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의 '글방'이 별도로 없어서 이곳 갤러리에 올리니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황혼의 哀歌
강 문 석
선배는 자신의 정년퇴임식장에 아무런 연락도 없이 불쑥 나타난 우리 부부가 그렇게도 고마웠던 모양이다. 그때 일을 못 잊어 그 뒤 만날 때마다 주위 사람들에게 그 얘길 단골메뉴로 꺼내곤 했었다. 항공기나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야 하는 섬나라까지 그것도 부부가 함께 찾아오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은 선배의 은퇴도 20년을 넘도록 만들어 함께했던 일들이 기억에 아련하기만 하다.
법과대학을 나와 출생지역의 국회의원 보좌관을 거쳐 한국 제일의 공기업 중견간부까지, 적어도 선배가 직장에서 정년퇴임할 때까지 성공한 삶의 주인공으로 그를 인정하는데 토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선배는 다소 고집불통으로 비칠 만큼 강직했기 때문에 남들과의 타협엔 다소 인색한 편이었지만 인연이 맺어지려고 그랬는지 나와 같이 까다롭고 못난 후배에게 정을 베풀었던 일들이 새록새록 생각난다.
3월이 끝나가는 날, 퇴임식장에서 만난 선배의 부인은 화사한 연분홍 색상의 한복이 잘 어울리면서 우아함까지 느껴졌고 함께 찍은 사진 안에선 쉰 중반이란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고운 얼굴에 수줍은 미소를 지금까지도 흘리고 있다.
4년 전 여름, 장대비가 심하게 퍼붓던 날, 짙은 안개마저 온통 한라산을 휘감고 있을 때 1100고지를 넘다가 차안에서 선배의 소식이 궁금해 그의 전화번호를 눌렀던 것. 그런데 수화기 저쪽에서 다급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엔 20여 년 세월이 만든 반가움이나 안부 인사는 간데없고 다짜고짜로 ‘어이 강 교수, 나 좀 살려줘. 나 장가 좀 보내줘야겠어’였다.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일까. 선배는 일부러 누가 시켜도 농담이라곤 할 줄 모르는 고지식한 위인이 아니었던가. 선배에 대한 궁금증은 금세 부풀어 올랐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데 괜한 전화질로 선배의 아픈 상처를 건드린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얼떨결에 선배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탑동 바닷가 횟집에 마주 앉았다. 10여 년 전 갑작스레 사랑하는 아내를 떠나보내고 나서 그동안 선배가 혼자서 생활하며 겪은 고통을 털어놓으면서 절대로 농담이 아니니 꼭 재혼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재차 간청해왔다. 잘 자란 아들 둘은 대기업과 공기업에서 각각 제대로 자리를 잡았고 시집간 딸들도 그런 대로 살고 있다는 얘기는 자신의 혼인조건에 별로 부족함이 없다는 말로 들리기도 했다.
이런 상담에 문외한이었던 나로선 어떻게 위로를 해드려야 좋을지 몰라 난감했었다. 그래서 결국 술을 못하는 선배 앞에서 그가 권한다고 혼자서만 홀짝홀짝 소주를 목구멍 속으로 털어 넣는 무례를 범하기도 했다. 재직 중에 당한 모친상과 자녀 결혼 때문에 두어 차례 방문했던 선배의 주택과 당시의 결혼식장 얘길 꺼내어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를 엄벙덤벙 물었고, 문상 때 인사를 받았던 자녀들 중 몸이 불편한 막내딸의 안부도 뜬금없이 확인했던 것 같았다.
초급대학을 나온 후 대기업 기숙사 사감으로 평생을 종사하며 청춘을 보낸 전 여사는 비록 처녀의 신분이긴 하지만 나이는 이미 예순에 이르고 있었다. 평소 말수가 적고 품행마저 얌전한 편이어서 아내와 의논한 끝에 그녀를 선배에게 추천하기로 했다. 선배가 토개공 본사에 근무하는 서울 아들집에 다녀오는 길에 부산을 찾았다. 동래온천장 늘봄호텔 커피숍. 26년 전부터 만나 그를 보아왔지만 그날 난 선배의 옷차림이나 매너에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정장과 트렌치코트와 중절모, 007가방까지가 어쩌면 그렇게도 외국 영화 속의 멋진 주인공을 빼닮았던지 한마디로 부럽고 존경스러웠다. 둘이서 나눌 얘기가 더 있다면서 장급여관 객실을 잡았는데도 눈치 없이 붙어있는 우리 부부를 빨리 나가달라고도 했었다.
그러고 나서 얼마 뒤, 선배의 요청으로 전 여사는 부푼 희망과 설렘을 가슴 가득 안고 바다를 건너는 항공기에 올랐다. 선배는 그동안 얼마나 고독하고 외로웠으면 첫눈에 홀리듯 여자에게 빠졌었다. 그런데도 아버지 재혼절차를 준비하기 위해 소집된 가족회의에서 두 아들 부부와 시집간 딸들은 ‘아버지 결혼 결사반대’만을 들고 나오더란다. 앞으로 자신들이 물려받아야 할 재산을 넘보고 재혼하겠다는 것 아니냐고 예비 새엄마를 퍼부으면서 상견례 분위기는 재혼 성토장이 되었는데도 이빨 빠진 늙은 호랑이처럼 일흔 중반을 고독하게 사는 홀아비는 왕년의 그 강단은 다 어디로 갔는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니 안타깝기만 하다.
혹시 앞서 보낸 할멈에 대한 죄스러움이라도 살아났던 것일까. 하지만 그들이 ‘제 부모를 사랑하는 사람은 감히 남을 미워하지 못하고 제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은 감히 남을 업신여기지 못한다’는 공자 말씀을 나 몰라라 하는데, 어찌 ‘부모가 사랑해 주면 기뻐하여 잊지 말고 부모가 미워하더라도 송구스럽게 생각하여 원망하지 말고 부모에게 잘못이 있거든 부드러이 말씀드리고 거역하지 말아야 한다’는 증자 말씀까지 실천해 줄 것을 바라겠는가.
미팅결과를 전해 듣고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그렇다고 내가 나서서 그토록 꼬여있는 자식들을 무슨 수로 설득할 수 있단 말인가. 결국 선배의 마지막 가는 길도 그들이 배웅해야 할 터이니 언감생심 제삼자가 나선다는 것은 꿈도 꾸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담에 중매 잘못하면 뺨이 석 대라고 하지 않았던가. 섣불리 나서서 선배와 올드미스 간에 애틋한 사랑만 싹 트게 해놓고 그 결실까지 책임을 다하지 못했으니 여간 미안한 노릇이 아니다. 그러다가도 나 혼자만 그 일로 고민할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또 한 번 사려 깊지 못한 짓을 하게 된다. 허공에 주먹질 하듯 4월의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는 하늘에 대고 선배의 아들딸들에게 뇌까린다. “그래, 두고 봐라. 너희들은 뭐 천년만년 청춘일줄 아느냐?”
[저자 약력]
1963~1998 한국전력공사 근무
1998~2010 동의과학대학교 전기과 겸임교수
2004 <에세이문예> 창간호 신인상 당선
2010~현재 한국전력공사 전우회 부산지회장
2007~2008 일간 <아침신문> 수요칼럼 집필
2008~현재 부산북구문인협회 부회장
2010~현재 (주) 그린코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