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혈창루 血槍淚와 12지살 十二指殺
노루 가죽옷을 입은 반백 노인이 모용 척이라는 창술의 대가 大家다.
갈색 머리, 설태 누차도 모용 노인에게서 창술을 전수 받았다.
모용척 노인이 젊은 시절,
한 군에 포로로 잡혀 끌려가는 동료 다섯 명을 구하기 위하여, 혈혈단신 孑孑單身으로 적진에 침투하여 한 자루 창으로 적군 십여 명을 물리치고, 동료를 구해온 일화는 아직도 슝노족 사이에서는 술자리 안주로 회자 膾炙되고 있었다.
적을 물리치고 아군 포로들을 풀어줄 때 상황이 다급하여, 무디어진 창날 끝으로 포로들의 포승줄을 끊었는데, 그 당시 창끝에서는 끊이지 않고 붉은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당시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가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마치,
붉은 창날이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보였다.
혈창지루 血槍之淚.
그래서 별호 別號가 혈창루 血槍淚이다.
그 후 모용척의 뛰어난 창술을 일컬어 ‘혈창지술 血槍之術’ ‘혈창루술 血槍淚術’이란 무공 초식명으로 별도로 불리우게 되었다.
모용 노인의 무용담 武勇談을 전해 들은 설태 누차의 부친인 설걸우 천부장이 모용 노인을 설태 누차의 창술 사부로 초빙하였다.
그렇게 설태누차는 혈창루 모용척의 수제자가 되었다.
어수선한 분위기가 가라앉자 그제야 향기는 정지간에서 아궁이에 불을 지핀다.
푸른 연기가 굴뚝으로 나와 하늘거리며 허공으로 올라간다.
굴뚝으로 나오는 파란 연기를 확인한 두 노인은 “어 험~ 험”하며 멋쩍게 헛기침을 두어번 하더니, 다시 바둑판 앞에 정좌한다.
이번엔 백두옹이 장고에 빠져든다.
상대가 미생마 未生馬에 가일수 加一手하여 완생 完生하거나 아니면 변의 큰 끝내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대마를 포위하고 있는 자신의 약점을 노리고, 오히려 역습 逆襲하고 나오니 또 다른 고민거리가 불거졌다.
자칫 잘 못 응수하면 상대의 미생마가 선수 先手로 완생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큰 끝내기를 상대에게 허용하게 되고, 따라서 집 수로도 모자라게 될 상황이다.
그러면 바둑도 지고 무공비급도 빼앗기고 더구나 명예까지 잃어버린다.
심란 心亂한 마음에 애꿎은 꿩 깃 부채만 자꾸 흔들어댄다.
사냥해온 야생 염소를 막바지 손질하던 석늑은 이중부와 한준을 보며,
“자네들 몸은 이제 괜찮아?”하며 묻는다.
“네, 오전까지도 온몸 여기저기가 다 아프더니만 지금은 견딜 만합니다.”
“갈색 머리 창술이 그렇게 대단한 줄은 몰랐습니다.”
“하하 그렇지, 신예 新銳 무사 중에서 갈색 머리, 설태누차의 창술이 가장 뛰어나다는 소문이 자자하지”
이중부는 거두절미하고 직설적으로 묻는다.
“아저씨와 갈색 머리 두 분 비교하면 어때요?”
“허~ 곤란한 질문이군, 사실 창술로만 따진다면 내가 많이 부족하지”
“햐~ 그토록 갈색 머리의 창술이 대단하단 말이죠?”
“그렇지” 하더니 바둑판의 두 노인을 흘깃 바라보더니 목소리를 낮추어
“저기 녹피 옷의 모용 선생님이 갈색 머리의 창술 사부님이야.” 한다.
그 소리를 들은 두 소년, 눈빛을 반짝이며 혈창루 모용 노인을 바라본다.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는 시골 할아버지 같은 노인네가 창술 실력이 그렇게 대단하다니, 존경심을 넘어 경외감 敬畏感을 느낀다.
바둑 대국만 아니라면 곧바로 절이라도 올리고 싶은데, 두 대국자의 표정들이 더없이 심각해 보인다.
두 소년의 표정을 보고 그 내심 內心을 짐작한 석늑이 한마디 더 보태어 준다.
“모용 어르신과 바둑 두고 있는 백두옹 선우 어르신의 별호가 ‘12지살’ 十二指殺이며, 궁술과 검법은 모용 어르신보다 더 뛰어난 고수 高手분이야.”
“별호가 무시무시하네요?”
“요서에 설치되었던 한사군 중 현도군을 수복할 때, 부여군의 요청으로 흉노의 지원군으로 출전했지. 흉노의 지원군 1 천 명이 출정하였는데, 선우 어르신이 선봉장을 맡았지. 때가 장마철이라 선봉 부대가 서북방에서 남쪽의 시라무렌 하를 도강 渡江할 때, 폭우로 물살이 엄청나게 세었지, 선봉대가 겨우 도강하자 상류의 폭우로 인하여 갑자기 강물이 엄청나게 불어나 중군과 후군 즉, 후속 본 부대가 급류를 피해 도강할 장소를 별도로 물색할 동안에 3백 명의 선봉대로 현도군의 1천여 명의 군사를 초전박살 내어버렸어.”
“그 적은 수로 대군을 어떻게 이겼죠?”
“백두옹 선우 어르신의 활 솜씨가 뛰어났다고 했지?”
“네”
“화살로 적장 賊將을 12명이나 쏘아 맞혔지”
“아~~”
“장수들이 죽거나 다쳐 지휘관이 없어진 적병들은 대열이 흐트러지고, 오합지졸 烏合之卒이 되어버렸지. 그때 뛰어난 검술을 발휘하는, 선후 휘 선봉장의 기마병 3백 명이 적군을 짓밟는 것으로 본 부대가 도착하기도 전에 현도군의 북서쪽 방어선을 무너뜨렸지.”
북서쪽 방어진이 무너져 우왕좌왕하는 현도군을 동쪽에서 공격하던 부여군이 손쉽게 접수해 버렸다는 것이다.
그때 얻은 선우 어르신의 별호가 ‘12지살’ 十二指殺이다.
손가락만 사용하여 12명의 적장을 없애버렸으니 무시무시한 별호가 붙은 것이다.
이중부와 한준 두 눈을 동그랗게 뜬다.
“아니 여기에 계시는 분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무림계의 고수분들만 계시네요”
“하하, 그렇다고 볼 수도 있지”
“한 나라에 한 분이 있을까 말까 하는 엄청난 고수분들이 어찌 이 벽촌 僻村, 이 좁은 곳에 쬐다 모여 계시는 거죠?”
“하하, 그러니 유유상종 類類相從이라는 말이 있지”
“그래도 좀 심한 모임 같군요”
“하하, 자네들 귀곡자 鬼谷子란 분에 대하여 아는가?”
“예, 들어 본 적은 있어요, 그런데 호칭이 섬뜩하네요”
“이제 자네들도 나이가 들어가니 다방면 多方面으로 공부를 해야 할 거야”
“네, 가르쳐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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