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묘미는 예상치 않았던 사고 발생에 대처하는 것이라더니 우리 팀에게도 적용되는 일을 겪었다.
성가정성당 순례 후 점심식사 하고 12시 54분 출발했는데 함께 묵주기도 바치고 나니 이유를 알 수 없는 도로 정체가 시작 되었다.
예약된 5시까지 발렌시아 대성당에 입장하기에 빠듯한 시간이라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이도록 재촉했던 상황이라 현지 가이드 모니카씨는 더 긴장하기 시작했다.
인솔자 베드로씨와 모니카씨가 여기저기 알아보더니 발렌시아로 향하는 도로 주변 도시에 다시 수해가 우려될 만큼 폭우가 쏟아져 강이 범람할 우려가 있다고 도로를 막은 것은 알아냈다. 이미 오늘 아침6시를 기해서 발렌시아쪽 여기저기 수해경보를 내린 상태였다. 바르셀로나는 가볍게 비가 내리는 정도 였는데.
출발한 지 30-40분 정도 지난 후 어느 쉼터 옆 도로에 이르자 완전히 차들이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1시간 이상 차가 움직이지 않자 화장실 문제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고속도로라 주변 건물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없고 지도를 보니 바로 옆쪽에 나무와 피크닉 테이블이 있는 졸음쉼터 비슷한 공간이 있었다. 인솔자와 모니카 가이드와 나는 차에서 내려 주변에 노상방뇨할 수 있는 공간을 찾기 시작했다. 이미 큰 트럭들이 주차를 해 놓은 상태이고 우리 버스는 진입로를 살짝 지나친 상태라 이 공간에 들어올 수는 없었다.
트럭들도 가려주긴 하지만…일단 큰 향나무 두 그루가 가람막 역할을 하기에 우선 시범으로 내가 먼저 해결하고 일단 남성들부터 내려오라 하려는데 차들이 100미터 정도를 이동하는 바람에 포기.
다시 차들이 한참을 서 있게 되자 남성들은 내려서 알아서 방뇨 해결. 일부 상황이 급한 여성들은 나름 우산과 큰 천으로 가림막을 쳐서 해결했지만 대부분은 민망해서 그냥 참겠다고.
출발 후 5시간이 다가오자 일행 중 산부인과 의사이고 2015년 메르스 당시 국립중앙의료원 원장으로서 재난 대응 경험이 있는 안 마리아 선생님이 나서서 버스 뒷편에 비상 화장실을 설치 하자고 제안했다. 특히 여성들이 너무 오래 참으면 방광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의사로서의 판단을 하시면서 재난대응 경험을 살려서 시도해 볼테니 일행들이 잘 협조하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셨다.
뒷 좌석을 네 줄까지 비우고 남성들을 앞자리로 가게 했다. 안 선생님과 여성들은 어디서 재료들을 모으더니 가림막을 설치하고 소변을 담을 수 있는 비닐 주머니 등을 마련해서 마침내 모두 위기를 넘겼다.
차량은 여전히 조금 움직이다 멈추는 상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동안 인솔자와 현지 가이드는 부지런히 여기저기 연락하며 어떻게 할 것인가를 논의. 나는 바로 앞에 2킬로 지점 정도에 있는 인터체인지가 나오면 무조건 나가서 호텔을 찾아 쉬게 하자고 제안했다. 여행사에서도 비상 상황을 인식하고 대체할 지역과 호텔 물색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후6시쯤 되자 앞서 이 도로를 지나간 다른 여행팀 가이드들로부터 인터체인지 지나면 흐름이 원활해진다는 정보를 얻었다. 그래서 결국 인터체인지로부터 30분 정도 더 가면 나오는 바닷가 마을 Salou로 가기로 결정. 호텔도 여기저기 알아보고 겨우 우리 조건에 맞는 Num Hotel을 예약할 수 있었다.
화장실, 숙소가 해결되니 긴장과 피로에 힘들었던 마음이 풀어졌다. 그래서 다함께 삼종기도를 드리자고 했고 , 기도 후 여행 중 예기치 못한 일은 발생하기 마련인데 코로나로 이스라엘에서 호텔에도 못들어가고 돌아오는 항공편도 없었던 팀보다 훨씬 쉽게 해결했으니 마음 모아서 다함께 남은 일정 감사한 마음으로 즐겁게 이어가자고 했다.
6시40분 살루 도착. 바르셀로나 중심가에서 살루(Salou)까지 108킬로 정도 밖에 안 되는데 오는데 무려 6시간 가까이 걸린 것이다. 구글지도 검색해보니 새벽시간에 1시간 반 정도면 올 거리였다. 순례 준비 때부터 발렌시아 지역이 불안하긴 했는데 당일 아침 또 폭우가 올 줄 몰랐다. 어차피 우리 팀 일정은 그라나다 세비아로 가야하기에 이 지역 통과하는 도로 말고는 대안이 없었다.
그대신 호텔이 해수욕장 근처라 호텔에서 저녁식사 준비하는 동안 바닷가 산책하며 멋진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8시30분 식사. 달빛 아래 파도를 바라보며 인생샷을 찍고 향긋한 와인과 맛있는 샐러드, 화덕피자로 오늘 오후의 긴장과 피로를 씻어내고 다시 행복한 순례자가 되었다.
그나저나 다음 날은 9-10시간 차량 이동을 각오해야 한다. 중간에 발렌시아 대성당에서 미사드리고 점심 먹은 것 외에는 무르시아는 포기하고 계속 그라나다까지 버스로 이동해야 한다.
첫댓글 예상치 못했던 일로 여정이 순탄치는 않았군요~쫄깃쫄깃한 느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