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31.月. 맑고 푸르고 서쪽 하늘을 한번 쳐다보고
12월30일,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2.
여보세요, 일요법회 앵커맨 밸라거사입니다.
사람들 중에는 개를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과 개에 대해 이도저도 관심이 없는 사람이 있다. 사람들 중에는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과 개를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과 개에 대해 이도저도 반응이 없는 사람이 있다.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과 개에 대해 이도저도 반응이 없는 사람은 그럴 수도 있으려니 생각하는데, 어떤 개든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을 보면 참 특별한 사람이다 하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한 보살님이 그랬다. 언쟁이 고개부터 구불구불 이어지는 편백나무 숲길을 따라 내려오면 아랫마을에 이르기 전에 외딴 인가人家 한 채가 나타나는데 주변의 너른 밭도 경작하지만 개도 여러 마리 기르고 있어서 길 굽이를 돌아서기 전부터 인기척을 듣고 짖어대는 여러 마리 개소리로 주변이 다소 소란스러워지고는 했다. 그 중에서도 숲길 가장 가까운 곳에 매어둔 세퍼트는 덩치가 크기도 하려니와 목청이 높고 표정도 험상궂어서 편백나무 숲길을 걸을 때마다 은근히 난코스로 지목되는 곳이었다. 그래서 그쯤에서는 세퍼트를 매어두고 있는 끈을 유심히 쳐다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걸음이 조금씩 빨라지는데 그럴수록 세퍼트는 의기양양해져서 두 발을 높이 쳐들고 금방이라도 달려들 기세로 펄쩍펄쩍 뛰어오르기 마련이었다. 그 하고 많은 날 중 하필 이 시간 이 장소에서 세퍼트를 매어둔 끈이 끊길 리는 없겠지만.. 없겠지만.. 하면서도 누런 끈에 의지하는 바람과 소망이 구르는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쇠로 부인할 수는 없었다.
물론 그 날도 그랬다. 등이 새까만 세퍼트가 길길이 뛰면서 짖어대기 시작을 했고 그 개소리에 장단을 맞추듯 크고 작은 주변 개들이 함께 컹컹~ 짖어대는 개소리를 들으면서 겉으로 태연을 가장하고 잰 걸음으로 그곳을 통과하고 있었다. 그런데 순간 우리 일행 중 40대의 젊은 보살님이 오던 걸음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세퍼트 앞으로 걸어갔다. 나는 무슨 일인지 의아해하면서도 일단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 걸음을 멈추고 그쪽을 주시했다. 그러자 뒤를 따라오던 다른 보살님들이 어머.. 어머.. 하고는 불안한 소리를 억누르면서 모두 그쪽을 쳐다보게 되었다. 그 젊은 보살님은 세퍼트 앞으로 다가가서 마치 자신이 기르는 개처럼 스스럼없이 손을 쑥 뻗어 개를 쓰다듬기 시작했고 거짓말처럼 세퍼트는 꼬리를 살랑 살랑 흔들면서 머리를 쓰다듬는 손을 볼로 문지르고 혀로 핥기 시작했다. 세퍼트가 짖기를 멈추자 다른 개들도 덩달아 짖기를 멈추게 되고 주위는 원래 편백나무 숲길의 고요한 그리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바로 되찾았다. 대략 삼사 분가량 선선한 골바람을 대하듯 세퍼트와 우정 어린 교감交感을 마친 보살님이 다시 길로 들어서자 우리들은 자연스럽게 편백나무 숲길 산책을 이어갔다. 이상하기도 했지만 신기하기도 해서 젊은 보살님께 물어보았더니 작은 목소리로 의외의 대답을 해주었다. 자신은 개든 고양이든 무섭거나 두렵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크고 사나운 개를 보더라도 그 개를 쳐다보면 그 개의 강아지 적 모습이 들여다보여 예쁘고 귀여운 마음에 그렇게 스스럼없이 머리를 쓰다듬고 등을 만져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젊은 보살님의 따스한 손길이 맹견猛犬으로 명성이 자자한 핏볼 테리어나 로트 와일러에게도 통할는지 모르겠지만 처음 보는 거칠고 사나운 세퍼트를 대하는 태도로 봐서는 개의 종류와는 무관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예 야생野生의 굶주린 이리나 늑대라면 몰라도. 그 젊은 보살님을 스님과 함께 두세 번인가 만나보았는데 수덕사 황하루 아래서, 그리고 편백나무 숲길에서 산책을 하면서 또 한 번으로 별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다. 글쓰기와 기도를 좋아한다는데 화장기 없는 얼굴과 수수한 외모에 길고 검은 단발머리가 조금 인상적인 보살님이었다.
다시 암자로 오르는 비탈길로 들어섰다. 길 왼편으로 두어 채 오른편으로 두어 채 인가人家가 있는데 오른편 안쪽으로 단정한 채마밭이 앞으로 펼쳐있는 양옥집이 여래손보살님 댁이었다. 우리들은 여래손보살님 댁으로 몰려 들어가 넓지만 약간 쌀쌀한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보살님께서 병 채로 내와 한 잔씩 따라주는 복분자즙覆盆子汁을 마셨다. 속설俗說에 복분자즙을 마시면 그날 밤 뿜어내는 오줌발에 요강이 뒤집어진다고 했으나 나는 밤에 요강을 쓰지 않으므로 뒤집힌 요강을 확인해볼 수는 없었다. 글쎄 어쩌다 한 번 한 컵 정도 마시고 그렇다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줌이란 신장에서 만들어지면 수뇨관을 지나 방광에 저장되었다가 일정량이 모아지면 전립선을 지나 요도를 통해 밖으로 배출되는데 요강이 뒤집힐 만큼 강력한 오줌발이라면 요압尿壓으로 인해 전립선염이나 요도염을 일으키기에 충분할 터이니 한 잔의 복분자즙 효능으로 요강을 뒤엎기보다는 차라리 고요하고 부드러운 배출을 선호하고 싶어졌다. 여래손보살님이 한 잔 더 마실 분!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 나는 슬그머니 잔을 내려놓고는 거실 창을 통해 밀려드는 채마밭 너머의 검은 숲과 하얀 산등성이의 신박한 겨울날 풍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언쟁이 고개에서 마을 입구까지는 슬렁슬렁 내려가는 길이었지만 여래손보살님 댁에서 암자까지는 줄곧 비스듬한 오르막길이었다. 대략 걸어서 이십여 분 걸리는 숲길을 따라 오르다보면 어느 틈엔가 등에 땀이 초근히 배일정도가 되었다. 훈훈해진 몸으로 절에 들어가 공양간에 놓아둔 물건을 챙겨들고 돌계단 옆 주차장으로 다시 내려와 오늘 저녁식사 준비를 해주시는 화락화보살님 댁으로 향했다. 면사무소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켜놓고 역시 마당의 채마밭이 깔끔하게 정리되어있는 화락화보살님 댁으로 들어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먼저 도착한 거사님들과 보살님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안쪽에서 밀물되어 밀려나왔다. 보살님 아드님이 낚시를 해온 싱싱한 주꾸미 파티를 한다고 했는데 두 개를 이어서 차려놓은 교자상交子床에는 커다란 접시에 물오른 주꾸미가 가득가득 담겨있었다.
뜨거운 육수에 살짝 데쳐내어 꽃처럼 오므라진 주꾸미를 초장에 찍어먹는 맛도 혀끝에 살아 있었지만 살이 통통하게 담긴 간장게장과 고추장 소스 범벅인 주꾸미 삼겹살볶음도 무척이나 맛이가 있었다. 팥을 넣어 지은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팥밥에다 김장김치를 얹어놓고 하얀 김을 후후~ 불어가며 수저 가득 한입 밀어 넣은 뒤 주꾸미 삼겹살볶음이나 간장게장을 발라먹는 맛이 점심공양으로 먹었던 산채 뷔페와는 또 다른 미각味覺과 풍취風趣를 자아내주었다. 화락화보살님께서 잠시 머뭇거리시다 혹시 곡차를 드실 분이 있으면 담가놓은 양귀비술이 있는데 한 잔씩 맛보시려느냐고 물어보셨다. 그 술을 한 잔 먹으면 그날 밤 꿈에 양귀비楊貴妃가 나온다는 말을 듣고서야 사나이 체면에 묵언默言으로 사양할 수만은 없어서 한 잔 두 잔 석 잔을 마셔보았다. 그날 밤 꿈에 딱히 양귀비가 나오지는 않았으나 뭔가 붉고 애로틱한 분위기의 꿈 덕분에 밤새 즐거웠던 것 같았다. 양귀비楊貴妃는 당나라 6대 현종의 총희였던 당대의 권세가였는데 서시西施, 왕소군王昭君, 초선初禪과 더불어 중국 사대 미녀美女라고 알려져 있으나 서력 8세기 중반의 중국 미인이란 광대뼈가 약간 튀어나오고 통통한 몸집이었을 테니 역시나 한국의 평균 미모인 뭇 보살님들만 화용월태花容月態가 미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