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1. 월
50년 전 오늘
그해도 12월 1일이 월요일이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 천일이와 나는 사이좋게 논두렁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인두네 논두렁을 거의 다 갔을 무렵에 천일이는
“와, 1일이고, 월요일이네.”
신기한 듯 말했다. 그때 나는 별 신기하지 않은 듯 대꾸한 것 같다. 달력에 보면 일요일이 1일과 마주쳐야 딱 맞다는 논리를 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기억이 50 년이 지난 지금에도 또렷이 남아 있다는 거다. 무슨 연유에서 그렇게 깊게 각인되어 있을까? 신비하다. 1958년 12월 1일 우리들은 6학년이었다.
50년 후의 나는 지금 교장이 되어 교장실에 앉아 하루를 보내는 셈이다.
퇴근 무렵 아이들 공차는 것을 구경하러 나섰다가 학부모들이 계단 쪽에 모여 있기에 인사차 갔더니 한성수 위원도 와 있다가 반긴다. 내 퇴직날짜를 묻는다. 나는 농담으로 잊고 있었는데 생각나게 한다고 맞받았다. 그러더니 나 같은 교장이 들어와야 할 거라며 나를 띄운다. 내가 뭘 했다고 겸손하게 말을 받았지만 기분은 좋다. 축구를 좋아하는 교장상으로 비춰졌으니.
저녁은 지모에서 이번 다면평가에 참여하는 부장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50년 전의 저녁시간은 어떻게 돌아갔는지 모른다. 단 대화만 남아 있다.
12. 3. 수
오늘 한 일들
10시 40분쯤 전 직원의 단체 사진을 찍었다. 이 많은 직원을 거느리고 사진을 찍는 자체가 영광이다. 앉고 보니 민정희 선생님이 또 내 뒤에 서 있다. 우연일까 아니면 민 선생님이 일부러 내 뒤에 자리를 잡았을까?
12시부터는 교육장과 교육과장, 관리과장, 사체계장 그리고 교기를 육성하고 있는 교장들 밀양초, 밀주초, 예림초, 삼랑진초, 밀양중, 밀성중, 밀양여중, 동강중 교장들이 백송횟집에서 모여 내년도 파이팅을 다짐했다. 나는 밀성초 축구는 자신 있다고 큰소리 쳤다.
저녁 6시부터는 고천식당에서 학생회장 엄마들 즉 서지수 1학기 회장 엄마, 최흥길 2학기 회장 엄마, 그리고 어머니회장과 두 분 교감과 실장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이야기를 나누며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저녁 초승달과 금성 목성이 삼각편대를 이룬 모습을 서녘 하늘에 볼 수 있었는데 학교에 출발하면서는 조지원 선생님에게 가르쳐 주었다. 저녁을 먹고 나왔더니 구름이 끼어 볼 수 없었다. 2052년 만에 한번 이런 모습을 보여준다는데 아깝다.
12. 5. 금
경남아동문학회 총회
아침에 바람이 세차게 나오더니 교장실에 들어가 우연히 창밖을 보는데 눈송이 같은 것이 한 송이씩 휘날렸다. 잠시 후 그것이 폴폴 내리는데 틀림없는 눈이었다. 그걸 느꼈을 때 바로 위 교실에서 “눈이다!” 하는 아이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올 겨울 들어 첫눈이다. 기쁨에 들떠 왁자하게 떠드는 소리가 들리더니 시간이 지나자 많은 아이들이 첫눈을 맞이하러 운동장에 쫓아 나와 뛰놀고 있다. 그러다가 눈이 그쳤다.
오늘은 작은아버지 기일인데도 멀어서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김성화 초대에도 물리치고, 아동문학회 총회 참석하기 위해 이경숙을 싣고 5시쯤 출발했다. 날씨가 굉장히 추워졌다. 아침에 온 눈은 추워지려는 전주곡이었던가 보다.
6시에 맞춰 초원 식당에 들렸더니 벌써 많은 회원이 와 있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회장이 안 보이고, 임신행씨도 없다. 지금까지 안 보인다면 불참인 모양이다. 나중 들은 이야기지만 사무국장과 말다툼이 있었던 모양이다. 국장이 열이 나서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그래도 참석자들의 얼굴을 보아 반갑다. 오하룡, 조평규, 최상일, 이한영, 조현술, 김덕종, 류경일, 하영, 노길자, 김재순, 이림, 이경숙, 하종숙, 정희숙, 김문주, 서일옥, 하순희 등
도문화상 받은 조평규, 연변까지 시조창을 보급한 김재순, 새 책을 낸 하종숙 이번 우수작품집의 출판사인 오하룡 축하의 박수를 받았다.
농담 따먹기도 했지만, 제법 진지한 독재적인 회 운영에 목소리도 내고, 현실에 맞지 않은 정관도 수정하고, 회장이 없어도 속속 총회다운 면모를 보였다. 그런데 고양이 목에 누가 방울을 달 것인지.
12. 8. 월
착각
경남교육상 후보선정위원회가 오늘 있는 줄 알고 3시에 시간 맞춰 가려고 주차장에 가서 생각하니 다음 주 월요일인줄 모르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래서 교무실에 전화를 했더니 역시 다음 주일이다. 착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교육청까지 가지 않아 다행이다.
부끄럽지만 예사롭게 걸어 나오는데 화단 앞에 놀던 키 큰 여학생들 중 하나가 인사하더니 가까이 다가와
“오늘은 교장선생님이 더 젊어 보입니다. 멋집니다.”
하며 듣기 좋은 말을 한다. 그래서 기분 좋아 교장실로 다시 들어왔다.
오늘은 아침부터 김교감이 근평 관계로, 또 원감이 좀 늦게 나타나 근평 관계로, 그리고 옥교감이 출근길에 빙판이 생겨 10시 넘어 나타나는 바람에 오전에 한 일 없이 시간이 다 가버렸다.
저녁에 옥교감, 김교감과 굴국밥으로 먹으며 시간을 같이 했다.
12. 9. 화
초등교장협의회
내년 3월1일자로 폐교되는 단장초등학교에서 10시부터 교장회의를 열었다.
출석률이 청도 교장만 빼고 다 참석하여 기분이 좋았다. 청도 교장은 감기가 심하게 걸린 것 같다. 연수는 단장교장과 내가 강사로 나섰다. 단장교장은 폐교되는 학교 연혁과, 임시직 직원관리 문제를 제시했고, 나는 출장복무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도중에 못 오겠다던 교육장이 와 가지고 괜히 기분 나빠한다. 연수 중에 오면 뭐가 잘못되어서?
점심은 장소를 옮겨 표충사 밑 주차장의 약산가든에서 산채비빔밥으로 맛있게 먹고, 이정숙교장의 주선으로 표충사 경내를 돌아보았다. 사찰보다도 주위 겨울 산들이 멋있다. 날씨도 포근하여 다니기도 좋다.
태룡초등학교로 옮겨서 배구경기를 가졌다. 교장단으로서는 마지막 배구다. 오랜만에 하는 배구가 재미있었다. 나의 자리는 원래 전위다. 본래 자리를 찾은 경기는 져도 기분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 우리 편은 산외 이완기교장, 상동 김대수교장, 산동 이창오교장, 산내남명 하상준교장, 단장 고주현교장, 산내 양해석교장 강북팀이고, 저쪽은 백산 김이천교장, 수산 김양수교장, 초동 홍점갑교장, 태룡 김태길교장, 밀주 권증현교장, 숭진 이종길교장, 예림정상진교장, 사포 이병현교장으로 나뉘어 경기를 했는데 저쪽이 약하여 태룡교장이 그쪽으로 넘어갔다. 처음 두 세트는 우리가 따냈지만, 내리 세 세트를 졌다. 막판에는 19:16으로 앞서가다가 주스를 허용하고 23:25로 아깝게 졌다.
오늘은 오랜만에 블로킹도 몇 개 성공하고, 어려운 공도 넘겨 포인트 하여 우리 팀들에게 칭찬을 많이 받았지만 집에 와서 반성하니 나 때문에 졌다는 생각이 든다. 세트가 공을 더 멋지게 올려주고, 또 하상준 교장에게도 공을 올려주었어야 했다며 뒤늦은 후회를 했다. 블로킹도 더 확실하게 잡을 수도 있었는데.
12. 11. 목
손님 그리고 밀양교육상 후보선정위원회 참석
11시에 안실련 회원들이 교통시설 관계로 찾아온다기에 기다렸더니 시간 맞춰 찾아온다. 4명이 왔는데 모두 미인이다. 우리 학교 스쿨존의 취약점을 이야기하고 곧 대책위원회 회의를 갖자는데 합의를 보았다.
마치고 나니 이민지 교장이 수련활동 관계로 역시 찾아왔다. 고마운 분이지만 부담이 된다. 마침 점심시간이 되어 우리 급식소에서 미인들과 식사하려 했는데 대화하느라 결국은 이민지교장과 점심을 역시 우리 급식소에서 먹었다.
점심 먹고 나오다가 보고 싶던 황경서를 만났다. 그리고 김민주도 만났다. 오늘 행운이다. 두 아이는 같은 학교 안에 있어도 늘 보고 싶은 아이들이다. 그런데 만나지 못하다가 오늘 우연히 만났다.
3시부터는 교육청에서 밀양교육상 후보선정을 위해 모임을 가졌다. 심사하기 전에 관리과장실을 찾아가 우리 학교 기능직 교육장상 수상을 위해 부탁 드렸다. 알고 보니 진양 나동 사람이다. 황두자장학사가 나를 찾아 그리로 와 교육과장실로 갔다. 밀양초교장, 무안중교장 등 심사위원들이 많이 와 있었다. 후보는 한 사람 올라와 있어 적부 판단만 하면 되었다. 두 사람 이상 올라와 있어야 재미있을 텐데 하고 내가 말을 해서 웃었다.
마치고 나올 때 무안중 교장은 내년 2월에 정년이냐고 물으면서 밀양교육의 별이 사라진다고 해서 무안중 교장이 별이라고 말했다.
12. 19. 금
등교지도
아침 기온은 꽤 춥다. 어제는 둘이서 교통지도를 하더니 오늘은 선생님 혼자서 교통지도를 하고 있다. 아이들이 두툼한 옷을 입고, 등교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추운 중에도 인사를 곧잘 한다. 그 중 희성이가 곁에 오더니 붉은색 카드를 전해 준다. 웬 거냐고 묻자 오늘 방학식을 하면 못 만날 거라며 편지를 썼단다.
새봄이는 오늘도 보인다.
“새봄이는 왜 날마다 건너가려고 서 있니?”
“친구 만나러 가는데요.”
호루라기 몇 번 바뀌고 보니 여학생 둘이 선다. 가만히 보니 아는 아이다.
“너 지영이 맞지?”
“예.”
하며 기쁜 얼굴이다. 지영이는 저번 골마루에서 주희는 알아보고 자기는 이름을 모르니까 이상하다는 듯 그리고 기분 나쁘다는 듯
“주희는 어떻게 알면서 저 이름을 몰라요?”
하면서 자꾸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럴 수도 있지. 주희는 상남의 제자 주희가 있으니까 같은 이름의 아이가 누군지 눈여겨봤고, 지영이는 한번 알았다가 곧 잊어버렸다. 내가 생각할 때는 지영이가 이상한 아이였다.
그러다가 이번 학력평가 결과를 훑어보다가 이해를 하였다. 지영이는 퍽 공부를 잘 하는 아이였고, 주희는 그저 그런 성적이었다. 그러니까 지영이가 불만을 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