에 있어 궁극적인 지향점으로 삼았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안국선은《금슈회의록》에서 민족현실에 대한 논의는 전혀 하지 않았을까. 그렇지는 않았다. 특히 도덕적인 관점이 주가 되기는 하지만 親日派에 대한 비판이 여러 군데 보인다. 예컨대 여우의 입을 빌어
지금 셰상 사람들은 당당? 하나님의 위엄을 빌어야 할터인데 외국의 셰력을 빌어 의뢰하야 몸을 보젼하고 벼살을 엇어 하려하며 타국 사람을 부동하야 졔 나라를 망치고 졔 동포를 압박하니……
라고 한 것이 좋은 경우일 것이다. 또 일본에 대한 비판도 보이고 있다.
나라로 말할지라도 대포와 총의 힘을 빌어셔 남의 나라를 위협하야 속국도 만들고 보호국도 만드니 불안당이 칼이나 륙혈포를 가지고 남의 집에 들어가셔 재물을 탈취하고 부녀를 겁탈한 거시나 다를 거시 무엇 잇소 각국이 평화를 보젼한다 하여도 하나님의 위엄을 빌어셔 도덕샹으로 평화를 유지할 생각은 조곰도 업고 젼혀 병장긔의 위엄으로 평화를 보젼하려하?니……
이처럼 친일파나 일본세력에 대한 비판 역시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그들이 비도덕적이라는 측면이 강조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부분들이 문제가 되어《금슈회의록》에 대한 친일정권의 규제가 뒤따랐으나 안국선에게는 반일 그 자체만이 중요하였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위엄을 빌리지 않고 부도덕한 인간의 자의적인 처세를 비판한 셈이었다. 열강의 제국주의적인 침략 역시 무력을 기초로 하였다는 점을 비판하였지만, 기본적으로는 '하나님의 위엄'을 따르지 않는다는 관점에서 비판하였던 것이다.
안국선은 국민계몽과 관련하여 관심을 두고 있던 풍속개량의 문제도 기독교적인 입장에서 논의하였다. 특히 그는 당시 지식인들과 마찬가지로 여성문제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즉〈가뎡잡지〉제7호(1907. 1)에 수록된 "부인을 낫게 봄이 불가? 일"을 보면, 여성문제를 논의하면서 전통사회에서 축첩과 여성교육의 부재, 남아선호, 그리고 여성을 노리개로 안다는 점을 비판하고 있었다. 이는 전통적인 여성학대를 비판하고 일부일처제와 정절을 강조한 것으로, 언듯 짐작하여도 남녀평등이라는 차원에서 논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안국선은 그러한 논거를
우리 동양의 풍쇽은 자고로 녀인을 사나희보담 낫게 알아 텬리가 사나희는 놉고 녀인은 나즌 줄로 아니 하나님이 엇지 당초에 남녀로 고하의 분등이 잇게 내셧으리오 우리 나라는 녀인을 낫게 아는 까닭으로 텬리까지 잘못 알엇도다
라고 하느님이 남녀를 차별 없이 평등하게 내었다는 점에서 찾고 있었다. 그의 남녀평등, 더 나아가 인간평등에 대한 관심은 바로 기독교의 영향에서 비롯되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풍속개량의 하나로 지적되던 금주나 금연의 문제도 의학적인 폐해를 소개하였지만, 그 배경에는 기독교적인 관점이 강조되었던 것으로 믿어진다.
《금슈회의록》은 당시의 현실을 비판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었으나 이미 살펴본 대로 오히려 기독교적인 도덕관을 강조한 것이었다. 그러나 일반사회에서는 이것이 정치문제, 일제의 한국침략과 친일파를 비난하는 측면으로만 이해되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출판법에 의하여 가장 먼저 일제와 친일정권의 규제를 받았다는 점에서 쉽게 짐작되는 일이다. 또 국내 뿐 아니라 미주교포들 사이에서도《금슈회의록》이 관심을 끌고 읽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1909년 8월 미주교포들에 의하여 소년서회(少年書會)라는 출판사가 만들어지면서, 그 첫 출판으로 신한민보사(新韓民報社)에 위탁하여 판금조치를 받은《금슈회의록》이 발간될 만큼, 정치소설로서의 측면만이 강조되지 않았나 한다.
아무튼 안국선은 이처럼 서구문명의 수용과 함께 기독교를 국가와 사회가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다르게 말하면 그는 전통을 불신하고 일방적으로 서구지향적인 근대화론 또는 문명개화론을 폈다고 하겠다. 그런데 그 문명개화론은 국가와 사회의 발전을 위한 구체적인 개혁론의 모습을 갖춘 것이 아니라, 오직 기독교를 통한 정신문명의 발전, 도덕적인 덕목만을 지향하는 맹목적인 측면이 강한 기독교구국론이었다. 그것은 혹 기독교를 통한 한국민의 도덕적인 개조로 물질문명에 있어 일본에 뒤져 있던 현실을, 정신문명 곧 도덕적으로 일본을 압도하고자 한 뜻을 지니고 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가 친일파나 일본에 대하여 민족적인 차원에서 합리적인 비판을 하기보다, 기독교의 도덕적인 기준을 제시하였던 것도 그러한 측면에서 이해된다. 일본이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고, 서양의 기술문명만을 수용하였다고 비판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그는 일본유학을 통하여 서구문명을 수용하고 있던 일본을 경험한 바 있었으므로, 비록 굴절된 부분도 없지 않겠지만 서구문명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에서도 그는 기독교를 체험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일본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일본이 제대로 수용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 서구의 정신문명, 즉 기독교의 수용을 적극 강조하지 않았을까 한다. 그렇지만 그는 기독교 수용의 필요성에 대한 별다른 합리적인 설명과 논리가 없이, 그것을 지상목표로만 제시하였을 뿐이었다. 이는 안국선의 전통사회에 대한 깊은 불신과 비관적인 현실인식을 보여주는 것이고, 기독교의 수용만이 그 극복을 위한 대안으로 이해되었음을 뜻한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같은 전통사회에 대한 부분적인 이해를 기초로 한 서구일변도의 문명개화론은 제국주의의 논리에 매몰될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안국선의 경우에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무력에 의한 제국주의를 비판하고 사회진화론(社會進化論)도 부도덕한 것으로 이해하였지만, 그것은 기독교를 매개로 하였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그러나 안국선과 같은 일본유학생들이 관심을 가진 문명개화론은 전통문화를 배척하며 우수한 서구문명을 받아들이고자 하였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사회진화론의 틀을 크게 벗어날 수 없었다. 그들은 사회진화론이 팽배하던 분위기에서 일본에 유학하였던 것이다.
결국 안국선은 국가적으로 기독교 수용의 필요성과 함께 사회적으로 기독교를 기준으로 하는 도덕의 실천을 주장하였다고 하겠다. 구체적으로는 현실의 잘못을 회개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주장은 그가 재야에 있던 1907·8년이라는 시기에 국한되어 있었다. 1908년 7월 친일정권의 중견관리로 나아간 이후 그가 발표한 논설이나 연설의 대부분은 정치학 이론이나 풍속개량에 관련된 것이었고 저작도 법률과 상업경영에 관한 것이었다. 그가 한국부흥의 방안으로 제시하였던 교화나 국권회복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고, 겨우 실업발전에 관하여 약간의 논의가 있었을 뿐이다. 특히 그가 그처럼 강조하였던 기독교의 수용론마저 논의하지 않았다. 일본이 한국의 식민지화 시도를 저해할 수 있던 세력으로 기독교를 지목하던 시기에 친일정권의 관리였던 안국선이 공개적으로 기독교의 수용을 내세우기 어려웠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개인적인 수준에서 연동교회에 출석하고 종교계몽운동이 강조된 YMCA에 관여하며 신앙을 유지하는데 머무를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현실적으로 일본세력이 지배하는 상황에서는 관직에 나아갈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던 그가, 막상 관직에 있게 되면서 현실긍정적인 자세로 급변한 셈이었다. 따라서 그가 "大韓今日善後策"이나《금슈회의록》에서 보인 관념적이나마 현실개혁에 대한 관심도 민족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회피하는 모습으로 바뀔 수 밖에 없었다. 안국선 스스로가 직접 밝힌 바는 없지만 대다수의 계몽론자들과 마찬가지로 의병투쟁에는 비판적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은 차치한다 하더라도, 그가 1910년대에 조선총독부의 관리로 재임하고 또《共進會》와 같은 친일소설을 쓰게 되는 것도 결국 서구지향적이고 맹목적인 문명개화론을 극복하지 못한 결과였다. 문명개화론의 중심에는 제국주의의 논리인 사회진화론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가 비록 기독교의 수용을 민족과 국가의 현실극복방안으로 제시하였으나, 그것을 한국의 현실에 접목시켜 발전시키고자 하는 인식은 부족하였다고 할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그가 전통적으로 한국사회를 지배해 온 유교에 대한 이해가 다른 계몽론자들만큼 깊지 못하였다는 점이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4. 맺는말
안국선이라는 한말의 지식인을 통하여, 기독교 수용문제를 살펴보았다. 그는 감옥에서 기독교를 접하고 개종한 다음, 한국이 기독교를 수용하여야만 20세기의 이상국가가 될 수 있다는 기독교구국론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는 당시의 비관적인 현실을 타개하는 방안으로, 기독교적인 가치관을 제시하여 한국민이 도덕적인 각성이 필요하다고 인식하여 '회개'를 내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전통에 대한 불신과 맹목적인 서구지향적인 문명개화론에 빠질 위험성도 없지 않았다.
그러므로 안국선의 기독교 수용론은 적극적인 현실타개방안이라기 보다 오히려 관념적인 차원의 개혁론이었다. 그는 식민지로 전락하기 직전에 놓인 민족현실에 대한 구체적인 개혁방안을 제시하지 않았으며, 또 지속적으로 기독교 수용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도 아니었다. 한국의 기독교국화를 주장하면서도, 그것이 좌절될 위치에 놓이자 쉽게 포기하고 개인적인 차원의 신앙유지에 자족할 수 밖에 없었다. 다시 말하면 안국선의 기독교 수용론은 정치현실의 반발을 받게 되자, 사회적인 위치에서 개인적인 위치로 떨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같은 경우가 안국선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1900년대 후반기에 이르러 기독교인들의 상당수가 민족현실을 외면하고 경건주의에 빠져들면서, 1907년의 대부흥운동이나 1909년의 백만인구령운동과 같이 정교분리(政敎分離)를 내세운 현실도피적인 성격이 강한 신앙우선(信仰優先)의 움직임도 안국선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만은 않다고 이해되는 것이다.
1900년대 전반기 감옥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정치범 출신의 지식인들은 1904년 이후 석방되자 먼저 국민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국민교육회(國民敎育會)라는 교육단체를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그러나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된 이후 그 일부는 반일정치활동에 적극 나서기도 하고, 또 일부는 종교계몽운동을 내세우고 YMCA와 같은 사회단체에 관여하기도 하였다. 물론 안국선의 경우는 후자에 속하지만, 친일정권의 관리로 재임하면서 기독교를 통한 사회활동과 민족운동에 한계를 보인 것으로 보인다.
이와는 반대로 감옥에서의 개종자 가운데 이준 등은 비관적인 민족현실을 타개하고자 한 민족운동을 전개하였다. 상동교회(尙洞敎會)의 상동청년회라든가, 또 그들이 많이 참여한 비밀결사인 신민회(新民會)의 기독교인들도 그러한 부류였다. 또 미국에 노동이민이나 유학을 하고 있던 교포신자들은 의인이 악인을 벌해야 한다며, '독립전쟁론'을 내세웠다. 합병 뒤 '105인사건'에 연류된 인물들은 바로 이들이었으며, 그 사건은 이들이 소수였으나 기독교가 일제의 조선통치에 그만큼 장애가 된다는 점을 일제 스스로 인정한 것이었다.
출처 : 현대문학강독
천강 안국선(安國善) - [금수회의록(禽獸會議錄)] ●이인직, 이해조, 최찬식과 함께 신소설 작가로 불리워 짐. 정치인이며, 언론인이었음. ●1915년 단편집 [공진회] 발간. [공진회]는 <탐정순사>, <외국인의 화>가 실렸으나 일제의 검열에 의해 삭제되고 <기생>, <인력거꾼>, <시골노인 이야기>의 3편으로 구성된 우리나라 최초의 단편소설집이다. ●1908년 [금수회의록] 발간.[금수회의록]은 현실비판, 국권수호와 자주의식 고취로 치안방해라는 이유로 최초의 판매금지 소설이 되었다. ●신소설(1900년대-변화의 시기) ① 고대소설에서 근대소설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양식의 소설. ② 신소설의 문학적 수준 ★ 주제가 상식적이고 작품전체가 통속적이다. ★ 묘사가 추상적이다.(근대소설에 비해) ★ 우연성과 대화가 지나치게 많다. ★ 성격창조와 심리묘사가 작품 속에서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 사건의 남발과 여운이 결여되어 있다.
[금수회의록(禽獸會議錄)]
●이 작품은 '금수 회의소'라는 모임 장소에서 8종류의 동물들이 회의를 통하여 인간의 온갖 악을 성토하는 내용이다. 인간은 “나”라는 한 명만 등장한다. 이 회의의 안건은 ①'제일, 사람 된 자의 책임을 의논하여 분명히 할 일, ②사람의 행위를 들어서 옳고 그름을 의논할 일, ③지금 세상사람 중에 인류로서 자격이 없는 자와 있는 자를 조사할 일' 등이었다.
동물들의 인간 세태 성토 광경을 보고들은 '나'는 "내가 어찌 사람으로 태어나서 이런 욕을 보는고!" 하면서 인간으로서의 부끄러움을 느끼고, 기독교적 설교 형식을 빌려 인간 구원의 길을 역설하는 것으로 끝난다. ●우리나라 최초로 판매 금치 처분을 받은 이 소설은 동물들의 연설을 통하여 개화기에 있어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정치적 자립, 민권 사상 및 도덕의 정화와 정치적 개조를 주장하고 있다. 즉 우화 소설(寓話小說)이며 또한 액자소설, 정치 소설(政治小說)로서 계몽성을 강하게 띠고 있다. 연설문체. 당대 사회, 정치 현실 비판하여, 참여 문학적 성격이 강함.
●주제 : ① 인간 현실의 모순과 비리에 대한 규탄(비판과 풍자). ② 관리들의 부패상 폭로와 비판. ③외세 경계를 비롯한 자주 의식 고취. ●구성 : 8가지 동물이 차례로 인간의 제반 문제점을 성토하는 회의 광경을 '나'가 관찰하는 구성. (액자소설 : 이야기 속에 이야기가 나오는 것)
①까마귀처럼 효도할 줄도 모르고 - 반포지효(反哺之孝), ②개구리처럼 분수 지킬 줄을 모르고 - 정와어해(井蛙語海), 우물 안의 개구리 ③여우보담도 간사한 - 호가호위(狐仮虎威), ④벌과 같이 정직하지도 못하고 - 구밀복검(口蜜腹劍), ⑤창자 없는 것은 게보다 심하고 - 무장공자(無腸公子), 창자 없는 동물, ⑥파리같이 동포 사랑할 줄도 모르고 - 영영지극(營營之極),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바쁘게 왔다갔다 하는 모습의 절정, ⑦호랑이보담도 포악한 -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⑧부정한 행실은 원앙새가 부끄럽도다. - 쌍거쌍래(雙去雙來), 함께 오고 가고 함. ▶참고 : 금수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또 다른 글 → 이광수의 <우덕송>
"외모로 사람을 취하라 말라하였으나, 대개는 속마음이 외모에 나타나는 것이다. 아무도 쥐를 보고 후덕(厚德)스럽다고 생각은 아니할 것이요, 할미새를 보고 진중하다고는 생각지 아니할 것이요, 돼지를 소담한 친구라고는 아니할 것이다. 토끼를 보면 방정맞아는 보이지만 고양이처럼 표독(慓毒)스럽게는 아무리 해도 아니 보이고, 수탉을 보면 걸걸은 하지마는 지혜(智慧)롭게는 아니보이며, 뱀은 그림만 보아도 간특하고 독살(毒殺)스러워 구약(舊約) 작자의 저주를 받은 것이 과연이다-해 보이고, 개는 얼른 보기에 험상스럽지마는 간교(奸巧)한 모양은 조금도 없다. 그는 충직(忠直)하게 생겼다. 말은 깨끗하고 날래지는 좀 믿음성이 적고, 당나귀나 노새는 아무리 보아도 경망꾸러기다. 족제비가 살랑살랑 지나갈 때에 아무 라도 그 요망스러움을 느낄 것이요, 두꺼비가 입을 넓적넓적하고 쭈거리고 앉은 것을 보면, 아무가 보아도 능청스럽다. 이 모양으로 우리는 동물의 외모를 보면 대개 그의 성질을 짐작한다. 벼룩의 얄미움이나 모기의 도심질이나 다 그의 외모가 말하는 것이 아닌가." - 이광수의 <우덕송> 중에서
[공진회] 요즘의 박람회를 뜻함.
세 작품 모두 교훈적 목적의식에 바탕을 두었으나, [금수회의록]에 비해 친일적 성향이 강하다.
1915년 8월 25일 발간된 안국선의 단편소설집.
<기생>, <인력거꾼>, <시골 노인 이야기> 등의 소설과 기타 <지방 노인 담화(地方老人談話)> 등이 수록되어 있다. 작품집 말미에 붙은 작가의 말에 따르면, <탐정 순사>와 <외국인의 화>라는 두 편의 소설이 더 있었으나, 당시의 경무총장의 명령으로 삭제되었다고 한다.
책의 서문에서 작가는 표제를 `공진회'라고 단 이유를 밝히고 있는데, 그 이유를 당시 <물산 공진회>에 구경 온 사람들이 객사에서 파한(破閑)으로 읽게 하기 위한 때문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점은, 소설의 오락성에 대한 작가 인식의 표명으로 볼 수가 있을 것이다.
<<공진회>>의 문학사적 의의는, 최초의 근대적 단편소설집이라는 점과 그 이후의 서사문학 발전에 초석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1. 안국선이 1915년 수문관에서 발간한 단편집의 제목은?<2003기출> ①『금수회의록』 ②『공진회』(기생, 인력거꾼, 시골노인이야기) ③『거부오해』 ④『경세종』 2. 다음 중 작가와 작품의 연결이 바르지 않은 것은?<2002기출> ① 이인직 - 은세계 ② 이광수 - 무정 ③ 이해조(자유종) - 금수회의록(안국선) ④ 김동인 - 광염쏘나타
<금수회의록은 안국선의 신소설이다. 짐승들이 제각기 하는 말을 통해 인간의 추악한 면과 사회의 부패상을 풍자․폭로한 우화소설이다. 대부분의 신소설이 권선징악(勸善懲惡)을 주제로 한 데 비해 동물을 의인화(擬人化)하여 현실을 비판한 점에 특징이 있다. 한국에서 최초로 판매금지된 소설이기도 하다.> 3. 소설 「공진회」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2001기출> ① 이인직의 작품이다. (안국선) ② 장편소설이다.(단편소설집) ③ 「기생」, 「인력거꾼」, 「시골노인」 이야기의 세편으로 이루어졌다. ④ 1900년대의 작품이다.(1915년) 4. 소설 「공진회」에 대한 다음의 설명 중 옳지 않은 것은?<2000기출> ① 안국선의 작품집이다. ② 기생, 인력거꾼, 시골노인 이야기의 3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③ 단편소설이다. ④ 동물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풍자소설이다.(금수회의록에 대한 설명) 5. 다음 중 「공진회」에 대해 서로 바르게 연결한 것은?<99기출> ① 공진회-이해조-기생-향운개 ② 공진회-안국선-기생-용필 ③ 공진회-이해조-기생-용필 ④ 공진회-안국선-기생-향운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