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작불
손 원
요즘 온돌방은 차츰 사라져 가고 있지만 과거에 가장 한국적인 난방방식이었다. 온돌방 땔감은 주로 소나무 장작이었다. 아궁이 깊숙이서 타고 있는 장작은 한겨울 온돌방을 데워 따뜻한 밤을 보낼 수 있게했다.
불쌀개로 깔비 두줌과 잔가지를 준비한다. 먼저 깔비에 불을 붙혀 잔가지를 태운다. 이내 아궁이에 열기가 돈다. 타고 있는 잔가지 위에 장작 한 아름을 갖다가 두개씩 八자 모양으로 포개어 놓으면 바짝마른 소나무 장작은 금방 세찬 불꽃이 인다. 장작 불꽃이 줄어들 때면 한 두개 씩 장작을 보충하면 된다. 얼마쯤 지나면 가마솥에 부은 구정물은 끓기 시작한다. 미리 썰어놓은 여물 두 소쿠리를 가져다 가마솥 물에 푹 담기도록 눌러 준다. 그런 다음 솥뚜껑을 닫고 장작을 더 집어 넣으면 여물을 넣은 가마솥 물이 끓어 올라 솥두껑 아래로 김이 새는 소리가 요란하고 여물은 삶아진다. 이때쯤 등겨 한 바가지를 넣고 저어면 여물은 부드러워 진다. 약 20분 정도 지나면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소죽을 바케쓰에 퍼서 구유에 부어 준다. 누렁이 암소는 긴 혀로 뜨거운 소죽 겉 부터 천천히 집어 삼킨다.
타고 난 장작은 벌건 숯불이 되어 아직도 열기를 내품고 있다. 화로를 가져와 숱불을 담아서 할아버지 방으로 옮긴다. 이렇게 소년은 소죽끓이기를 마치고 식구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한다. 내 어릴 때의 기억을 정리해 본 것이다.
시골은 집집마다 겨울을 나기 위한 땔감을 마련했다. 겨울 한 철은 농한기여서 땔감을 마련하는 일 말고는 특별히 할일도 없었다. 당시 연료는 도시는 연탄이고 농촌은 땔감이었다. 겨우내 마련한 땔감은 추운 겨울을 나고도 반은 남겨 일년 내내 사용했다.
시골마을은 모든 집이 땔감을 사용하기에 산의 나무는 급격히 줄어들어 민둥산으로 변했다. 땔감이 떨어지기 전에 집집마다 민둥산에서라도 땔감을 마련해야 했다. 그래서 1년생 관목까지 잘라버렸고, 바닥에 깔린 낙엽까지 갈구리로 끌어 담아왔다, 민둥산을 넘어서 산의 흙이 들어날 정도로 상채기를 내었다.
이렇게 가까운 야산은 아이나 부녀자들이 땔감을 마련했던 곳이다.
마을에서 멀리 뗠어진 깊숙한 산 중에는 아름드리 솔이 남아 있어 장정들은 남몰래 솔을 베어 지게에 지고 왔다. 뒷마당에 베어 온 솔을 쌓아두고 거적을 덮어 안 보이게 했다. 틈틈히 장작을 패어 한 삐까리 장작더미를 마련했다. 이 장작이 한 철을 지나면 잘 건조되어 훌륭한 땔감으로 사용된다. 이런 장작만 있으면 소죽 끓이기는 한층 수월하다. 아이들은 장작에 불만 붙여 놓고 팽이치기 놀이를 할 수도 있었다. 타고난 장작이 숯불로 변하면 고구마 몇개를 내어와 묻어 두기만 하면 군고구마가 된다.
70년도 까지만 해도 교실에 장작난로를 피웠다. 학교에서 장작을 구입하기도 했지만 충분하지가 않아 등교길에 장작 몇 조각을 들고 가는 경우도 있었다. 교실 한복판 난로에 장작이 연기를 풍기면서 탔고 교실안은 온기가 돌았지만 구석진 자리는 여전히 추웠다. 60명의 아이들은 매캐한 연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장작난로에 의지하여 몸을 녹였고 난로 가까이 자리를 선호했다.
이른 아침 문을 연 시장사람들에게도 장작난로는 효자였다. 온 몸을 두껍게 가렸지만 혹한의 추위가 온몸을 파고 들때면 누군가 피운 장작난로 옆으로 모여 들었다. 그렇게 몸을 녹여가며 추위를 버텼다.
당시 아이들은 거의가 보온잠바를 입지 못했다. 한겨울에도 면옷을 입었기에 추위를 지혜롭게 극복해야 했다. 십리 학교길의 매서운 추위와 마닥뜨려야 했고, 놀이터 빙판놀이 할 때도 추위를 감수해야 했다. 누군가 성냥을 가지고 다녔기에 주위의 나뭇가지를 모아 불을 지펴 몸을 녹이기도 했다.
보온 내의도 입지 않은 시절이라 가장 따뜻한 곳은 장작불을 지핀 온돌방이었다. 바깥에서 놀다가 추위를 피해 온돌방을 드나들었다. 따뜻한 온돌방은 푸짐한 장작이 타서 구들장을 달구면 온기가 하루는 갔다.
요즘 겨울은 덜 춥다고들 한다.
하기사 두터운 털잠바를 입으면 그렇게 춥지도 않다. 게다가 지구 온난화로 기온도 상승한 탓에 혹한도 예전보다 덜한 것 같다. 고향의 연못이며 시냇물이 당시는 겨울내내 꽁꽁얼어 붙었는데 지금은 얼지를 않는다. 따뜻한 아랫목 생각이 잊혀져 가고 있다. 따뜻한 구들과 장작불은 어머니 품속과도 같이 포근하고 따뜻하다. 그때가 그립다. (2020. 12. 31.)
첫댓글 그 옛날 가마솥에 쇠죽을 끓이던 생각이 납니다. 마른 장작의 화력은 끝내주지요. 타고난 숯불은 일부 끌어내어 물을 껴얹어 숯을 만들고 나머지는 화로에 담아 난로겸 불씨가 되고 성냥 한개비도 아껴야 하던시절 할아버지의 담뱃불이 되어 주었지요. 어렵던 시절이지만 글을 읽으며 그때 그 시절이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걸 보니, 나이 탓인가 봅니다. 추억의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