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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 이어
야산을 내려오며 뒤를 돌아다보며 고개를 젖는 심호규였다.
[ 난 딱 자네의 선배여.]
[ 금수저도 아니고 많이 배우지도 못했는디...노래에 대한 갈망이 많았지. 십년 전까지도 꿈을 놓지 못하고 숱한 곡절을 겪어가며...]
야산을 내려와 낙후한 거리를 걷는 호규였다.
[ 서편제 동편제라고 알어? 워낙 영화가 유명해서 들어봤겠지만 섬진강 서쪽은 서편제..동쪽은 동편제라고 허지. 전라도 판소리. 집안 친척이 소리 배우러 다니는 걸 보고 귀가 떠졌는디. 경기남부와 충청도엔 중고제라고 있당게. 지금은 거의 소멸상태지만.]
슬럼화된 골목으로 접어드는 심호규였다.
[ 판소리는 나도 관심 없응게 더 들어봐. 요새 그딴 케케묵은 민요를 누가 알아줘. 하여간에 어지간히 연륜이 쌓여선지 일반가수랄지 인생론에 대해서도 깨달음이 오더란 말여 ]
문득 고개를 가로젖는 심호규였다.
'내가 지금 주정뱅이 헛소리에 신경 쓸 때가 아니잖아'
핸드폰을 꺼내 통화하는 호규
"효실아. 엊저녁은 어떻게 된 거야?...아..됐고..만나서 얘기하자..그래 거기.."
거리의 커피 전문점안에서 심호규가
귀엽고 깜찍하게 생긴 22.3세 가량의 여자와 만나고 있었다.
"거기서도 못 버텨내다니..정말 안 풀리네. 안 풀려"
죽은깨가 박혔지만 이쁜 편인데 유니폼 같은 옷을 입었다.
"거기서 더 버티면 뭔가 풀리기라도 한단 말이냐?"
"더 이상 알아봐 줄 건더기가 없단 말야. 나도 지금 힘든 상태라고"
"소개해준 네게 미안은 하다만...그래서 간밤에 안 나온 거냐?"
"팔자 좋게 술 마실 시국이 아니잖아! 술 마신다고 뭐가 달라져?"
"그래. 관두자. 커피마신다고 달라질 일도 없으니 그만 가봐야겠다"
"오빠. 삐졌구나?"
"내가 뭐라고 삐지냐. 우연하게 한동네서 같이 큰 무려 2년 후배님에게 뭔 내세울 거리가 있다고.."
"정말 삐졌네. 오빠 힘내, 난 오빠 믿어. 언젠가는 잘 풀릴 거야"
"그래....네 착한 마음은 나도 안다..하지만...냅둬라..훗날 만나지면 보든지 말든지..."
"오빠 잠깐만! 끝이어도 내말은 들어보고 끝내!"
심호규가 다시 주저앉으며 손을 턱에 받쳤다.
"그래. 당장 할 일도 없으니 네 원대로...네 맘대로 마음껏..."
"내가 처음 오빠에게 마음을 둔 건 초등1학년 때였어"
호규가 당혹하며 흠칫했다.
"그..그 얘긴.."
"오빠가 닭을 끌어안고 우리 집에 와서 숨겨달라고. 명절에 잡아먹힌다고..울며불며..."
호규의 두손이 얼굴을 감쌌다.
"그래, 내가 덜 떨어진 놈으로 찍힌 최초의 사건이었지"
"아니, 모두들 웃었지만 난 감동했었어. 그 후부터 닭고기 돼지고기 모두 안 먹는다기에 더욱"
"똑딕이가 워낙 특별했지만...난 지금까지도...닭뿐만 아니라 육류는 절대 안 먹어. 생선들도.."
심호규의 눈이 암울해지며 몸이 움츠러들었다.
"사람들 놀림에 계집애같이 소심해졌고...그렇게 내 인생도..비틀어져..어그러져..흘러...흘러..."
"아니, 절대 그렇지 않아! 안 그래!!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 나는.."
"너...마음 착한 것은 잘 안다. 특히 나한테는 무조건 맹목적이었지.."
"오빠. 내말 잘 들어..오빤 잘될거야. 분명 성공할거야. 난 그렇게 믿어. 확신해!"
심호규가 일어나 밖으로 향해 걸었다. 효실이가 일어섰다.
"한낱 닭을, 아참 똑딕일 그리 끔찍하게 생각하는 고운 마음씨라면 반드시 하늘의 가호가 있을 거라고!"
호규가 카운터에 돈을 내려놓고 문을 밀었다.
"그러니 제발 기죽지 말고 용기를 내란 말야!"
가게 밖으로 나오는 심호규의 다리가 후둘거렸다.
2. 中高制
'엄마 아버진 물론 동네사람들...선배나 후배...모두 내 가수의 꿈을 덕담 격려로 기대하는 척 했지만...내심으로 비웃는다는 것을 나라고 왜 몰랐겠냐만...'
가게를 뒤돌아보며 뭉클해지는 표정의 호규였다.
'효실이 넌 진짜 내 팬이었구나...내가 성공하면 가장 먼저 너..널..네게 진 빚을 갚을 거다만....'
'그런데....과연 내게도 성공할 날이 오려는지..'
퍼뜩 고물상의 이여병 사장 얼굴이 떠올랐다.
(제가 지금 한가한 처지가...)
[ 중요한 야그 하려는 참이니 진득히 들어봐! 다 들은 뒤에 마음대로 하라고..하여간에 내약은 이거여..이미자 남진 나훈아 조용필등 남도 가수들이 일세를 풍미하건만 왜 충청이북은 없는가? ]
[ 사회나 정치도 그래. 김영삼 김대중 전두환..이병철..도대체 남도를 빼면 인재가 없어. 중부에 진짜 인재가 없어서? 아녀. 한이나 독기가 없어서 그런겨. 다시 말해 용서 조화 타협을 할 줄 알아서 그런 거랑게! 김종필이만 해도]
(어쩌면 그 양반 말이 맞을지도..나도 야망은 있지만...한과 독기까지는...)
공단거리의 작은 포장마차안에서 심호규와 작업복을 입은 또래의 청년이 김밥과 오뎅을 곁들여 한잔하는 중이었다.
이우태란 이름을 가진 중학교 동창 친구였다.
"어떻게 지내냐?"
"...그냥 이리저리 바람부는대로 물결치는대로..."
"저번에 너이 엄마 시장에서 뵈었다만 정말 많이 늙으셨더라. 힘들어도 집에 자주 전화라도 좀 드려라"
호규가 암울하게 술을 따랐다.
"하긴 나도 그러진 못한다만..."
"너야 형제들이 많은데 뭔 걱정이것냐..게다가 대학 나와 좋은 직장 다니면서.."
"그깟 3류 지방대 무슨 소용. 그리고 사무직도 아니고 기름밥먹는 공돌이가 뭐가 좋것냐. 마셔라"
서로 잔을 부딪고 마셨다.
"그래도 우태 넌 장가가는데 아무 지장 없을 것 아니냐. 그것만 해도 어디냐"
"안 그래도 저번에 선봤단다. 당진쪽 신협인가 다닌다더만 인물이 영 아니어서 고민이다"
"크큭 넌 얼마나 잘났다고 그러냐. 아무소리 말고 장가가라. 사람이 인물보고 사는 것이 아니다"
"넌 어떻게? 전에 그 소속사도 나왔담서?"
"...고, 골치 아픈 얘긴 말자. 영진이는 요즘 뭐한다든?"
"예산쪽 농장 과수원이지만 그도 애로가 많은 것 같더라. 친척이 하기에 마지못해 버티는 모양이더라만.."
"석현인?"
"갸도 주식이니 가상화폐니 답이 없을 거다만 너도 그렇고 울 친구들은 왜 그리 뭐가 잘 안 풀리는지..."
"말이지... 느네 회사 말야...내가 일할 구석은 없겠지?"
"울회사? 말마라. 요즘 경기가 없어 있는 직원도 줄이는 판이라서 나도 눈치보는 형편이란다"
심호규가 사약 마시듯 쓰게 술을 마셨다.
"너 그리 힘들어? 집에 돌아가서 농사 도와주고 잠시 쉬며 충전하는 것은 어때?"
호규가 몸을 일으켰다.
"간다. 술값은 네가 내라"
공단거리를 걷는데 상가 여기저기 간판들.
직업소개소도 있고 인력사무소도 보이고 여러 구인 광고들을 훑는 심호규였다.
'공장..마트..주유소..청소..경비..일자리야 많지만...그저 먹고 살기만 할 뿐..아무 희망도 발전도 없는...'
암울한 표정이 되었다.
'영 없으면 차라리 노가다라도 해봐야..'
'내가 어쩌다...아니. 호구야 네 인생은 십년 전부터 왜 이리 발전이 없단 말이냐...'
길가에 자리한 고물상을 무심히 보고는
'노가다 아니라 고물상도 못할...'
그러다 멈칫 이여병사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 나으 결론은 불세출의 가수가 중부도에서 나와야만 된다는 겨.
그래야 남북통일도 사회통합도 된단 말여. 나에 야근 이로 끝이여.]
허름한 5층짜리 원룸으로 들어오는데
복도에서 60대 아줌마가 다가와 눈치를 보며 말했다.
"저기..총각.."
"아참 어제가 월세날이었네요. 일이 생겨 깜박 잊었어요"
"지난달도 늦게 줘서 고생했는데..자꾸 이럼 정말 곤란해. 나도 정기적으로 곗돈이랑 대출금 내야 되거든"
"내일 드릴게요"
"저기 내말 오핼랑 말고 들어..저기 위쪽 동네는 여기보다 월세가 훨 싸고 관리비도 적게 나온다는디.."
"....예...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어요..."
작은 방안으로 들어와 털썩 힘들게 눕는 심호규였다.
[띠리리 띠리리] 핸폰 벨소리에 한참 있다가 화면을 보고는...흠칫놀랐다.
"엄마?" 괴로워지는 표정이 되었다.
'엄마..제발, 저 잘있어요..잘있다고요..힘들어요..엄마 엄마...왜 나같은 걸 낳아서..가엾은 우리 오마니 왜 나를 낳으셔설랑'
벨소리가 그치자, 팔뚝으로 눈을 가리는 심호규였다.
한낮, 도시의 5층짜리 모텔에서 심호규가 나왔다.
뒤를 돌아보며
'여관경비라길래 힘 안 들고 거져먹기인 줄 알았더니...청소는 물론 직원 출퇴근까지 시켜줘야 된다니..'
언덕에 올라서서 도시를 내려다보는데 멀리 평택호가 보였다.
'바로 코앞이 집이건만...엄마..울엄마..'
돌아보니 예의 추레한 야산이 보였다.
3. 그집앞
(제가...그말에 동의한다면 어떤 방법이라도..?)
[ 내 꿈은 이거여. 능력닿는 껏 노력해보고. 물론 허사가 될 수도 있지. 허나 이 세상에 내가 왔다간 흔적은 남겨놓아야 되지 않것어? ]
(어디서 많이 듣던 유행가가사 같네요?)
[ 양인자가 작사한 시지.....실은 나가 반쯤 만들어놓은 노래가 몇 곡 있는디 말여]
(....이제보니 대 작곡가셨네요?)
[ 아니아니 솔직히 아직은 무명의 무지렁이제 ]
공중전화 앞에서 문득 멈추는 심호규가 안에 들어가 느리게 버튼을 눌렀다.
( 여보세요? 어디세요? 무슨 일이죠? 왜 말을 않는 거예요? ...매달 한번씩 전화하던 그분 아닌가요? 맞죠? 여보세요?! )
비감하게 수화기를 내려놓는 심호규가 이를 악물며 박스를 나왔다.
눈을 비비며 울듯한 표정이었다.
'선생님..왜 하필 저같이 모자란 제자를 만나셔서..'
다음날, 온 도시에 가랑비가 내리는 전경.
우산도 없이 야산을 오르는 청년은 심호규였다. 고물상에 이르러 진입하려는데
"어디서 나왔어예?"
돌아보니 고물상과 붙어있는 비닐하우스인데 검은 차단막이 덧 씌워있고 굴뚝과 이런저런 생활도구들로 보아 살림용 거처로 보였다.
행주치마를 두른 통통한 30대의 여인이었다.
"저..이사장님 좀 만나려고.."
"오늘 비가 와서 쉰다 아임니껴. 시내 갔는데 언제 올지 모르는데 약속이라도 있었능교?"
"약속은 없었지만 언제라도 오라고 비슷이...말해서"
여인이 호규의 아래위를 훑어보는데 갑자기 비가 [후두두둑] 세차게 내렸다.
"날씨가 지랄 같네예. 잠시 일루 들어오이소마"
하여 안으로 들어가니 서너 평쯤의 살림공간이 나오고
그 안쪽은 잠자는 곳인 모양으로 커튼이 쳐있었다.
가스 곤로 위의 냄비가 끓고 있었고 그 옆에 파와 라면등이 놓여진 도마. 여러 그릇이 그 옆의 조잡한 찬장에 넣어져있었다.
"아무데나 편한대로 앉으이소마"
조잡한 프라스틱 의자에 엉거주춤 앉는 심호규였다.
"변덕이 소갈딱지라서 금방 들어올지도 모르지만도 십중팔구 밤에 술에 취해 들어오기가 쉬울기라예. 동사무소나 세무서 같은디서 나온 것은 아니지예?"
"아예..그런 쪽은 아닙니다..우연히 알게 되어"
한쪽 벽으로는 빈소주병이 눕혀져 켜켜이 쌓여있는데 수백병은 될듯 했다. 물이 끓자, 여인이 라면봉지를 뜯었다.
"저기요. 실은 그제 여기 와서 라면도 먹었거든요. 어떻게 그리 맛있는지..정말 맛있게 먹었는데..아가씨 솜씨였군요. 고마웠습니다"
"푸훗 머 그래봐야 라면일 뿐인데...근데 저 아가씨 아니거든예"
"이, 이런 큰 실수를...그럼 사모님..이란...?"
"어데예!! 아무리 한물갔기로 사모라니, 택도 읎다예. 마침 끓이는 김에 라면 또 드셔볼랑교?"
"아예...그럼 감사하지요..그런데 이사장님과는 어떤...?"
"딸이라예.."
심호규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사연이 있어서 서로 오랫동안 전라도와 경상도에 떨어져서 살아서"
"아아...그래서..."
"킥킥 우리 부녀도 첨엔 무지 헷갈렸지러. 지금은 대강 짬뽕이 되야부렀지만...흥흥..파숑숑에 계란탁.."
"아니! 계란은 말고요. 제가 알레르기가 있어서"
"음마나 별난 알러지네. 그럼 지난번 라면은? 거기도 계란 넣었거든예?"
"...그런 줄도 모르고 먹었을만큼 맛있었어요.."
"흠흠..참말로 요상시렵네. 요상시려워..."
서로가 잠시 말 없이 생각을 굴렸다. 낡은 큰 거울에 여러 전화번호와 낙서들이 써있다.
"여긴...이 동넨 젊은 사람이 거의 안온다 아입니껴...아부지에게 뭔 볼일인가 몰라도.."
"...뭐 특별한 볼일이라곤 없어요. 왠지 마음이 편해지고...엉뚱한 소리 가운데...뭔가 조금 닿아오는 것도 있고.."
"참말로 요상시러라. 다 됬심니더. 드시소. 아참 술도 한잔 하실라우?"
"...하, 한잔만...."
라면을 먹는 호규였다.
"여..역시..맛있네요..라면 이름이 뭐죠? 끓이는 비결 같은 게 있다면...식당을 해도 잘 팔릴 것 같은데.."
"택도 없는! 라면 팔아서 얼마나 남겨 먹겠어예"
맛있게 먹는 심호규에게 맥주그라스를 주고 술을 따르는데 반에 반쯤 따르자 급히 잔을 떼는 호규였다.
"되, 됐어요. 이 이상은 못 먹어요..먹을 수야 있지만...굳이 그러고 싶지가.."
그러자 남은 술을 병째로 나발로 벌컥벌컥 마시는 여인에 놀라는 심호규였다. 쉬지 않고 모두 마신 여인이 혀로 입술을 다신다.
"...술을 그리 잘 드시니 부럽네요. 저는 두세잔을 넘기면 꼭 문제가 생겨서 사람들에게 비웃음 당하고..욕먹는데.."
"아부지 피를 이어받아선가 몰라도 마 술이라면 몇병도 자신있다아잉교. 근디 술먹으면 문제라니 무슨 문제가?"
"...토하고 정신없고 아프고...무엇보다 기억이 없어져서 나 자신을 잃어버리기에.."
그러자 박스에서 다른 술병을 꺼내어 마개를 비틀어 따는 여인 모습.
여러 남녀노소가 스쳐가며 환상도 보이고
자연풍경도 있고 사건도 스치는 꿈속 장면.
그러다 깜깜한 장면 좀더 밝아지며 눈을 뜨는 심호규였다.
어리둥절 표정에 낮의 라면 먹던 모습..
그후 술 가지고 여자와 옥신각신?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이크크!"
자리에서 일어나니 비닐하우스안인듯 티브이와 캐비닛장롱 술병과 전기담요와 히터도 보였다.
"일어났어?"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서 보니 바로 뒤에서 내복차림의 여자가 앉아서 무릎을 감싸안고 마치 귀신같이 지켜보고 있었다.
"바..반병이상 먹음 문제가 생긴다고 분명.."
"색시 같이 잠만 잘 자두만 뭔 문제?"
"아아.."
머리를 움켜잡는 심호규.
"물주전자 바로 옆에 있어"
주전자를 잡아 급히 마시는 호규.
"실은 크고 작은 문제는 저질렀지만"
소리에 놀라 사레들려 기침하는 심호규였다.
"커..커컥..무..무슨 문제..?"
"내가 누나 같아보인다며 한번만 안아보자는둥. 여태 딱지도 못뗀 숫총각이라는둥"
털썩 주저앉아 공황에 빠진 심호규.
"아, 아무리 내가 그리...그럴 리는..."
"이런, 농담 한마디 못할만큼 쑥맥이었잖아."
"노..농담...이라고?"
비척거리며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심호규가 주방겸 거실을 둘러보며 신발을 찾아 신었다.
"버,병사장님은 여태 연락이...?"
"핸폰도 안가지고 다니는 사람인걸. 이제 슬슬 들어올 때지만 낼 아침에 올지도 몰라"
"저기.."
"저기가 뭐야. 누나같다며? 이제부턴 누나라고 불러"
"내.내가 정말 그렇게까지!"
"그랬다니까! 하긴 뭔 상관, 안했다고 시침 떼도 아무 상관없으니 꼴리는대루"
"....도..독자라서 누나나 누이생각이 많았기에 그..그랬을 수도 있겠지만...보,본래..두잔이상은 안먹었는데. 그 이상 술을 먹이지만 않았어도 절대로..그런!"
"큰 실수는 없었으니 걱정말고 가봐. 작은 실수야 언제 벌을 받든 무슨 문제야"
야산을 내려오는 심호규가 멀리 검은 비닐하우스를 돌아보며 황황한 표정이었다.
'큰 실수...작은 실수?..은근 신경 거슬리는...희한한..'
#술을 권하고 피하려는 옥신각신 장면 기억나고
#내복차림으로 무릎을 감싸안은 여인의 기이한 매력포즈
'그래. 순전 우연한 돌발적인 해프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얼라? 이게 누구여? 호구아닌개비?"
놀라서 보니 털보장년이 나무벽에 기대어 흔들거리는 중이었다.
"...어..어벙이 사장님.."
잠시 난감해지는 표정의 호규가 허탈히 말했다.
"....인생이란 것은... 도대체 뭘까요...?"
"인생? 빌거아녀. 우연. 돌발. 사건"
"...저.저도 비슷한 생각이거든요"
"기려? 그럼 반도통은 힛구먼..킥킥킥..올라가서 한잔허자구"
"따님과 벌써...참..신기한... 분이더군요"
"허얼! 기렸어? 신기?..벌써 눈치챈 모양인디 하긴 참 맹랑하고 구신 같은 디가 있는 아랑게. 올라가자고 날 밝으려면 한참 멀었응게"
"아니 술은 정말 뚝이고...제가 가수의 꿈을 가진 계기가 뭔지 아세요?"
이사장이 발을 멈추고 돌아봤다. 호규의 시선이 멀리로 향했다.
"초등4학년때 담임샘이 미인이셨어요. 교대 갓 나오셨는데 제가 형제자매가 없어서인지 홀랑 빠졌었지요..자나깨나...아아.."
"별로 놀랠 일도 아녀. 본래 사램이란 열살만 되어도 모두 큰거시여. 인생이고 뭐고 충분히 눈치챈당게"
"그래요..제 첫사랑이었어요...실은 지금도 짝사랑 중이지만..."
'기껏 한달에 한번..전화로 목소리만 훔쳐 듣지만..'
"사랑...영원한 애물일지 여수일지 요괴랑게.."
"어느 날 음악시간에 선생님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는데 엄청 칭찬을 해주시지 뭔가요...전 그걸 진짜로만 알고 자나깨나 노래만 했더랬어요"
"사랑 칭찬이라는 변수란 기적도 만들기 마련인 법잉게"
"기..기적은 커녕!..착오와 후회와 고통과 고민..."
"근디 그 문제의 노래가 뭐여? 이참에 함 불러봐"
허탈해진 호규가 담장에 등을 기대더니 비가 흩뿌리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노래를 불렀다.
"......오가며 그집 앞을 지나노라면
그리워 나도 몰래 발이 머물고
오히려 눈에 띌까 다시 걸어도
되오면 그 자리에 서 졌습니다"
격정 감동의 심호규 표정과 이여병의 어리벙한 표정
점차 원경으로 보여지며
"오늘도 비 내리는 가을 저녁을
외로이 그집 앞을 지나는 마음
잊으려 옛날 일을 잊어 버리려
불빛에 빗줄기를 세며 갑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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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https://youtu.be/UMwY5ZQUq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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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제 2 잘 읽었습니다
첨부 해주신 그집앞도
감사히 듣고 갑니다
2편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