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우리가 어떤 대상을 “살아 있네!” 라고 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는 그 대상의 삶을 결정하는 유전정보를 가져야 한다. 유전정보는 세포의 삶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담은 청사진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세포는 그 유전 정보를 읽어서 대사 작용을 하고 분화할 수 있어야 한다. 설사 어떤 유전정보를 가진 어떤 개체가 있더라도, 스스로 대사작용을 하지 못한다면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바이러스는 유전정보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스스로 복제하지 못한다. 물론 바이러스가 숙주에 침입하면 숙주의 대사 공장을 몰래 돌려서 바이러스 복제를 한다. 하지만, 독립적인 대사과정을 하지 못하는 바이러스는 생명체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지방을 뭉쳐서 세포처럼 생긴 독립된 환경을 만들고(미셀, micelle 혹은 리포좀liposome같은 지방 막구조) 그 안에 여러 화합물을 넣는다고 세포가 되지도 않는다. 그 과정을 지휘하고 반복할 유전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바이러스와 미셀
"생명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오랜 역사를 지나는 동안 생명의 기원을 푸는 일은 전 인류의 숙제와 같았다. 전능한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신화부터, 먼지와 물, 불에서 생명이 스스로 발생했다는 고대 철학자들의 주장도 있었다. 물론 과학자들은 보다 확실한 증거를 토대로 답을 찾으려고 했다. 그들은 “삶”을 관찰하고 생명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려고 했고, 이렇게 질문한다. “처음 생명은 어떻게 유전정보를 갖고 대사활동을 하게 되었을까?”. 한 발짝 더 나아가서 이런 질문도 할 수 있다. “유전정보와 대사활동 중 어느 것이 먼저일까?". 우리는 생명의 기원을 쫓는 과학자들과 함께 비밀의 문 앞에 서 있다.
생명의 기원을 연구하는 데에 가장 크게 기여한 과학자 그룹이 아마 화학자, 그것도 유기화학자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무기물에서 다양한 생체 화합물을 합성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무수한 합성 실험을 반복했을 테니 말이다. 어쨌든 생명은 원시 지구에 있던 무기물에서 비롯되었다는 데에는 모든 과학자들이 동의한다. 하지만 같은 질문에서 시작된 과학자들의 연구는 크게 두 방향으로 갈라졌다. 한 방향은 무기물로 가득 찬 원시 지구에서 처음 시작된 화학반응이 대사 작용으로 이어져서 삶이 시작되었다는 것, 그리고 다른 방향은 역시 원시 지구에서 처음 화학반응이 시작되었지만, 유전정보를 얻는 데서부터 생명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조그맣고 따뜻한 연못”: 원시 수프(primordial (prebiotic) soup) 1936년 소련의 생화학자인 알렉산더 오파린(Alexander Oparin)과 영국의 생물학자인 존 할데인(John Haldane) 은 원시 지구의 물 속에 떠다니던 무기물들이 어떤(?) 에너지를 받아서 간단한 유기물이 되고, 원시 생명체가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오파린-할데인 시나리오”를 주장했다. 물론 이 분들만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니다. 그 보다 훨씬 오래 전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은 ‘종의 기원’에서 지구에 처음 등장한 원시 생명은 여러 무기질 성분이 많은 “조그맣고 따뜻한 연못”에서 만들어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때까지만 해도 이 창조적인 생각은 실험으로 증명할 수 없는 가설(혹은 상상)에 불과했다.
“조그맣고 따뜻한 연못”에 떠오른 유기물질 1953년 시카고 대학에서 당시 대학원생이었던 스텐리 밀러(Stanley Miller)와 그의 지도교수인 헤롤드 유레이(Harold Urey)는 다윈과 오파린이 주장했던 “조그맣고 따뜻한 연못”을 재현한다. 밀러는 아래 그림과 같은 장치에 원시 지구에 존재했을 수증기 (H2O), 메탄(CH3), 암모니아(NH3), 수소(H2)를 채우고, 번개가 치는 것처럼 전기 스파크를 일으켰다 (물론 원시 지구에서 번개가 엄청나게 일어났을 거라는 가정에서 시작된 실험이다). 며칠이 지나고 보니, 유리 구 안에는 몇 종류의 아미노산과 유기산 등이 만들어졌다 (오 놀라워라! 대단한 발견이다).
https://en.wikipedia.org/wiki/Miller–Urey_experiment
이 실험으로 밀러는 다윈과 오파린 등이 상상했던 대로 무기물에서 유기물질이 합성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 발견은 마치 4차원으로 통하는 문을 찾은 것과 같았다. 하지만 단순한 유기물질이 어떻게 복잡한 화합물이 되고 생명으로 이어졌을까?
[밀러 장치의 재발견 –흔한(?) 실험실 뒷담화, 2008년 뉴욕타임즈 인터뷰] 밀러는 1999년에 제자인 제프리 베다(Jeffery Bada)에게 그의 연구실을 물려(?) 주었다. 물론 그가 1950년 대부터 쓰던 오래된 실험 기구와 샘플들은 덤으로 주었다. 스승은 자기가 쓰던 기구와 시약을 잘 사용하기를 바라지만, 대개는 상자에 잘 넣어서 실험실 구석에 밀어 놓기 마련이다. 제자에게는 쓰기에는 너무 낡았고, 그렇다고 막 버리기도 힘든 골칫덩이였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베다는 우연히 낡은 상자에서 밀러의 오래된 샘플들을 발견했다. 상자에 있던 작은 유리병에는 실험 날짜와 샘플 정보가 빼곡히 써 있었고, 심지어 연구 노트 몇 페이지에 그 실험 방법이 있는지도 적혀 있었다 (꼼꼼한 밀러 박사!). 베다는 유리병에 말라붙어 있던 밀러의 샘플을 다시 정밀 분석했다. 밀러의 샘플이 잠들어 있던 50여년 동안 화학분석기술이 어마어마하게 발전했고, 샘플을 정밀 분석한 베다는 밀러의 장치에서 30 가지가 넘는 화합물이 합성되었다는 것을 발표했다 (1953년 밀러는 다섯 종류라고 발표했다). 안타깝게도 너무 늙고 병들어 있었던 밀러는 이 연구 결과를 모르고 세상을 떠났다. 만약 밀러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스스로 뿌듯해 하면서 생을 마감하지 않았을까? [위대한 발견은 종종 예상치 못한 데에서 나오기도 한다. 오래 묵은 연구 노트와 샘플들이라고 함부로 버리지 말자.]
제프리 베다 박사 http://www.nytimes.com/2010/05/18/science/18conv.html?_r=0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복잡한 화합물을 만드는 화학반응에는 늘 에너지가 필요하다. 화학 실험실에서는 열을 가하거나 높은 압력을 가하기도 하고, 다양한 촉매 (catalyst)를 이용해서 화학반응이 일어나게도 한다. 세포에서 일어나는 모든 화학 반응은 단백질로 만들어진 효소(enzyme)가 촉매작용을 한다. 원시 수프에는 단백질이 없고, 효소도 존재하지 않았다. 밀러의 실험에서 처음 사용된 반응 촉매는 전기 스파크였다. 하지만 전기 스파크는 복잡한 유기화합물을 합성하는 데는 부족했다. 그렇다면 단순한 유기물에서 어떻게 세포를 구성하는 복잡한 화합물질이 만들어졌을까? 그 반응의 촉매는 무엇이었을까? 밀러의 실험은 여기에서 벽에 부딪혔다.
한 가지 문제가 더 있었다. 설사 모든 물질이 합성되고 세포가 만들어졌다고 하더라도 그 반응을 기억하고 지속하게 하는 정보는 또 어디서 올까? 밀러의 뒤를 잇는 과학자들은 (1) 유기물을 꿰어 엮는 효소 역할을 하는 ‘무엇’과 (2) 그 과정을 지속하는 유전물질을 찾아야 했다.
“유전정보가 먼저일까, 대사활동이 먼저일까?“, “닭이 먼저일까, 달걀이 먼저일까?”
"만약 원시 지구에 유전물질이 존재했다면?": RNA 세계설 (RNA world hypothesis)
DNA는 원시 대기에서 형성되었다고 주장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화합물이다. 만약RNA라면 어떨까? DNA 와 비슷해서 유전정보를 담을 수도 있고, 한 가닥이어서 DNA보다는 훨씬 단순하기도 하다. 만약 RNA에 대사과정을 시작하는 유전정보가 담겨 있었다면, 생명의 발생으로 이어지고 그 정보가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물론, 원시 지구의 유기수프에서 RNA가 만들어졌다는 전제 하에서 이다. RNA는 이중나선 구조인 DNA보다는 훨씬 간단한 구조이기는 하지만 당-인산-염기로 구성된 벽돌이 차곡차곡 쌓여서 만들어진 구조이다. 아미노산이나 단순 유기물에 비하면 훨씬 복잡한 구조이다. 마치 텐트와 이층 벽돌집 정도의 차이랄까?
RNA 세계설을 주장하려면 원시 대기에서 RNA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밀러의 장치와 비슷한 실험에서 당은 비교적 쉽게 합성할 수 있었다. 그런데, 고리 구조를 가진 염기를 합성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거의 사십 여년 동안 염기를 합성하는 실험은 실패의 연속이었고, 반대파들은 RNA구조가 자연에서 합성하기에는 너무 복잡하다고 (RNA세계설은 말도 안된다고) 비판했다. 그러던 중 2009년 존 서덜랜드 (John Sutherland)와 연구팀이 원시 지구와 비슷한 환경에서 염기 구조를 합성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RNA의 세계 가설이 탄력을 받는 순간이었다.
“효소는 반드시 단백질이 아니어도 된다” RNA의 세계 가설이 풀어야 할 또 한가지 숙제가 있었다. 설사 RNA가 원시 대기에서 만들어졌고, 유전정보를 담고 있다고 하더라도, 원시대기에는 효소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 없었다. 그렇다면 그 정보를 읽어서 대사에 필요한 물질을 합성하는 그 무엇(?)은 어디에 있을까? 그 즈음에 재미있는 기능을 가진 유전물질이 세상에 알려졌다. 바로 효소 기능을 할 수 있는 RNA, ‘라이보자임 (Ribozyme)’이다.
RNA가 효소 기능을 하는 게 대단한 일인가? 대단한 일이다. 이렇게 되면 RNA 자체가 가지고 있는 유전정보를 풀어서 스스로 단백질을 만들고, 단백질과 반응하면서 더 견고한 구조를 만들고, 스스로 유전정보를 다시 복제할 수 있으니 연쇄반응도 가능하다는 상상을 할 수 있다. 점점 더 복잡한 대사과정을 하게 되면, 유전정보를 유지하고 전달하는 기본 구조가 되고 결국 세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닭이 먼저다”에 조금 더 힘이 실리는 듯 했지만, 여전히 실험으로 증명하지 못한 많은 숙제가 남아 있다.
"만약 처음 화학반응을 일으킨 촉매가 효소가 아니라면?": (대사가 먼저다, Metabolism First)
과학자들은 최초의 생명이 시작되려면 무기물에서 유기물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데에는 모두 동의한다. 문제는 유기물을 만드는 과정을 일으키는 촉매를 찾는 것이었다. 단백질 효소가 없다면,, 원시 수프 가설은 더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복잡한 유전물질이 어떻게 만들어져서 화학반응을 주도하게 되었는지 밝히지 못하면 RNA세계설도 답이 아니다. 그래서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새로운 가설이 대사활동설 (metabolism first, 직역하면 “대사가 먼저다” 모델)이다. 이 모델은 황-철의 연쇄반응이 촉매로 작용한다는 주장을 한다. 그래서 황-철 복합체 (Sulfur-Iron cluster)설로도 알려져 있다.
생명체의 모든 대사작용에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세포의 에너지는 유기물을 산화해서 얻는다. 그럼 원시 생명의 에너지는 어디서 왔을까? 유기물은 또 어디에서 왔을까? 어떻게든 무기물에서 합성되었겠지..? 계속 돌고 도는 질문이다.
“거꾸로 보면 새로운 세상이 보이기도 한다” 깊은 바닷 속에 화산 작용이 일어나는 심해 열수구 (hydrothermal vent)가 있다. 빛도 없고 산소도 없는 뜨거운 이 곳에서 심지어 맹독성의 황화수소(H2S)가 뿜어져 나온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수소, 메탄, 암모니아 같은 환원성 물질과 아연, 철 같은 금속이온들이 있다. 놀랍게도 그 곳에서는 미생물들이 산화 환원 반응으로 잘 살고 있다. 이 곳은 연구하던 과학자들은 이곳에 사는 미생물의 대사 과정에서 일어나는 산화환원반응이 처음 생명의 대사과정이 아니었을까 상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실제로 심해 열수구에 주변에서는 황화수소 덕분에 황철석 (FeS2, pyrite)이 황화철광 (FeS, Troilite)으로 환원되고 황화철광은 자신이 산화되면서 무기물을 환원시키는 촉매작용을 한다는 것을 밝혔다. 복잡하지만 잘 생각해 보자. 무기물이 환원된다는 것은 그 과정이 계속해서 일어나면 세포의 에너지원이 되는 유기물을 만들 수 있다는 의미이다. 황화철광이 일산화탄소나 이산화탄소를 환원시키면 세포 호흡에 쓰이는 탄소 유기물을 만들 수 있다. 그것도 아주 간단하게 (?) 세포가 에너지를 얻는 과정인 크랩스 회로 (Kreb’s cycle, TCA cycle)를 거꾸로 돌려서 말이다.
“원시 지구에서 무기물의 환원 작용이 일어나서 에너지를 만들 수 있는 대사물질이 생성되었다. 그 반응은 효소가 아닌 황화철광 혹은 금속 환원화합물이 일으킬 수 있다” 그럴 듯한 이야기이다. 우연의 일치인지도 모르겠지만, 대사에 쓰이는 많은 효소들의 구조를 들여다 보면 종종 황(S)이나 철(Fe) 또는 복합체 (황-철 클러스터, iron-and-sulfur cluster) 를 품고 있다. 그리고 황-철클러스터는 효소를 작동하는데 꼭 필요하다. 어쩌면 원시 황화철광이 지금까지 세포에서 촉매작용을 하고 있다는 증거는 아닐까? 물론 이 모델에서 제시한 이야기 중 많은 부분이 아직 실험으로 증명되지 않았다.
“Now what?”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는 모델들은 아직 뒤죽박죽 구멍이 많다. 가능한 모든 증거를 동원해서 가능한 모델들을 제시했지만, 어느 것도 무기물에서 만들어진 화합물이 "짜잔!" 하고 생명체가 되었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했다. 하지만 증거가 부족하다고 해서 그 모델이 틀리다고 단정짓기에는 현대 과학 기술이 증명할 수 있는 부분이 너무 미비하다. 겨우 신비로운 생명의 껍데기를 긁적거리는 수준이다. 답이 없는 벽에 막혀 생명의 신비를 밝히는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모습은 마치 영화 “니모를 찾아서(Finding Nimo)”의 마지막 장면처럼 대략 난감한 상황이다 (이제 어쩔꺼냐고??).
그들이 비닐 봉지 안에 영원히 갇혀 있었을까? 어쩌면 펠리컨이나 갈매기들이 와서 부리로 비닐을 찢어 주었거나, 어쩌면 근처에 지나가던 꽃게가 비닐을 잘라 주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바다로 돌아 갔을 거라고 상상한다. 생명의 기원에 대한 비밀을 풀어가는 우리도 이들처럼 비닐 봉지에 갇혀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젠가 우리는 작은 비닐 봉지에서 빠져나와 생명의 바다를 유유히 헤엄치게 될 거라는 행복한 상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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