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컬렉션으로 본 소장(所藏)의 의미◁ 비해당(匪懈堂)이 서화를 사랑하여, 남이 한 자의 편지 한 조각의 그림이라도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반드시 후한 값으로 구입하여 그 중에서 좋은 것을 선택하여 표구를 만들어 수장하였다. 하루는 모두 내어서 신숙주에게 보이며 말하기를, “나는 천성이 이것을 좋아하니 이 역시 병이다. 끝까지 탐색하고 널리 구하여 10년이 지난 뒤에 이만큼 얻게 되었는데, 아, 물(物)이란 것은 완성되고 훼손되는 것이 때가 있고 모이고 흩어지는 것이 운수가 있으니, 오늘의 완성이 다시 후일에 훼손될 것을 어찌 알며, 그 모이고 흩어지는 것도 역시 기필할 수 없는 것이다. 匪懈堂 愛書畫 聞人有尺牋片素 必厚購之 擇其善者 裝䌙而藏之 一日 悉出而示叔舟曰 余性好是 是亦病也 窮探廣搜十餘年而後 得有是 噫 物之成毁有時 聚散有數 安知夫今日之成 復爲後日之毁 而其聚與散 亦不可必矣 /申叔舟 『保閑齋集』「畵記」 조선시대 최고의 서화 소장가는 匪懈堂 安平大君 李瑢(비해당 안평대군 이용:1418~1453)이다. 그의 소장품은 서화 자료로서 당시 서화 발전에 촉매 역할을 했다. 안평대군은 1445년까지 도합 222축(軸 )에 달하는 서화를 수집했다. 그중에는 그가 아끼던 安堅(안견)의 작품 30점과 일본의 화승(畵僧) 鐵關(철관)의 작품이 4점이 들어있고 그 나머지는 모두 중국 역대의 서화였다. 이 222점의 서화는 1435년경부터 1445년까지의 십여 년간에 모은 것이다. 안평대군의 소장품의 존재는 申叔舟(신숙주:1417~1475)가 쓴 「畵記화기」에 의해 그 존재가 밝혀졌다. 신숙주는 소개한 글에서 안평대군은 서화를 사랑해서 명품 얘기를 들으면 후한 값으로 구입하여 표구했다고 했다. 글에서도 나와 있듯이 그의 서화 수집은 거의 벽(癖)에 가까웠다. 병적(病的)으로 수집에 열중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물건은 세월에 따라 훼손될 수 있고 내 손을 떠날 수 있으니 이것 또한 운명이라고 담담히 받아들였다. 주지하다시피 안평대군은 형인 首陽大君(수양대군:1417~1468)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그는 시문(詩文) 서화에 능한 문인 기질로 무인 기질의 형 수양과는 너무나 달랐다. 안평대군은 고명대신(顧命大臣) 皇甫仁(황보인) 金宗瑞(김종서) 등과 손잡고 首陽大君 세력과 맞섰으나 계유정난(1453년)으로 몰락하여 강화도로 귀양 갔다가 사사되었다. 수양대군은 동생인 소장한 서화들을 불태워 없앴다 한다. 귀한 문화재가 정치에 휘말려 횡액(橫厄)을 당한 것이다. 역사에서 만약은 없지만 그가 밀었던 김종서가 승리했다면 소장품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을 것이며 후대 문화 융성에 엄청난 기여를 했음에 틀림없다. 안평대군의 소장품을 능가한 세기(世紀)의 컬렉션이 등장했다. 바로 이건희(1942~2020) 삼성그룹 회장이 평생 모은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이 그것이다. 무려 2만 3000여점으로 감정가만 3조원으로 시가 10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대표적인 謙齋 鄭敾(겸재 정선:1676~1759)의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국보216호)' 를 비롯하여 국가지정문화재(국보 14건, 보물 46건) 60건으로 이 자리에서 일일이 언급하기가 벅찰 정도이다. 미술사학자 안휘준(서울대 명예교수)은 “이 컬렉션은 사전에 고증을 받고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수집한 것이며 컬렉션 자체가 명품”이라고 했다. 그는 좋은 컬렉션이 만들어지기 위한 첫 번째 조건으로 “문화재와 미술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있어야 한다. 그냥 관심이 아니라 말 그대로 지대한 관심이어야 한다”고 했으니, 여기서 ‘지대한 관심’은 안평대군의 광적(狂的)인 수집벽을 말한다. 미쳐야 미칠 수 있다는 ‘不狂不及(불광불급)’이다. 어느 분야에 몰두하는 이런 벽(癖)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이건희 회장은 본업이 기업가인데 틈틈이 미술 수집으로 이성과 감성의 조화를 꾀하려 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는 삼성을 세계적 기업으로 우뚝 선 물질개벽을 이룩했고 미술 컬렉션으로 정신개벽까지 성취했으니, 한 개인이 이룬 업적은 중국 전설에 나오는 女媧氏(여와씨)가 하늘의 이지러진 곳을 깁고 羲和(희화)가 해를 목욕시킨 ‘補天浴日(보천욕일)’의 고사와 맞먹는다. 안목 있는 컬렉션은 시공을 초월한다. 이건희 회장은 세계 최고 작품만을 수집했고 작품값을 깍지 않았다고 했으니 안평대군 역시 명작위주로 후한 값으로 구입(厚購)한 것과 똑같다. 안평대군의 소장품은 양지(陽地)에서 소문나다 음지(陰地)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이건희 컬렉션은 반대로 관 뚜껑을 닫은 것과 동시에 햇볕을 쬐게 되었으니 다행이라 하겠다. 아무쪼록 그의 컬렉션이 한국 문화 수준을 격상시킬 동력으로 자리하길 바랄뿐이다. *사진: 정선 '인왕제색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