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바둑 실력은 타이젬 5, 6단 정도다. 아마추어 1,
2단 정도 되는 것 같다. 프로하고 접바둑을 둔다면 7점이면
해 볼만 하고 9점이면 이길 수 있다고 믿고 있지만 나만의 착각일 가능성도 크다. 따라서 남들 앞에서 바둑에 대해 떠들만한 실력이 아니다. 하지만
왕초보들에게는 영양가 있는 조언을 몇 가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둑을 두는 사람은 누구나 “바둑이 늘었으면
좋겠다”라고 이야기한다. 어느 정도 실력이 되면 더 잘 두기가 매우 힘들지만 왕초보 또는 초보자들은
조금만 노력하면 어느 정도까지는 금방 실력이 는다. 이 글에서는 그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
1. 바둑을 잘 두려면 실전을 많이 쌓아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보다 훨씬 더 잘 두는 사람(4점 접바둑으로도 이기기 힘든 사람)과 둔 후 복기까지 받는 것이다. 하지만 친구나 아버지가 바둑 고수거나
돈이 많지 않은 이상 이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지금은 인터넷 바둑 덕분에 언제든 자신과
실력이 비슷한 사람과 바둑을 둘 수 있다.
2. 인터넷 바둑을 둘 때에는 가능하면 초읽기 1분으로
설정하고 두는 것이 좋다. 보통 초읽기 30초로 두기 때문에 1분으로 설정하면 상대가 잘 응하지 않는다. 하지만 100명 중 20명 이상 정도는 그렇게 설정해도 두어 주는 것 같다. 조금만 인내심이 있으면 된다. 1, 2분 정도만 참으면서 1분으로 계속 신청하면 누군가 응해준다.
30초 바둑으로는 제대로 생각하기 힘들다. 반면 1분이면 꽤 생각하면서 둘 수 있다. 그리고 생각 없이 두면 바둑이
늘지 않는다. 바둑이 늘고 싶으면 최대한 장고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열심히 바둑을 두면 인터넷 급수가
자신의 실력보다 1급 정도 높아진다. 왜냐하면 다들 바둑을
별로 열심히 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자신보다 실력이 나은 사람과 둘 수 있기 때문에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
인터넷 바둑 사이트 중에는 타이젬, 사이버오로, 한게임, 넷마블(바둑nTV) 등이 유명하다. 그
중에 단연 타이젬이 실력 면에서 돋보인다. 같은 5단 중에
타이젬 5단이 가장 세다. 인터넷 바둑 사이트에는 9단까지밖에 없기 때문에 타이젬이 가장 세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세계적인
고수들이 타이젬에서 가장 많이 두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왕초보나 초보한테는 별로 상관 없는 이야기다.
3. 시간 여유가 있다면(초읽기 때문에 시간패
당할 상황이 아니라면) 어디에 둘지 미리 생각을 한 후 돌(또는
마우스)을 잡아야 한다. 그리고 절대 물리지 말아야 한다. 인터넷 바둑의 경우 물리지 못하도록 설정한 후 두어야 한다. 아무리
어이없는 실수라도 “한 번 실수하면 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머리 속에 박혀야 더 신중하게 둘 수 있다. 대충
두면서 실수하면 물리는 식으로 두면 실력이 늘기 힘들다.
4. 물론 고수와 함께 복기하는 것이 좋지만 혼자서라도 복기를 해야 한다. 적어도 진 바둑은 복기를 하는 것이 좋다. 복기를 하다 보면 자기가
보아도 안 좋은 수라는 것을 깨달을 때가 많다.
5. 바둑 TV가 큰 도움이 된다. 바둑 TV의 프로그램은 두 종류로 나뉜다. 강좌 프로그램과 실전 프로그램. 자신의 실력에 맞는 강좌 프로그램을
꾸준히 보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실전 프로그램의 경우 되도록 프로 바둑을
보는 것이 좋다. 어차피 왕초보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아마추어 고수의 바둑도 충분히 모방할 만하지만
이왕이면 프로의 바둑을 모방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그리고 속기 바둑 중계를 보는 것이 좋다(보통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 걸린다). 장고 바둑의 경우 복기 생방송이거나 그냥 복기
방송이다. 복기 생방송의 경우 초반 진행을 빠르게 복기해 준 후 중후반을 생중계한다. 그래서 균형이 안 맞는다. 그리고 시간이 너무 길다. 그냥 복기해 주는 경우에는 진행이 너무 빨라서 따라가기 힘들다. 속기
바둑 중에 <한국 바둑 리그>는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올해부터는 두 판을 동시에 생중계해준다. 이판
저판 옮겨 다니면서 중계해주기 때문에 정신 사나워서 공부하기는 힘들다.
6. 바둑책을 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일단 초보자의 경우 수읽기 문제집(맥, 사활, 수상전 등)부터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 때 편집이 어떻게 되었는지 살펴야
한다. 페이지를 넘겨야 정답이 보이는 방식의 편집이 좋다. 왜냐하면
정답을 보지 않고 스스로 풀어본 후 정답을 보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이것은 매우 상식적인 편집인데
이렇게 편집하지 않은 책이 많다.
<기경중묘>, <현현기경>, <관자보>, <위기발양론> 같은 좋은 고전이 있지만 초보자에게는 너무 어려워서 그림의 떡일 뿐이다.
책 중간 중간에 있는 문제들을 본 후 자신이
몇 분 정도 생각하면 풀 가능성이 있는 문제인지 여부를 살펴야 한다. 너무 쉬워서 몇 초 만에 풀 수
있거나 너무 어려워서 10분을 들여다 보아도 도저히 풀릴 가망성이 없어 보이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유명 프로기사의 이름을 보고 책을 고르지
말아야 한다. 프로기사는 이름만 빌려주는 경우가 허다해 보인다. 이런
관행은 없어져야 한다.
끝내기 책은 적어도 한 권을 꼭 보아야
한다. 쉬운 끝내기 책 한 권을 소화하면 끝내기 왕초보에서 거의 끝내기 중수로 도약할 수 있다.
가능하면
500쪽이 넘는 정석책 한 권 정도는 보는 것이 좋다. 한국의 프로 기사들이 모여서 몇
년 동안 정석 대사전, 중사전 등을 만들었으면 하는 것이 내 소원인데 아직 그런 움직임은 없어 보인다. 왜 이렇게 중요한 작업을 안 하는지 모르겠다.
인터넷 바둑 사이트에 정석을 정리해 놓았으니까
자신이 바둑을 두다가 부닥치는 정석을 복기할 때마다 찾아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내가 본 사활 책 중에는 6권 짜리 <이창호 사활 산책>이
왕초보 문제부터 상당히 어려운 문제까지 잘 모아 놓은 것 같다. 반면
6권 짜리 <이창호의 맥 산책>은
볼 만은 하지만 그리 정제된 문제 모음은 아닌 것 같다. 어쨌든 왕초보는 <이창호의 맥 산책>만큼 쉬우면서도 더 알찬 책을 구하기
쉬울 것 같지는 않다. <유창혁 왕초보 수상전 입문>은
왕초보만을 위한 책이다.
함정수 사전류나 포석 사전류는 초보자가
보기에는 너무 어렵다. 정석책을 어느 정도 본 후 도전해 보는 것이 좋다. 기보를 모아 놓은 책도 초보자에게는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바둑
TV의 속기 바둑 해설을 보는 것이 훨씬 낫다.
한국기원(http://www.baduk.or.kr)에서 바둑책을 판다고 하던데 가 본 적은 없다. 대형서점의 바둑 코너에 가서
한 시간 정도 살펴본 후 고르면 초중급자에게는 충분할 것 같다.
나보다 바둑에 대해 더 잘 아시는 분이
댓글로 좋은 내용을 추가하거나 잘못된 부분을 지적해 주셨으면 한다.
이덕하
2012-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