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역이 너를 바꿔 놓았구나.”
- 조태성
[아메리칸 스나이퍼]라는 영화가 있다. 크리스 카일이라는 미국 이라크 참전용사의 실화를 영화로 제작했다. 그는 총 1000일에 걸쳐 4회의 파병근무를 다녀왔다. 전쟁을 치르는 동안 그는 미국 역사상 최고의 전설적인 저격수로 레전드라 불리우며 칭송받았다. 위험한 전투 속에서도 160여명의 적군을 저격하여 죽였다. 테러 단체들도 천문학적인 현상금을 걸 정도였다.
1.
크리스 카일은 어릴 적부터 아버지에게 사냥을 교육받았다. 어른보다 사냥을 잘했고 “다른 사람을 지켜주는 사람이 되라.”는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충실히 살아왔다. 텍사스에서 카우보이로 명성을 날리던 카일은 전 세계에서 테러들로 미국인들이 공격받는 뉴스를 보고 충격을 받는다. 특히, 911테러를 보고 크게 분노했다. 애국심으로 30세에 네이비씰 특전사 부대에 지원한다. 고된 훈련을 통과하고 군인으로서는 할아버지라고 불리는 30세의 나이에 선발 된 크리스 카일은 저격수가 되었다.
결혼하자마자 이라크로 파병을 떠났는데 첫 임무를 나갔다. 지붕 위에서 저격 준비를 하며 아군의 장갑차와 보병 부대가 지나가는 마을을 세밀하게 관찰한다. 갑자기 건물의 한쪽 문이 열리며 수녀복장을 한 엄마와 아들이 천천히 도로로 나온다. 엄마는 어린 아들에게 대전차용 폭탄을 주고는 던지고 오라고 한다. 이 모습을 주인공은 계속 보고 있다. 던지기 직전에 크리스 카일은 폭탄을 들고 뛰는 아이를 저격한다. 그러자 그 아이 엄마가 다가와 폭탄을 대신 들고 달리는데 다시 저격해서 사살한다.
2.
파병근무를 반복하며 중간에 한 번씩 미국 자기 집에 돌아왔을 때 아내는 남편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크리스 카일 자신은 강한 사람이기에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렇지 않음을 주변 사람들이 먼저 느낀다. 그리고 본인도 점점 불안증과 무기력증, 동료들의 사고와 죽음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며 그의 정신세계는 무너져 내린다.
꺼진 TV를 보면서 화면 안에 전투중인 자신과 적군들이 보인다. 아내와 산부인과에 운전하며 갈 때도 누가 미행하는지 계속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인상을 쓰고 긴장감 있게 살핀다. 도로 공사 중에 들리는 드릴 소리가 총탄 소리로 들리며 깜짝 놀란다. 아들을 넘어뜨리고 장난치는 강아지를 죽일 기세로 달려든다. 병원에서 혈압을 재니 커피 14잔 마신 직후의 상태가 관찰된다. 아내가 걱정 된 나머지 이렇게 말한다.
3.
“전쟁이 당신을 바꿔놨어. 당신은 여기 있고 당신을 느낄 수 있지만 당신은 여기 없어.”
그런데 그녀의 이야기가 참으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마치 성령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만 같다.
“사역이 너를 바꿔 놓았구나.”
안타깝게도 여기에 해당되는 사역자들, 성도들이 의외로 많다. 최근 뉴스에 떠들썩한 대형교회의 이상한 제자훈련이 충격을 준다. 인분을 먹는 훈련, 공동묘지에서 39대의 허리띠 채찍질, 잠 못 자게 하기 등 사이비들이나 할 법한 내용들이다. 더군다나 그 교회가 우리 교회에서 차로 10분 거리이며 같은 동대문구다.
4.
너무나 많은 분들이 사역의 피해자들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산다고 하면서 ‘영광’ 자체가 목적이 된 사람들이다. 잘못된 목적이 이끄는 삶의 피해자들이다. 영적 트라우마에 빠진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말한다.
“이 교회는 나 아니면 안돼!”
“이 사역은 나 아니면 안돼!”
“이 고민은 내가 해결하지 않으면 안돼!”
아니다. 우리 교회는 나 아니어도 된다. 내게 맡겨주신 사역도 얼마든지 하나님께서는 더 훌륭한 분들 세우셔서 더 잘 하게 하실 수 있으시다.
5.
사역때문에 변질된 사람은 하나님 영광을 입에 담으며 욕망을 비전으로 둔갑시킨다. 스토킹적인 집착을 영혼사랑으로 둔갑시킨다. 그러나 정작 자신에게 선물과 책임감으로 부여하신 가정과 직장, 사람은 하찮게 여긴다. 심지어 예배를 자신의 봉사보다 하찮게 여기기도 한다. 성도의 교제를 하찮게 여긴다. 사역을 위해 주변 모든 영혼들과 자원들을 도구로 이용한다. 부품처럼 쓰고 버린다. 죄책감 없이 말이다. 전부 사역의 피해자들이다. 사역 때문에 변질된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 가운데 극심한 사람들은 자신의 모든 삶의 순간을 자신이 빠져있는 사역과 동일시한다. 영적전투에 빠져있는 사람들은 모든 삶의 순간이 전투인 것처럼 말이다. 땅 밟기에 빠지면 그게 전부인 줄 안다. 이스라엘 회복 운동에 빠지면 그게 전부인 줄 안다. 북한 선교에 빠지면 그게 전부인 줄 안다. 그리고 자신의 신학과 사역에 대한 자긍심, 애착이 다른 사람들을 무시한다. 불쌍하게 여기거나 원수처럼 여긴다. 심지어는 구원받지 못한, 구원받아서는 안 될 존재처럼 바라본다.
6.
크리스 카일이 전쟁 후유증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돕는 국가보훈처 의사를 만나서 상담을 한다. 의사가 질문한다.
“당신은 많은 사람들을 죽여서 후회하나요?”
“아니요. 저는 달라요. 제가 후회하는 건 더 많은 전우들을 구하지 못해서 후회됩니다.”
“이 병원에도 당신이 구해줄 수 있는 전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같이 만나러 가 보실래요?”
“좋죠.”
거기서 전쟁 중에 신체 절단 같은 장애로 마음과 몸에 상처받은 전우들을 만난다. 카일은 전쟁영웅이었기에 다른 퇴역군인들이 그를 매우 존경하며 따른다. 그에게서 위로를 받는다. 그렇게 트라우마의 전쟁이 끝났다. 가정에 화평이 찾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에 사는 퇴역군인과 상담을 하러 나갔는데 카일은 그 사람에게 총으로 살해당한다. 전쟁영웅을 질투하고 시기한 어느 퇴역군인에 의해서 말이다. 그 퇴역군인도 전쟁의 피해자였던 거다.
7.
영화는 이렇게 여운과 아픔, 먹먹함을 주고 끝났지만 참으로 귀한 교훈을 받았던 것 같다. 나 자신이 뭐가 중요한지 돌아보게 된다.
자주 나누듯이 사역보다 예수님과의 친밀한 관계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성령님과 인격적으로 동행하는 관계를 추구하는 것이 내게 중요하다.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작성하면서 우리 교회 의자에 앉아 다시금 점검해본다.
“나는 지금 오늘 금요예배 인도자, 설교자로 나와 있는가? 아니면 나는 금요예배에 자녀로 예배자로 나와 있는가?”
감사하게도 하나님을 위한 사역보다 하나님을 사랑하시는 분들이 많다. 사역으로 유명해지기보다 무명한 사역이어도 예수님만 드러내시는 분들이 곳곳에 숨겨진 보석처럼 계신다. 많은 사역 보다 내게 맡겨주신 양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시는 분들이 존경스럽다.
오늘도 사역으로 변질되지 않고자 부지런히 예수님을 바라보시는 분들을 응원한다. 자신의 힘이 아닌 성령님과의 친밀한 관계에서 공급받는 힘으로 살며 사랑하시는 분들을 응원한다. 할렐루야~!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
첫댓글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