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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당신의 추억이 머무는곳 원문보기 글쓴이: 바람.
호남의 젖줄이라 불리는 영산강과 드넓은 평야가 펼쳐지는 나주. 한 상 가득 음식을 내놓는 나주의 넉넉한 인심은 나주평야의 토양을 비옥하게 적시는 영산강이 만들었나 보다. 2천년 역사를 간직한 풍요의 땅, 나주에서 발견한 멋과 맛 속으로.
1. 영산강은 하천의 일부가 막히면서 생기는 소뿔 모양의 호수나 태극무늬처럼 물결이 휘어지는 지형들로 이뤄졌다.
2. 일출이 드리워진 영산강의 수면 위로 물안개가 자욱하게 피어 올랐다.
전라남도 담양군의 가마골 용소에서 시작된 영산강은 전라남도 목포 앞바다에 다다른다. 남도의 강은 나주에 이르러 광활한 강줄기를 이루고 이곳의 평야를 풍요의 땅으로 만들었다. 백제와 통일신라가 터를 잡은 시절부터 농업이 발달했던 나주평야에서는 옛날의 번영을 보여주는 삼국시대의 무덤과 유물이 계속 발견되고 있다. 이렇듯 나주평야에서 무성하게 싹트는 생명의 원천이자 문화를 실어 나르는 길이었던 영산강은 나주의 역사와 문화에서 결코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존재다. S자를 선명하게 그리는 수면을 붉게 물들이는 영산강의 일출과 일몰은 나주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장관.
지평선 너머로 이어지는 영산강과 나주평야가 어우러진 일출을 조망하고 싶다면 공산면 신봉리에 자리한 금강정을 찾아보자. 영산강을 품은 평야를 한 눈에 담으려면 금강산 옆의 산길을 10분간 걸어 올라가야 한다. 이른 새벽,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영산강의 일출을 놓칠세라 오솔길을 따라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하늘과 산새가 그리는 경계선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지만 해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늘은 일출이 비켜가는구나 생각하는 찰나, 붉은 해가 산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글거리는 눈동자 같다는 표현은 과하다. 저 멀리 작지만 또렷이 모습을 드러내는 둥근 해의 움직임과 함께 산새와 하늘이 파랗게 붉게 너울댄다. 말간 햇살이 하늘을 비추면서 어둠이 걷히고 나주의 평야와 산새 그리고 영산강의 평온한 수면이 한 폭의 그림처럼 드러난다.
1. 황포돛배에서 펼쳐진 흥겨운 뱃놀이. 흥에 겨워 어깨를 들썩이는 어르신들의 표정이 귀여울 정도로 천진난만하다.
2. 호남내륙 수운의 거점지였던 영산포의 옛 시절을 추억하듯 밑동을 드러낸 영산포 등대가 서 있다.
삼한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쳐 1977년 영산강 하굿둑이 건설되기 전까지 영산포에는 수많은 배들이 드나들었다. 영산포에는 지금도 한국에서 유일하게 내륙 하천가에 위치한 등대가 서 있다. 1915년 해마다 범람하던 영산강의 수위를 측정하고 뱃길을 밝혀주기 위해 세워졌다고. 뱃길이 끊긴 지도 수십 년, 영산포구 앞을 묵묵히 지켜왔던 영산포 등대 앞에 지난 10월 황포돛배 선착장이 새롭게 터를 잡았다. 다른 지역에서도 여러 대의 황포돛배들이 운영되고 있지만 이곳에서 출발하는 황포돛배만큼 오랜 시간 동안 영산강에 띄어진 경우는 없었단다. 황포돛배는 그 이름처럼 황토로 물들인 돛을 단 배다. 옛날에는 영산강 수로를 누비며 홍어, 소금, 미역, 곡물 등의 생필품을 운반하며 전성기를 누렸지만 고속도로가 발달하면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30년 만에 영산강을 누비는 황포돛배는 홍어 대신 관광객들을 나른다. 황포돛배를 타고 유유히 흐르는 영산강을 따라가다 보면 선비들이 시와 풍류를 즐기던 석관정과 금강정이 보인다. 간간이 강가에 서있는 왜가리도 눈에 띈다. 고요하고 부드러운 영산강의 물길은 예나 지금이나 나주 사람과 자연에게 기쁨과 풍요를 안겨주고 있다.
1. 삼합도 좋지만 홍어 마니아라면 잘 삭힌 홍어 한 점을 곱씹으며 특유의 향취를 즐겨보는 것도 괜찮겠다.
2. 알칼리성 식품으로 체질개선, 다이어트, 피부미용에도 도움을 주는 홍어는 회뿐만 아니라 말린 홍어포, 홍어애국 등으로도 즐길 수 있다.
영산포구에 왔다면 반드시 맛보아야 할 나주의 진미가 있었으니 바로 홍어다. 경조사를 맞은 여느 집안의 문턱에서 홍어의 알싸하고도 오묘한 냄새를 맡았을 때 이 집에는 전라도 사람이 모여 있겠거니 생각해 본 적이 있을 테다. 홍어는 흑산도에서 잡힌 것을 최고의 진미로 여기는데, 전라도에서도 나주의 영산포 홍어는 그 맛이 깊어 임금님에게 진상되었던 귀한 음식이었단다. 예전의 영산포구 선창에는 흑산도를 비롯하여 남도의 섬에서 잡아 올린 수산물들이 몰려왔다. 흑산도 연근에서 잡힌 홍어는 영산포로 모여들면서 숙성되었고 다시 육지로 퍼져나갔다.
이곳에 영산포장이 열릴 때면 흑산도 홍어를 사러 영암, 장흥, 강진에서부터 몰려온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뤘단다. 영산포 바로 옆에는 홍어 전문점 30여 곳이 즐비하게 늘어선 홍어의 거리가 있다. 나주 지방의 독특한 숙성법으로 삭힌 홍어는 자연 발효되어 코끝을 자극하는 알싸한 첫맛으로 시작해 씹을수록 퍼지는 은근한 박하향으로 끝난다. 홍어 특유의 냄새가 힘들다면 매콤한 홍어회 무침과 부드러운 향의 홍어찜과 튀김을 즐겨 보는 것도 좋겠다. 홍어와 돼지고기, 김치 또는 묵은지를 곁들여 먹는 홍어삼합과 막걸리 한 잔은 최고의 궁합을 이룬다. 말린 홍어포는 오징어포와 달리 짜지 않아 질리지 않는다. 된장, 묵은지, 부추와 함께 홍어의 간을 끓인 홍어애국은 깊고 진한 풍미로 가득하다. 홍어의 독특한 향취에 사로잡혔다면 귀하다는 홍어의 코 끝 부위를 손질한 회와 홍어애회에도 도전해 볼 만 하다.
1. 수많은 목사들이 잠을 청하고 생활하던 목사내아는 그 시절 상류주택 안채의 구조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2. 목사내아의 저녁은 항상 아궁이를 지피는 나무 향과 함께 시작된다.
3. 벼락을 맞고도 살아남았다는 팽나무는 목사내아 금학현 한켠을 지키고 있다. 그 수령이 무려 500년이라고.
그 지형이 한양과 닮아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이 작은 한양을 뜻하는 ‘소경’이라 기록했던 나주읍성은 조선 초기에 축조된 이후 600여 년간 호남 행정의 중심지였던 곳이다. 국내에서 가장 큰 읍성답게 길이는 3.7킬로미터가 넘고 내부면적은 30만평에 이르는 규모를 갖췄다. 동서남북 방향에 성벽을 설치한 것도 한양의 구조와 닮았는데 지금은 나주읍성을 지키던 사대문 중 동점문, 서성문, 남고문이 복원되어 있다. 고려 2대 왕인 혜종의 고향으로 2천년 역사를 간직한 나주의 읍성에서 찬찬히 고택의 운치를 체험하고 싶다면 목사내아를 찾아보자. 나주 지방의 목사들이 기거했던 목사내아에 들어서자 장작을 태우는 연기가 지붕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그 연기가 향긋해 주인장에게 물어보니, 오늘은 편백나무를 때웠단다. 장작으로 해충을 막아주는 편백나무와 소나무를 번갈아 사용한다고. 일제강점기에 훼손되었던 이곳은 해체와 복원을 거쳐 지난 2009년부터 손님을 맞이했다. 주인장의 설명에 따르면 이곳은 수많은 목사들이 거쳐갔던 살림집답게 풍수지리학적으로 좋은 기운이 모이는 자리에 터를 잡고 있단다. 때문인지 목사내아의 마당에 들어서면 안온하고도 고아한 기운이 온 몸을 감싸는 듯한데, 실제로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경사가 생긴 손님도 많았단다. 승진을 하거나 아이를 가지는 등 절실히 소망하는 일에 맞춰 방을 안내받을 수 있다고. 특히 유석증 목사와 김성일 목사는 나주 백성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던 현인들인데, 이들의 이름을 붙인 방은 명당으로 알려져 한 달 전에 예약을 해야 한단다. 목사내아 식구들은 수건을 몇 시간씩 삶아내고 좋은 나무로 만든 장작을 항상 준비해 두는 수고를 거르지 않는다. 이들의 정성은 한옥은 사람의 기운을 받고 천년을 간다는 말을 실감케 한다. 겨울이면 목사내아의 눈 쌓인 마당은 소담스런 운치로 가득하다. 장작을 직접 때어 뜨끈뜨끈하게 데운 온돌방에서의 겨울밤을 즐기는 것도 특별한 추억으로 남겠다.
1. 나주 시민들은 여름이면 선선한 바람을 찾아 삼면이 뚫려있는 금성관 마루에 오른다.
2. 노안집의 상차림은 간결하다. 깍두기와 묵은지 그리고 나주곰탕이 전부.
고택의 정취가 물씬한 목사내아를 나서 금성관으로 향했다. 걸어서 불과 2~3분 거리, 금성관의 대문은 유독 높고 커다랗게 보였다. 알고 보니 금성관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나 궐패를 모시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고을 관리와 선비들이 모여 망궐례를 올리던 곳이었단다. 이렇게 완벽한 모습으로 남아있는 한국의 객사 건물은 나주의 금성관 뿐이다. 중앙관리들이 투숙하기도 했던 나주목의 객사, 금성관을 기준으로 나주읍성이 사방으로 둘러쳐져 있었다고. 일제강점기에는 내부를 개조해 나주군청으로 사용했다는 금성관은 세파를 이겨냈지만 그 주위에 있었던 나주읍성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아 쓸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금성관과 목사내아 근처의 공영주차장 주변에는 나주곰탕집들이 모여 있다. 수십 년간 나주곰탕을 만들어온 식당들이 한데 모인 이곳에서 나주곰탕 노안집을 선택했다. 1960년대 초 노안집의 문을 연 할머니의 손맛을 모자가 이어받아 지키고 있다. 50년간 노안집의 나주곰탕이 사랑받은 이유는 시원하고 담백한 맛일게다. 곰탕과 설렁탕의 맛이 한데 어우러진 육수는 소고기 국물과 뼈를 고아 우려낸 것. 뚝배기에 밥을 담은 후 여느 곰탕과 달리 말간 국물을 붓고 두툼한 소고기 양지와 사태를 담아 내놓는다. 개운하면서도 고소하고 담백하면서도 진한 맛을 내는 나주곰탕 한 그릇을 찾아온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해장을 위해 이곳을 들르는 손님들도 많아 이른 새벽부터 문을 연다고. 노안집을 즐겨 찾는 유명인사는 임권택 감독. 근처에서 촬영을 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이곳에서 식사를 한단다. 그도 헛헛한 몸과 마음을 채워주는 나주곰탕의 맛을 잊을 수 없나 보다.
1. 천연문화염색관에는 염색 전문가의 지도를 받으며 천연염색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교실이 마련되어 있다.
2. 천연문화염색관 1층에 위치한 뮤지엄 샵에서는 자연염색으로 제작한 생활용품, 가방, 액서서리, 나주 쪽의 항균·항습 효능을 활용한 세정제품과 치약 등을 구입할 수 있다.
3. 천연염색공방에는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과 소품들이 모여 있어 인사동 공방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나주에서는 예부터 쪽물 염색이 발달했다. 평야를 끼고 굽이쳐 흐르는 영산강이 넘치는 경우가 많아 나주의 농가들은 벼 대신 물에 강한 쪽을 재배했단다. 자연히 쪽물 염색도 번성해 화학염료가 도입되기 시작한 195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나주에서 생산한 쪽 염료는 비싼 값으로 전국에 팔려 나갔다. 쪽의 재배와 수확, 쪽물을 내는 수많은 과정을 무사히 마쳐야 보랏빛이 감도는 푸른색이 드러나는 쪽빛을 얻을 수 있다고. 전국에서는 유일하게 중요무형문화재 염색장 두 명이 나주에서 쪽물 염색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식물을 이용한 염색 중에서는 유일하게 퇴색하지 않고 빨수록 더욱 선명해지는 쪽물 염색은 천연염색의 꽃으로 손꼽힌다. 쪽물로 표현할 수 있는 색은 연한 옥색, 하늘색, 파란색, 암청색 등으로 정말 다양하다. ‘청출어람’이라는 말도 녹색 이파리에서 푸른색이 나오는 쪽의 특징을 발견하여 만들어졌단다. 나주시가 건립한 천연염색 상설전시관에서는 쪽염색의 과정과 역사, 다양한 쪽염색 작품 등을 둘러볼 수 있다. 문화관 뒤편에 자리한 천연염색 체험교실에 들어서자 중년의 교직원들과 풋풋한 십대 학생들이 치자와 소목 염색에 흠뻑 빠져 있었다. 하얀 천을 물들이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20분. 염색한 스카프와 천들이 볕 좋은 빨랫줄 위에 얹혀지기 시작했다. 따뜻한 햇살을 머금고 하늘하늘 바람에 날리는 노란빛 자주빛 천들이 고운지 아이들도 어른들도 연신 미소를 짓는다. 천연문화염색관 옆에 자리한 천연염색공방은 다채로운 개성으로 가득하다. 14개의 공방들이 제각기 다른 매력과 특징을 지닌 천연염색 제품들을 선보이기 때문. 아기자기한 소품에서부터 독특한 작품까지 찬찬히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1. 유리 그릴 위에 올려진 장어의 기름기는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빠져나간다.
2. 나주호에 위치한 중흥골드스파리조트의 워터파크에서는 한겨울에도 따뜻한 물놀이와 온천을 즐길 수 있다.
나주호는 병풍처럼 둘러싼 산들을 비추는 수면 그리고 불교유적이 어우러진 자연경관을 갖췄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새벽이면 물안개가 올라오는 경치를 자아낸다. 겨울에 나주를 찾았다면 나주호의 경치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중흥골드스파리조트의 야외 노천탕에서 온천을 즐겨보는 것도 괜찮겠다. 나주호의 경치를 둘러보다 기운을 돋워주는 장어구이를 찾아 구진포로 향했다. 영산강의 옛 나루터였던 구진포는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는 주강에서 잡아 올린 민물장어로 유명한 곳이었다. 구진포에서는 미꾸라지를 먹고 자란 장어들이 많이 잡혔는데 그 맛이 일품이라 나주의 특미 중 하나로 손꼽혀 왔다고.
영산강 하굿둑이 생기면서 구진포에서 직접 잡은 장어를 맛볼 수는 없지만 수십 년간 이곳을 지켜왔던 장어요리집들이 아직도 남아있다. 1940년대부터 들어선 장어 음식점들이 자리한 이곳에서 발길을 들인 식당은 나주시 다시면 가운리에 위치한 대승장어. 960개가 넘는 나주의 음식점 중에서 여섯 군데만 선정되는 전라도 음식 명가로 지난 6년간 꾸준히 이름을 올린 곳이란다. 20년 전 이 집의 문을 열었던 부모님의 가업을 물려받아 지금은 아들이 그 맛을 이어가고 있다. 국내산 장어를 고집하는 이 집은 빨갛게 달궈진 유리 그릴로 장어를 구워낸다. 유리 그릴 아래 가스 불을 대면 유리면에 골고루 열이 반사되어 장어가 타지 않고 골고루 익는단다. 집집마다 틀리다는 소스의 재료를 묻자 36가지라는 대답만이 들려온다. 입맛에 따라 양념구이와 소금구이를 선택해서 주문하면 담백한 장어죽, 장어 내장 요리, 장어뼈 튀김 등이 한 상 가득 차려진다. 달궈놓은 철판에 담겨져 나오는 장어구이는 두툼하면서도 적당히 기름기가 빠져 있어 부드러운 식감과 느끼함을 걷어낸 풍미를 자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