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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70:1-5 하나님이여 속히 나를 : 칼빈
본 시편 칼빈 주석은 서너줄 뿐이기에 지금까지 했던 방식의 역순이 되겠습니다.
그것은 박윤선 주석에서 95%, 칼빈 주석에서 3%, 나머지는 주께서 주시는 은혜를 따라 2%를 더하는 방식입니다.
다윗의 기념케 하는 시, 영장으로 한 노래
이 다윗의 시편은 시편 40편의 일부분인데 독립된 시편으로 적용한 듯합니다.
“다윗의 기념케 하는 시” 라는 말씀은 아마 무슨 뜻을 나타내려고 한 것 같습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다윗은 이 다섯절을 발췌하여 특별한 절기에 사용하게 했을 것입니다
Ⅰ. 먼저 박윤선 주석의 강요 부분입니다.
오늘 본문에 대한 배경적인 이해가 우리에게는 필수적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시고 부르신 신자들에게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서와 그 속성으로 행하신 하나님의 모든 일들을 성령으로 말미암아 알게 하셔서 공통의 이해에 이르도록 은혜의 복을 주십니다.
이사야 40장에서 45장까지의 대략을 살펴보겠습니다.
1. 다윗은 이 시편에서 여호와의 구원을 청하되 “속히” 구원해 주시기를 청원합니다. 이 시편에 “속히” 란 말이 나옵니다(5절). 또 “지체하지 마소서” 란 말도 나옵니다.
이렇게 다윗이 하나님의 신속한 구원을 청한 것은 하나님께서 혹시 신자의 구원을 등한하시다 든가 마땅히 하나님께서 취하실 일을 연기하신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여기서 “속히”란 말은 다윗이 주의 구원을 갈망하는 간절성에서 나온 말입니다
호6:3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합2:3절은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임하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하였습니다.
시편 70 편
2. 다윗은 자기가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받음이 성도들의 기뻐할 일로 생각합니다(4).
다윗은 개인주의자가 아니고 모든 성도들과 영적으로 연합된 처지를 취하였습니다.
그 원수들의 손에서 다윗의 구원을 기뻐하는 자들은 육체적인 이해(利害) 관계에서 다윗과 함께 행동(行動)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그 성도들은 진실로 하나님을 중심하여 다윗과 연결된 신실한 신자들입니다.
그들은 다윗처럼 “주를 찾는 모든 자들”이요, “주의 구원을 사모하는 자들” 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참 자녀라면, 다른 참 신자로 더불어 연합하기를 원해야 됩니다.
3. 다윗은 자기가 “가난하고 궁핍” 하다고 말합니다(5).
이것은 물질적 빈궁을 의미하기보다 주를 위해 많은 고난을 받는 중에 있는 신분(身分), 곧 하나님과 하나님의 간섭하심 없이는 도무지 살 수 없는 형편을 의미합니다.
이런 신분을 소유한 신자는 하나님만 바라보게 되니 그것이 도리어 복된 처지입니다.
그러므로 약1:10절에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하여 낮은 자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높은 자리인 사실을 지적합니다.
Ⅱ. 다음은 박윤선 주석의 해석 부분입니다.
1. 다윗은 급히 구원해 주시므로 악한 원수는 실패케 되기를 기도합니다(1-3).
1) 1절은 “하나님이여 속히 나를 건지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다윗이야말로 오랫동안 구원을 고대한 사실이 드러납니다.
성도가 성령으로 인내하며 고대하던 끝에는 “속히” 라고 부르짖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난이 시작될 때부터 “속히” 도와주시기를 기원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에게 대하여 단기적이고도 임기웅변적인 태도를 취함이니 합당치 않습니다.
고난이 우리에게 오는 이유는 우리의 단기를 고치고 인내를 연성(鍊成 ; 연단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하려는 까닭인데 우리가 이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2) 2-3절 “(2) 내 영혼을 찾는 자로 수치와 무안을 당케 하시며 나의 상함을 기뻐하는 자로 물러가 욕을 받게 하소서
(3) 물러가 욕을 받게 하소서 아하 아하 하는 자로 자기 수치를 인하여 물러가게 하소 서” 입니다.
이 원수는 주와 다윗의 의(義)를 시기하고 미워하여 죽이려 하니 얼마나 악합니까?
시편 70 편
또 이 원수는 오히려 다윗의 불행을 유쾌히 생각하니 이 얼마나 악한 자 입니까?
이 원수의 시기와 증오와 잔인성은 일시적의 것이 아니고 장기적의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이 다윗의 원수 정도이면 회개할 소망이 없이 굳어진 악독한 자입니다.
그것이 장기적인 사실은 압박받은 다윗이 장기간 고난 중에 있음을 보아 알려집니다.
성도가 이런 극악자를 상대로 하고서 하나님 앞에 고소하는 것은 옳은 일이겠습니다.
그러나 성도가 보통 악인들을 하나님께 고소한다는 것은 불의(不義)요 교만입니다.
2. 다윗은 자신을 구원하시므로 성도들이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4).
기도함에 있어서 성도의 주요한 관심거리는 이기주의가 아니고 교회 모든 성도들의 영적 유익을 위한 것이어야 마땅하고 또 그렇게 해야 가장 적합한 기도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는 사실은 구원의 은혜를 함께하는데 그 원인이 있습니다
한 진리에 거하고 한 성만찬의 체험이 있는 때마다 교회의 믿음은 더욱 굳세어집니다.
이때에 성령의 조명과 성령의 감화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사방에 퍼집니다.
또 이때에 하나님께는 모든 영광이 돌아가므로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1) 4절은 “주를 찾는 모든 자로 주를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주의 구 원을 사모하는 자로 항상 말하기를 하나님은 광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입니다.
“하나님은 광대하시다” 란 말씀은 하나님이 신자에게 은혜를 후히 주신다는 뜻입니다.
성도도 인간일 뿐인지라 살아계신 하나님과 하나님 교회 앞에 언제나 부족합니다.
(1)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예상 밖에 그 성도에게 임한 경우를 우리가 확인합니다.
(2) 또 성도가 하나님께 기도한 이상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넘친 사실을 경험합니다.
3. 우리 앞에는 다윗이 기도했던 기도의 결론이 있습니다(5).
1) 5절은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오니 여호와여 지체치 마소서” 입니다.
“나는 궁핍하오니”란 말씀은 신자가 물질에 있어서만 빈핍한 사실을 말하기보다 특히 악도들의 박해하에 있어서 하나님 없이는 파산자인 사실을 가리키는 언어 방식입니다.
성도가 그 곤고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알기에 그런 곤고한 때에도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혹 성도가 이런 때에 살아계신 하나님께 기도하는데도 불구하고 그 성도 앞에 놓인 외부적 환경은 아무런 변동이 없고 계속되는 고난으로 종결(終結)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수난에도 성도는 기도 응답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영적 위안을 받습니다.
시편 70 편
Ⅲ. 그 다음은 박윤선의 설교입니다.
★ 성도가 원수 앞에서 가질 신앙적 태도가 있습니다(1-5).
1. 성도의 복된 태도란, 원수 갚는 일을 주님께 부탁하는 신앙입니다(1-3).
시 109:4 “나는 사랑하나 저희는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
롬12: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주께서 말씀하시니라”하였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계심으로 원수 갚는 일을 하나님께 부탁해야 됩니다.
우리는 먼저 “내”게 원수로 생각되는 그가 과연 “내” 원수인가 명백히 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나”보다 그 사람을 더 사랑하시지 않으실 것인가 생각해야 됩니다.
그 사람이 “내”게는 원수이지만, 정작 “하나님” 에게는 원수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원수가 아닌 그를 “내” 원수로 삼아서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친구를 내가 원수시하면 “내”가 하나님께 대적하고 범죄함이 아니겠습니까?
(1) 성도는 하나님의 원수 아닌 자를 적(敵)으로 대하지 말아야 됩니다.
우리의 원수 표준은 그 누가 하나님의 원수된 자인가 라는 사실에만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너무 쉽게 다른 사람들을 원수로 만들고 그들을 미워합니다.
그들은 종종 참된 원수를 친구로 알고 평생 그 원수를 위해 희생하는 일도 있습니다.
혹은 그들이 가장 사랑한 자가 무서운 원수 노릇을 하는 경우가 있기도 합니다.
오래 전에 미국에서 비참한 사고가 났습니다.
그것은 비행기가 떨어져서 거기 탔던 승객들이 전멸을 당한 일입니다.
사고 원인은 승객들 중에 비행기 사고 보험(事故保險)에 든 한 부인이 있었습니다.
그가 비행기를 타기 위해 떠날 때 그의 아들이 폭탄 한 개를 어머니 가방에 넣습니다.
그 아들이 자기 어머니가 죽으면 자기가 보험금을 타려는 목적이었습니다.
이렇게 그 아들은 그 어머니와 수많은 사람들의 원수 노릇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가까운 친척이나 가족이라고 해서 반드시 나를 돕는 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가까이 지내면서 나를 이용해 버리는 무서운 원수일 수도 있습니다.
(2) 성도는 하나님의 원수를 자기의 반대편으로 알아야 됩니다.
시139:21에 “여호와여 내가 주를 미워하는 자를 미워하지 아니하오며 주를 치러 일어나는 자를 한하지 아니하나이까” 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70 편
하나님의 원수는 어떤 것입니까?
① 하나님의 원수는 대적자인 마귀입니다.
우리는 마귀를 미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마귀를 미워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께 기도하여 주만 믿고 순종함이 마귀를 미워하는 방법입니다(약4:7).
② 하나님의 원수는 죄악입니다.
우리는 죄악을 하나님의 원수로 알고 미워해야 됩니다.
기도할 때에 우리는 다른 것보다도 죄악이 멸절되기를 기도해야 됩니다.
③ 하나님의 원수는 적그리스도(敵基督) 입니다.
우리는 강퍅한 적그리스도를 미워하며 그 운동이 무너지기를 기도해야 됩니다.
④ 하나님의 원수는 이단(異端)들 입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간교하게 거짓 교훈을 가지고 가만히 역사하는 확실한 이단의 활동을 잘 경계하며 막아내도록 힘써야 됩니다.
그 이유는 원수는 내부적으로 더욱 악하게 역사하는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2. 성도는 주님으로 기뻐하는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4, 5).
(1) 진정한 성도는 환난 중에서도 주님으로 인하여 기뻐합니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환난 때 주께서 우리에게 더 가까이 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2) 살아계신 하나님 자신이 우리에게 최상의 기쁨이요 상급이 되십니다(창15:1).
그 이유는 하나님은 “영광의 하나님”이시며(행7:2), “평강의 하나님”(빌4:9)이시며, “사랑의 하나님”(고후13:11)이시며, “사유하시는 하나님”(느9:17)이시며,
“구원의 하나님”(사12:2)이시며,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롬15:5)이시며,
“소망의 하나님”(롬15:13)이시며, “모든 위로의 하나님”(고후1:3)이시며,
“모든 은혜의 하나님”(벧전5:10) 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시니 우리는 그 하나님을 생각만 해도 기쁩니다.
(3) 성도는 하나님께서 앞으로 새 일 하실 것을 생각할 때마다 기쁩니다(계27:1-4).
세상에는 죄악이 가득한고로 하나님은 장차 간섭하시며 판단하시어 새 일을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