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38,1.12-21; 40,3-5; 루카 10,13-16
+ 오소서, 성령님
오늘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입니다. 21세기 가톨릭교회에 가장 큰 영향을 주고 계신 성인이 누구이신가 생각해 보면, 프란치스코 성인이 아니실까 싶습니다. 성인의 영성을 본받은 교황님이 탄생하셔서 ‘가난’과 ‘생태’라는 두 주제를 우리 시대의 화두로 던져 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교황님의 영명 축일이시기도 한데요, 하느님께서 교황님을 통해 우리 시대에 하시는 일을, 지치지 않고 잘해 나가시기를 특별히 기도드립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1182년 이탈리아 아시시에서 태어나셨는데, 열아홉 살에 기사가 되기 위해 전투에 참전하였다가 포로가 되어 1년간 감옥에서 죄수로 지내기도 하였습니다. 스물두 살 때 큰 병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긴 후 회심하였습니다.
어느 날 성 다미아노 성당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프란치스코야, 가서 나의 집을 지어라. 나의 집이 거의 다 무너져 가고 있다.” 이 말씀을 듣고 성인은 쓰러져 가는 성당을 세 개나 고쳤지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성당 건물이 아니라 가톨릭교회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습니다.
1209년, 스물일곱의 나이에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그의 발자국을 따라가는 삶’을 목표로 하는 수도회 설립을 인준해 주실 것을 청하기 위해 인노첸시오 3세 교황을 만납니다. 교황은 성인이 제시한 회칙이 인간이 지키기에 너무 어렵다고 생각해서 인준을 유보하였지만, 그날 밤 꿈에서 쓰러져 가는 라테라노 대성전을 프란치스코 성인이 어깨로 부축하여 세우는 장면을 보고, 성인께서 교회를 쇄신할 분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회칙을 인준해 주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일화들을 보면,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교황명을 프란치스코로 정하신 것이, 단순히 성인을 좋아하셔서였을까, ‘복음 선포를 가장 큰 소명으로 여기는 가난한 교회’, ‘생태적 회심을 실천하는 교회’로의 쇄신이 당신의 과제라는 것을 깨달으셨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십자군 전쟁을 평화롭게 해결하고자 1219년 이집트의 술탄을 직접 찾아가기도 하였고, 1223년 처음으로 성탄 구유를 만들어 예수님의 성탄을 눈으로 보고 경배하도록 하였습니다. 올해는, 프란치스코 성인이 첫 번째 구유를 만드신지 801년이 되는 해입니다. 1224년, 오상을 받으셨고, 1226년 마흔넷의 나이로 선종하였습니다.
오늘도 제1독서에서 욥기의 말씀을 듣습니다. 욥에게 하느님께서 나타나셔서 당신께서 얼마나 초월적 존재이신지를 말씀하십니다. 솔직히 말씀이 썩 와닿지는 않습니다. 고통 중에 있는 사람에게 하느님께서 나타나셔서 “너는 평생 아침에게 명령해 본 적이 있느냐?”라고 말씀하시면, 그 사람의 고통이 해결될까요?
그런데 어제 욥기의 말씀을 되뇌어 보면, 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네, 나의 구원자께서 살아 계심을.
그분께서는 마침내 먼지 위에서 일어서시리라.
내 살갗이 이토록 벗겨진 뒤에라도 이 내 몸으로 나는 하느님을 보리라.
내가 기어이 뵙고자 하는 분, 내 눈은 다른 이가 아니라 바로 그분을 보리라.”
마침내 하느님께서 먼지 위에서 일어서셨고, 욥은 두 눈으로 하느님을 뵈었습니다. 욥은 하느님께 나타나시라고 청했고, 하느님은 나타나셨습니다. 내일 독서에서 욥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에 대하여 귀로만 들어 왔던 이 몸, 이제는 제 눈이 당신을 뵈었습니다.”(욥 42,5) 이를 두고 유대교 신학자 마르틴 부버는 “하느님은 당신 자신을 대답으로 제시하셨다.”라고 말합니다.
욥의 고통이 멈춘 것은 하느님을 뵈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뵙게 되면, ‘저분께서 나의 고통을 알고 계시는구나’, ‘저분의 사랑과 저분의 위대하심 안에 나의 고통, 내가 사랑하는 이의 고통을 맡겨도 되는구나’라는 것을 온 몸으로 깨닫게 됩니다. 물방울이 바다를 만나면 모든 것을 맡기고 뛰어들 듯, 우리 역시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며 하느님과 하나가 됩니다.
우리가 욥처럼 하느님을 뵈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님께서는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본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 인해, 우리는 더 이상 초월적인 하느님을 직접 뵈려 노력하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님을 뵈면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디서 봬올 수 있을까요?
마태오 복음 25장에서 예수님께서는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나에게 해 준 것이다’ 하시면서, 고통받는 사람 안에 계신 당신을 보라고 초대하십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1205년 어느 날, 나병환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나병환자를 피했던 프란치스코는 말에서 내려와 그에게 입맞춤하면서 그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나아가, 피조물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성인께서 쓰신 ‘피조물의 찬가’는 아무런 고통이 없는 상태에서 쓰신 것이 아니라, 1225년, 돌아가시기 1년 전에 거의 실명 상태에서 쓰신 것이고 특히 마지막 부분은 선종하시기 직전에 완성하신 노래입니다.
성인께서 쓰신 ‘피조물의 찬가’를 함께 들어보겠습니다.
“지극히 높으시고 전능하시며 선하신 주님,
찬미와 영광, 영예와 축복 모두 당신 것입니다.
오로지 당신께만, 지극히 높으신 주님, 합당하오니
누구도 감히 당신 이름을 부를 자격이 없습니다.
찬미 받으소서, 저의 주님, 당신의 모든 피조물을 통하여,
특별히 형제인 태양을 통하여,
그로 인해 낮이 되고, 저희에게 그를 통하여 빛을 주시오니.
그의 아름다움과 찬란한 광채가
높으신 주님, 당신을 닮았나이다.
찬미 받으소서, 저의 주님, 누이인 달과 별들을 통하여,
당신께서 하늘에 그들을 밝고 귀하고 아름답게 만드셨으니.
찬미 받으소서, 저의 주님, 형제인 바람을 통하여,
또한 공기와 구름과 맑은 하늘과 온갖 날씨를 통하여,
그들을 통하여 당신의 창조물들을 기르시니.
찬미 받으소서, 저의 주님, 누이인 물을 통하여,
물은 대단히 유용하고 겸손하며 소중하고 정결하니.
찬미 받으소서, 저의 주님, 형제인 불을 통하여,
그를 통하여 밤을 밝혀 주시니.
또한 그는 아름답고 즐거우며 활기차고 강합니다.
찬미 받으소서, 저의 주님, 저희의 누이이며 어머니인 지구(땅)를 통하여,
지구는 저희를 기르고 다스리며,
온갖 과일과 색색의 꽃들과 풀들을 낳아줍니다.
찬미 받으소서, 저의 주님, 당신의 사랑 때문에 남을 용서하는 사람들과,
아픔과 시련을 견디는 사람들을 통하여.
평화 속에 견뎌내는 이들은 복되오니,
지극히 높으신 주님, 당신께서 화관을 씌워주실 것입니다.
찬미 받으소서, 저의 주님, 저희의 누이인 육신의 죽음을 통하여,
살아 있는 누구도 그녀를 피할 수 없습니다.
불행하여라 죽을죄 속에서 죽는 이들은.
행복하여라 당신의 지극히 거룩한 뜻을 찾는 이들은,
두 번째 죽음이 그들을 해칠 수 없으니.
나의 주님을 찬미하고 찬송하며 그분께 감사드리고
지극한 겸손으로 그분을 섬겨라.”
https://youtu.be/_x98B1FqadU?si=oxsADYRAm8NlRqCK
* 태양의 찬가(피조물의 찬가),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
* 원곡: 리쯔 오르똘라니(Riz Ortolani) 작곡, '형님인 태양 누님인 달(fratello sole sorella luna)'
지오또, 교황 인노첸시오 3세의 꿈, 129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