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울 출발 (1. 29. 목. 22:20 ~ )
출근하자마자 여기저기 토왕 관련 정보들을 검색하며 나름 예습을 하려했지만, 내가 봤던 토왕은 가는 물줄기를 겨우겨우 흘려보내던 그저 그랬던 폭포였기에 아무리 봐도 감을 잡기 어려워 프린트만 잔뜩 하고 인터넷 창을 덮었다. 하지만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점점 엄습해오는 불안감과 설렘 그리고 두려움...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미리 싸놓은 짐을 다시 한 번 점검하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끼니를 두 공기나 먹고 비장하게 목욕재계까지 하고 암장으로 향했다. 선배들은 먼저 도착해서 차에 짐을 싣고 대청에서 오시는 선생님을 기다리고 계셨다. 선생님이 도착하시고 차에 올라타기 전에 강샘이 토왕팀 기념사진을 찍어주셨고, 잘 다녀오라며 내 엉덩이도 토닥여주셨다. 그 때까지 토왕에 오른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전혀 알지도 못했던 난 강샘의 토닥임이 괜스레 쑥스러웠다.
10시 넘어 서울을 출발하여 좁은 차 안에서 쪽잠을 자다보니 어느새 설악산 송월파크에 도착해있었다.(경필 선배의 축지법 신공으로 1시간 반 만에 도착함) 방을 잡고 들어가서 가방을 다시 한 번 추려 싸고 누워서 억지로 잠을 청했다. 낮은 코고는 소리, 라면 끓여먹는 소리 등을 꿈인 냥 들으며 자다보니 벌써 기상 시간인 3시가 되었다.
기계적으로 양치와 세수를 마치고 옷을 입으면서 다시 한 번 내가 멜 수 있는 정도의 무게인지를 가늠하며 가방을 확인했다. 그 때 워킹 때 쓰는 아이젠이 눈이 밟혔지만 이미 빙벽화와 바일 무게만으로도 벅찼기에 그냥 두고 가기로 하고 방을 나섰다. 이 순간의 선택이 나중에 엄청난 결과로 닥쳐올 줄은 이때는 몰랐다.
2. 어프로치(1. 30. 금. 03:40 ~ )
소공원에 도착해서 앞서가시는 선생님을 놓칠까 부랴부랴 가방을 둘러메고 쫓아갔다. 저 멀리 설악산 안쪽으로 보이는 하늘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고, 속초 쪽 하늘은 구름에 가려져 별빛은커녕 흙빛을 띠고 있었다. 괜히 불길한 기분이 들었지만, 애써 떨쳐버렸다.
눈인지 얼음인지 분간도 안 되는 캄캄한 어둠 속을 걷다보니 눈앞에 익숙한 풍경들이 들어왔다. '아~ 여기가 거기구나. 이제 길이 조금씩 익숙해지네. 그래도 어프로치는 너무 힘들다. 운동 열심히 할 걸 등등' 잡생각을 하다 보니 CCTV가 있는 곳까지 도착해있었다. 옷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숨은 턱까지 차오르고, 목은 찢어질 듯이 마르고 오랜만에 하는 어프로치에 정신을 놓을 것 같았다.
잠시 숨을 돌리고 선생님께서 다시 출발 준비를 하시면서 이제부터 위험한 길이니까 조심히 따라오라는 경고를 남기시고 먼저 가셨고, 등반 순서대로 차례로 펜스를 넘어 가파른 길을 올라갔다. 급경사에 무거운 가방까지 겹치니 다리가 천근만근이었다. 그리고 아이젠도 없이 눈 덮인 길을 오르려니 더 긴장되고 속도는 더뎌졌다.
그 때 뒤에 경필 선배가 아이젠을 한 짝을 주셨고 그걸 끼고 다시 걸음을 띄는 순간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갔다. 그렇게 몇 미턴지도 모르게 빠른 속도로 밑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서 기억이 드문드문 나지만, 소리도 지른 것 같고 내려가면서 뭔가를 잡으려고 팔을 열심히 휘졌던 것 같기도 하다. 마치 썰매를 타는 것처럼 가방을 타고 미끄러져 내려가다 머리를 나무 기둥에 부딪치면서 몸이 살짝 방향을 튼 틈을 타서 왼손과 오른쪽 다리로 나무에 걸쳐서 겨우 멈출 수 있었다.
혼자서 수습해 보려했는데 경사가 센 곳이어서 일어나는 게 불가능했고 조금만 잘못 움직이면 다시 밑으로 내려갈 것 같았다. 할 수 없이 그냥 가만히 누워 어이가 없어서 좀 웃었다. 한편으론 사람이 죽는 게 별거 아니구나. 이렇게도 그냥 갈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 때 경필 선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저 앞에서는 내 비명 소리에 놀라 민구 선배와 안호근 선배가 더 이상 가지 못하고 머뭇거리며 있었다. 순간 다른 선배들에게 너무 죄송스러웠다. 다들 토왕 빙폭 등반을 간절히 바랬었는데 그들의 등반에 폐를 끼치는 거 같아서 따라 나선 것이 너무 후회되었다.
다행히 경필 선배의 도움으로 무사히 다시 올라올 수 있었고, 정신없는 와중에 헬멧과 빙벽화, 크램폰까지 착용해서 가방 무게를 줄이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가면서 크램폰에 양 쪽 바지를 조금씩 찢어먹고 두 번 정도 더 넘어지면서 겨우 겨우 토왕 폭포에 닿을 수 있는 Y계곡 도착했다.
(만약 경필 선배가 내 뒤에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싶다. 그 땐 너무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감사 인사를 못 드렸지만, 지금 다시 그 당시를 떠올려보니 경필 선배의 도움이 너무나 감사하고 감사하다.)
가는 내내 속으로 온 마음을 다해서 하느님께 무사히 도착할 수 있게 보살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리고 선생님과 선배들에게 짐이 될까싶어 그냥 다들 출발하시는 것만 보고 다시 내려오겠다고 다짐도 했다.
<나는 누구인가 여긴 어디인가>
첫댓글 의미...살면서 의미 없는 그 어떤 순간도 없겠지만, 새로이 어떤 의미가 되어 내 인생에 깊게 각인되는 순간은 또 따로 있을 거야. 앞으로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첫 토왕의 의미는 강렬하게 남아 있겠지. ^^
그리고 배낭의 무게는 최대한 줄여야겠지만 등반 직전 몸에 착용할 장비 무게와 정상까지 지고 갈 배낭의 무게는 따로 계산해야겠지? ^^
2시간 정도면 되겠지 하고 시작했는데 어프로치까지 썼는데 4시가 다 됐더라구요ㅎㅎ 후기를 쓰다보니까 울컥울컥하는 게 있는데 그 느낌이 참 낯설면서 묘하네요~ 오늘 밤에 마저 써서 숙제 마쳐야겠어요^^
@임정문 그러게 임작가 거의 밤을 지세고 출근했겠네. ^^ 아직 토왕의 피로가 가시지 않았을텐데...
다녀온 직후에 조금 정리 되었을 때 바로 쓰는 후기가 감정선이 최고지. 쓰다보면 더 정리되고 증폭되는 느낌과 생각들도 있겠지만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작성하기! ^^
글쎄! 어느누군가가 그자리에 있어도 나와 똑같은 행동을 했으리라고 본다..
그것보다 많이 다친줄알고 어프로치 내내 자신감 없어보이던 네가 끝까지 완등을 해줘서 내가 오히려 고맙더군.. 동료애라고 해야하나?
암벽부터 희안하게 제 앞뒤에 많이 계시고 또 그 때마다 큰 도움 주셨어요 감사해요~^^ 어프로치 내내 토왕을 감히 나따위 오르겠다고 겁 없이 달려들어서 그렇게 됐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도착했는데 못 가겠다는 말도 못했는데 샘은 이미 출발;;
등반 대기하면서 옆에 계신 선배가 참 든든했답니다^^
정문씨 그나마 다행입니다 수고많았어요 ^^
저도 처음 당한 일이라 어안이 벙벙했어요ㅎㅎ 운좋게 토왕 정상을 밟았네요.. 감사합니다.. ^^
후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소설을 연재할줄은...ㅋㅋ 너무 재밌어요! 다음화 기다립니다
쓰다보니 글이 점점 길어지고 시간은 벌써 새벽 4시.. 출근만 아니었으면 다 썼을텐데.. 오늘 밤 완성할게ㅎㅎ
저는 빙벽을 해본적이 없는데 후기 읽는 것만으로도 울컥하고 땀이 나네요. 생생하고 멋진 후기 감사합니다 ^^
기회가 되신다면 꼭 한 번 도전해보세요 실내와는 또 다른 신세계랍니다^^
후기를 쓰려니.. 쏟아져 나오는 감정, 표현하고 싶은 장면, 전하고 싶은 고마움 등등... 2시간으론 턱도 없어..ㅎㅎ
거기다 토왕등반 후기잔아..
후기 1편만 보아도 조용하고 차분한 니가 등반하며 자책하고, 힘들고, 울컥했던 시간들이 보인다..
후기 2편 기다려지네.
언니 댓글 읽으니까 또 콧끝이 찡해지네ㅎㅎ 등반하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생생하게 남기고 싶은 욕심에 글빨도 없는데 머리 쥐어짜면서 썼어요 오늘 밤에 완성하려구요 어제와 같은 삘이 와야될텐데ㅎㅎ
와 이런 스토리가 있었군요~ 무사히 다녀와서 다행입니다 ㅎㅎ 다음 이야기도 기대할께요~
기대하지마~ 부담시럽구로ㅎㅎ 이번 년도 빙벽 교육 적극 추천해
이렇게 잘 적으면 나는 나는 .. ㅡ.,ㅡ
에이~ 왜 그러세요ㅎㅎ 나름 글쓴이 특성 잘 반영된 후기였고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ㅎㅎ
그래서 후기는 1빠가 젤 속편하지... ㅋㅋㅋ 토왕후기 1번이잔여.. 시간차가 얼마 안나서 조금 아쉽지만.. ㅎㅎㅎ
엄살은?!^^ 쓰냐 안쓰냐가 중요하다고 봐...잘쓰고 못쓰고는 그 다음이거든... 나처럼 게으른 사람을 탓해야지...
@섬아저씨(김경필) 그래서 선배도 쓰시겠다구요?ㅎㅎ
@임정문 토왕 갔다온 사람은 다 써야지.
그것도 일생에 한번있는 기회야.
두번 세번가면 처음의 감정을 전혀 느낄수없어.
@토탈리머 문득.. 쌤의 일생에 한번 있었던 기회 읽어보고 싶어요.. 어디 가면 볼수 있어요?
@박민정^^ ㅋㅋㅋ
@박민정^^ 내가 토왕 처음 갔을때는 인터넷이 없었어.
필사한것은 어디론가 사라졌지.
카페에보면 해외갔던 등반기들은 쫌 있어. 잘 찾아봐. 그것들도 첫경험은 아니라 건조하지만..
그림이 압권..! 어프러치의 상황이 다 압축된 듯... 표정까지 ㅎㅎ
겨울산 워킹 시 장비 착용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심혈을 기우려서 그렸어요ㅎㅎㅎ
며칠전 봤던 영상이 생각나서 링크 걸어봅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gQzIBuzsJk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