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신고·출생신고를 못한, 한국인 아빠·난민 엄마의 사연
의뢰인을 알게 된 지도 벌써 2년이 지났네요. 제가 일하는 단체는 주로 이주민들 중에서도 취약한 난민이나 구금된 이주민, 무국적자 등을 소송이나 신청 등 여러 방법으로 지원하는데, 작년에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태어난 아기의 출생신고를 못하고 있다는 한 아버지의 연락이었지요.
본인은 7년 전에 귀화한 한국 사람이고 아내는 A국에서 박해를 피해 일본으로 탈출했는데, 일본에서도 아내의 반정부적 활동이 발각되어 주일본 A국 대사관이 여권 갱신을 불허했다고 했습니다. 하루아침에 사실상의 무국적자가 되어버린 아내는 일본에서 난민신청을 했고, 현재는 일본에서 인도적 재류비자를 받아 체류 중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의뢰인과 아내는 한국에서 조촐히 둘만의 결혼식을 올리고 혼인신고를 하러 주민센터에 갔지만, 혼인신고 신청서를 접수할 수 없었습니다. 한국은 이중혼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기에, 부부 중 일방이 외국인인 경우에는 본국에서 미혼이었음을 증명하는 ‘미혼증명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아내는 난민사유로 인해 대사관에 출입할 수 없었고, 따라서 미혼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부부의 사랑스런 아기가 태어난 이후였습니다. 3년이나 기다려 만난 아기의 출생신고를 하기 위해 주민센터에 갔지만, 접수가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출생신고를 정하는 관련 법령과 예규상, 부부의 혼인관계 증명서와 친모가 출산 당시 미혼임을 증명하는 확인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의뢰인은 아이의 엄마가 난민사유가 있어서 위 서류들을 발급받을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친딸과의 유전자검사확인서까지 제출했지만, 출생신고를 하려면 ‘법원에 가서 친생자출생신고를 위한 확인결정을 받아오는 방법뿐’이라는 답을 들었습니다.
동일 소송을 보도한 mbc 뉴스 화면 갈무리
고민 없이 내려졌을 1, 2심 판결문
현행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이하 ‘가족관계등록법’ 혹은 ‘동법’)상, 아이의 출생신고 의무자는 ‘(혼인신고를 한 법률혼) 부 또는 모’ 인데 반해, 혼인 외(혼인신고가 되어 있지 않은 사실혼도 포함)의 출생자의 경우 출생신고의무는 원칙적으로 ‘모’에게만 있습니다.
다만 아이를 낳고 친모가 행방불명되는 등의 사유로 친모가 출생신고를 할 수 없는 경우에는 친부가 단독으로 자녀의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2015년도에 관련 조항(일명 ‘사랑이법’, 가족관계등록법 제57조 제2항)이 개정되었습니다. 즉 친모의 성명, 등록기준지 및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없는 경우에는 친부가 법원의 확인을 받아 출생신고를 할 수 있으며, 신고를 하면 자녀를 인지(認知, 자녀를 본인의 친생자로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 것으로 보겠다는 내용입니다.
의뢰인의 경우는 아내의 난민사유로 인해 대사관에서 필요한 공문서를 받을 수 없어 혼인신고를 하지 못했기에 출생한 아이마저 ‘혼외자’로 분류되어 친모가 출생신고를 하여야 하나, 엄마는 유효한 신분증이 없어 본인의 존재를 증명할 만한 서류가 전무한 상태였으므로 이는 친모의 인적사항을 알 수 없는 경우에 준한다는 판단이 들었고, 이에 관할 법원에 가족관계등록법 제57조 제2항에 근거하여 ‘의뢰인에 대한 친생자출생신고 확인신청’을 접수한 것이지요.
그러나 1심의 결과는 ‘기각’이었습니다. 가사사건은 경우에 따라 심문을 진행하지 않고 재판부에서 서류 검토만으로 결과를 선고하는데, 이번이 그러했고 심문기일이 잡히지 않았던 까닭에 판사를 대면할 겨를도 없이 기각 결정문을 받아들게 되었습니다.
1심 기각결정문 중 일부 발췌. (사진: 전수연 변호사 제공)
‘이 사건 신청은 이유가 없다’니, 구구절절 적어낸 서면과 입증자료들이 무색할 정도였습니다. 납득할 수 없는 판결에 대해 항고를 하였고, 2심에서는 다행히도 심문기일이 잡혀 법정에서 구구절절한 사연을 변론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또 기각.
이번에는 (그나마 덜 억울하게) 판결문에 기각이유가 설시(說示, 설명)되었는데, ‘해당 사건은 아이의 친모가 살아있고 인적사항 파악도 가능하기 때문에 동법 제57조 제2항이 적용될 수 없는 사안’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동법 제57조 제2항은 아이의 엄마가 실종된 경우 같이 소재파악이 안 되는 경우라야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지요. 또한, 혼인관계증명서 미비의 이유로 접수가 거부되었으니, 혼인관계증명서만 제출하면 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지요. (제가 제출한 서면을 재판장이 제대로 확인한 게 맞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서면에 아내 분의 난민사유 때문에 필요서류 등을 제출할 수 없다고 썼고, 심문기일에 가서도 구두로 진술했는데 말이지요.) 단순히 엄마가 ‘혼인관계증명서를 제출하지 못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수없이 반복하였음에도, 이 같은 이유로 기각이 되었습니다.
대법원의 파기환송, 꿈은 아니겠지…
1, 2심 법원을 거치며 이 사건은 판사들에게 ‘보통’의 관심조차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이 사안을 대법원에 재항고를 하는 게 맞는 것일까 고민되었습니다. 행여 의뢰인에게 헛된 희망을 주며 시간만 낭비하는 것은 아닌지 마음이 무거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일명 사랑이법의 적용범위를 ‘친모가 소재불명’된 경우로만 엄격히 좁혀 해석한 1, 2심의 판결은 사랑이법의 도입 취지, 즉 좀 더 많은 아동들의 출생등록을 용이하게 하여 아동으로서의 권리를 보장받게 하기 위한 취지를 몰각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렇지만 별 기대 없이) 대법원에 재항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도착한 “대법원 (사건번호) 판결정본이 도착하였습니다”라는 문자를 확인하자마자 전자소송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결과란에 “파기환송”이라고 적혀 있었지요. 처음에는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새로고침’으로 화면을 다시 열어보기도 하고, 로그아웃을 했다가 다시 로그인을 하면서 두세 번을 확인했는데도, 정말 ‘파기환송’ 네 글자가 선명히 적혀 있었습니다. 민법 교과서에서만 보던 그 파기환송(원심이 내린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원심 법원으로 돌려보내 다시 심판하게 함)이 맞는지 얼떨떨했습니다. 보통 대법원은 법리적 판단만 하기에 대다수의 사건은 판결에 법리적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후 ‘심리불속행 기각’(심리를 하지 않고 기각함)을 하고 있지요. 대법원에서 심리가 이뤄지는 사건의 비율이 22-23%대인 것을 감안하면 대법원의 판단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여겼는데, 2심 판결에 법리적 문제가 있으니 다시 판단하라고 되돌려 보낸다는 결정이 나왔다니…. 판결문의 내용(대법원 2020스575)도 저의 2년 묵은 체증을 싹 가시게 해주었습니다.
(동법 제57조 제2항의) 문언에 기재된 ‘모(母)의 성명, 등록기준지 및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없는 경우’는 예시적인 것이므로, 이 사건과 같이 외국인인 모의 인적사항은 알지만 자신이 책임질 수 없는 사유로 출생신고에 필요한 서류를 갖출 수 없는 경우 또는 모의 소재불명이나 모가 정당한 사유 없이 출생신고에 필요한 서류 발급에 협조하지 않는 경우 등과 같이 그에 준하는 사정이 있는 때에도 적용된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
무엇보다 사랑이법의 적용범위를 대폭 늘려 더 많은 아동들의 출생등록을 보장하는 길을 열어주는 판결이라는 점에서 고민해주신 대법관들께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보편적 출생신고제’ 도입을 소망하며
다만,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여러 언론들에서 위 대법원의 판결이 ‘아동의 출생등록 될 권리’를 최초로 인정한 판결이라고 보도했지만, 엄밀히 보자면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이법이 적용되는 아동은 ‘아빠가 한국 국적자’인 경우에 한하며, 대법원이 최초로 확인한 ‘출생등록 권리’도 오직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난 아동’에게만 보장되는 것이지요. 부모가 모두 외국인인 경우에는 한국에서 출생한 아이라 해도 출생등록 권리가 보장되어 있지 않아 여전히 교육, 의료 등의 보장체계에 접근이 어렵거나 범죄환경 등에 노출될 가능성도 많아집니다.
아동의 ‘출생등록 될 권리’에 관하여는 이미 이를 규정하는 여러 국제협약들이 존재하고, 국제사회의 요구가 있어왔습니다. 2018년 12월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대해 한국 내 출생한 모든 아동이 국적 및 체류 자격과 무관하게 출생등록이 되도록 보장할 것을 촉구한 바 있습니다. 모든 아동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 자신의 출생사실을 등록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현재 한국에는 외국 국적의 부모를 둔 경우, 출생신고(국적취득과는 별개)를 할 수 있는 제도 자체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보니, 아이는 태어나고 존재하나 국가에서 관리되는 공문서에는 기록 자체가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적 상황을 타개하고자 논의되는 이슈가 ‘보편적 출생신고 제도’로, 말 그대로 ‘한국에서 태어난 모든 아동들이 한국 정부에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고 이를 보장하자는 것’이지요. 즉 부모의 국적 등과 무관하게 아동이 태어나면 아동의 이름, 성별, 출생일, 출생지, 가족관계 등을 증명할 수 있게 하자는 것입니다.
익숙지 않을 수 있지만, 이미 적지 않은 국가들에서 보편적 출생신고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태국은 2008년 법 개정을 통해 미등록 이주아동을 포함한 모든 아동의 출생등록을 법으로 보장하고 있으며, 영국의 경우에도 영국 내 출생한 모든 아동들의 출생등록이 가능하고 이들에게 자동으로 의료보장 번호를 부여합니다.
언젠가 듣게 되었던 소식 중 가슴 아픈 아동의 사례가 있었습니다. 출생신고가 되지 못한 아이들이 불의의 사고나 병으로 인해 사망하는 경우가 있는데, 애초에 출생이 기록된 적이 없기에 사망신고도 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지요. 삶의 시작과 끝이 기록조차 되지 못한다면, 그 사이에 분명히 존재했던 삶은, ‘실제로’ 존재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보편적 출생신고제의 이슈는 단순히 아동의 권리보장을 운운하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실재를 받아들이는 더 근본적인 지점에 가닿아 있습니다. 대법원에서 최초로 확인한 아동의 ‘출생등록 될 권리’의 지경(地境)이 한국에서 태어난 ‘모든’ 아동들에게로 확대되는 날을 꿈꾸며, 관련법 개정이나 정책 재개편 등으로 보편적 출생신고제도가 다양하게 발현되기를 소망합니다.
전수연
현재 공익법센터 어필(APIL, Advocates for Public Interest Law)에서 변호사로 일한다. 어필은 난민, 구금된 이주민, 무국적자, 인신매매 피해자들의 인권을 옹호하고 다국적 기업의 인권침해를 감시하는 일을 한다. 사회적 약자들의 곁에서 부당함에 맞서 정의를 지어가는 것이 어필의 꿈이다. 어필 홈페이지(www.apil.or.kr)에서 어필의 활동과 다양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본지 343호(2019년 7월)에 인터뷰가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