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확한 목표 설정이 쉽지 않지만 뭔가를 해야 하는 관습적 상황은 곤란하다. 월드컵의 해에 관례적으로 갖는 1월 전지훈련을 앞둔 신태용 감독의 입장이 그럴 것이다. 그에겐 2주의 시간이 주어졌다. 하지만 유럽파 소집은 아예 불가능하고 다른 해외파 소집 여부도 불확실하다. 수준급 스파링 파트너를 잡는 건 더 어렵다. FIFA A매치 주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터키 안탈리아에서 보낼 2주를 효과적으로 써야 한다. 대한축구협회는 프로축구연맹의 협조를 받아 월드컵이 열리기 전 겨울에 대표팀 소집이 가능한 조례를 십수년째 유지하고 있다. 객관적 전력이 경쟁국에 뒤지는 한국이 월드컵에서 성적을 내려면 상대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훈련을 해야 한다는 접근에서 추진됐다.
문제는 이 4년에 한번씩 오는 1월 전지훈련의 효과가 점점 반감됐다는 사실이다. 한일월드컵 이후 대표팀 내 유럽파 비중이 늘어난 게 원인이다. 전술 훈련과 연습 경기를 통한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최정예 멤버 소집이 어려워졌다. 동기부여가 적은 선수들을 데리고 전지훈련을 떠나는 것이 오히려 대표팀을 둘러싼 시선만 불안하게 만든다는 지적이 있었다.
4년 전 브라질 월드컵 실패를 예고하는 적신호가 켜진 것도 1월 전지훈련에서였다. 브라질과 미국을 거치며 진행한 3주 간의 훈련은 긍정 효과를 거의 내지 못했다. 당시 필드 플레이어의 해외파 비중은 60%가 넘었고, 특히 유럽파 비중이 절대적이었다. 그들 없이 치른 연습 경기에서 1승 2패를 기록했고, 멕시코전에서는 완패를 당했다. 전훈 기간 내내 박지성의 대표팀 복귀 여부, 박주영 발탁 논란 같은 외적 요인에 시달리며 집중력이 떨어졌다.
1월 전지훈련 멤버 중 월드컵 최종 명단에 든 선수는 골키퍼 3명(정성룡, 김승규, 이범영)과 필드 플레이어 5명(이용, 박종우, 하대성, 김신욱, 이근호)까지 8명에 불과했다. 브라질에서는 베이스 캠프 적응과 이동에 대한 노하우 쌓기, 미국에서는 전술과 경기력 향상에 방점을 두며 본선을 준비하는 시뮬레이션으로 삼은 전지훈련이지만 그 효과 범위는 제한적이었다.
이 딜레마 앞에 신태용 감독도 섰다. 오는 15일 발표해야 하는 전지훈련 명단부터가 고민이다. 그 안에 유럽파는 당연히 없다. 일본과 중국에서 뛰는 해외파의 소집을 위한 협조를 부탁했지만 받아들여질지 확실치 않다. 과거 J리그는 협조적인 분위기였지만 최근엔 다르다. J리그는 대표팀이 소집 예정인 1월 22일부터 대부분 새 시즌 준비를 위한 소집을 시작한다. AFC 챔피언스리그를 치러야 하는 팀들은 훈련 시간이 한달도 채 되지 않는다. 가와사키 프론탈레(정성룡), 가시마 앤틀러스(권순태), 세레소 오사카(김진현, 양동현), 가시와 레이솔(김보경, 윤석영)에 속한 대표급 선수들 소집은 어려울 전망이다. 중국 슈퍼리그도 마찬가지다. 챔피언스리그에 나서는 광저우 헝다(김영권), 상하이 선화(김기희), 톈진 취안젠(권경원)이 소집에 협조적일 리 없다.
기댈 곳은 K리그지만 여기도 변수가 있다. 월드컵 성공이 피부에 와 닿는 K리그 팀들인만큼 선수 차출에 협조하지만 새 시즌에 군팀에 입대해야 해 훈련소에 있을 선수들(김민우, 이명주, 주세종 등)과 1월 말 AFC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를 치르는 수원 삼성(염기훈 등) 선수는 제외된다. 챔피언스리그에 나서지 않는 J리그와 슈퍼리그의 선수들이 오고, 원하는 K리그 선수를 소집한다 해도 지난 동아시안컵과 비교해 4~5명 이상의 인원 교체가 불가피하다.
전지훈련 기간 동안 연습경기를 치르는 상대의 면면은 예상했던대로 약하다. 몰도바(FIFA 랭킹 167위), 자메이카(54위), 라트비아(132위)다. 자메이카가 60위인 한국보다 랭킹이 높지만 세 팀 모두 월드컵 본선에서 만날 상대보다 전력이 쳐진다. 대한축구협회가 보다 수준 있는 팀을 찾기 위해 노력한 건 사실이다. 특히 가상 스웨덴으로 붙을 북유럽 팀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겨울 휴식기를 갖는 유럽 대부분의 클럽이 1월 중순부터 다시 리그를 재개하는 바람에 1월 말 경기가 가능한 한국과는 스케줄이 맞지 않았다. 자메이카의 경우도 최근 분데스리가의 바이엘 레버쿠젠의 새로운 에이스로 떠오른 레온 베일리가 있지만 소집되지 않을 게 확실하다.
지난 10월, 11월 평가전과는 목표를 달리 할 필요가 있다. 더 강한 상대를 통해 우리의 문제점을 찾을 수 없다. 대표팀 구성이라는 큰 그림을 그릴 수도 없다. 승리를 통해 얻는 동기부여나 부수적 효과는 12월 동아시안컵만도 못하다. 그렇다면 확실한 목적을 갖고 경기에 나서는 게 중요하다. 수비 전술, 세트피스, 부분 전술 등의 완성도를 확인하는 세밀함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다행이라면 신태용 감독과 대한축구협회가 이번 1월 전지훈련의 딜레마를 과거 사례에서 미리 파악하고 대비했다는 점이다. 신태용 감독은 최대한 선수를 소집할 수 있었던 10월과 11월의 A매치 주간을 통해 대표팀 구성의 밑그림을 그렸다. 11월 소집 당시에는 K리그 선수들의 비중을 최근 어떤 대표팀 소집 때보다 높였다. 동아시안컵까지 그 연속성을 가져갔다. 1월 전지훈련까지 소집할 수 있는 선수 중심으로 대표팀을 꾸리겠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실제로도 1월 전지훈련에서는 디테일한 채색을 할 계획이다. 가장 큰 목표는 수비 조직력 완성도 향상이다. 한일전 대승으로 인해 해피 엔딩으로 끝난 동아시안컵이지만 수비 문제는 계속 지적 받았다. 10월, 11월, 12월 소집 동안 치른 경기에서 무실점은 1-0으로 승리한 동아시안컵 북한전이 전부였다. 중국, 일본을 상대로 수비 집중력이 느슨해지며 먹지 않아도 될 골을 허용하며 어려운 경기 운영을 자초했다. 이번 1월 전지훈련에서는 월드컵에서 맞붙은 상대보다 전력 상 떨어지는 팀들을 만나는 만큼 훨씬 안정감 있고 신뢰를 주는 수비력을 보여야 한다.
다행히 수비진 구성은 어느 정도 완성되고 있다. 선수 소집 성향이 이질적이었던 11월과 12월에 변화가 가장 적었던 포지션도 수비였다. 수비 리더로 자리 잡아가는 장현수, 신태용호 출범 후 신뢰를 받고 있는 권경원, 그리고 K리그 소속 수비수들로 구성됐다. 이번 1월 전지훈련에도 그 멤버가 대부분 소집될 수 있다. 김민재도 본격 가세한다. 월드컵 예선 최종 2연전에서 수비 재건의 핵심으로 부상했지만 무릎 수술로 인해 그 뒤 활용되지 못했다. 김민재가 정상적으로 뛸 수 있는 상황 속에서 수비 전술에 절대적 시간을 들일 게 확실시된다.
새로운 자원에 대한 점검도 필요하다. 김진수, 김민우, 고요한, 최철순이 좌우 측면 수비에서 신태용 감독의 믿음을 샀지만 추가 자원을 확보해야 한다. 신태용 감독은 스웨덴, 독일과 한 조에 속한 뒤 상대의 체격 좋은 공격수를 상대할 우리 풀백 자원들의 신장이 크지 않다는 점을 우려한 바 있다. 본격화되고 있는 골키퍼 경쟁에도 한층 불이 붙는다. 김승규가 부상으로 동아시안컵에 참가하지 못한 동안 조현우, 김진현, 김동준이 경쟁했다. 특히 조현우는 북한, 일본을 상대로 좋은 모습을 보여 11월 A매치 데뷔전에서의 임팩트를 이어갔다.
이번 1월 전지훈련에서 신태용호는 상대가 아닌 우리 스스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상대팀의 수준이 높지 못한 건 아쉽지만 그만큼 우리 스스로의 평가 기준점을 높이면 된다. 신태용 감독과 코칭스태프, 선수들은 2주의 시간 동안 완성도를 증명할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하고, 그것이 늘 딜레마였던 이전의 전지훈련의 효과를 극대화 할 중요한 목적 의식이 될 수 있다.
글=서호정
사진=대한축구협회,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