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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클 죠의 바티칸 산책] (1) ‘바오로 주막’은 흔적없이 사라졌지만…
2000년 전 로마로 압송되던 바오로 사도를 묵상하며
- 로마의 신앙 형제들은 주막(선술집) 세 개가 있는 트레스 타베르내까지 내려와 압송 중이던 사도 바오로를 만났다. 벌판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돌 담벼락만이 2000년 전 그 눈물겨운 상봉의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와 교황청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하는 이백만(요셉) 주교황청 한국대사가 ‘엉클 죠의 바티칸 산책’을 연재합니다. 언론인 출신인 이 대사는 바티칸 안팎의 소식과 풍경을 생동감 있게 전하고, 대사직을 수행하면서 길어 올린 신앙 단상(斷想)을 독자들과 나눌 예정입니다. ‘엉클 죠’는 이 대사가 캄보디아에서 봉사활동을 할 때 얻은 별명입니다.<편집자>
“바로 이곳이다!”포승줄에 꽁꽁 묶여 압송되던 바오로 사도가 로마 신자들을 처음 만났던 장소, 아피우스(Appius) 광장, 그리고 트레스 타베르내(Three Taverns)!
타베르내는 지금으로 치면 펜션, 옛날 개념으로는 주막입니다. 3개의 주막이 이곳에 있었답니다. 성경은 “형제들이 로마에서 우리 소문을 듣고 아피우스 광장과 트레스 타베르내까지 우리를 맞으러 왔다”(사도 28,15)고 전합니다.
바오로 주막 담벼락 조각만 덩그러니
로마에서 아피아 가도를 따라 50여㎞ 남쪽으로 내려가면 아피우스 광장이 있고, 광장에서 작은 하천을 건너 100m쯤 걸어가면 오른쪽 들판에 큰 돌덩어리가 외롭게 앉아 있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돌덩어리가 아니라 벽돌이 닥지닥지 붙어 있는 콘크리트 덩어리입니다. 트레스 타베르내, ‘바오로 주막’은 모두 흔적 없이 사라지고 없고, 이렇게 담벼락 조각 하나만 남아 순례자를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명색이 2000년 된 유물인데, 그 흔한 안내판도 없고, 설명서 한 줄 없습니다. 그냥 버려져 있더군요. 몹시 안타까웠습니다.
참 평화로운 농촌 풍경입니다. 예수님이 활동하셨던 갈릴래아도 이랬을까요? 아마 2000년 전에는 이랬을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타베르내 바로 앞에 아스팔트 도로가 뚫려 있고, 뒤편에는 대형 비닐하우스가 듬성듬성 설치되어 있는 넓은 들판이지만 말입니다. 예수님이 활동하셨던 카파르나움을 떠올리게 하는 촌락도 있습니다.
다시 생각에 잠깁니다. 바오로 사도와 로마 형제들은 이곳에서 처음 만났을 때 하룻밤을 어떻게 지냈을까. 죄인 아닌 죄인끼리의 뜨거운 포옹, 동병상련이었겠지요. 반가워서, 서러워서, 아마도 많이 울었을 것 같습니다. 울면서 기도하고, 기도하면서 울고!
저는 한동안 ‘사도행전’에 꽂혀 살았습니다. 여러 성경 중에 왜 하필 사도행전이냐구요? 남다른 사연이 있습니다. 바로 이 성구 덕분입니다. “주 예수님을 믿으시오. 그러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오.”(사도 16,31)
아마 초등학교 3, 4학년 때로 기억됩니다. 바닷가 시골 마을에 교회가 있었는데, 12월이 되면 서울에서 선교사 선생님들이 내려와 노래와 율동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빵 과자 학용품 등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솔직히 말해 저는 빵 얻어먹는 재미로 교회에 갔습니다. “염불보다는 잿밥”이라는 속담, 바로 그런 행태였지요.그런데 그때 배운 노래의 한 소절이 제 머릿속에 평생 각인되어 있습니다. 초등학교 졸업 후 교회와 담쌓고 살았는데도 어쩌다 성당이나 교회를 지나칠 때면 이 노래 가사가 떠올랐습니다. 군대 시절 훈련받기 싫어 교회에 갔을 때에도, 결혼을 앞두고 성당에서 관면 혼배를 드릴 때에도, 아들과 딸이 저보다 먼저 세례(유아세례)를 받을 때에도, 어김없이 이 노래 한 대목이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왔습니다. 경쾌한 음률과 함께.
노래 가사는 정확히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로다”입니다. 저는 이 노래 가사가 성경 말씀인 줄 전혀 몰랐습니다. 흔한 교회 노래의 한 소절인 줄 알았지요. 40세가 넘어 뒤늦게 세례를 받고 성경 공부를 하면서 우연히 알았습니다. 이 노래가 사도행전의 한 구절이라는 사실을.
주님은 왜 이런 선물을 저에게 주셨을까, 스스로 묻고 스스로 대답해 봤습니다. 아마도 주님께서 저에게 사도행전을 신앙의 중심으로 삼으라는 메시지를 주신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이 성구의 주제어(예수 믿음 구원)를 깊이 묵상해 보곤 합니다. ‘예수’는 나에게 과연 누구인가? ‘믿음’은 나에게 무엇인가? ‘구원’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구원을 받으려면
성구의 출처는 바오로 사도입니다. 바오로가 필리피에서 감옥 생활을 할 때, 간수가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대답으로 이 성구를 말씀하신 것이지요. 바오로는 아피우스 광장에서 로마 신자들과 만났을 때에도 이 말씀을 하셨을 것입니다. 저는 ‘바오로 주막’을 찾았을 때 오랜만에 이 노래를 소리 내어 불러봤습니다. 바오로를 생각하면서!
바오로가 감옥에서 피를 토하듯 하신 말씀을 저는 빵 얻어먹으러 교회에 갔다가 선물로 받았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경이롭기만 합니다. 죽는 순간 이 거룩한 말씀이 내 기억의 최후가 되길 기도하며 삽니다.
[엉클 죠의 바티칸 산책] (2) ‘Sono Disponibile(나는 갈 수 있다)’는 여전히 유효
프란치스코 교황이 북한 땅을 밟는 그날까지!
- 소프라노 조수미씨가 지난 10월 로마 성 이냐시오 대성당에서 열린 ‘한반도 평화를 위한 가톨릭 음악회’에서 천상의 목소리로 열창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북한에 가시긴 가실까요?”
“네, 가시겠지요. 그런데 한반도의 외교 지형이 지금 좋지 않아서….”
“언제쯤 가능할까요?”
“북한에서 공식 초청장이 오면 갈 수 있다고 하셨잖아요. 먼저 초청장이 와야 가능합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가톨릭 음악회
로마의 중심 베네치아 광장과 인접한 400년 역사의 성 이냐시오 대성당. 주교황청 한국대사관은 지난 10월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cpbc) 후원으로 이곳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가톨릭 음악회’를 성황리에 개최했습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아기 예수의 데레사)씨를 비롯해 로마와 밀라노의 한인성당 성가대에서 활동 중인 젊은 성악가들이 대거 출연하여 평화를 염원하는 성가를 열창했습니다. 음악회에서 만난 지인들의 한결같은 관심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방북이었습니다.
‘소노 디스포니빌레(Sono Disponibile).’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지난해 10월 바티칸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면담했을 때 주신 선물입니다. 이탈리아어인 이 말을 번역하면 “나는 갈 수 있다”입니다. 문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방북 초청 의사를 전달하자, 교황님께서 “김 위원장이 공식 초청장을 보내주면, 나는 갈 수 있다”라고 화답한 것이지요.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는 우리 민족에게 이만한 선물이 어디 있겠습니까. ‘Sono Disponibile’는 국내외 언론 매체를 통해 대서특필되었습니다. ‘교황, 방북 초청 사실상 수락’이라는 큼지막한 제목을 달고서 말입니다.
교황님의 ‘Sono Disponibile’는 지금도 유효하다는 게 교황청 측의 입장입니다. 한 관계자는 “기다려야지요. 우리는 기다리는 데 익숙해 있습니다”라고 말하더군요. 만약 교황님의 방북이 성사된다면 그 자체로 기적입니다. 한반도에 기적과 같은 일들이 많이 벌어질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교황님의 전용기가 평양 순안공항에 착륙하는 장면은 물론이고 교황님이 북한 땅을 밟는 순간, 그리고 교황님이 김 위원장과 북한 주민을 만나는 장면 등이 TV를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될 것입니다. 평양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될 것이고, 이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진행을 몇 단계 앞당기는 효과를 가져다줄 것입니다. 가톨릭은 물론이고 개신교 불교 원불교 등 종교 전반의 교류도 획기적으로 확대되지 않겠습니까. 북한은 세계에서 신부와 수녀 등 성소자가 없는 유일한 나라입니다. 남북이 분단되기 전만 하더라도 가톨릭 신자가 5만 7000여 명에 달했었는데….‘Sono Disponibile’는 그냥 실현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날을 기다리며 기도해야 합니다. 평화는 기도 없이 불가능한 일입니다. 주교황청 한국대사관이 ‘한반도 평화를 위한 가톨릭 음악회’를 연 것도 그런 기도운동의 일환입니다. 이날 성악가들이 부른 성가 하나하나가 모두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음악회의 백미는 줄리오 카치니의 ‘아베 마리아’였습니다. 소프라노 조수미씨가 천상의 목소리로 ‘아베 마리아’를 열창하자 모든 관객이 깊은 침묵 속에서 눈과 귀를 그에게 집중했고, 그의 목소리는 넓은 대성전에 은은하게 울러 퍼졌습니다. 노래가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졌습니다. 음악회 후에 열린 리셉션에서 많은 사람이 “역시, 조수미!”라고 한마디씩 하더군요.
음악회에는 많은 분이 함께해 주셨습니다. 교황청 외교단과 교황청 사제들을 비롯해 로마에 거주하는 한국 신부들과 수녀들, 가톨릭 신자, 한국 교민, 이탈리아 시민 등 500여 명이 동참했습니다. 특히 cpbc는 음악회를 TV 녹화 중계하여 한국 신자들도 바티칸의 기도운동에 간접적으로 참여토록 하였습니다. 유튜브에 접속해 ‘한반도 평화를 위한 가톨릭 음악회’를 검색하면 언제든지 그날의 감동을 직접 느껴 볼 수 있습니다.
교황의 한반도 사랑과 우리의 기도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한반도 사랑은 각별하십니다. 계기가 있을 때마다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순례자들에게 기도를 부탁하면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메시지를 발표하십니다. 특히 지난 4월 ‘판문점 선언’ 1주년 기념식이 열렸을 때는 친히 영상 메시지를 판문점 행사장에 보내 “인내심을 갖고 지속해서 화합과 조화를 추구한다면 분단과 대립을 극복할 수 있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주교황청 한국대사관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Sono Disponibile’가 실현되는 그 날까지 기도운동을 꾸준히 이어갈 것입니다.
[엉클 죠의 바티칸 산책] (3) 평화 없이 되는 게 있을까요
온 인류가 오순도순 형제애 나누며 평화롭게!
-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9년 4월 평화협정을 맺은 남수단 정치 지도자들을 바티칸으로 초대해 피정을 함께 한 뒤 무릎을 꿇고 그들 발에 입을 맞추고 있다. 교황은 이들에게 “제가 형제로서 부탁합니다. 평화 안에 머무르십시오”라고 호소했다. [CNS 자료사진]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1월 1일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세계만방에 평화의 메시지를 반포하는 것으로 새해 업무를 시작합니다. 2020년의 메시지는 ‘평화, 희망의 여정: 대화, 화해, 생태적 회심’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이자 세계 평화의 날인 1월 1일 오전 10시 교황청 외교단을 모두 초대한 가운데 세계 평화의 날 미사를 집전, 평화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 세계 평화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새해 벽두의 평화 미사는 바오로 6세 교황님이 1968년 1월 1일을 세계 평화의 날로 선포한 이후 교황청의 관례가 되었습니다. 교황님은 ‘평화의 사도’로서 여러 나라를 순방하며 사목활동을 펼칩니다.
가장 소중한 가르침은 무엇일까
예수님의 가르침 가운데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요. 사랑? 믿음? 사실 이런 질문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본질적으로 경중의 차이가 없는데다, 모든 가르침이 상호 연관성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동시에 ‘완전한 인간’이셨던 예수님의 고민을 좀 더 깊이 묵상해 보는 차원에서 어리석은 질문을 하나 던져 봤습니다. 저의 짧은 생각으로는 ‘인간 예수’가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던 가장 간절한 소망은 평화가 아니었을까 라고 추측해 봅니다.
예수님에게 사랑이나 믿음보다 더 중요한 가르침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제가 평화를 이야기한 이유는 그것이 현실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평화가 없는 상태에서도 사랑이나 믿음은 가능합니다. 혹독한 박해 시절에도 사랑과 믿음이 있었고, 그것은 평화 시절보다 더 순수하고 더 거룩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은, 그 믿음은 큰 고통을 수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처량하고 처연한 사랑이고 믿음이었습니다. 인간을 지극히 사랑하신 예수님은 하느님의 백성들이 평화 속에서 사랑과 믿음을 실천하며 살기를 소망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예수님의 평화를 묵상할 때마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아프지 않은 손가락 없다”는 속담을 떠올리곤 합니다. 여러 명의 자녀를 둔 아버지가 임종할 때 그들에게 들려주는 마지막 당부 말씀은 무엇일까요. “돈 많이 벌어 부자 되어라”, “승진 빨리해서 출세해라” 이런 말일까요. 결코 아닐 것입니다. 죽음을 목전에 둔 아버지는 자신이 낳은 자녀들의 손을 꼭 잡고 “사이좋게 오순도순 살아야 한다!”라고 당부할 것입니다. 형제끼리 싸우지 말고, 서로 양보하면서 평화롭게 지내라는 유언이겠지요.
인종 언어 문화가 다른 수많은 사람들
하느님의 자녀가 세상에 얼마나 많습니까. 인종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역사와 문화가 다른 민족이 수없이 많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대표하는 12명의 사도에게 결정적인 순간마다 평화를 이야기했습니다. 수난 후 부활하시어 제자들을 처음 만났을 때에도 첫 마디가 ‘평화’였습니다. 요한복음은 당시 상황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실감 나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요한 20,19) 예수님은 사목 활동의 지침으로도 평화를 강조하셨습니다.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루카 10,5)
평화가 무엇일까요? 너무 거창하게,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형제들끼리 사이좋게 지내며 오순도순 사는 것 아닐까 합니다. 바로 형제애(fraternity)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취임 후 발표한 첫 평화 메시지(2014년)에서 형제애를 내세웠습니다. “형제애는 인간성의 핵심이며 평화의 기초이다. 우리가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는 분명한 자각이야말로 서로를 존중하며 친형과 친동생으로 혹은 친누이로 대하도록 한다.”
평화는 현실의 문제입니다. 현실 세계에서는 평화가 가장 중요합니다. 평화 없이 되는 게 있을까요? 사랑이나 믿음은 기본적으로 당사자 개인의 문제입니다. 본인 스스로 마음먹고, 실천하면 가능합니다. 그러나 평화는 상대방이 있는 문제입니다. 의견이 다른 상대방과 대화해야 하고, 설득해야 가능합니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문제입니까. 개인 간이나, 민족(국가) 간이나 말입니다. 예수님이 왜 그토록 간절하게 평화를 이야기했을까. 역설적으로 평화 만들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방증일 것입니다.
[엉클 죠의 바티칸 산책] (4) 세계 외교사에 숨은 평화의 사도, 교황청
교황청이 가진 무기라곤 묵주밖에 없는데…
- 프란치스코 교황이 ‘왕의 방’에서 외교단과 신년하례회를 한 뒤 시스티나경당으로 자리를 옮겨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올해 1월 9일은 사실상 ‘외교의 날’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이날 오전 사도궁 1층 ‘왕의 방(Sala Regia)’에 교황청 외교단의 대사들을 부부동반으로 초청해 신년하례회를 합니다. 교황님은 하례회 참가자들과 일일이 악수하고 인사말을 나눕니다. 교황님의 대외 활동은 해마다 이렇게 시작합니다.
신년 하례회와 외교단 초청 만찬
교황청의 2인자인 국무원장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님도 이날 저녁 블랑까쵸궁에서 열리는 외교단 초청 만찬에 참석, 덕담을 나누고 외교 현안을 이야기합니다. 이날 행사에는 국무부와 외교부의 성직자들이 전원 참석합니다.
교황님과 외교단이 만나는 왕의 방은 신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특별한 공간입니다. 이곳은 중세 시대 교황님이 각국의 왕과 사신을 만났던 접견실입니다. 지금은 교황님이 외교사절과 교회 지도자, 여러 사회단체 대표 등을 만나는 장소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왕의 방 바로 옆쪽에는 그 유명한 시스티나경당(일반인 공개)이, 바로 뒤쪽에는 바오로경당(일반인 비공개)이 붙어 있습니다. 시스티나경당에는 미켈란젤로의 명작 ‘천지 창조’와 ‘최후의 심판’이, 바오로경당에는 미켈란젤로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 2개가 양쪽 벽면에 큼지막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는 장면과 바오로 사도가 다마스쿠스에서 회심하는 장면입니다.
교황 유고시에는 새로운 교황이 시스티나경당에서 콘클라베 방식으로 선출됩니다. 신임 교황은 왕의 방으로 나와 바오로경당으로 들어가 기도합니다. 신임 교황은 이렇게 업무를 시작합니다. 바오로경당의 베드로 사도는 눈을 매섭게 뜨고 있습니다. 초대 교황(베드로 사도)이 신임 교황에게 “똑바로 하시오! 나는 이렇게 순교했소!”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시스티나경당과 바오로경당으로 둘러싸여 있는 왕의 방은 새해 업무를 시작하는 교황님이나 외교단에 상징적 의미가 큽니다. 세상의 시작(천지 창조)과 끝(최후의 심판), 천국의 열쇠(베드로)와 성령의 칼(바오로)! 이 모든 것을 묵상하며 새해 업무를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교황청의 정무 기능은 외교가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평화의 사도’인 교황님은 외교를 통해 세계 평화를 구현합니다. 교황청은 돈(경제력)도 없고 무기(군사력)도 없지만, 외교력은 세계 최강 수준입니다. 교황청이 가진 무기라고는 묵주밖에 없는데…. 그 힘은 어디서 나올까요.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 러시아 등 세계 각 나라의 최고 지도자(대통령책임제 대통령이나 내각책임제 총리)는 교황청을 방문하여 교황님을 알현(개별 면담)하거나 자국에 교황님을 초대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김대중 대통령 이후 모든 대통령이 교황청을 방문하여 교황님을 알현했습니다. 교황청의 외교 의전은 형식적인 절차 같아 보이지만, 물밑에서 이루어지는 외교 행위는 무척 활발합니다. 교황청의 외교 행위는 비공개가 원칙이어서 세상에 알려진 것이 별로 없어 보일 뿐입니다.
어떤 정치가도 못한 일들을
6년 전 예외가 하나 있었습니다. 2014년 12월 17일, 당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할 때 TV를 지켜보던 미국 국민들은 물론이고 전 세계의 시청자들이 두 번 놀랐습니다. 오바마가 미국의 ‘철천지원수’ 쿠바와 국교를 정상화하겠다고 전격 선언할 때 한 번 놀랐고, 두 나라 간의 중재에 힘써주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에게 감사의 뜻을 전할 때 두 번 놀랐습니다. 물론 같은 시간에 쿠바의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도 오바마와 똑같은 내용의 특별 성명을 발표했고, 프란치스코 교황님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습니다. 교황청에 세계의 시선이 집중되었습니다. “어떤 정치 지도자도 못했던 일이었는데, 교황님이 이 일을 어떻게 하셨지?”
교황청은 세계사에 남을 만한 역사적인 일을 해놓고서도 보도자료 한 장 내놓지 않습니다. 이것이 교황청의 관행입니다. 교황청 외교활동의 성과가 대부분 ‘비하인드 스토리’로 회자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쿠바 미사일 위기 해소와 핵전쟁 저지(1962년), 폴란드 민주화 및 공산 정권 붕괴(1980년대), 유럽연합 출범(1994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화해(2014년) 등 세계사의 주요 국면에 교황청의 역할이 있었습니다. 특히 교황청은 1948년 한국 정부가 유엔총회에서 승인을 받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엉클 죠의 바티칸 산책] (5) 시국(市國) 바티칸과 영적인 국가 교황청
교황청은 왜 구글 지도에 없을까
- 바티칸 시국에서 군인 역할을 하는 스위스 근위대 병사들이 성 베드로 광장을 행진하고 있다. 교황청은 13억 가톨릭 신자의 ‘영적 국가’임에도 여느 국가와 똑같은 형태의 정부 조직을 갖고 있다. [CNS 자료사진]
바티칸과 교황청, 같은 말일까요? 아니면 다른 말일까요?
스마트폰에서 구글 지도를 검색하여 로마 시내를 살펴보면 교황청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한글로도, 영어(Holy See)로도, 이탈리아어(Santa Sede)로도 교황청의 흔적이 없어요. 대신 ‘바티칸’이 나옵니다. 교황청이라는 나라는 분명히 존재하는데 지도에 없다니!
해외여행을 하는 사람마다 이용하는, 그 유명한 구글 지도가 틀린 것일까요? 아닙니다. 맞습니다. 교황청은 구글 지도에는 없지만, 분명히 실재하는 국가입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저에게 ‘주바티칸 대사’라고 호칭합니다. 저는 이런 사람들에게 저의 명함을 한 장 건네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저의 공식 타이틀은 주교황청 한국대사입니다. 주바티칸 한국대사가 아닙니다.”
교황청과 바티칸 엄연히 달라
그러나 저에게 누군가가 “주바티칸 한국대사이시냐?”고 물으면 그냥 “그렇습니다”라고 답합니다. 굳이 “주바티칸 대사가 아니고 주교황청 대사입니다”라고 정정하지 않습니다. 현실에서는 교황청이나 바티칸이나 같은 의미로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엄격하게 말하면 바티칸과 교황청은 완전히 다른 말입니다. 역사적으로나 법률적으로나 정치·외교적으로 큰 차이가 있습니다. 교황청의 공식 국호는 영어로 ‘Holy See’, 이탈리아어로 ‘Santa Sede’입니다. 바티칸의 공식 국호는 한국어로 ‘바티칸 시국(약칭 바티칸)’, 영어로 ‘Vatican City State’, 이탈리아어로 ‘Stato della Citta del Vaticano’입니다. 교황청과 바티칸의 차이점을 국가 역사, 국가 조직, 국가 기능 등 세 가지 점에서 설명해 드리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첫째, 역사적으로 아주 큰 차이가 있습니다. 교황청의 초대 교황은 베드로 사도입니다. 현재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266대 교황입니다. 교황청은 약 2000년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반면 바티칸은 1929년 라테라노조약에 의해 바티칸 언덕 위에 탄생한 도시 국가(city state)입니다. 역사가 고작 91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둘째, 국가 조직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교황청은 세계 13억 가톨릭 신자를 영적으로 지도하고 총괄하는 ‘영적인 국가’입니다. 그럼에도 여느 국가와 똑같은 형태의 정부 조직을 갖고 있습니다. 국가 원수는 교황입니다. 교황을 보좌하는 국무원장(한국의 국무총리에 해당)이 있고 그 밑에 부(部), 성(省), 위원회 등 장관급 부서가 있습니다. 반면 바티칸은 창경궁 정도의 국토 면적(0.44㎢)에 인구(시민권 소유자)가 850여 명에 불과한 ‘세속적 국가’입니다. 바티칸의 시민권은 출생이 아니라, 직책에 따른 증서에 의해 획득되고 업무에서 물러나면 시민권도 자동적으로 소멸됩니다. 바티칸은 이처럼 초미니 국가이긴 하지만, 국제정치학에서 규정하고 있는 국가의 3대 요소(국민 주권 영토)를 실체적으로 확실하게 확보하고 있습니다. 교황은 바티칸과 교황청의 수장을 겸하고 있습니다.
셋째, 국가의 기능에 있어도 크게 다릅니다. 교황청은 국제법상 완전한 주체로서 영세 중립국입니다. 외교사절의 파견과 접수, 조약체결 등 외교 행위를 여느 나라와 똑같이 수행합니다. 교황청이 수교하고 있는 나라는 2019년 말 현재 183개국에 달합니다. 또 국제연합(UN), 유럽연합(EU),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 주요 국제기구에도 옵서버 또는 정식 회원국으로 가입하여 적극적인 외교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바티칸의 실질적인 기능은 단출합니다. 바티칸은 라테라노조약에 근거하여 이탈리아와의 협력업무(치안 교통 통신 전기 수도 등 행정서비스)를 주로 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교황청 소유의 각종 시설물을 관리(유지 보수)하고 있습니다.
불가분의 관계
교황청과 바티칸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바티칸은 교황청이 주권을 독립적으로 온전하게 행사할 수 있게 하는 도구적인 역할을 수행합니다. 교황청은 바티칸 없이도 존재할 수 있으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론적인 말입니다, 바티칸은 교황청의 초석이자 구심점입니다. 쥘부채의 사북이나 자전거 바퀴의 허브와 같은 존재입니다.
교황청은 바티칸이라는 물리적 공간에 기초하여 영적인 역할을 하는 국가입니다. 교황청은 개념상 ‘영적인 국가’이기 때문에 구글 지도에 표기할 수가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