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곡정에는 15회 동창생들이 반가운 모습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커피머신에서 각자 커피를 한 잔씩 뽑아 마셨다. 생각보다 참석률이 좋지 않았다. 점심시간에 많은 친구들이 합류할 것을 기대하면서, 모여든 10여명의 동창생들이 10시 15분쯤 산행을 시작하였다.
시야에는 아직도 눈이 녹지 않고 남아 있는 모습이 보였고, 특히 응달쪽이나 도로 가장자리에는 처내어진 눈이 쌓여서 녹지 않고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닌 도로 가운데 부분은 아이젠을 장착하지 않고도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눈이 많이 녹은 상태였다.
증심사로 들어가는 입구를 지나서 부터는, 경사진 도로에 눈이 많이 녹지 않고 있어서 포크레인으로 도로의 눈을 치우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거기에서부터 약사암까지는 도로 전체가 경사가 심한데다가 눈이 쌓여 있었으므로 발걸음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자연히 등에도 땀이 날 정도로 힘들게 올라가야 하였다.
약사암에 도착하여 암자에서 제공하고 있는 커피를 타서 마셨다. 자기의 체력에 맞게 속도를 조절하면서 올라 온 친구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였다. 암자 마당에도 쌓여 있는 눈을 치우지 못해 사람들이 다니는 곳만 길이 나 있었고, 마당 전체가 눈 담요를 깔아 놓은 상태였다.
각자 잠시 휴식을 취하다가 하산하였다. 나는 아이젠을 신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조심하면서 내리막길을 내려와야 하였다. 최기동과 같이 내려오면서 사범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지금까지 생각하고 있었던 궁금한 점을 물어 보았다.
최기동은 내가 사범학교에 입학하고 1학년 1반에 배정된 후, 첫 번째 짝이었다. 그래서 그와는 많은 추억이 쌓여 있었다. 그 중에 한 가지는 김기재라는 친구 이야기였다. 이야기는 1958년 여름쯤으로 돌아간다. 당시 아시안 게임 권투종목에서 우리 광주사범 선배였던 정동훈 선수가 은메달을 따고 왔기 때문에, 광주 시에서 환영 카퍼레이드를 하였는데, 많은 학교들이 학생들을 동원하였고, 우리 학교에서도 환영 행사에 참여하였다.
그 과정에서 당시 도청 앞에서 수창학교로 가는 도로 연변의 광주 법원 근방 금남로 연도에서 환영하고 있던 우리 학교 학생들 중에서, 친한 친구 사이였던 김기재와 정○길 두 사람이 장난을 치다가 법원 청사 내에 있는 화장실까지 가서, 서로 쫓고 쫓기다가 공작시간에 쓰던 삼각도로 장난으로 찔렀는데, 실제로 삼각도가 복부를 뚫고 들어가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 가해자가 김기재였고, 피해자가 정○길이었다. 그러나 학교와 경찰에서는 그것을 장난으로 보지 않고 상해 사건으로 취급하여 결국 가해자인 김기재가 퇴학당하고 소년원에까지 들어가는 사건이 있었다.
그후 김기재는 어찌 되었는가 지금까지도 그것이 궁금하였던 것이다.
최기동의 말에 의하면, 김기재는 서울에 살고 있는 병중 출신들의 모임에도 잘 나오고 있으며, 서울특별시 ○○동 사무소에서 공무원으로 착실하게 근무하고 퇴직하여 행복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나도 김기재와는 여러 가지 추억들이 있었는데 그가 잘 지내고 있다는 말을 들으니까 참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비록 소년원에는 갔지만, 그렇게 순간적인 실수로 인해, 인생의 역정에서 소년원이라는 오점을 찍은 선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다시 부곡정으로 내려와서 2층으로 올라갔더니 이미 식탁에는 우리가 먹을 점심이 준비되어 냄비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참석한 우리들이 자리를 잡고 앉으니, 임동수 총무가 그간의 경과를 보고하고, 이어서 강종원회장의 인사말이 있었다. 이렇게 첫 모임에 참석해 주어 고맙다는 인사말과 함께 내년 벚꽃 필 무렵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섬 지역으로 봄나들이를 다녀 올 수 있도록 준비할 터이니 그때에도 많은 협조를 부탁한다고 하였다.
다음은 제가, 우리 목요산우회가 산행을 마친 후에 정자에 모여 <금주의 노래>를 불러왔는데, 지난 2월부터 강공수가 계절에 맞는 금주의 노래를 선정하였고, 그의 주도로 제이비엘(JBL) 부르투스 스피커를 틀어 놓고 노래를 불러왔던 대로, 오늘 해볼 것이라 소개한 다음에, 강공수가 등장하여, 오늘 부를 노래는 스코틀랜드 민요곡인 <올드랭사인>을 강소천이 역시(譯詩)한 <작별>이란 노래이며, 이 노래가 알려지게 된 배경을 설명하였고, 불루투스 스피커에서 나오는 반주에 맞추어 전 회원이 <작별>을 함께 불렀다.
점심은 아침에 주문하여 놓았다. 희망 메뉴는 청국장 2, 김치찌개 4, 애호박찌개 15인분으로 모두 21인분이었다.
참석인원은 강공수 강종원 권일산 기덕문 김기수 김영부 김재일 나종만 노양환 류상의 박오정 박원희 심원두 양수랑 오은열 윤정남 이승정 임동수 장휘부 정원길 최기동 등 21명이었다. 문기정은 아침에 참석하였다가 일이 있어 먼저 돌아갔다.
나종만이 일어나서, 자기는 항상 회비 걷는 사람인데 회장님이 오늘 회비가 없다고 하니까 자기의 할 일이 없다고 하면서 “회장님께 박수 한번 드립시다!”고 하여 열렬한 박수로 감사의 기쁨을 나타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