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보내준 쌀
율곡 이이는 일생동안 자신이 닦
은 학문을 바탕으로 이상 국가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 인물이다.
그러나 개혁적인 사상 때문에 그
는 조정에서 많은 미움을 받아 고
난이 끊이지 않았다.
게다가 남을 도와주기를 좋아해
서 율곡의 집에는 남아나는 것이 없었다.
심지어는 처가에서 마련해 준 집
까지 팔아서 가난한 친척에게 나
누어 줄 정도였다.
양식이 떨어져 끼니를 굶는 날도 허다했다.
어느 날 율곡의 어려운 사정을 친
구 최립이 전해 들었다.
재령 군수를 맡고 있던 최립은 율
곡의 처지를 보다 못해 아랫사람
을 시켜 쌀 몇 가마니를 율곡의 집으로 보냈다.
그러나 짐꾼이 등에서 쌀가마니
를 풀기도 전에 율곡은 짐꾼에게 말했다.
“쌀을 내려놓지 말고 그대로 지
고 다시 돌아가거라.
그리고 사또께 아뢰어라.
뜻은 고마우나 쌀은 받을 수 없
다고.”
심부름을 온 사람은 난처한 표정
을 지으며 쌀가마니를 받아주길 청했다.
그러나 율곡은 고집을 꺾지 않았
다.
할 수 없이 짐꾼은 쌀을 다시 등
에 지고 돌아갔다.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율곡의 하인들은 아까운 듯 율곡
에게 불평을 늘어놓았다.
“대감님, 모처럼 성의로 보내 주
신 것을 돌려보내시면 어쩝니까
?”
그러자, 율곡은 친구의 사정을 짐
작이나 한 듯 이렇게 말했다.
“옛 친구가 보낸 사사로운 물건
이라면 왜 안 받겠느냐!
아까 그 쌀은 관가의 물건이니 함
부로 받아서는 죄가 되느니라.”
“그것이 관가의 물건이라는 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대신을 지낸 나도 이렇게 넉넉
하지 못한데 하물며 지방 수령을 지낸 친구야 오죽하겠느냐.”고 했
다고 한다.
참으로 조선시대의 선비정신인 청렴과 결백과 안빈을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는 소중한 일화로써
, 앞으로 살아가는데 더 많은 생
각을 하게 하여 소개를 하였습니
다.
특히, 지방 수령을 지내는 친구가 어려운 상황을 알고 호의로 보내
준 쌀 몇 가마니조차 함부로 받아
서는 죄가 된다며, 야박스러울 정
도로 되돌려주는 모습에서 친구 사이에 너무 한다는 생각도 들었
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을 비
추어 관가의 물건인 공물을 철저
히 삼가하는 모습에서 그만 고개
가 절로 숙여졌습니다.
또한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아는 사이에 도와준다고 좋아서 무턱대고 덜컥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도움을 주는 상대방의 상
황을 고려하고 파악해서 받는 것
이 죄가 되지 않는다는 교훈도 새
기게 되었습니다.
성균관장을 지낸 최근덕은 {우리
의 선비는 이렇게 살았다}란 책
에서 선비가 살아가는 9가지 행
동지침을 밝혔는데, 그 행동지침
을 보면
"첫째는 시사명(視思明)으로 볼 때에는 분명한가를 생각하고,
둘째는 청사총(聽思聰)으로 들
을 때에는 확실한가를 생각하며,
셋째는 색사온(色思溫)으로 낮 빛은 온화한가를 생각하고,
넷째는 모사공(貌思恭)으로 태
도는 공손한가를 생각하며,
다섯째는 언사충(言思忠)으로 말은 충실한가를 생각하고,
여섯째는 사사경(事思敬)으로 일은 신중한가를 생각하며,
일곱째는 의사문(疑思問)으로 의심나면 물어볼 것을 생각하고,
여덟째는 분사난(忿思難)으로 분이 날 때는 재난을 생각하며,
아홉째는 견리사의(見利思義)로 이득을 보면 의로운 것인가를 생
각하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