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살아오면서 나 자신에게 가끔씩 편지를 쓰곤 했다.
부칠 수 없는 편지였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그 편지를 다시 꺼내 읽으면 다감한 느낌과 감흥이 샘솟았다.
새롭고 살가웠다.
어느 땐 가슴이 뭉클했다.
올봄과 여름에 해외에 나갈 일들이 몇 번 있었다.
앞으로도 몇 번이 또 예정돼 있다.
지금은, 낮 동안의 분주한 일과를 마치고 '베이징'의 어느 호텔방에서 하루를 정리하고 있다.
고요와 적막이 흐르고 있다.
익숙한 일상을 뒤로한 채 낯선 공간으로 훌쩍 떠나보기, 그 경험은 내 삶에 적잖은 도움을 주었다.
사유의 지평을 넓혀주었고 배울 점들도 많았다.
분주한 일상에 잠깐의 멈춤을 줄 수 있어 좋았고 내 영혼에 확실한 여백과 쉼표를 부여할 수 있어 감사했다.
외국의 어느 호텔방, 작은 스탠드 등불만 켜 둔 채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펜을 들었다.
미래의 나 자신에게 짧은 편지를 쓰고 싶었다.
십 년 후의 나에게,
이십 년 후의 나에게,
삼십 년 후의 나에게 각각 한 통씩 편지를 쓰고 싶었다.
육십 대 중반, 칠십 대 중반, 팔십 대 중반의 내 모습과 삶의 발자취를 생각하면서.
그리하여 십 년짜리, 이십 년짜리, 삼십 년짜리 '타임캡슐'에 각각의 편지를 고이 접어 보관해 두고 싶었다.
나의 소망과 기도대로 인생이 전개되진 않을 테지만 그래도 중장기 '위시리스트'와 '사명선언서'를 스스로의 가슴에 간직해 두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세 통의 편지를 다 완성한 건 아니다.
뼈대는 작성했다.
그러나 살을 붙이고 색감을 입히기엔 좀 더 시간이 필요했다.
내일 아침에 바로 공항으로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이 밤도 이미 깊었다.
서울로 돌아가면 지금 쓰고 있는 이 세 통의 편지를 짜임새 있고 균형감 있게 완성해 보리라.
그리고 초록 그대로 밀봉하여 나만의 '타임캡슐'에 잘 보관해 두리라.
마치 영원히 탈고되지 않을 신화 속 잠언들처럼.
인생의 요체는 스피드가 아니라 방향이며 소유가 아니라 나눔이자 헌신이라고 믿는다.
아주 오래된 나의 좌우명이다.
인생의 좌표를 사유하면서 내 영혼의 심연을 한번 더 정리해 볼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었다.
미래의 자신에게 편지를 쓴다는 건 매우 색다른 경험이자 새로운 통찰이 아닌가 한다.
오늘 밤은 그런 시간이었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사랑하는 모든 분들께 건강과 평안이 가득하기를 빈다.
2016년 5월 21일,
토요일 심야에.
나에게 쓰는 편지의 초고를 완성한 후.
베이징의 어느 호텔방에서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