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 4주일 강론(다해)
범죄자와 안경
1991년 10월 한 청년이 여의도광장에서 자전거를 타고 노는 아이들을 향해 차를 몰았다.이 광란의 질주는 어린 생명 둘을 앗아갔고 열일곱 사람에게 상처를입혔다.
심한 저시력증을 앓던 스무살 청년.매우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학력이 전부였다. 그에게 사회는 냉담했다. 많은 회사들이 그가 필요할 때 잘해 주다가도 안정이 되면 시력이 좋지않다는 이유로 내쫓아버리곤 했다.수없이 일자리를 찾아다녔지만 그를 위한 자리는 없었다.그는 좌절했다.마음속에서는 야속한 세상에 대한 복수심이 일었다.
그는 굳 마음을 먹고 여의도광장 한복판에 차를 정지시켰다. 여기저기서 행복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거세게 시동을 켰다. 그리고 앞을 향해 액샐러레이터를 콱 밟았다.야속한 세상을 향한 복수는 엉뚱하게도 무고한 아이들의 희생을낳았다.
몇차례의 재판 결과 청년은 사형을 선고받았다. 재판정에는 손주를 잃은 할머니도 앉아있었다. 할머니는 재판을 받으러 나오던 그가 눈이 어두워 발을 잘 못디디는 것을 보았다. 다음날 할머니는 교도관에게 안경을 하나 내밀었다.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 밝은 세상을 볼 수 있도록 안경을 전해 주세요."
그러자 교도관은 손자를 죽인 사람에게 왜 이런 호의를 베푸느냐고 물었다.
"벌은 내가 주는 게 아니라 하늘이 주는 것이지요."
할머니는 용서의 눈빛을 보였다. 사형선고를 받은 5년 뒤,청년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5년의 세월동안 할머니가 건네준 안경으로 그가 바라본 세상은 어떠했을까? 그는 세상과 화해를 하고 떠났을까?
[월간좋은생각,2001년8월호,p.71]
용서, 그것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아름다운 선물입니다. 이 아름다운 선물을 주시고자 하느님께서는 오늘 복음(루카 15,1-3.11-32)의 되찾은 작은아들(돌아온 탕자)의 비유에서 작은아들을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극적으로 맞이하는 자비로운 아버지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이 아버지는 그동안 작은아들이 밖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결코 물어보지 않습니다. 조건 없이 용서하시고 받아들이시는 아버지의 사랑, 하느님의 사랑의 모습을 우리는 여기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되찾은 양 한 마리의 비유(루카 15,1-7)와 되찾은 은전의 비유(루카 15,8-10)연장선상에 있는 이 아름다운 이야기는 성경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아버지로서는 잃어버린 아들이 돌아왔다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벌써 모든 것을 받아들이시고 용서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보다 더 기쁜 소식은 결코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용서는 먼발치에서 그를 향해 달려 나가 그의 목을 얼싸안고 입 맞추며 하인들을 시켜 가장 좋은 옷을 입히게 하고 가락지를 끼우게 하고 신발을 신기게 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사순절은 우리 모두 잃어버린 아들이 돌아온 것처럼 우리의 이기주의, 배금주의, 물질에 대한 탐욕, 그리고 쾌락의 추구에서 벗어나 아버지께 돌아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겸허하게 고백하는 시기임을 깨닫게 해줍니다. 우리는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돌아온 탕자의 모습으로 주님의 바다같이 넓은 그 가슴에 안겨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 앞에 탕자입니다. 탕자임을 인정하고 그분 앞에 무릎 끓어 눈물을 하염없이 흘려야 합니다. 그리하여 나만의 이익을 찾고 공동체에서 벗어나 무사안일과 게으름, 불평불만, 그리고 남을 판단하고 쉽게 경멸하는 마음에서 벗어나 공동체인 하느님의 백성의 모임인 교회와 아버지 하느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과 형제들과 함께 하는 거룩하고 신명나는 기쁨의 축제의 대열에 동참해야 합니다. 하느님 앞에서 용서받지 못할 죄는 없습니다. 어떤 패륜도 흉악한 범죄도 그 죄를 인정하고 뉘우치면 용서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제 1독서 여호 5,9ㄱ.10-12에서 언급되는 바, 이스라엘 백성들이 길갈에서 수치를 벗고 파스카 축제를 지내며 40년의 광야생활을 청산하였듯이 우리도 죄를 벗고 새 하늘, 새 땅에서 하느님이 주시는 새로운 삶의 기쁨을 맛보아야 합니다. 이 기쁨을 위해서 사도 바울로가 그리스도의 사절로서 오늘 제 2 독서, 2코린 5,17-21에서 간절히 호소한 ‘하느님과의 화해’를 위해 우리의 온 마음을 쏟아야 합니다. 그러할 때 그리스도 안에서 옛것을 버리고 새 것을 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의 ‘되찾은 작은아들의 비유’ 말미에서 큰 아들처럼 아우의 회개와 무사귀환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옹졸한 태도를 버리고 늘 하느님과 함께 하는 가운데 누리는 기쁨을 당연지사로 여기지 말고 모든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참된 평화를 누리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느님께로 더 가까이 가게 하는 참된 회개의 삶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