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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을 같이 하면서 또 찬양을 들으면서 감사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왜냐하면 같은 용어로 준비를 해서 그러니까 이 말씀에 이르기까지 몇 번씩 서로 사랑함에 대해서 사랑함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사랑하는 자들아라고 시작을 해요. 영어로 빌러트 사랑하는 자들아라는 물음으로 시작을 합니다. 이것은 사도 요한이 성도를 향해서 부르는 소리이지만 또한 그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부르심의 소리입니다. 그가 보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믿음 안에서 하나님과 사랑의 교제를 하는 모든 사람의 부르시는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이 부름이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도 적용이 되는 부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과 사귀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고, 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합니다. 그래서 하라고 하시는 것은 행하고 하라고 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은 행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라고 하시는 것은 사랑하고 사랑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은 사랑하지 하는 것이죠. 사랑은 인생에서 역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힘입니다. 지난 주의 말씀에서 들은 것처럼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들이 많이 있는데 그것들은 우리가 사랑하지 말아야 할 것들입니다. 오해가 없어야 하기에 반복하자면 우리가 사랑하지 말아야 할 사람 세상, 하나님께서 우리 보고 사랑하지 말라고 한 세상은 하나님께서 이미 사랑하신 그 세상이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돌보시고 지키시는 그 세상이 아닙니다. 믿는 우리들도 믿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공존하고 있는 이 세상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나라가 그 안으로 들어오는 그 안에 세워지는 그 세상이 아니라 하는 것이죠.
그러면 어떤 세상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하지 말라고 하는 세상은 하나님을 떠난 세상, 하나님의 역사를 부인하는 세상, 하나님의 나라를 거부하는 세상, 악을 선이라 하고 선을 하이라 하는 세상 어떤 면에서도 우리가 사랑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고 마땅한 세상입니다. 그 세상을 살아가지 말라고 하시는 것이오.
지난주 말씀과 오늘에 이어서 여러분들이 말씀 잘 새겨서 정말로 그러한 세상과 그 세상에 속한 것, 육신의 정욕과 암흑의 장육과 인생의 자랑과 연결된 것들을 사랑하지 않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반대로 우리가 사랑할 것에 대해서 말씀을 하세요. 우리가 사랑하는 건 아니죠. 가족을 부인을 남편을 자녀들을 영지를 이 옷을 성도를 사랑을 하는데 오늘의 말로 보자면 7절의 뜻이 무엇입니까?
서로입니다. 서로 서로를 사랑하라. 서로가 무엇인지는 우리가 다 안다고 생각을 할 겁니다.
그렇지만 말씀의 이해를 위해서 다음 세 가지를 같이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첫째로 서로 서로라는 것은 짝이나 관계 속에 있는 모든 대상을 다 가리키려고 사람으로 말하면 부부에게는 남편과 아내가 서로가 됩니다. 가정이라면 모든 식구가 서로가 되는 것이고 나라라면 모든 시민, 국민 백성이 서로가 되는 것이 우리 교회의 종교가면 우리 교회 식구 모두가 다 서로가 되는 겁니다. 가까이 지내는 사람, 자주 만나지 않는 사람, 교회에 오래 다니는 사람, 막 새로 온 사람, 이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가 다 서로가 된다 하는 것이고 그 서로를 사랑하라 하시는 것이에요.
두 번째로 생각할 것은 이 서로는 상호적인 관계 그러한 관계를 전제로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무엇을 하든지 한 편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편도 할 수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편이라는 말이 이상하면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미워하면 그에 맞게 혹은 귀에 맞지 않게 나타나는 반응이 그 사람에게 다른 편에 있다는 것이에요. 그러한 상호작용, 그러한 인터랙션이 없다면 그거는 서로라고 부를 수 있는 게 아니죠. 그냥 무리가 됩니다. 다 똑같은 그러나 상호작용이 있기 때문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서로라 말씀을 하시는 것이죠.
셋째로 이 서로라는 말을 헬라어로 보면 그 안에 담겨 있는 뜻이 있어요. 우리 한국말로만 생각하면 있는 것인데 헬라오로는 서로가 알레일론이에요.
근데 그 안에 담겨 있는 뜻은 알로스라는 겁니다. 다름들을 모아서 서로라고 가리키는 거예요. 같지만 다르다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이발도 혈류 언어, 지역, 종교, 성전 이런 거에서 다른 것을 말하고 있지만 오늘날 우리의 상황에서 보면 다르게 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취미 배경 성격 가지고 있는 재산 속한 계급 문화 지식 이런 모든 분에 있어서도 다른 것이죠.
그래서 다름이 있어서 서로라고 하는 공동체 모든 공동체에는 긴장이 있어요. 다른 거 사이에 있는 긴장이 있습니다. 이게 잘 유지돼요. 건강한 공동체를 위해서라면 이게 잘 유지가 돼야 되는데 없어도 안 되고요. 깨져도 안 되고 잘 유지돼야 되는데 우리가 알기로 이것은 참 지키기가 어렵고 그리고 무너지기가 쉽다 하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한국이 그렇다고 할 수 있고 한국에 있는 이 군대 한국의 군대는 징집제라고 하죠. 모병제가 아니고 이렇게 돈을 받고 하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의무적으로 가는 거예요.
그래서 같은 한국 사람이지만 여러 면에서 정말로 다른 청년들이 이렇게 한 가지 목표를 국방의 의무라는 나라를 지킨다는 한 가지 목표를 가지고 이렇게 모인 것이에요. 그래서 다음이 있고 긴장이 있습니다. 지금은 좀 덜 할 수 있었는데 옛날에는 이것이 아주 컸어요. 이 긴장을 정말로 잘 유지하면 평화고 깨뜨리면 전쟁 남북 관계처럼
그런데 이것이 군대 안에서도 자주 깨져요. 어려운 훈련 때문이 아니라 그럴 경우도 있지만 사람 때문에 깨지고 무너집니다. 소속도 같아요. 또 나라도 같고 목표도 같고 위계 질서도 확실하게 있고 식사도 같이 하고 훈련도 같이 하고 잠도 같이 자는데도 불구하고 부대마다 꼭 문제가 있습니다. 남들을 괴롭게 하는 사람들이 고약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에요.
근데 그들의 공통점 중에 하나가 오늘 하고 말씀하고 연결해서 보자면 무엇이냐면 이 괴롭힘을 당할 사람들의 가지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이 다른 점을 이용을 하는 겁니다. 약한 것일 수도 있고 외적으로 외모로 좀 이상할 수도 있고 배경이나 경제적인 형편이 조금 다를 수 있고 신체적인 말투나 행동 거시감 느릴 수도 있고 그런 여러 가지 다른 모습이 있는데 그것을 끄집어내서 그것을 이용해서 괴롭힌다 하는 것이죠. 없다면 그런 것들이 없다면 찾아내고 찾아내도 찾을 수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그렇게 합니다. 왜냐하면 괴롭히는 자들과 같으면 괴롭힐 수 없기 때문에 어떻게든 다른 점을 찾아내서 괴롭힌다라는 것이죠.
군대만 그런 것은 아니죠. 성경에도 역사에도 이 다음과 그에 따른 괴롭힘의 이야기는 많이 있습니다. 애굽이이 히브리인들을 괴롭혔어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차별했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서로 그렇게 대했습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많이 극복되었지만 특별히 분명히 복음의 영향으로 많이 극복은 되었지만 그래도 조금만 다르면 괴롭히는 인간의 본능적 성향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러한 흐름을 거스르는 것이 바로 서로 사랑하라 하는 주님의 말씀이고 그에 따라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하는 결심이에요. 여기서 말하는 서론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롭게 만들어주신 새로운 공동체입니다. 믿음의 공동체이고 새로운 네트워크예요. 그 안에는 유대인도 있고 이방인도 있고 도 있고 종도 있고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고 문화인도 있고 야만인도 있고 그리고 est 제도 있고 infp도 있다는 것이죠.
그렇게 다양한 것들을 모아서 하나로 만들어 주신 그 하나 됨을 위해서 우리가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말씀에 따라서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 인간의 죄성에 맞지 않습니다. 좋아하는 원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조치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까지도 포함해서 서로를 사랑하라. 다 사랑하라. 이거는 인간 안에 쌓인 죄성에 맞지 않아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시면서 새 계명으로 주신 거예요. 명령으로 주신 것입니다. 그래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쫓아 행하라. 육신을 쫓지 말고 성경을 쫓아 행하라라고 말씀을 하신 겁니다.
혼자 하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오늘 말씀처럼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동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은 서로 사랑하라라고 말씀도 하셨고 그리고 그렇게 해야 할 이유에 대해서도 알려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자면 그 이후로 하나님은 우리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독생자를 보내주실 만큼 우리를 사랑해 주셨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온전하게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말씀을 해 주셨어요. 이것은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돼요.
그런데 그렇게 받지 않고 실망 혹은 조금 더 나아가서는 분노로 받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기에게 맞지 않아 받는 사람도 사랑하려면 하나님의 사랑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그런 것보다 좀 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무언가가 있어야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를 들면 건강한 삶을 기대할 수가 있습니다. 아프면 질병의 건강의 회복, 사업하는 사람은 사업의 성공과 번창을 원할 수 있고, 결혼을 하는 사람은 정말 원하는 사람과의 만남을 기대할 수가 있어요.
자녀를 둔 사람들은 자녀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을 얻고 출세하기를 바랄 수가 있고, 모든 것을 포함해서 우리가 하는 기도에 대해서 응답이 있을 것을 기대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이 약속이 된다면 내가 맞지 않는 그 사람까지도 포함하는 서로를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할 수가 있다는 겁니다.
이거는 믿지 않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믿는 사람들 가운데도 잠재적으로 담겨 있어서 서로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약하다 약하게 할 수 있는 요인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 것들이 정말로 아무리 간절하다고 하더라도 또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이런 것들을 다 주고 싶어 하실지라도 생각해 봐야 할 것은 무엇이냐면 그런 것들이 과연 우리가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나 근거가 될 수 있냐 하는 것이죠.
오히려 가롯 유다의 경우처럼 배신으로 이어질 수 있고 우리 가운데서 서로 사이에 갈등과 다툼이 일어나게 할 수 있는 것들이죠. 서로 다른 우리가 달라도 정말로 다른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이유와 근거는 그런 것들이 아니고 우리를 우리보다 더 잘 아시고 그리고 우리를 먼저 사랑해 주신 그 하나님의 사랑뿐입니다.
그래서 남은 시간 앞에서 간단하게 말한 그 사랑이 우리가 서로 사랑할 이유 그것에 대해서 하나씩 살펴가면서 우리 마음에 또 여러분 마음에 우리가 서로를 사랑해야 할 마음이 결심이 확실하게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 그래서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안다고 말씀을 하셔요. 이것은 사랑의 기원에 관한 말씀이에요. 모든 참 사랑은 하나님에게로부터 오고 하나님에게 속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약에 우리에게 정말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하나님께 속한 그 사랑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서로를 아무리 달라도 죄가 아니라면 살아갈 수 있다. 오히려 그렇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이상한 것이다. 우리 안에 사랑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에요.
둘째로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래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셔요.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그가 사랑이신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든 하나님의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서로를 사랑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그냥 진난하지 말고 조금 강조해서 살펴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말씀을 하셔요.
그렇다고 해서 사랑이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면 사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에도 세상에도 사랑이 높임을 받아요. 영화를 보세요. 드라마를 보세요. 사랑이 주제로 다루어지지 않는 것들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도 사랑이 어떤 때는 하나님의 위치에까지 올려지거나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사랑의 대상인 사람이 물건이 그렇게 될 수 있대요. 그렇지만 그런 경우에 다른 모든 경우들처럼 이 사랑이 그 좋은 사랑이 부패하고 썩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에요. 자기가 원하는 것만 좋은 것만 이익이 되는 것만 사랑을 하는 것이죠. 그거는 건강한 사랑이 아니 세우는 사랑이 아니고 서로를 위한 사랑이 아니고 자기를 우리 위하는 사랑이요. 파괴하는 사랑이에요. 그래서 아무리 사랑이 뜨거웠다고 하더라도 때가 되면 그 사랑이 깨지고 서로를 파괴하려고 하는 관계가 많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운데 부부 사이에 아니면 부모와 자녀 사이에, 친구 사이에, 성도 사이에 어떤 사랑이든지 그것이 건강한 사랑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하나님께 속한 사랑이 되어야 한다. 그 사랑이 우리 가운데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죽지 않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데 특별히 순수하게 사랑할 수 있는 근거가 여기에 있어요.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해요. 그의 사랑을 정말 먹게 하려면 어떻게 합니까?
여기 사랑하는 자기가 많이 있는데 정말로 원하는 사람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전부 아니면 내가 줄 수 있는 최고를 준비하고 심지어는 자기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다고 생각할 수가 있어요.
왜 그렇습니까?
진정한 사랑이라면 사랑을 받는 자가 사랑을 주는 자에게 하나의 방편이나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기 때문에 그러세요. 바로 그런 사랑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보여주시 바로 그러한 사람으로 우리를 사랑을 하신 거예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들은 아무 보상이나 아무 이익이 없더라도 심지어 내게 손해가 생길지라도 사랑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이 우리가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 확실한 근거가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른 근거는 때가 되면 상황이 되면 어려우면 다 무너지게 돼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하나님의 사랑은 때가 되어도 상황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고 변함없는 확실한 모든 사랑이 특별히 서로를 사랑함의 근거다. 이 말씀을 기억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넷째로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어떻게 돼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또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온전히 이루어지리라라고 말씀을 하세요. 이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이 뭔가 부족해서 채워질 것이 있다는 뜻이 아니라 이미 완전한 그 사랑이 세상에 나타난 목적이 있을 텐데 그 목적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진다 하는 뜻에서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온전히 된다. 서로 사랑하는 우리 안에서 온전하게 이루어진다고 말씀을 하시는 것이에요.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알듯이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을 갖는 것이오, 사랑의 교재를 갖는 것이오. 그것을 통해서 또 그리고 그다음에 나아가서는 그 사랑을 가진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세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사랑이 서로 사랑하는 우리 안에서 온전히 이루어진다고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그 목적이 저와 여러분 우리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될 이유에 대해서 주신 말씀을 따라가면서 생각해 봤는데 그래도 아직 만족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 수가 있어요. 서로 세대와 서로 사랑해야 될 이유가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을 할 수가 있고, 나에게 맞는 사람까지는 사랑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까지 사랑하는 그것에 대한 충분한 이유는 얻지 못했다고 생각을 할 수 있어요. 받은 상처가 있기 때문에 그리고 마음에 쌓인 화가 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혹시라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제 생각하는 것 느끼는 것을 멈추고 몸으로 의주로 실천을 할 때입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 우리가 생각이나 계산 많이 하지 말고 순전히 말씀에 순종해서 서로 사랑해 봅시다. 나와 아주 다른 사람 어려운 사람, 보기 싫은 사람, 미운 사람 다 포함해서 진심으로 사랑해 봅시
우리 안에 사랑이 없다는 뜻이 아니에요. 사랑에 대해서 말씀하신다고 해서 우리 안에 사랑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 가운데에도 정말 말씀에 따라서 노력하는 사랑하려고 하는 분들이 성도님들이 있어요. 성내야 할 상황에 성내지 않고 온유하고 인내하고 악을 생각하지 않으며 상대의 최선을 바라고 기도하는 그러한 사랑이 우리 안에도 있습니다. 그러한 사랑을 바라보고 같은 사랑으로 반응해 보자는 것이에요. 그렇게 하면 성경이 가르키는 바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복이 아주 많습니다.
다만 반복하자면 복이 목적이 아니라는 거예요. 목적은 언제나 하나님이시다. 그럼에도 우리가 연약하기에 다음의 말씀을 기억하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첫째는 우리의 목적이 되는 하나님은 먼저 우리를 위해서 자기의 아들을 주셨고 그리고 그 아들은 또 우리를 위해서 자기의 목숨을 주셨습니다. 이 세상 그 무엇을 사용해서라도 얻을 수 없는 큰 하나님의 사랑이죠.
그러므로 둘째로 우리가 바울처럼 말할 수가 있습니다. 자기의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시리라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이거는 궁금한 것이 아니고 정말로 그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신다 하는 믿음과 확신의 말이죠. 이 믿음과 확신이 우리 안에 특별히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에 동참하려고 하는 저와 여러 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찬양한 것처럼 정말로 우리가 서로 그리고 그 사랑 안에서 오는 하나님만 주실 수 있는 그 기쁨을 누리는 적어도 오늘 결론부터 시작해서 여러분 교회 생활 평생의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예배를 끝내고 집에 갈 때 차 안이나 길에서 화를 내는 사람이나 가정이 아니고 그 안에 감사와 찬송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의 몸도 마음도 일주일의 삶에도 기쁨이 즐거움이 가득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향해서 품고 있는 하나님의 뜻인 것을 믿고 우리가 다 같이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