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솔 비가 내린다.
이런 날 광교산 오르긴 좀 그렇고
좀 멀리 나가보자
전철에 올라 판교로 내쳐 경강선 종착역 여주로 몸을 실었다.
황학산 숲길을 걸어서 수목원에 가보자.
비도 적당하게 뿌려주고
배낭은 빠짐없이 잘 꾸려서 무겁기만 한데
여주역에 내려 한 컷 하려고 DSLR을 꺼내고 보니
ㅉ ㅉ ㅉ
밧데리를 챙기지 못했다.
카메라도 이젠 무거워서 웬만하면 안 챙기는데
배낭만 무겁게 하고
폰카로 대신하면 되지
첨으로 찾아온 동네
역세권이라나 주변에 고층빌딩에 아파트단지에
공사가 한참이다.
전원스런 여주시 빛이 바래고 있는 중이다.
어쩔 수 없어 아파트에 살지만
시골길 달리다 보면 우뚝 솟아 있는 아파트 한 두 동
주변 풍경 모두 앗아간다.
길치라
폰의 지도를 살펴보지만
엉뚱하게 여주대학교 입구까지 갔다가 되돌아 나오고
도로변 황학산 휴양림 안내판이 가라는 곳을 따라 걸으니
금새 황학산 입구에 도착했다.
이 산길을 걷다 보면 수목원이 이어진다고
이게 뭔 횡재냐?
비님 덕분에 수지맞았다.
줄지어 있을 입구도 활짝 열려있고
인적이 뜸한 수목원
천천히 인위적인 자연 속으로 빠져든다.
얼마를 걸었을까?
배도 고프고 비도 피해야 하고
챙겨온 도시락 꺼낼 곳 없나 살펴보니
정자마다 안주인들이 몽땅 차지하고
자리할 곳이 마땅치 않다.
오늘 울 집 안주인은 벗들 초대해서
점심을 함께 한다고
둥지도 정자도 안주인 세상이네
가물 가물한 소시적 생각나는구나
6살 때 하늘나라 가신 할부지
늘 사람방에 계셨지
한옥은 역시 안채 사랑채
나이 들어보니 정말 제대로 구성된 가옥이라는 걸
겨우 비를 피할 휴식처를 찾았다.
정자는 아니지만 열린 공간에 지붕이 의젓하게 있는
사방을 살펴보면서
간단한 한 끼를 즐기고
잠시 생각에 잠긴다.
시골 어딜 가나
광고판 풍년이다.
특히 먹거리 골목 재래시장 등등
많이 많이 오셔서 주머니 풀고 가라는 얘기인데
이 몸은 우리 땅에서나
넘의 나라에서나 썩 반기는 객은 아니다.
한마디로
풍경만 눈에 담고
사람의 정만을 가슴에 담아가는
발품만 팔고 가는 나그네일 뿐이다.
갖가지 식물들 수목들이 즐비하건만
우선 폰카로 담기에 아쉬움이 많이 남았고
전체를 나름 차분히 돌아봤지만
뭔가 하나 빠진 그림처럼
아쉬움이 남는다.
그게 뭘까?
애당초 계획대로의 수목원
정말 멋진 곳이었을 터인데...
뒷심이 부족했던가
여력이 달렸던가
그래
사후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많이 아쉽지만
한 번 더 찾아와야 할 것 같은 수목원
비오는 날 다시 기약하면서 발길을 돌렸다.
집에 돌아오니
생각보다 몸이 싱싱하다.
역시 자연 속에 머물고
사람 동네에서 벗어나면 다르다니까!
소파엔 커다란 액자 놓여있다.
얼마 전
그날도 비 오는 날
둘째 출국 전에 온 가족이 모여 애비의 칠순의 기쁨도 나누고
수원하면 갈비
그것도 열심히 뜯고
야외에서 가족사진 남기려던 것을
실내로
그 대신 밝게 자유로운 모습으로 담았다.
아내가
당신 사진도 잘나왔다고 들고 나온다.
아마 이게 남겨진 자들에게 보여줄 내 모습이 될 것이다.
이 참에 현재의 나에게 걸맞은 이 사진으로
깨톡부터 모두 바꿀까???
벽에 걸려 있는 8년 전 가족사진
남자 셋 여자 둘
오늘의 가족사진
3명 늘어 8명
현재는 두 아들과 새 애기 그리고 딸 세상
과거는 우리 두 사람의 추억
미래는
손녀들에게 열릴 것이다.
한 십년 더 살다보면
한 번 더
가족사진을 담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 그림은
백년손님 바지 하나와
외손주 하나 더 실려졌으면
정말 더 바랄게 없을 터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