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naver.me/5bdt8wwa
김아타의 예술철학 7. 김아타의 정체성 찾기 - "실체론적 시각” 대 “그물망적 접근”
아티스트로서의 김아타의 삶은 끊임없는 “#정체성_
찾기"의 과정인 듯싶다. “ #나는_누구인가?"로 시작
된 그의 정체성 찾기는 너는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
인가?, 이 돌은 무엇인가?, 이 나무는 무엇인가?, 저
장미는 무엇인가?, 저 흰 소는 무엇인가? 등으로 외
연을 넓혀가다가 “#인간은_무엇인가?”, “ #자연은_
무엇인가?", "#우주는_무엇인가?”에까지로 뻗어간
>다. 이런 과정에서 그의 “정체성”에 대한 “개념”이 내용을 달리하면서 그의 세상을 보는 시야, 작업하는 활동도 끊임없이 새롭게 변해왔다. 김아타는 그것을 “해체”와 “화해”라고 이름한다. 그의 이러한 변신의 과정을 살펴보자.
먼저 “#정체성”에 대한 개념의 이해에서부터 시작해보자.
우리말 사전을 보면 '정체성' 또는‘#동일성'은 이렇
게 규정되어 있다. “#정체성: 자기 본디의 성질. 본디의 성질이나 모양. 정체(正體): 본디의 참모습. 본체,본마음. #동일성(同一性): 한 사물이 시간의 흐름이 나 상황의 변화에 구애됨이 없이 언제나 같은 모습을 보이는 성질. 또는 여러 사물이 서로 차이가 전혀 없는 성질."
그런데 철학적으로 보면, 여기에 '컵’이 하나 있다고
할 때, 이 컵이 컵으로 보일 수 있는 '그것이 무엇인
가’에 대한 답이 곧 컵의 정체성이다. 즉, 이 컵이 이
컵인 바를 드러내는 것이 곧 정체성이라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체성이라고 하는 것, 동일성이라고 하는 것에서는 반드시 어떤 하나의 사물을 '#개체화시킬 때,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어떻게 개체의 '#하나임'을 규정하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 하나임이 규정되면 #단위 가 정해진다. 그래서 하나임을 바탕으로 해서 갯수를 셀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컵의 정체'가 무엇이냐 하는 물음과
'인간의 정체'가 무엇이냐고 묻는 것을 같은 차원의 물음으로 보느냐 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그것을 같은 현상이라고 봤다. 모든 존재하는 것을 '하나인 것’으로 떼어내서 볼 수 있다고 봤다. 그것이 존재하는 모든 것에 다 통용되는 것으로 봤던 것이다. 그런데 근대 이후 현대에 들어와서 '사물'과 '인간'을 똑같이 보는 것이 옳은가 하는 물음이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정체성 농담
독일 사람은 생각한 다음에 걷고, 영국 사람은 걸어가면서 생각하고, 미국 사람은 생각하기가 무섭게 달려가고, 이탈리아 사람은 뛰면서 생각한다는 농담이 있다. 스페인 사람은 한참 뛴 다음에 생각한다.
중국 사람은 한발짝 물러서서 생각한 다음에 걷기 시작한다. 일본 사람은 도로 표지판을 세워 놓은 다음에야 걸어간다. 한국 사람은 생각하기가 무섭게 달린다.그리고 달리는 동안에 자기가 무엇을 생각했는지를 잊어버린다.
인간을 다른 존재자와 똑같이 '하나’로 꼭 집어서 ‘무
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물음이 제기된 것이다. 인간에게는 정해진 '#확정된_자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제 스스로 그 자기를 찾아가고 만들어가야한다. 인간에게는 '가능성'이 중요한 것이다. 지금의 여러분 자신을 생각해 보라. 여러분들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을 꺼내보라고 하면 주민등록증, 어느 대 대학원학생증 등을 내보이게 된다. 그런데 그게 과연 여러분 자신인가 하면 아니란 것이다. 10년후의 여러분을 생각해 보라. 지금은 여러분 모두가 같은 외대 대학원생의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지만,10년 뒤에는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 보라. 10년 후 여러분들은 지금과는 다른 여러분들이 되어 있을 것이다.
10년 뒤 여러분들의 정체, 앞으로의 여러분의 정체
가 사실은 여러분들로 하여금 지금 이 자리에 있도록 만든 것이다. 미래의 여러분의 어떤 무엇이 여러분들을 지금 이 자리에서 공부하게 만드는 것이다. 현재는 잠깐 지나가는 것, 되어가는 흐름이다. 이러한 현재의 있음을 나의 변하지 않는 동일성으로 볼 수는 없다.
이 점이 인간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이다. 예를 들어
컵이나 돌, 소나무, 강아지, 소크라테스의 경우를 생
각해 보자. 이 경우 그것들도 똑같이 하나의 '#하나임[단위]'인데, 그 하나임이 그것들에게 똑같은 의미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컵이나 돌에서는 여기서 이야기했던 동일성뿐이 없고, 소나무에게는 컵이나 돌에는 없는 무언가가 더 있다. 희미한 ‘내면’이다. ‘#소나무'는 무언가 자기 자신이 중심이 되어서 #주변_환경과 관계를 맺는다.
이 경우 우리는 소나무에게 내면이 있다고 할 수 있
다. 흔히 우리가 얘기하는 식물은 ‘#대사관계’를 하
고 있다. 그것이 수동적인 관계이긴 해도 관계는 관계다. 동물로 넘어오면 한 단계 더 나아가 ‘#지각관
계'가 행해진다. 이 경우 우리는 어느 정도'#주체
성’을 이야기할 수 있고 ‘#운동성’을 이야기할 수 있
다.
그런데 인간에서는 이 주체성이 이것들과는 무언
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일종의 '의식'이다. 그것도 ‘자기의식'이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 자신하고 관계를 맺을 것이다. 이러한 “ #관계맺음”을 본래적 의미의 관계맺음이라 말할 수 있다.
정체성과 동일성을 같이 놓고 본다면 여기에 어떤 것이 있을 때, 그것을 '하나의 것'이라고 하고 '동일하
다’고도 할 수 있다. '하나의 것'이라는 것은 공간적인 것인데, '동일하다'에는 거기에 일종의 '#시간적인_요소’가 더 첨부된다. 그러니까 소나무가 있다고 한다면 그 소나무가 100년 전의 것이냐, 10년 전의 것이냐, 지금의 소나무와 동일하냐고 물을 때, 거기에는 시간의 요소가 들어간다. 그리고 ' #주체성'의 요소가 들어간다.
그런데 ‘주체성’에서 중요한 것은 #운동의_주체 가 무엇이냐 하는 물음과 연관되어 있다. 자기의 지체와 기관들을 하나로 통일시키는 '#통일성'의 의미가 거기에는 들어가 있다. 어쩌면 이 소나무에도 통일성과 주체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인간에게로 오면 그것이 ' #의식성'으로 된다. 의식성과 통일성이 갖춰지면, 그것은 ' #전체성'이라는 차원으로 넘어온다.
그것이 갖춰지면 거기에는 사회적, 역사적 차원이 추가된다.
전체성이 들어온 차원에서 우리는 비로소 참다운 의
미의 "정체성”을 이야기할 수 있다. 가족의 한 구성원으로서의 ‘자기’를 이야기할 수 있듯이, 자기가 속해 있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아울러 설명할 때 우리는 그것을‘#통합성(統合性)’이라고 한다. 더 큰 것은 '#통전성(統全性)’[통전성: 부분들이 전체에 통합되는, 부분이 전체와 필연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성질을 말함]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전에는 있는 것만을 포괄해서 이야기했다면, 여기에는 없는 것까지 포함되어 고찰되고 있다.
인간의 정체를 어느 차원에서 보는가 하는 것이 관건이 된다. “순전히 하나의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사물 혹은 생물일 뿐, 고차원은 고려가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인간다움이 바로 배제된 차원에 들어간 다고 볼 수 있다. “하나의 돌이 있다”라고 했을 때, 이 돌은 주변과 거의 아무런 관계를 맺지 않는 듯 보인다. 그에 비해 소나무는 그것보다 좀 더 많은 관계를, 강아지는 그것보다 더 많은 관계를 맺으며 존재한다.
우리가 이렇게 #시간의_축과_공간의_축 을 놓고 봤
을 때,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시간과 공간이 만나는 축
에 있다. 인간은 이 축 위에서 “#우주의_시작과_
끝”을 이야기한다. 공간의 공간, #가이_없는_공
간”, 시간의 시간, “ #끝이_없는_시간”을 상상한다.
인간이 있는 곳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하나로 아우르는 “#우주(Kosmos)”가 있게 되는 것이다. “나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생물학적인 물음이 아니라 #우주의_역사, #생명의_진화, 이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물음이다. 우리말 속의 "인간" (人間)에는 이러한“우주”가 담겨져 있다. 통합성, 통전성, 전체성!! 이러한 것들을 모두 담고 있다.
이제 여러분들은 인간의 정체성을 폭넓게 보아야 한
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정체성은 이렇게 항
상 전체와 맞물려 있다. 인간을 어떤 단위에서 보느냐에 따라 한국, 세계, 자연, 우주가 달라진다는 말이다.
이런 정체성의 이해를 바탕에 깔고 <김아타의 정체
성 찾기〉를 따라가면 "짱돌”에서 시작된 정체성 찾기가 “세계-내-존재”를 거쳐 "해체 시리즈”를 지나 “뮤지엄 프로젝트”에 이르고, 그것이 “온에어 프로젝트”로 넘어가서 “인달라 시리즈”를 거치면서 “자연드로잉”이 되고 “ON NATURE" "자연하다”가 된다.
이제 김아타는 인간만이 가졌다는 “#통합적_관계맺
음”을 존재하는 모든 것에로 확장한다. 우주 안의 모든 존재자들이 서로서로 관계의 그물망 안에서 빔사
이와 때-사이 속에서 “#사이하며_존재한다". 지금까
지 인간에게만 적용했던 " #하다" [활동, 행동, 행위]
를 이제 존재하는 모든 것에 확대 사용할 수 있다. 그
래서 “ #자연하다"이고 “ #우주하다"이고 “#인간하
다”이고 “ #짱돌하다"이고 "#홀씨하다”인 것이다. 이제 이런 김아타의 이런 발걸음을 따라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