風花日將老(풍화일장로) : 바람에 꽃잎 지며 세월은 저무는데
佳期猶渺渺(가기유묘묘) : 만날 날은 여전히 아득하기만 하네.
不結同心人(불결동심인) : 내 님은 한 마음을 맺지 못한 채.
空結同心草(공결동심초) : 부질없이 풀매듭만 하나로 묶어보네. <당 설도(薛濤)>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김억 번역>
한국 가곡 ‘동심초’는 많은 성악가들에게 불려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사랑하는 이와 헤어져 만날 날을 기약할 수 없는 안타까움을 노래한 시다. 이 가곡은 당나라 때 지금의 쓰촨성 성도에 살던 여류시인 설도가 지은 5언 절구 ‘춘망사(春望詞)’ 제3수를 현대 시인인 안서 김억(金億)이 번역하고 김성태가 작곡한 노래다. 국어사전에 보면 동심초라는 단어가 없고, 중국말사전에도 동심초가 없다. 그러므로 동심초라는 꽃이나 식물은 없다는 말이다. 그러면 동심초는 무엇인가?
여류시인 설도(770~832)는 당나라 서안 출신으로 어린 시절 귀양 가는 아버지를 따라 성도로 이사했다. 14세에 아버지가 죽자 모녀는 가난한 삶을 견딜 수 없어 노래하며 악기를 다루는 기생인 악기(樂妓)가 됐다. 그녀는 문학적 재능이 뛰어나고 총명해 타고난 음률 감각과 뛰어난 시재로 당대 시인 문사들을 두루 사귀었다. 그러면서 아름다운 편지지를 만들어 손님들에게 선물하곤 했다. 당나라 사람들은 흰 종이에 편지를 쓰는 것은 불길하다고 여겼는데, 설도에게는 편지지를 아름답게 물들이는 재주가 있었다. 색종이 혹은 꽃무늬를 놓은 편지지를 시전이라고 했는데, 설도가 만든 시전은 워낙 유명해서 이를 설도전, 완화전이라고 따로 불렀다.
그녀는 일류 문인들과 교류가 많았는데, 특히 사천감찰어사로 성도에 온, 설도보다 10살이나 어린 원진을 사랑하게 됐다. 자기가 직접 만든 아름다운 색종이에 100여 편의 시를 써서 그에게 주고, 원진 역시 설도를 향한 정을 시로써 화답했다. 그러나 이미 아내가 있던 원진은 설도와 몇 달을 함께 지낸 후 배를 타고 떠나 다신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원진의 여성 편력과 풍류 끼에 대해 소문을 듣지만, 설도는 일편단심 원진을 기다리니 헤어진 지 10년이 지나서도 원진을 사모하는 시를 남길 정도였다. 그 후 설도는 평생 독신으로 지내다가 세상을 뜬다. 그녀는 절개 있는 마음과도 같이 대나무를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성도에는 현재 설도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망강루 공원이 있는데 약 130종 이상의 대나무가 있다고 한다.
설도가 쓴 동심초는 꽃이나 식물 이름이 아니라 연서, 즉 사랑 시를 의미한다. 동심결은 혼례에서 쓰이는 한마음으로 맺는다는 의미를 가진 매듭으로, 사랑의 정표로 풀이나 실로 풀어지지 않게 엮어서 만든다. 설도가 유명한 편지지 제작자였고, 풀은 그가 편지지를 만드는 데 쓴 주요 재료로 설도는 흰 종이에 꽃이나 풀잎으로 무늬를 놓아 자기만의 편지지인 설도전을 만들었는데, 여기서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는, 사랑하는 사람 원진에게 편지를 쓰지만 결국 연인 원진에게서는 아무 연락도 없고, 설도 역시 편지를 부칠 수도 없어 편지지만 만지작거리는 정황을 묘사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설도는 비록 원진과 함께할 수는 없었지만 죽을 때까지 그를 사랑했다.
1946년 가곡 ‘동심초’를 발표한 후 이 노래는 우리나라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겨 줬다. 영화로도 만들어져 ‘산장의 여인’을 부른 권혜경이 주제가로 불러 히트했고, 이후 많은 성악가들이 불러 대중화됐다.
요즘 우리나라 관광명소에서도 철망에 자물쇠를 매다는 연인들을 자주 본다. 이 또한 풀을 묶어 약속하던 중국 옛사랑 놀이 ‘동심쇄(同心鎖)’라 하며, 사랑하는 사람들이 영원한 사랑을 바라는 마음으로 매다는 풍속이라고 한다. 남녀들의 사랑이 동심결처럼 풀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이상순 서울기독대학교 겸임교수/의왕시 울림합창단 지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