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서암(鶴棲庵) / 전통사찰
- 전남 완도군 생일면 유서리
1719년(숙종 45)년에 천관사(天冠寺)의 승려 화식(和湜)이 창건하였다.
1734년(영조 10)에 화식선사의 상좌승 각명이 중창, 1754년(영조 30)에 다시 지었다.
1800년(정조 24)에 신란법사가 다시 지었다. 1899년(광무 3) 유사 이승태를 중심으로 다시 지었다. 1939년 또 다시 지었다.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백양사 말사로 법맥를 잇고 있다.
(학서암 안내문참조)
1916년 평일도/생일도/금당도 등을 합하여 금일면이라 함.
1980년 금일면에서 금일읍으로승격, 금일읍생일출장소.
1989년 출장소에서 생일면으로 승격.
생일면사무소 홈페이지에서 본 자료다. 현재 주민은 약 1,000명, 아마 외지인이 다시마 관련 일로 더 많을 것이다.
조선 중기까지는 마을을 형성할만큼 많은 사람이 산 것은 아니다. 조선 후기에 사람들이 몰렸다고 한다.
그때쯤 생긴 절이라면 매우 유서가 깊은 절이다.
20년~30년마다 절을 새로 지었다는 것은 그때 절은 지금과 같이 기와가 아닌 초가였을 것이다.
지금도 집을 지을 때 돈이 많이 든다. 절도 나라나 지역에 호족이 도와주지 않으면 번듯한 절을 지을 수 없다.
보이는 산은 백운산(483m), 완도군에서 상왕산 다음으로 높다. 학서암 입구에 주차하고 걸으면 20여 분쯤 걸린다.
학서암 석조여래좌상 / 완도군 향토문화유산
복장유물에 따르면 17세기 후반 순천 송광사에서 만들었고, 어떤 연유인지 모르나 학서암에 오게 되었다.
2023년 완도군 향토문화유산으로 등재하였다.
학서암에서 보는 해맞이는 멋지다고 한다.
학서는 학이 사는 곳, 학이 머무는 곳으로 자연환경이 좋다는 뜻이며 상서로운 곳이다.
어떤 이는 백운산이 학의 형상이라 학서암이라 했다고 하지만 백운산은 학 형상이 아닌 것 같다.
2025년 2월 14일 금요일
덕암산 수향사 / 전통사찰이 아님
- 전남 완도군 고금면
수향사 목조관음보살좌상 / 전남 유형문화유산
광주 장안사에 있었으나 장안사 주지가 입적한 뒤에 폐사,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이 보살상은 18세기쯤 만든 것으로 수준 높은 작품이다.
남망산 신흥사 / 전통사찰
- 전남 완도군 완도읍 군내리
일제강점기(1935년 ?) 때 세워진 절이다.
높지 않은남망산 중턱에 자리잡은 절이며 경치가 일품이다. 밤에 오르면 완도읍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지금보다 조금 더 공원처럼 가꾼다면 주민뿐만 아니라 관광객도 많이 찾아 오겠다.
완도군은 청해진 장보고의 유적지이며 불교 관련 유물도 거의 없고, 전통사찰도 학서암과 신흥사 단 두 곳뿐이다.
백제나 신라, 고려와 조선 때는 이곳 섬들은 변방이다. 유서 깊은 절이 들어서기엔 어려움이 있는 곳이다.
신라 말 장보고는 불심이 깊은 사람은 아닌 것 같다. 그가 죽은 후엔 완도는 반역의 땅이었다.
섬, 지역민은 어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많다. 부처의 가피보다는 용왕신이 이둘에게 가깝다.
신흥사 목조약사여래좌상 / 전남 문화유산자료
원래 해남 대흥사 심적암에 있었다. 조선 후기(17세기~19세기) 불상 연구에 소중한 자료다.
삼성각
대웅보전 외벽 그림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때 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았다. 악귀는 악한 짓을 하는 사람이다.
지금도 생각하면 슬프다. 세월호침몰사건, 인간의 탐욕과 부주의가 부른 참사였다. 악귀 또한 탐욕에 찌든 사람이다.
이런저런 일로 억울하게 죽은 이와 그 유족을 달래야 한다. 산 자가 할 수 있는 선한 일이다.
이 그림은 뭘까? 노략질을 일삼는 왜구를 처단하고 곡식과 양민을 구하는 그림인 것 같다. 악귀는 왜구였다.
대웅보전 안
극락전
남망산 완도타워
2025년 2월 15일 토요일 흐리고 비가 옴.
금일도..고금도 이순신기념관/수향사..신흥사
이 사진은 2월 16일 아침, 날이 맑아서 화흥포항 가는 길에 신흥사에 들러 찍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