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안 이곳저곳 소규모의 공사를
서너번 시켜 봤더니 인성도 좋고
일도 아주 잘해서 아버지께서도
다른 업자들과는 다르다고 칭찬을
하시는,
우리 시골마을 외손이기도 한
설비업자에게
창고에 양철지붕 얹는 것과
삼촌네집터에 흉물스럽게 방치되어있는
컨테이너를 재배치하고 양철지붕 얹는
공사를 맡겼습니다.
두어번 만나서 세부적인 작업방법을 협의하고
그외에도 바위나 석면판, 스티로폼철판 들을 옮기거나 치워달라고 당부를
해놓고
직접 현장감독을 하려고 했는데 공교롭게도
직장동료가 코로나에 감염되어
평소보다 근무여건이 어렵게 되는 통에
저는 공사가 끝날 때까지 못가고
대신에 직접 작업하는 걸 보고싶어하시던
구순의 아버지께서 시골로 가셨습니다.
어느 정도 작업이 마무리되는시점에
가서보니 엉망진창으로 해놓고
당부한 것도 덜하고
울화통이 터지는 걸 꾹 참고
조목조목 짚어서 사진찍어 문자로 보내고선 와달라고 했습니다.
언제 온다는 답도 없고해서
다음날엔 읍내장에 볼일보러 나갔는데
저희집에 왔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들어가는 버스시각까지 기다릴 수 없다며
이틀후에 다시 온다는 걸
올 때 전화를 하고 오라고 당부를 했는데
당일이 되어도 도무지 소식이 캄캄이라
친척집에 가서 속상한 일 얘기도하고
기다리는데 여전히 무소식.
아지매께서 점심먹고 가라시는 걸
공사하는 양반이 점심먹고 온다고 했으니
오기전에 전화를 하라고는 했지만
집에 가서 기다려야겠다고 말씀드리니
역정을 내셨습니다.
시골 집안아지매는 밥인심이 후합니다.
거절하면 오히려 막 뭐라고 하십니다.
그러마고 하면서 이미 차려놓으신 밥상에
앉아 한술뜨는 순간 역시나 집에 와있다고
어디냐고 전화가 왔습니다.
갑자기 나누던 얘기도 끊고
허겁지겁 퍼넣고선 아지매와 집안동생에게 양해를 구하고 먼저
일어나 집으로 갔습니다.
인부 둘이 동행을 해서
또다른 작업터로 가는 길에
들른 것 같았습니다.
구순의 아버지핑계를 대는 사람에게 미리 써둔 문제점을 보여주니
곁에 있던 인부 한사람이 살펴보고선
잘못한 것 없다고 바득바득 우기는데
보아하니 사람좋은 사장한테 인부들이 단단히 다짐을 해둔 것 같았습니다.
절대로 물러서면 안된다고.
우리집 양철지붕에 용마루 얹고 福자
와당 붙이고 물받이하라고 몇번이나
강조했는데도 안했고
바위도 블록도 그대론데 제 아버지께서 그냥 두라고 하셨다는 거짓말을 시작으로 온갖 핑계와 억지를 부리는데
정말 그렇게 속에 천불이 오래도록 난 적은
처음인 것 같았습니다.
삼촌네 컨테이너 재배치 할 때는
업자가 직접 잰 12센티 두께의 보도블럭을
어떤 식으로 주춧돌삼을 것인지
두세번 얘기했고 문자로도 보내고
직접 써서 줬고 잃어버렸다고 해서
제가 사진찍어둔 걸 재차 보내줬고
그냥 평토작업후 재배치했다가는
지반침하가 되지 않겠냐고 물었더니
그제서야 그렇다고 해서
콘크리트기초를 하고 그 기초가 땅과
같은 높이가 될테니 보도블록을
이중으로 쌓아서 약 25센티미터의
높이 주춧돌에 컨테이너 네 귀퉁이를
얹는 식으로 하자고 했더니
두군데 더 해야 한대서
모자란 보도블록을 우리집에서 파낼 것인가 따로 살 것인가도 현장답사까지
시켰더니,
인부임이 더 드니까
모자라게 된다면 사는 게 낫다고
직접 본인입으로 얘기까지했는데
이제와서는
제 아버지께서 현장에 계셔서 좋다고
하셨다며 공사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우겼습니다.
나중에 아버지께 여쭈어봤더니
제가 이상하다고 본 걸 아버지께서도
당시에 지적을 하셨는데도
자꾸 괜찮다고만 해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고 답답해하셨습니다.
정말 해도 너무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특히나 인부 그 사람은 사람으로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그들을 보내고 가족단톡방에 사진을 올리고 상황을 공유했습니다.
다들 한숨소리가 안들려도 가득했습니다.
동생이 그럽니다.
원래 집한번 지으면 십년은 늙는다고.
삼촌의 동의없이 제 아버지께서 일방적으로 강행하시는 걸 저나
동생이나 사전에 만류했지만
삼촌한테 몇번이나 흉물스러운
컨테이너를 정리하라고 해도 안하니까
형의 직권으로 강행해야겠다셨던 일이라서 말끔하게 해내야하는 작업입니다.
백부모밑으로 양자입적한 제 아버지의
생가터이기도한 곳을 정비하신데에는
아버지의 효심이 있습니다.
조촐한 구순회식을 가졌을 때에
별탈없이 구십의 나이에 이르도록
건강한 몸을 주신 생가부모께 감사하며
집터에 있는 컨테이너를 재배치하고
양철지붕을 얹어서 깔끔하게 정리를
하는 게 자식된 도리리고 여기신 겁니다.
애초에 오백만원 정도를 들이면 된다고
했는데
구백만원이 넘게 되었습니다.
기초를 다지고
온갖 골동품이 가득하여 포크레인으로는 못들만큼 무거운 컨테이너는
기중기를 불러야했고
들어올리다가 찢어져서 내용물이
다 쏟아진 대형사고 발생.
감당못할 사태에 수작업은 포기하고
포크레인으로 쓸어모으다보니
흙 바위 범벅이 되었고
판전축 스테레오녹음재생기 등은
처참히 부서져 쳐박혀있고.
어찌할꼬? 삼촌과 통화를 하신 아버지께서
인부들에게 이르기를, 집주인이 와서 선별작업하겠다고 하니 마당한쪽에 모아두라고 하셔서 폐기물 처리의
기회도 날아갔고
직접 보시면 기절초풍하실 삼촌.
천만원 가까운 돈을 쓰고도 동생한테
욕먹으실 우리 아버지.
불감당의 현실이 벌어졌습니다.
설비업자한테는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좋다 라고 하셨다면
나도 어쩔 수 없이 아무 말 안하겠다.
그러나 아버지가 지적하고 요구하신 걸
수용하지 않고 지나간 것은 문제삼아야하지만
그 또한 당장 다시 손볼 수가
없으니 대책을 찾아보자.
앞으로 지반침하로 사이가 더 뜨면 어떻게든 보수를 해달라.
ㅡ이 때에도 지반침하로 컨테이너가 기울때에만 보수를 하면 된다고 떠드는
그 인부는 정말 소름돋았음ㅡ
바위나 철판 등 치우지않은 것들도
정리하고 위태로운 주춧돌탑은
바위를 쌓아서 보강을 해달라.
다되면 사진찍어 보내주든지
내가 시골에 가는 날과 맞으면
직접 확인을 하고나서
아버지께 마무리가 되었다고
연락드리겠다고 했습니다.
한꺼번에 삼백만원 이상 송금이
안되어 아버지께서 잔금 4백만원을
아직 덜 치르신 상태입니다.
그래도 사람좋은 집안외손인 설비업자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고
이젠 저도 지쳐 웬만하면 넘어가려고
합니다.
위태롭기도하고 삐뚤빼뚤.
지반을 왜 돋우지 않았냐니까
기울어지지 않으니 괜찮답니다.
내집이 아니고 집주인동의없이
작업하는 거라서 좀 잘 부탁한다고
사전에 그렇게 말했는데ㅡ
벌써 적벽돌은 깨졌고
땅에 묻지않으니 토섬이 튀어나와
차가 드나들 때 부딪힐 위험도 크고
거푸집을 제대로 안해서 수평이 안맞고
약한 3공블록을 괸 걸 뭐라하니
안부서지고 안넘어진답니다.
뒷부분은 떠있네요.
토섬도 이빨빠진 곳이 보이고.
막 작업마친 게 이렇게 허술해서야 원
이렇게 방치한 것도 문제고
수작업으로 옮겨놨어야 선별을 하든말든 하지 온통 쓰레깁니다.
제가 대충 천막으로 덮어뒀으나
참 망연자실입니다.
저 안에는 60,70년대 자료들도 많고ㅡㅡㅡ
골동품류도 있을 것 같은데
삼촌이 보시면 기절하시겠지요.
올해 여든여덟이신데
먼발치서 보면 깔끔하게 마무리된 것처럼
보여
동네에서는 문화마을에 흉물이 단장했다고
칭송합니다.
마음이 무겁습니다. ㅠ
속상해도 증조모 산소에
무너지는 축대도 좀 손보고요.
봉분도 야자그물로 보강작업을 했습니다.
삼촌네 집터에 쌓인 중요한 물건들이
폐기물처럼 남아있는 동안에라도
이 답답함과 한숨을 덜 수가 있을까요?
폐컨테이너도 이제와서 치워달라니
그 건 안되겠다고 하니
엿장수아저씨 좀 찾아봐야겠습니다.
에휴우ㅡㅡㅡ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수개월전에 따로 버리려고
뭉쳐서 부직포로 싸두었던 석면덩어리는,
너무 부지런한 아버지께서 보기싫다고
호박 심은 둔덕에 풀나지 밀라고 덮어
놓으신 것을 보고 기겁하여
이참에 버려달라고 얘기했던 건데
그런다고 하더니 지금와서야 함부로
버리면 벌금문다고 하면서 외면합니다.
일급발암물질이라는 석면덩어리
처치도 숙제네요.
첫댓글 에휴...
공사인부들이 다 그렇다고 하는데 서글프네요.
@바람처럼 양심껏 하시는 분들도
간혹 있더라구요. 견적을 받아보고 하는 것도 괜찮고
@걷고 시골이라서 그랬나?
구두로 견적받으면서 추가하며 늘어나고요.
@바람처럼 속터질 일입니다ㅠ
담부터는 꼭 사전 비교 견적 및 서류 계약서를 작성해요.
@걷고 그래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