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카페에 갔는데 그곳에 흔들의자가 야외에 설치되어 있더군요.
이 의자에 앉아 보았습니다.
생각보다 편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에 너무 편안하고 약간씩 흔들리는 움직임에 저도 모르게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제 일행이 깨우지 않았으면 아마 한참을 이 의자에 앉아 잠을 자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이 카페에서의 모임을 마친 뒤에 지인의 차를 타고서 집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길이 너무 막히는 것입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조금씩밖에 앞으로 전진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이 차 안에서 또 졸았습니다.
이 지인께서는 “신부님, 정말로 피곤하신가봐요. 카페의 흔들의자에서도 주무시고,
이 차 안에서도 꾸벅꾸벅 조시는 것을 보니 말이에요.”라고 말씀하십니다.
부끄럽기도 하고, 또한 운전하시는 분에게 죄송스런 마음도 생겼지요.
사실 저는 평소에 낮잠을 잘 자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잠이 왔던 것은 무엇일까요?
앞으로 나아가지 않기 때문이지요.
제자리에서 흔들거리는 흔들의자, 조금씩만 앞으로 가는 차.
모두가 진행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머물기 때문에 몸의 긴장이 풀어지고 졸음이 온 것입니다.
목표의식 없이 살아가는 것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지금의 자리에만 머물려는 나태한 마음, 편한 것만 찾으려는 안일한 마음.
결국 어떤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없는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는 삶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사랑의 실천도 이와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주님께서 얼마나 적극적으로 사랑을 실천하라고 말씀하시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원수도 사랑하면서 남이 우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남에게 해주라고 하십니다.
더군다나 남을 심판하지도, 단죄하지도 말라고 하시면서 하느님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자비로운 사람이 될 것을 명령하십니다.
얼마나 적극적인 사랑의 실천입니까?
불가능하게만 보이는 모습,
이렇게 살아서는 험난한 이 세상을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 사람들에게 받을 것을 생각하지 말고,
하느님 아버지께 받을 것을 생각한다면 그러한 적극적인 사랑의 실천이 필요하다고 하십니다.
이러한 적극적인 사랑의 실천보다는 지금의 자리에 머물려는
나태하고 안일한 마음으로 자기 사랑만을 고집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하느님 나라라는 특별한 목표 의식 없이
주님의 뜻과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은 전 세계에 생명의 소중함과 국가적ㆍ사회적으로 증가되고 있는
자살문제의 심각성을 널리 알리고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을 위해 제정한 세계자살예방의 날입니다.
특별히 우리나라는 이 자살 문제가 아주 심각하지요.
그만큼 경제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들고 어려운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는 우리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을 쏟아 부어 줄 나의 이웃을 찾아보는 오늘이 되었으면 합니다.
첫댓글 신부님~정말 멋지게 사시네요~
신부님 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