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사 크리스티의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Murder on the Orient Express)》
아가사 크리스티는 1890년 보수적이지만 부유한 가정의 막내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음악과 문학에 몰두했지만 성격은 내성적이고 소심했다. 다만 공상하는 것을 좋아하고, 종종 넋을 잃고 엉뚱한 상상에 빠진다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었다. 1914년 첫 남편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동안, 그는 간호사로 자원해 병원에서 근무했다. '누가 독살당할까? 언제, 어디서, 누구를 독살하지?' 혼자 조제실을 지키고 있을 때면 이 같은 공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때부터 아가사 크리스티는 본격적으로 추리 소설을 쓰기로 결심한다. 다양한 작품에서 자유자재로 각종 독극물을 소재로 삼을 수 있었던 것도 이때의 경험 덕분이다.
1920년 마침내 첫 작품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이 우여곡절 끝에 세상에 나오게 되었고, 차츰차츰 작가로서 입지를 다져나가기 시작했다.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과 두 번에 걸친 결혼생활 등으로 아가사 크리스티도 순탄치 않은 인생을 살았다. 특히 1926년 12월, 어머니의 죽음과 남편의 외도로 큰 충격을 받은 아가사 크리스티가 열흘이 넘도록 실종된 사건은 지금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당사자 역시 인터뷰나 작품을 통해서 여기에 대한 일체의 언급을 하지 않아 더욱 궁금증을 낳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이 사건만을 따로 다룬 뮤지컬('아가사')이 만들어졌을 정도다. 다만 자서전의 한 대목에서 그는 말한다. "때로는 나락으로 떨어진 듯 절망하고, 날카로운 비참함에 온몸이 꿰이고, 슬픔에 몸서리를 치기도 했지만 '살아 있다'는 것은 위대한 것임을 여전히 확신한다."
아가사 크리스티는 소설의 시작부터 범인과 범죄의 동기를 문장 속에 숨겨놓는다. 독자들은 이 숨바꼭질에서 매번 뒤통수를 맞으면서도, 그 반전의 스릴과 서스펜스 때문에 그의 작품을 다시 찾는다. 슬슬 날이 추워지고 있다. 책 읽기 좋은 계절이 따로 있겠냐마는, 추리소설을 읽으며 보내는 겨울 밤도 추천할 만하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Murder on the Orient Express)》은 아가사 크리스티가 창조해낸 인물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탐정 에르퀼 푸아로(포와로)가 등장하는 작품이다. 에르퀼 푸아로는 직접 몸을 굽히고 현장을 뛰어다니며 사건을 조사하는 타입이 아니라, 주어진 자료를 근거로 머릿속의 '회색 뇌세포(The Little Gray Matter)'를 사용하여 추리를 하는 '안락의자형' 탐정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이번 작품의 배경은 유럽 대륙을 횡단하는 오리엔트 특급 열차이다. 움직이는 열차이다 보니 자연스레 사건은 밀실에서 이루어지고, 먼 이국의 땅을 배경으로 하다 보니 화려한 느낌도 준다. 그런데 그 기차에서 한 남자가 살해당하고, 여러 개의 상처와 엇갈린 증언들로 인해 사건은 점점 더 미궁으로 빠져들게 된다.
그러나, 계획적으로 행해진 범죄엔 필연적으로 과거의 원한이 잠재해 있기 마련. 여권의 기름 얼룩 등 사소한 단서 등을 통해 푸아로는 자신의 두뇌를 회전시키고, 마침내 범인이 누구인지, 어떻게 벌어진 일인지를 밝혀내지만, 기존 사건들과는 조금 다른 식의 결말을 보여준다.
누가 범인인지가 아니라 누가 범인이 아닌지를 가려내야 하는, 색다른 설정과 결말을 가진 아가사 크리스티의 대표작이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