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은 영(嬴), 이름(名)은 주(柱)이다.
시호는 효문왕(孝文王)이며, 왕위에 오르기 전에는 안국군(安國君)으로 불렸다.
진(秦)나라의 제28대 군주인 소양왕(昭襄王)의 아들이며,
생모는 소양왕의 후궁인 팔자(八子) 당씨(唐氏)이다.
효문왕은
기원전 267년 위나라에 인질로 가 있던 소양왕의 맏아들 도태자(悼太子)가 죽자,
기원전 265년에 태자로 봉해졌다.
그리고 기원전 251년 가을에 아버지 소양왕이 죽자
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사기 >》의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에는
당시 효문왕의 나이가 53세였으며,
아들인 장양왕(秦莊襄王)도 32세나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왕위에 오른 효문왕은
생모인 당씨를 당태후(唐太后)로 추존하고
소양왕과 합장하여 장례를 치렀다.
그리고 기원전 250년(효문왕 1) 죄인들을 대규모로 사면하고
소양왕 때의 공신들에게도 포상을 하였다.
하지만 왕위에 오른 그 해에 곧바로 죽었고,
아들인 자초(子楚)가 장양왕(秦莊襄王)으로 즉위했다.
《사기》 ‘진시황본기’의 기록에 따르면,
효문왕은 죽은 뒤에 지금의 산시성(陝西省) 시안시(西安市)
린퉁(臨潼)에 있는 수릉(壽陵)에 매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