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를 욕망을 담은 그릇이라고도 한다. 무엇인가 특별한 것. 영원한 것, 최고, 최대. 최상을 꿈꾸는 인간들의
욕망은 유물을 통하여 형상화된다. 또 그런 이유로 문화재는 강자에 의해 끊임없이 짓밟히고 소유당하고 지배받게 된다. 국가를 상징하면 볼모로
잡혀가고 최고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면 온몸이 절단당해서라도 기어코 소유하려 한다. 문화재를 되돌린다는 것은 그만큼의 시간과의 싸움이다.
철조천수관음상, 프랑스 기메박룰관 소장 사진
문화재환수국제연대
예술의 도시, 파리에 가면 전 세계 유물 컬렉션을 만날 수 있다. 대표적인 곳이 루브르박물관이다. 이곳에서는 나폴레옹시대를 거쳐
제국주의 침략시기 등에 모아 온 유물들이 수없이 많다. 또 한 곳은 국립기메동양박물관이다. 리옹의 사업가 에밀 기메(1836~1918)가
1889년 세운 이 곳에는 동양 유물들이 망라되어 있다.
특히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면 조선시대 문인석이 눈인사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무엇보다 스리랑카, 캄보디아, 인도 등지에서 목부터
가슴, 팔, 다리 등을 마구 잘라온 석불들이 눈에 띈다. 그 중에는 2층 높이를 채우고도 모자라 일부를 절단한 석상도 있다. 온전한 형태는 눈에
띄지 않는다. 거의 절단되거나 훼손당한 체 도열하고 있다.
이런 모습은 루브르박물관에 가도 익숙한 모습이다. 그리스, 로마의 석상들은 대부분 절단당한 체 전시되어 있다. 팔다리 없는 비너스와 그
주위에 즐비한 석상들을 보고 있노라면 야만의 시대에 살고 있는 듯하다.
문화재를 욕망을 담은 그릇이라고도 한다. 무엇인가 특별한 것. 영원한 것, 최고, 최대. 최상을 꿈꾸는 인간들의 욕망은 유물을 통하여
형상화된다. 또 그런 이유로 문화재는 강자에 의해 끊임없이 짓밟히고 소유당하고 지배받게 된다. 국가를 상징하면 볼모로 잡혀가고 최고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면 온몸이 절단당해서라도 기어코 소유하려 한다.
목 잘린 여신들. 프랑스 기메박물관 사진
문화재환수국제연대
동방사 철조천수관음보살좌상 유통경로 이해 필요
그 대표적인 문화재 중에 하나가 14세기 또는 15세기 조성된 경북 상주 동방사 철조천수관음보살좌상이 아닌가. 국내에는 존재하지 않은
희구불이 지금 기메박물관 전시실에 있다. 40여개의 손에는 보검, 보탑, 법륜, 경전, 정병 등 각기 다른 지물을 들고 있고 그 중 두 팔은
보관 위로 화불을 받들고 있다. 처음 관음상을 보고 중국 허베이성 융흥사의 천수천안관음상과는 다른 정교함과 치밀함 그리고 간절함이 느껴져 숨이
멎는 듯 했다.
어떤 이유로 이곳에 오게 되었을까? 경북 상주시 동방사에서 조성되었다는 것은 소개되어 있는 데 소장 경위는 없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
프랑스에서 한국 유물 수집과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19세기 유럽에서 오리엔탈리즘이 가장 먼저 유행하였던 프랑스는 기메 박물관을 중심으로 동양 유물들을 집중적으로 수집하였다. 그 중에
한국 유물은 1866년 병인양요 때 강화도 외규장각의 방화와 약탈이라는 끔직한 사건을 거쳐 1886년 한·프랑스우호조약이 체결되고 2년 뒤에
외교관 플랑시가 들어오고 이어서 여행가이자 시인인 바라(Varat)에 의해 구체적으로 소개되면서 구체화되기 시작한다. 플랑시는
세계최초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을 싼 값에 수집해 간 인물이다. 또 플랑시의 보좌관인 모리스 쿠랑 등에 의해 수집된 유물들은 기메
박물관에 모아졌다. 이때 이 유물을 정리한 사람이 홍종우(1854~?이다. 개화파 김옥균을 암살한 홍종우는 에밀 기메가 1년간 채용, 한국실
개관을 위하여 수집된 유물들을 정리하였고 1893년 한국실이 개관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때 홍종우가 정리한 유물 목록과 취득경위를 살펴보는 것도
필요하다.
김홍도의 풍속화 병풍 중 일부, 사진 문화재환수국제연대
제1차 세계대전이후 유물 수집은 일본인을 통해 주로 이뤄졌다. 일본은 1905년 을사늑약이후에는 조선의 고미술품 장사를 위하여
골동품상(대표적인 곳인 야마나카 상회)차렸다. 이들은 통감부을 앞세워 불법적으로 도굴 등을 하여 해외로 반출하였다. 이토 히로부미도 고려청자
수집에 열을 올려 골동품 상을 통해 수집하거나 뇌물로 받아 그 중 우수한 것은 일본 왕실에 헌납하고 수하들에게 배분하였다 하니 당시 그 숫자가
일왕에 헌납한 것이 100여점이상이고 전체적으로 2만여 점에 달한다고 한다. 이는 당시 조선에 있던 고려청자의 절반 이상이라고 하니 지금 전
세계 박물관에 있는 고려청자의 상당수는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를 거쳐 반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야마나카 상회는 교토에 본점을 두고 미국, 프랑스
등지에 분점을 두고 조선에서 반출한 유물들을 팔아치웠고 유럽, 미국 등의 박물관은 헐값에 사들였다.
이런 과정을 거쳐 수집한 한국 유물이 2015년 문화재청 보고에 따르면 박물관 944점, 자료실 223점 등 1,167점이 있다. 이
중에는 고려청자 70여 점, 김홍도의 풍속도 병풍, 불상 40여점, 삼국사기, 조선약사 등이 있다. 이 중에 1446년 제작한
<감지금니대방광각수다라요의경>은 세종의 다섯째 아들인 광평대군의 명복을 빌기 위해 당대 최고의 문장가인 김수우의 발원문이 있다. 조선
왕릉의 능묘 사찰인 수국사의 감로탱화, 현왕도, 지장시왕도, 신중도가 포함되어 있으며 경기도 광주 국청사 감로탱화, 강원도 건봉사 감로탱화 등
불화 30여점도 포함되어 있다.
프랑스 기메박물관 소장 고려 청자 매병, 사진 문화재환수국제연대
2016년 1월,
캄보디아 힌두석상 돌려 준 기메 박물관
동방사가 위치한 경북 상주시민들은 지역 문화재의 환수를 위해 2014년 12월 15일 ‘상주문화재환수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철조천수관음상도 환수대상 목록에 넣었다. 그러나 실제로 환수할 수 있는지는 미지수이지만 지역 연고 문화재에 관심을 가지고 목록을 작성한 것만으로
의미가 상당하다. 더구나 대표적인 문화재 약탙국인 프랑스를 상대로 진행한다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2011년 임대조건으로 일시 환국한
외규장각의궤의 경우 반출된 지 145년, 환수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 20여년 만이라는 시간이 경과한 것이다.
그러나 2016년 1월 기메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던 힌두석상을 기원국가인 캄보디아로 반환하면서 철조천수관음상을 비롯하여 귀중한 문화재의
환수에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지금부터라도 반출경위의 조사와 환수의 필요성을 정리하여 포기하기 않고 지속적으로 노력하면 그 어떤 결과가 있을 것이다. 당장 소유권
인도가 어렵다면 2009년 프랑스가 멕시코 아즈텍 달력을 영구 임대하였듯이 다양한 방법으로 노력해야 한다. 그 이전에 교류 전시를 추진하여
지역민과 국민들에게 알릴 필요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