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묵 식도락
요즘 창원 근교 산은 어디나 떨어진 도토리가 지천으로 흩어져 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와 가까운 반송공원 숲에는 산책하러 나온 아주머니들이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보이는 데로 주워가 흔적이 없다. 비교적 접근성이 좋은 소목고개나 용추계곡 등산로 주변에도 도토리는 볼 수가 없다. 오가는 산행객들이 눈에 띄는 데로 주워 갔지만 다람쥐가 먼저 바위틈에 숨겨두기는 했지 싶다.
그러나 근교로 나간 한적한 산기슭에 떨어진 도토리는 쓰레받기 쓸어 담아도 될 정도로 흩어진 곳이 많다. 다람쥐 먹잇감으로는 차고 넘쳐 덩치 큰 멧돼지 녀석도 가을철 식단 차림에 도토리가 빠지지 않을 테다. 도토리묵을 즐기는 나는 연전까지 도토리를 주워 배낭 가득 짊어지고 와 주변에 묵을 빚을 수 있는 분들에 보냈다. 나중 갈색 윤이 나는 도토리묵이 되돌아와 맛을 봤다.
도토리묵은 몇 단계 절차를 거쳐 시간이 걸려 빚어졌다. 고향에 칠순을 넘긴 큰형수님이 도토리묵을 잘 빚었는데 힘에 부쳐 맡기지 못한다. 같은 생활권 대학 동기 아내도 묵을 빚을 줄 아나 귀촌해 전원으로 떠나 아쉽게 되었다. 아파트단지 이웃 초등 친구 아내도 묵을 빚는 솜씨가 좋으나 건강이 염려되어 맡길 수 없는 처지라 내가 도토리를 주워도 보낼 곳이 없어 줍지 않는다.
엿새 간 추석 연휴가 끝난 시월 첫째 수요일은 도토리묵 식도락 기행을 나섰다. 이른 아침 집에서부터 걸어 창원중앙역으로 향했다. 퇴촌삼거리에서 창원대학 앞을 지나 도청 뒤에서 역전으로 오르니 정병산과 비음산 사이 아침 안개가 걷히는 즈음이었다. 역사에 닿아 매표창구 역무원에게 순천을 출발 부전으로 가는 무궁화호의 삼랑진까지 표를 끊어 제 시각에 도착한 열차를 탔다.
삼랑진역에 닿아 역사를 빠져나갔다. 삼랑진엔 송지 장터로 가면 도토리나 메밀로 빚은 묵을 파는 노포가 있긴 했다. 거기는 집을 나설 때부터 선택지에서 제외하고 원동으로 내려갈 참이었다. 4대강 사업으로 강변 따라 시원스레 뚫어 놓은 자전거 길을 여러 차례 걸어봤다. 양수발전소로 가는 길목에서 철길 굴다리를 지나 강변으로 나가니 물억새는 이삭이 패어 은빛으로 눈부셨다.
임진왜란 때 왜군과 치열한 전투를 치른 작원관을 앞둔 강가에는 젊은 탁발승이 깐촌마을 처자를 사모하다 비련으로 둘 다 생을 하직한 슬픈 전설이 서린 현장을 지났다. 처자교와 승교로 불리는 쌍다리는 오랜 세월 강변에 묻혀 있다가 4대강 사업으로 포클레인이 모래를 퍼내자 돌무더기의 실체가 드러났다. 깐촌 나루터엔 민물고기를 잡는 고깃배 세 척이 삿대와 함께 묶여 있었다.
천태산 벼랑이 강가에 맞닿은 경부선 철길 터널이 낙동강 물줄기와 나란히 지났다. 벼랑으로는 조선시대 동래에서 한양으로 가던 영남대로 작원 잔도 흔적이 온전하게 남아 있기도 했다. 벼랑 강가는 생태 보도교가 놓여 자전거 라이딩을 나선 이들이 페달을 밟고 달렸다. 밀양에서 양산으로 행정구역이 바뀐 중리마을 앞에는 신라 적부터 낙동강에 용신제를 지냈던 가야진사가 나왔다.
가야진사 강변 공원에는 부산과 양산에서 올라왔을 자전거 동호인들이 여럿 보였다. 김해 상동면 용산 나루터 용당과 가까운 가야진사는 들리지 않고 원동으로 곧장 향했다. 원리 신촌삼거리로 가니 노변에는 도토리를 가득 펼쳐 말렸다. 시골집에서 그 도토리로 묵을 빚어 팔아 수년 전부터 현지를 찾아 사 와서 집에서 먹고 있다. 이번엔 작은 스티로폼 박스 담긴 묵을 두 통 샀다.
묵을 빚어 파는 농가에서는 주인 할머니 말고도 이웃집 할머니가 두 분이 와서 일을 돕고 있었다. 금방 쑤어 굳혀 식히는 묵이 여러 박스에 담겨 펼쳐져 있었다. 작년에 뵌 할아버지가 보이질 않아 안부를 여쭈니 바깥일을 나가 부재중이었다. 묵이 담긴 봉지를 손에 들고 원동역이 가까운 식당에서 추어탕으로 점심을 때우고 창원으로 가는 열차를 기다렸는데 승객은 나 혼자뿐이었다. 23.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