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적 자세 외 1편
강 순
애월 바닷가에는 우는 엄마가 있었다
우는 엄마를 달래려고 손을 뻗었더니 웃는 엄마였다
웃는 엄마를 따라 함박 웃었더니 앓는 엄마였다
앓는 엄마를 만졌더니 이미 포말이 된 엄마였다
엄마가 가득해서 태반 같은 구멍들이 온몸에 생겨났다
엄마들을 버렸더니 바람의 말씀들이 날카롭게 새겨졌다
맨도롱 또똣하다가* 몸이 점점 식어가는 엄마들
늙고 병든 침묵으로 무언가를 말하는 엄마들
엄마들의 수어는 내가 미처 터득하지 못한 밀어
엄마들이 이렇게 한없이 부서져도 되는 걸까
바다에서 밭일에서 시장에서 돌아온 엄마들이
고된 육신을 눕히지 못하고 파도에 일렁였다
철없는 자식들이 쏟아놓은 어지러운 풍문들을
해저 동굴 깊숙이 수장하는 자세로
바람의 질타에 자궁까지 울며 갈겨쓴
세월 묵은 낙서들을 달관하는 표정으로
태아처럼 낳는 엄마들을 바다에 버려야지
버려도 버려도 해변으로 엄마들이 밀려왔다
그렇다면 나는 반성이 끝날 때까지
여기 오래 서 있어야 하는구나
몸을 꼿꼿이 세워 엄마들을 받아냈다
슬프고도 환하게 우뚝 서서
부서지는 엄마들을 모두 안는
해안가 절경의 용암석 절벽이 되어야 했다
쌓이는 접시처럼
접시처럼 슬픔이 층층이 쌓여갈 때
슬픔은 견고해서 깨지기 쉬운
어디에도 없는 원칙들을 세운다
사람들을 묶거나 넘어뜨리며 쌓일 것
주객이 전도되거나 뒤틀리며 쌓일 것
앞의 슬픔은 뒤의 슬픔을 흔들며 쌓일 것
뒤의 슬픔은 앞의 슬픔을 벼리며 쌓일 것
슬픔을 죽음의 색으로 장식하는 포탄과 미사일 광선
음식과 집을 찾아 헤매는 눈동자의 잿빛 그늘
뉴스와 풍문에 속수무책 결박당한 사람들의 심장에
검은 곰팡이가 가득 핀 접시들이
밤새 층층이 쌓여간다
신의 이름으로 복수를 주고받는 남자들의 아우성
시퍼런 기도 같은 피난길 노인들의 입술
전쟁 속에 피어나는 아기들 붉은 울음
슬픔은 아침이면 바빠서 뿔뿔이 흩어지자고
쓸모없는 야합에 입을 맞추면서
위태로운 접시처럼 높이 쌓여간다
위정자가 이해와 타산을 사생아처럼 낳을 때
이웃 나라 전쟁이 주식 시장에서 날갯짓할 때
전쟁 무기들이 자본가의 눈길을 사로잡을 때
슬픔은 지구상에서 가장 권력적이다
아침에 뜨는 해가 무능한 신의 얼굴을 닮았다고
아무도 말하지 않아서
슬픔은 자신의 권력과 소임을 음지에서만 행사한다
슬픔의 능력으로 아무것도 처단하지 못하고
밤을 흔들어 쌓여 사람의 키를 훌쩍 넘어선다
강순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 졸업. 199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크로노그래프,즐거운 오렌지가 되는 법외.
전국계간문예지 우수작품상, 이충이문학상 수상. 현재 수원대학교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