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경 : 마 26:37-39절
제 목 : 원하지 않는 길을 걷게 하시는 하나님
일 시 : 2023. 7. 5.
마태복음 26:37-39/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사람들을 만나서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는지 물어 보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안된다고 대답을 합니다. 그 이유는 인생의 주인이 자기 자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인생의 주인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뜻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옛 사람은 자꾸만 자기 마음대로 살려고 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고통이요 실패라는 것을 알면서도 쉽게 고쳐지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내가 원하지 않는 길을 걷게 하십니다.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보실 때 복되고 잘 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도 우리와 동일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있었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시고 싶은 일이 있었습니다. 매사에 그러셨지만 특히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주간은 더욱더 그러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본문 39절에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라고 했으며, 누가복음 22:42/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내가 원하는 길이 있고 내가 원하지 않는 길이 있습니다. 내가 가고 싶은 길이 있고 가고 싶지 않는 길이 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고 하고 싶지 않지만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가 원하는 일과 내가 가고 싶은 길이 아니라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과 주님께서 가게 하시는 길을 가야 합니다.
그리고 왜 하나님께서는 내가 원치 않는 길로 인도하십니까? 그렇게 하시는 대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1. 믿음과 순종을 시험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끔씩 우리가 원하지 않는 길을 걷게 하시는 이유는 우리에게 믿음이 있는지 그리고 하나님께 순종하는지 알아보시기 위해서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구약의 사울 왕과 요나 선지자였습니다. 사울 왕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셔서 왕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해서 뽑은 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울 왕을 시험해 볼 필요가 있으셨습니다. 과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지 그의 믿음을 시험해 보시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두 가지를 통해서 시험해 보았습니다. 한 가지는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 왕에게 내가 올 때까지 일주일 동안 기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울 왕은 적은 처 들어오고 있고 군인들은 흩어지는데 기다리던 사무엘 선지자가 오지 않자 자신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우를 범하였습니다. 첫 번째 시험에서 실패합니다. 하나님은 다시 만회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아말렉을 완전히 전멸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사람과 짐승까지 완전히 멸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아말렉 왕도 살려 왔고 짐승 가운데서 살지고 돈이 될 만한 짐승을 살려 왔습니다. 삼상15:7-9/사울이 하월라에서부터 애굽 앞 술에 이르기까기 아말렉 사람을 치고 8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사로 잡고 칼날로 그의 모든 백성을 진멸하였으되 9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하니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화가 난 사무엘이 삼상15:19/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께서 악하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였나이까/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삼상5:22-23/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 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23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라고 했습니다. 결국 두 번의 시험에 불합격한 사울은 하나님께 버림받게 되었습니다. 불순종의 결과이며 그에게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없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요나입니다. 하나님은 요나 선지자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너무나 괴롭히고 악 한 일을 많이 한 니느웨 성으로 가서 회개를 외치라고 명령합니다. 요나는 너무나 가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니느웨가 아니라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잘 가는 것 같았는데 결국에는 풍랑을 만나서 요나가 바다에 던져졌습니다.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서 3일 동안 목숨을 건 회개의 기도를 하고 나서 고기가 요나를 토해 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시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라고 했습니다. 요나은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서였기 때문에 또 다시 불순종할 수가 없어서 순종합니다. 마지 못해서 말입니다. 요나가 마지 못해서 억지로 회개를 외쳤지만 니느웨 성 모든 사람들이 금식하며 회개하는 바람에 하나님은 그들을 살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울 왕이나 요나처럼 우리가 원하지 않는 길을 걷게 하십니다. 믿음과 순종을 시험해 보시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내가 원하지 않는 길을 걷게 하시더라도 우리는 순종해야 합니다. 가기 싫고 힘이 들더라고 그 길을 가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 나의 믿음과 순종을 보여 드려야 합니다. 그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하나님을 향하여 기뻐하며 감사하는지 알아보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기쁜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지 못해서 억지로 하는 순종은 하나님께도 본인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쁨으로 순종하기를 원하시고 감사한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을 원하십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출애굽 일세대 백성들 중에서 20세 이상 계수된 사람이 60,3550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사람들 중에서 오직 여호수아 갈렙 두 사람 밖에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출애굽이라는 엄청난 구원을 받았지만 40년이라는 광야생활을 지나야 했습니다. 고난과 연단과 시험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복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자격이 있는 자 준비된 자에게만 주어집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의 복은 원망불평하지 않고 기쁨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순종하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사실 우리가 가보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광야를 40일도 아니고 40년 동안 살아야 한다는 것은 엄청난 고통이 동반된 일이었습니다. 거기에는 당연히 원망과 불평과 짜증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원망 불평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당연한 것이지만 반대로 산 사람이 있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입니다. 그리고 출애굽 2세대입니다. 60,1730명입니다. 그들은 20살이 안되었거나 아니면 광야에서 태어난 세대들입니다. 그들은 태어나자 마자 광야였기에 그렇게 힘들 줄 모르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애굽에서 살다가 광야로 탈출한 20세 이상의 사람들은 그 고통과 불편함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원망과 불평과 짜증이 났을 것이고 당연히 애굽으로 돌아가자 라고 소리칠 만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역할한 환경 속에서도 기쁨과 감사함으로 광야를 통과한 사람이 있었으니 여호수아와 갈렙입니다. 믿음과 순종의 사람입니다. 복 받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는 좋은 예입니다.
3. 모든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시는지 시험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드린 예수님의 기도를 보시면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극한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했습니다. 과거에 아브라함과 이삭이 바로 그런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죽이야만 하는 시험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는 살인마가 되고 말도 안되는 터무니 없는 시험에도 아브라함은 순종했고 이삭 역시 믿음의 아버지를 닮아서 아버지가 자신을 죽이는 극악무도한 만행이 저질러지는데도 그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순종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고 순종했습니다.
겟네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복음 22:42/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죽음 앞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절대주권을 인정해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예수님의 절대주권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4. 우리가 이 땅에서 하는 모든 원망과 불평의 종착지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원하지 않는 일이 일어나고, 거기다가 몹시 싫어하는 일들이 일어나는 데 그것을 피할 수도 없다면 어떤 감정이 들겠습니까? 당연히 원망과 불평이 나오겠죠?
그러나 우리는 원망 불평 대신에 기쁨으로 순종하고 감사함으로 복종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만약 원하지 않는 일이 일어날 때 믿음이 없어서 원망과 불평을 하게 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시험에 실패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의 삶의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고 불평과 원망을 차단시킬 수 있다면 그것은 나를 넘어뜨리고 고통스럽게 하는 악한 영들의 활동을 차단시키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 길을 걷게 하더라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말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그렇게 함으로 원수 마귀가 틈타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리고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손해를 보고 내가 희생을 해야 한다는 넓은 마음을 가지십시오. 그렇게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
할렐루야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