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마경 강설 442 /11, 보살행품 /5, 보살의 일체공덕 1
阿難이 白佛言하사대 我는 從今已往으로
不敢自謂以爲多聞하나이다 佛告阿難하되
勿起退意니 所以者何오 我說汝於聲聞中에
爲最多聞이언정 非謂菩薩이니 且止하라
阿難아 其有智者는 不應限量諸菩薩也니
一切海淵을 尙可測量이언정 菩薩의 禪定智慧와
總持辨才와 一切功德은 不可量也니라
阿難아 汝等이 捨置菩薩所行이니 是維摩詰의
一時所現神通之力은 一切聲聞辟支佛이
於百千劫에 盡力變化하야도 所不能作이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저는 지금부터 앞으로
감히 스스로 다문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부처님이 아난에게 말씀하였다. “물러설 뜻을 일으키지 말라.
왜냐하면 나는 그대를 성문 가운데서 가장 다문한 사람이라고 말하였지만
보살이라 말한 것은 아니니라. 그만 두어라.
아난아, 지혜가 있는 사람도 모든 보살을 헤아릴 수 없느니라.
일체 바다는 오히려 측량할 수 있지만
보살의 선정과 지혜와 총지와 변재와 일체 공덕은 헤아리지 못하느니라.
아난아, 그대들이 보살의 행하는 바는 버려두고
이 유마힐의 일시에 나타낸 신통력을 일체 성문과 벽지불이
백겁 천겁을 힘을 다하여 변화해 본다하더라도 능히 해볼 수 없느니라.”
강설 ; 소승성문들의 편협한 소견을 꾸짖는 유마경에서
드디어 소승성문으로서는 지식이 가장 뛰어난 아난존자를 비하하고
보살을 높이 드러내는 내용이 나왔다.
“일체 바다는 오히려 측량할 수 있지만 보살의 선정과 지혜와
총지와 변재와 일체 공덕은 헤아리지 못하느니라.”라고 하였다.
수많은 불교가 있지만 바람직한 불교, 이상적인 불교는
대승보살불교라는 의미를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불교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내용에 혼란을 일으킨다.
자칫 안이한 소승의 가르침이나 방편불교에 안주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이러한 점 때문에 유마경에서는 교리의 우열을 가려내어
분명히 하고자 한 것이다. 특히 유마힐 보살의 위대성은
소승성문으로서는 백겁 천겁동안 그 힘을 다해도
따를 수 없다고까지 표현하고 있다.
유마힐은 재가자요, 성문들은 거의 출가한 수행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