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의 반성문
송희제
나에게는 세 명의 손자가 있다. 그중에서 앞 동에 사는 장남에게는 두 명의 손자로 열 살과 일곱 살의 손자이다. 그 나이 때는 한참 장난감에 호기심이 많을 때이기도 하다. 셋째 손자는 이제 걸음마와 말 배움으로 한창이다. 도화지에 첫 그림 그리듯, 모든 걸 그대로 받아들이는 천진난만하게 받아들이는 순수 아기다.
셋 중 둘째인 가운데 손자는 요즈음 어린이의 순수와 세상살이의 물듦을 오락가락하고 있다. 며칠 전의 일이다. 매주 화요일에는 며느리가 대학원에 가는 날이라 앞 동에 사는 장남네 손자를 보는 날 이다. 전날 큰 손자가 학교에서 상을 탔다고 전화가 왔다. 우리 부부는 참 장하다고 칭찬을 해주며 기뻐하였다. 우리는 수상을 축하하는 선물을 무얼로 해줄까 하니 장난감을 사달라고 했다. 저만 받기가 미안한지 제 동생도 유치원에서 영어 맞추기 잘해서 칭찬 들었다고 했다. 두 손자 기 살리기로 할아버지는 두 애들을 태우고 장난감 가게로 갔다. 장남네 집에는 장난감들이 즐비하다. 가면서 할아버지와 두 손자는 약속을 같이했다. 저의 엄마와도 장난감 가격을 3만원 이내로 하기로 정했다고 했다. 둘 다 그러기로 하고 가게에 들어갔다. 큰손자는 3만원대의 장난감을 집어 들었다. 그러나 둘째 손자는 제가 갖고 싶은 게 따로 있었다. 58,000원으로 차 안에서 약속한 가격을 초과했다. 더구나 비슷한 게 집에도 있고 가져가면 하루 이틀만 갖고 놀고 또 무용지물이 된다. 돈보다도 방금 한 약속을 어기는 습관이 좋지 않아 할아버지는 손자를 설득하며 달래도 제 고집만 부렸다. 할아버진 손자에게
"네가 약속을 안 지켰으니 3 만원 대로 고르지 않으면 없던 일로 하겠다."
고 하니 그 손자는 끝까지 고집을 부려 형만 선물을 받고 작은앤 빈손으로 집에 갔다. 그 말을 들은 며느리는 아이의 버릇을 고치려고 방법을 제시했다. 손자가 한 약속과 달리 취한 행동에 대하여 무엇이 잘못됐는지 본인이 되짚게 하였다. 반성문을 할머니 댁에 가서 글자 100자 이상으로 써서 드리며 사죄하라고 아일 보냈다. 저녁에 그 손자가 현관에서부터 눈물, 콧물 범벅으로 얼굴을 훔치며 들어왔다. 나는 속으로는 우는 모습까지도 너무 귀엽고 예뻐서 덥석 끌어안으며 달랬다.
"아휴! 우리 진♡이가 얼마나 착하고 똑똑한데 잠깐 무얼 실수했을까? 할머니는 같이 못 가서 잘 모르는데 뭐 잘못한 거 있어?"
"제가 장난감에 욕심을 내서 차 안에서 할아버지와 한 약속을 어기고 떼를 썼어요."
"그랬구나. 이제는 그 잘못을 깨달았네. 네가 그걸 알고, 엄마가 내준 숙제 그 반성문을 다음부터는 그렇게 안 하겠다는 결심으로 쓰면 되는 거야."
하니 백지에 볼펜을 들었다. 몇 글자 쓰고는 눈물을 훔치며 두어 줄을 쓰고는 글자 수를 손으로 짚어가며 세었다. 그러다 울고 또 몇 글자 쓰고 글자 수를 반복하여 세어갔다. 너무도 귀여워 100자 안 채워도 된다고 봐주려다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도록 참고 지켜봤다. 드디어 112글자로 7살 손자의 더러는 틀린 받침 철자의 반성문이 완성되었다. 저 자신도 눈물, 콧물을 훔치며 써 댄 글을 우리에게 두 손으로 바치고는 얼굴이 환해져 돌아갔다.
나 어릴 적 생각이 난다. 중학교 때 부모님 슬하에서 학교 다닐 때이다. 나보다 두 살이나 많은 친구는 성실한 노력형의 급우다. 그 친구는 집이 멀어 학교까지는 한 시간 이상을 걸어 다녔다. 그 아버지 또한 교육열이 높고 장녀인 그에게 기대도 많이 했다. 당시 교장선생님 관사에서 나의 초등 은사님네가 살았다. 학교 옆 그 관사에서 그 친구는 하숙하며 담 옆 학교를 오가며 공부했다. 난 그 친구가 부러워 나도 거기서 하숙하며 공부하게 해달라고 부모님께 졸랐다. 삼사십 분이면 갈 곳에 하숙을 허락해 줄 리가 없다. 난 그래도 절실하여 아버지께 막무가내로 떼를 쓴 것이다. 자라면서 부모님으로부터 난 한 번도 매를 맞아본 적이 없었다. 그만큼 부모님은 날 애지중지하셨다. 졸라도 허락을 안 해 주셔 난 골방에서 곡기를 끊는 단식투쟁 하였다. 그 꼴을 보다 못한 오빠는 내게 처음으로 골방문을 밀치고 들어와 뺨을 때린 적이 있다. 말 없는 어머닌 곡기 끊은 내게 사식처럼 미음을 들고 와 꼭 끌어안으며 달래주셨다. 한참 사춘기로 그 친구보다 더 잘하려는 의욕만 날 세웠다. 얼마나 무모한 떼쟁이였는지, 커서 생각해 보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 7살 손자는 얼마나 영특하고 지혜로운가! 본인의 과욕을 바로 깨닫고, 후회와 서러움의 눈물로 바로 기록에 남는 글씨로 쓴 것이다. 100자가 넘는 반성문을 고사리손으로 눈물 얼룩진 글씨로 써서 할아버지께 바치고 간 것이다. 우리 집 거실에는 손자의 삐틀빼틀의 어설픈 글씨로 쓴 그 반성문 액자는 나의 하루 여정을 마감하는 피로 해소제이다.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어갈 때는 또한 그 손주들을 위한 기도를 가슴에 품고 잠을 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