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무장 전투요원
---(팟캐스트 방송)---
http://cdn.podbbang.com/data1/chunsd/200531.mp3
---(감우(甘雨) 라디오/TV)---
http://gamwoo.tv/raincol-36/
신군부가 정권을 잡고 있던 제5공화국 시절에 나는 경기도 연천에 있는 한 공병 부대에서 군 생활을 했다. 반독재 민주화 운동으로 전국이 최루탄 가스로 몸살을 앓던 그 시절 나는 반독재나 민주화가 아닌 신앙 양심을 위한 투쟁을 하다가 운명에도 없는 군대영창 신세를 졌다. 나는 오늘 잠시 동안이었지만 입창 조치되었던 바로 그 헌병대에 앞에서 아내와 함께 비빔국수를 먹었다. 당시에는 아주 작은 구멍가게였는데 지금은 여러 곳에 분점을 가진 큰 식당이 되었다.
사실 내가 군 입대를 하던 시절에는 재림교회의 비무장 전투요원 신념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했었다. 물론 병기로 사람을 죽이는 살인은 그 상대가 누구든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있었지만 집총을 거부하다가 감옥살이를 하던 선배들과는 달리 가정에서 다루는 식칼도 사람을 죽이는데 사용하면 살인 무기지만 병기도 사람을 향해 발포하지 않으면 그냥 전쟁을 방지하는 평화를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어설픈 타협을 이미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러니 그리스도인으로써 여섯 번째 계명은 지나치고 네 번째 계명이었던 안식일 문제에 집중하고 있었다. 주 5일 근무제가 아직 시행되기 전이었기에 신앙 양심에 따라 군대에서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부대장의 특별한 배려가 아니면 가능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 부대장은 사병의 신앙 양심 따위를 지켜 줄 마음이 없었던 것 같다. 결국 영창이 아니면 넘을 수 없는 벽이라는 것을 직감한 나는 부대장에게 직접 찾아가서 허락이 아닌 요구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날부로 나는 5사단 헌병대(군대경찰)에 입창 조치되었다. 이후 부대장은 군법회의 운운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 나에게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다. 그는 “너는 고양이고 나는 쥐인데 고양이가 쥐를 몰아도 도망갈 구멍을 주고 몰아야지”라는 말로 나를 영창에 보냈던 자신의 결정을 변명하면서 다른 부대로 전임을 갔다.
그 후 우리 부대에서 나에게 안식일 문제로 시비를 거는 장교나 병사는 아무도 없었다. 금요일 오후면 전투복을 깨끗하게 준비해서 안식일 아침이면 부대원들을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면서 외출을 나갔다가 해가 지면 부대로 돌아왔다. 당시에 호남 신학대학 출신의 선임 상병 하나가 자신은 일요일에도 교회를 못 가는데 안식일마다 어김없이 부대 밖으로 교회를 나가는 나를 못마땅해 했지만 나는 전혀 괘념치 않았다. 팀스피릿 훈련이 있던 해에는 경기도 이천 근방에서 훈련이 진행되었다. 그때도 나는 완전군장을 한 채로 인근에 있던 작은 예배소로 나가서 예배를 드렸다.
그렇게 나의 군 생활은 여단장 표창 2번, 분대장 교육 최우수상을 수상하면서 나름 의미 있고 어렵지 않게 마쳐졌다. 그러나 군 전역 후에 나는 재림교회의 비무장 전투정신에 대한 서적을 읽음으로 자랑스럽던 군 생활은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기억으로 뒤바뀌고 말았다. 그래서 그동안 30년이 넘도록 한 번도 그 부대를 찾아가지 않았다. 누군가 나에게 재림교회의 비무장 전투 신념에 대하여 한 번이라도 제대로 알려주었더라면 나는 기꺼이 총을 들기 보다는 군 형무소를 선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들은 이야기는 재림교회가 가진 숭고한 비무장 비폭력 신념이 아니라 양심적 선택이라는 타협이었다. 재림교회는 국가와 국민의 의무를 하나님의 법 안에서 언제나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교단이다. 따라서 국방의 의무도 기꺼이 준수하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수용한다. 하지만 전투에 나갈 때에도 사람을 죽이는 전투가 아닌 사람을 살리는 전투병으로 참여하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그런 재림교회의 비무장 신념을 영화로 제작한 것이 2016년에 개봉한 멜깁슨의 “핵소고지”라는 영화다. 태평양 전쟁당시 일본의 오키나와 마에다 벼랑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총 한 자루 들지 않았지만 일본군의 총탄이 쏟아지는 전투 현장에서 홀로 75명의 부상자를 옮겨 벼랑 아래로 운반한 데스몬드 도스는 재림교인 청년이었다. 그는 재림교회의 비무장 신앙 양심에 따라서 전투에 참가했고 단지 총도 못 잡는 비겁한 겁쟁이가 아니라 진정으로 생명을 사랑하고 아끼는 영웅이었다는 것을 보여준 감동적인 영화였다.
물론 총을 잡을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주체는 각 개인이 되어야 한다. 그 누구도 신념을 강요해서도 강요당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우리가 가진 숭고한 비무장 신념을 가르치고 바르게 이야기 해주는 것은 믿음의 선배 된 사람들과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책임이며 또한 의무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신념을 수많은 젊은이들이 이어갈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