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외교의 소고(小考)>/구연식
스포츠맨십은 스포츠의 룰과 정신에 따라 정정당당하게 경기를 하는 스포츠의 매너이다. 공인된 스포츠 룰은 만국 공용어로 통하여 규격 된 경기장과 선수만 있으면 언어 사상 종교 정치 등의 불통과 관계없이 바로 경기가 진행된다. 그래서 특히 적대관계의 국가에서는 외교의 첨병(尖兵)으로 스포츠 외교를 앞세운다.
세기의 스포츠 외교로는 1972년 미국과 중국의 핑퐁외교를 들 수 있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20년 이상 미·중 간 막혔던 교류의 징검다리를 놓은 것이다. 1971년 4월 6일 일본 나고야 세계 탁구선수권 대회에 출전한 미국 선수들을 북경으로 초청한 친선 핑퐁 게임이다. 미국의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과 중국의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가 데탕트를 이루어 내어. 그것을 계기로 물밑 정치적 외교의 물꼬가 트여, 미국 리처드 닉슨(尼克松) 대통령과 중국 마오쩌둥(毛澤東) 주석 간의 정상외교가 시작되었다. 그해 10월 25일에는 유엔이 중국을 유일한 합법정부로 의결하고 UN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결정하여 중화민국은 회원국 지위를 상실했다. 그 시절 미국 영부인 ‘팻 닉슨’이 북경 동물원 방문에서 ‘판다’에 관심을 보이자 중국은 ‘판다 외교’도 곁들인 계기가 되었다. 1973년에 핑퐁외교의 주역 헨리키신저에게는 노벨평화상이 수여되었다.
지금까지 이기적이고 냉정한 국제사회 속에서 스포츠 외교가 이루어낸 괄목할 만한 현실이다. 그러나 스포츠맨십이 실종되어 국제 전쟁을 유발한, 1969년에 열린 FIFA 월드컵 북아메리카 지역 예선에서 있었던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사이에 시비가 붙은 축구 전쟁이라는 불미스러운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우리의 남북 간 스포츠 외교는 어떨까? 지구상에는 190여 국가가 있다고 한다. 그중에서 올림픽을 개최한 나라는 18개국(중복 개최국 참조)으로 한국은 24회(1988년) 때 개최했으며, 월드컵은 16개국(중복 개최국 참조) 중 17회(2002년) 때 일본과 공동 개최했다. 이렇게 스포츠 능력이나 국제 외교 위상으로는 선진국 반열에 있다. 그러나 남북한 스포츠 외교는 그 위상에 반비례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그간 기껏해야 국제 대회에서 한반도기를 앞세우고, 아리랑의 주악 속에 발 맞춰 공동 입장 정도였으니, 스포츠는 선진국인데, 아직도 이데올로기의 철조망으로 대치한 지구상에 유일한 냉전 지역의 꼬리표가 심히 낯 뜨거운 국가이다.
최근 북한은 A·I 시대에 석기시대의 전술인 오물 풍선으로 후방 민심 교란작전을 감행하고 있다.
먹이사슬에서 초식동물은 최하위의 계층으로 가장 온순하다. 우리 민족은 초원에서 자란 농작물을 주식으로 하며 평화를 사랑하였다. 의복도 전쟁을 포기하는 백의(白衣) 민족이다. 주택도 둥글납작한 초가로 순박하고 고즈넉한 평화스러운 보금자리이다. 이렇게 우리 민족은 의식주가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인데. 어쩌다가 북쪽은 전쟁 정신에만 도취했는지 가슴이 아프다. 단군 할아버지는 포악한 호랑이보다 덕스러운 곰을 택했다.
남한과 북한을 생각하면 언제나 떠오르는 중국의 시구가 있다. 조조의 아들 조식(曹植)의 형 조비(曹丕)가 황제가 된 후, 조식을 박해하고자 조식이 일곱 걸음을 걸어가는 짧은 시간 내에 시 한 수를 지을 것을 명하고 짓지 못하면 죽이겠다고 협박하였다. 조식은 말이 떨어지자, 일곱 걸음을 걸어가며 읊었던 칠보 시(七步诗)-자두시(煮豆詩)가 생각난다.
煮豆燃豆萁 (자두연두기) 豆在釜中泣 (두재부중읍) 本是同根生 (본시동근생) 相煎何太急 (상전하태급) 깍지를 태워 콩을 삶으니 콩이 솥 안에서 우는구나. 본디 한 뿌리에서 자랐건만 왜 서로 들볶아야만 하는지.
제발 남과 북은 지긋지긋한 병정놀이는 이제 그만 때려치우고, 우리 고유의 얼이 흠뻑 젖어 있는 민속놀이로 백두에서 한라까지 얼싸안고 목 터지게 노래 부르며, 겨루기도 하면서 흉금을 훨훨 털어버리고 토끼 허리가 휘어지도록 한바탕 취해 보자고 간절히 간절히 5천만의 이름으로 소망해 본다. (2024,6,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