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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및 기타 | |
이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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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
26세 (만25세) |
현재 거주지 |
강원도 원주시 |
학력 |
원주농고 강원관광대 호텔조리학과 2년 졸업 |
정치참여 |
무 (관심 없음, 투표 거부) |
앞으로의 계획 |
유통일 이나 자영업 해보고 싶다고 함 |
가족 기타 사항 |
부모님, 남동생과 현재 같이 살고 있음. 아버지 - 건설현장 관리직 , 어머니 - 근로자 , 동생 - 원주 인근 생산 공장의 근로자 |
현재 직업 근로 환경 |
강원도 원주 E 마트 수산팀 생선 손질 및 포장 판매 (비정규직) 오전, 오후 근무로 8명으로 교대 근무를 실시 오전 근무 = 대체적으로 오후 근무 = 대체적으로 휴무 주 2회 (주말은 제외하고 쉬어야 한다.) 현재 급여는 한달 백십만 원 정도 (비정규직) |
" 2년 만의 만남 "
"반갑다! 자식 잘 지냈어? 이거 살찐 거 봐라~!" 민수를 만난 것은 꼭 2년만이다.
내가 튀니지로 봉사활동을 가기 전에 한번 보고 올 초에 귀국해 첫 만남 이였다. 긴 시간 얼굴을 못 봤지만 녀석 얼굴은 그대로였다. 대신 악수를 하며 느꼈던 거친 손에 만져 지는 딱딱한 굳은살과, 2년 전보다 두터워진 팔뚝이 눈에 들어왔다.
<민수가 일하는 원주 X마트>
원주로 찾아 가기 전에 전화로 간단히 이야기를 했던 터라 민수는 나를 위해 자신의 점심시간을 조금 길게 내어주었다. 이 곳에는 먹을 게 없다면 X 마트를 빠져나와 순대국밥 집에서 간단히 소주를 한잔하며 우리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도 왜 이렇게 돈 안 되는 일을 계속 하는지 모르겠어, 후~ 조금만 더 하다 그만 두려고...”
이야기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민수는 힘든 노동에 대한 불만과 마음속 고민을 금세 쏟아 내었다.
사실 민수와 나는 군대에서 만난 이른바 전우 사이다. 총이 아닌 삽과 국자를 이용해 전투적으로 밥을 해야 했던 우리는 짬 냄새(음식물 찌꺼기냄새) 난다고 구박받는 이른바 짬병, 취사병이었다. 나는 특이한 케이스였지만, 민수는 호텔 조리 학을 공부하고 있었고 특기병으로 취사병을 지원해 우리부대 조리 병으로 올 수 있었다.
내 후임으로 왔던 그는 산과 나무가 많은 강원도 출신이라 그런지 참 맑고 순수한 친구였다.
물론 호텔조리를 공부하고 와서인지 그 분야에 대한 지식도 해박했고 요리 솜씨 칼질 또한 꽤나 능숙했었다. 졸업하면 XXXX나 기타 좋은 호텔에서 한식파트 일을 하고 싶다던 그의 바람을 들었던 것도 벌써 5년 전 일이다.
그랬던 민수가 지금은 마트 에서 굵은 막 칼을 잡으며 사정없이 생선을 내리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많이 의외였고, 그래서 물어볼 이야기가 너무나 많았다.
" 유전취업 무전백수 "
시시콜콜한 옛날 옛적 군대 이야기를 하며 점심을 다 먹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처음 나는 "일은 할만 해? 그런데 너 왜 요리는 안하고 이거 하는 거야?" 라고 물었다.
민수는 웃으며 "사실 돈이 조금 적어서 그렇지.. 할만해 쉬는 날도 주2회 이고," 계속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민수는 원래 졸업을 마치고 호텔이나 조금 큰 레스토랑 등에서 한식을 배워나가는 것이 꿈 이였다.
그래서 대학도 강원 관광대 호텔 조리학에 선택했던 거였다.
졸업반 일 때 민수는 원주 0000에서 3개월간 실습을 나간 일을 이야기 했다. 그때 처음 조리 현장을 체험하였는데 "이 곳의 일이 겉으론 멋있어 보일지 몰라도 그 속은 얼마나 고되고 힘든 노동인지를 절실히 깨달았다고" 했다. 그래도 그때까지만 해도 민수는 계속 호텔 요리사의 꿈을 놓고 싶지 않았었다고 말했다.
졸업 후 꾸준히 호텔 조리 파트 쪽 일자리를 여기 저기 알아보았지만, 호텔에 취업 한다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고 말했다. 호텔의 대부분이 6개월 정도의 긴 인턴 기간을 채우고 난 뒤에 채용하는 방식 이였고, 그 인턴에 뽑히는 것도 이른바 요리 유학을 다녀온 스펙이 높은 사람들뿐이라며 푸념 했다.
"유전취업 무전백수 란 말이 딱 이더라!" 민수가 말했다.
"돈 있는 사람들은 죄다 프랑스나 머다 일본으로 유학 다녀오고 나서 지원 하는데 참.. 호텔에서 날 받아줄리 없지 머~" 민수의 한숨은 이어졌다.
이야기를 모두 듣다 보니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어 질문을 했다.
"네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라면 일류 호텔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한 단계 낮은 곳에서 라도 시작해 실력을 쌓고 올라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
"응 그래, 물론 이지.. 물론 이야 나도 그래서 일했었다고. 일했어." 푸념처럼 힘없는 민수의 대답은 이어졌다.
호텔 취업이 힘들어 지자 예전에 실습을 했던 0000 에서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웨딩/세미나 부서에 조리 파트에서 근무를 했었다고 했다. 행사가 있을 때면 연장 근무도 해가며 잘 쉬지도 않고 6개월간 정말 열심히 민수는 일을 했지만 적은 임금과 불합리한 조리 구조 때문에 요리업계에 흥미를 완전히 잃어버리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100만원이 조금 넘는 월급을 주며 하루 12시간 이상씩 서서 일을 할 때면 정말 몸에 진이 다 빠져나갈 정도로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민수를 힘들게 했던 것은 아르바이트란 이유로 비정규직이란 이유로 야채 다듬기나 음식 세팅 등의 잡일만을 시켰고, 그 곳에서 몇 년이 되었든 간에 정규직과 비정규직과의 조리 업무의 차이가 존재한다며 누가 손재주가 좋고, 요리 솜씨가 좋은 건 아무런 척도가 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민수는 불합리한 조리업계의 구조 속에 분계하며 지쳐갔고, 끝내 멋진 호텔 조리장이 되는 꿈을 접어버렸다고 했다.
" 4천원 인생 "
"너 지금은 얼마나 받는데?" 내가 직접적으로 캐물었다.
"시급 4천원 삼백 원 받아" "그럼 한 달에 대강 얼마나 받는 격이지" "음.. 그러니까 우리가 일주일에 두 번을 쉬고 하루 9시간 내지는 10시간씩 일하고 연장도 하니까"
"한 달에 백 십에서 백이십만 원정도 되는 거 같더라" 라고 민수가 말했다.
민수는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이 마트 에서 생선판매 코너에서 비정규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다른 용역업체와 계약을 하고 X마트에서 일하는 민수의 근무 시간은 오전 오후 파트로 나뉘어져 있고 8명의 인원이 로테이션으로 근무 한다고 했다.
오전 파트는 매일 오전이면 들어오는 생선들을 받고 정리하느라 힘들다 하였고, 오후 파트는 늦게 까지 마감을 해야 하기 때문에 서로 똑같이 힘든 건 마찬가지라 했다. 민수는 그 곳에 자신이 이른바 두꺼운 막 칼 생선 손질의 달인으로 불리 운다고 자랑했다. 자신의 솜씨는 "그 누구도 따라 올 자가 없다며 빠르고 재빠른 칼질과 두꺼운 손목 스냅의 이뤄내는 조화로움" 이라 껄껄대며 말했다.
민수는 수산 팀에서 근무하면서도 배우는 것이 몇 가지 있다고 말했다. 생선의 종류와 다듬는 방법을 자세히 알게 되었고, 옆에 회 코너의 형 한 테 생선회 뜨는 법도 배운다며 여러모로 현재하고 있는 일에 대해 대체적으로 만족 한다고 이야기 했다. 물론 임금 문제는 제외하고 말이다.
" 민수의 고민, 우리시대 나와 너, 20대의 고민 "
군대에서 요리 하는 것을 그 누구보다 즐겼고 좋아했던 민수, 그에게 나는 계속 다시 요리를 할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돌아오는 대답은 "없어? 라는 짤막하면서도 긴 여운이 남는 목소리였다. 민수는 일단 돈을 모으고 싶어 했다. "어떡해서든 지금은 돈을 많이 모으는 것이 내 목표야! 그러고 나서 내 장사를 하고 싶어" "지금 하는 생선 쪽이 될 수 도 있고, 혹은 다른 좋은 아이템이 있으면 하고 싶어. 그러니 이 일도 그만두고 돈 모으기 좋은 공장 쪽으로 취직을 할까봐~! 민수가 말했다.
돈 이야기가 나오면서 민수는 저절로 자신의 여자친구 이야기를 꺼냈다. 빨리 돈을 악착같이 모아서 결혼도 하고 내 장사도 해볼 계획이야! 그래야 어서 여자친구 부모님께도 떳떳이 내 존재를 알려드리지... 지금은 사실 여자친구가 말하고 싶어 해도 내가 말하지 못하게 하고 있거든.. 보다시피 내 형편이 이러다 보니까 말이야..
사실 나도 민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입장이라 한동안 둘이 마주 앉아 같이 함 숨을 푹푹 내쉬었다.
민수 집의 형편은 사실 그리 어려운 편은 아니다. 아버지도 건설업체 직원으로 현장의 책임자로 아직 까지 근무하고 계시고, 어머니도 일을 하신다. 동생 역시 어느 공장 생산 노동자로 일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게 열악하지 않은 가정환경인데도 불구하고 민수는 앞으로의 걱정을 많이 한다. 아마도 현재 적은 임금과 불안정한 직업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어느새 시계는 오후 두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야! 나 이제 들어 가봐야겠다." 하고 민수가 말했다.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민수는 지하 마트 수산팀 으로 들어갔다. 생선 매대 에서 일하는 그의 무거운 어깨를 뒤로 하고 민수와의 짧은 만남을 그렇게 마무리해야 했다.
2년 만에 만난 민수, 그러나 반가운 이야기 보다 아쉽고 안타까운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민수에게 일어날지는 모르지만, 일단 그는 평생의 꿈을 포기하였고, 다른 삶을 쫒고 있었다.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민수의 문제가 무엇 이였을까? 과연 포기해야만 했던 이유가 민수 본인만의 문제 이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그리고 비정규직으로써 현재 적은 노동 임금이 앞으로 민수의 미래를 얼마나 밝게 비추어 주는 뒷받침이 될까..?
그저 조금 더 높은 일자리를 찾아 전전긍긍 하는 ...
"비정규직 히치하이커 노동자"로 전락하지는 않을까 굉장히 우려되기도 했다.
너와 나 우리 20대의 대다수가 졸업후 불안정 고용이나 비정규직 일자리로 갈 확률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분명 한건 완전고용 정규직 채용 보다 훨씬 많은 숫자가 그렇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 20대는 함께 이런 문제들을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첫댓글 형... 진짜 형은... 진정한 파워블로거.......ㅜ 감동...ㅠㅋ
ㅋㅋ 근데 이젠 돌아오지 않는 과거의 영광일뿐. ㅜ_- , 그냥 정리만 했을뿐이야 ;;
사실 요건 과제 였다는...헤.. ^-^; , 제 개인 블로그에 정리해서 올리는 김에 인턴 자유게시판 카페에도 함께 올려 봅니다.
공감되는 이야기들이 많은 것 같아요. 유전취업 무전백수 !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