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불린(磨而不磷)
갈아도 얇아지지 않는다
磨 : 갈 마(石/11)
而 : 말 이를 이(而/0)
不 : 아닐 불(一/3)
磷 : 얇아질 린(石/12)
출전 : 논어(論語) 양화(陽貨)
기대승(奇大升)이 오래된 벼루를 노래한 ‘고연가(古硯歌)’의 한 대목이다. “굳은 재질 천지의 빼어난 기운 다 뽑았고, 속은 비어 만물 변화 모두 받아들인다네. 온전한 덕은 갈고 물들임 시험해볼 수 있고, 고요한 그 모습은 구르고 옮김 아예 없다(剛材儘挺一元秀, 虛中欲涵萬物變. 德全自可試磨涅, 容靜未必從輾轉).”
단단한 벼루 돌에 천지의 빼어난 기운이 단단하게 뭉쳐 있다. 하지만 속이 텅 비었으므로 무엇이든 다 받아들일 수가 있다. 이것이 온전한 덕의 모습이다.
연지(硯池)에 맑은 물을 붓고 먹을 갈면 어느새 진한 먹물로 변하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그러면서도 벼루는 묵직하게 놓인 채 움직이지 않는다.
그는 벼루를 보면서 자꾸 인간의 덕성을 겹쳐 읽는다. 굳고 단단한 심지를 지녔으되 허심탄회하여 사물을 포용한다. 그 덕은 온전하여 어떤 일을 맡겨도 해낼 수가 있고, 그 모습은 고요하여 상황에 따라 흔들리지 않는다.
벼루가 없으면 글씨를 쓸 수가 없고, 이 사람이 아니고는 그 일을 해낼 사람이 없다. 나는 벼루 같은 사람인가? 단단하고 텅 비었나? 온전하고 묵직한가?
3구의 ‘마날(磨涅)’은 갈고 물들인다는 의미인데, ‘논어'의 ‘양화(陽貨)’에서 끌어왔다. 중모(中牟) 땅을 다스리던 필힐(佛肸)이 공자를 청하자 공자가 가려 했다. 제자 자로(子路)가 말렸다. “선생님! 옳지 않은 짓을 한 사람에게는 군자가 가지 않는다고 하셨잖습니까? 왜 만나시려고요?”
그릇이 못 되는데 왜 굳이 만나려 하시냐는 자로의 돌직구에 스승이 대답했다. “갈아도 얇아지지 않으니, 단단하다 하지 않겠느냐? 물들여도 검어지지 않는다면 희다고 할 수 있겠지(不曰堅乎. 磨而不磷. 不曰白乎. 涅而不緇)?”
대답의 뜻은 이렇다. “내가 단단하고 결백하다면 그가 나를 어찌 갈고 어이 물들일 수 있겠느냐? 염려하지 말아라.” 제자는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라’는 뜻으로 묻고, 스승은 ‘내가 단단하면 끄떡없다’는 의미로 대답했다.
대답이 어째 조금 옹색한 느낌이지만, 말에는 자신감이 넘친다. 공자는 과연 필힐을 찾아가 만났을까? 그를 만나 변화시킬 수 있었을까?
▶️ 磨(갈 마)는 ❶형성문자로 礳(마)는 통자(通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돌 석(石; 돌)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문지르다의 뜻을 나타내기 위한 麻(마)로 이루어졌다. ❷회의문자로 磨자는 '갈다'나 '닳다', '문지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磨자는 石(돌 석)자와 麻(삼 마)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麻자는 삼베옷의 원료인 '삼'을 그늘에 말리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삼을 수확하면 물에 쪄낸 후에 선선한 곳에 말렸다가 두드려 실을 얻는다. 磨자는 바로 그러한 과정을 표현한 글자로 마를 두드리던 돌과 마를 함께 그려 '돌을 문지르다' 라는 뜻을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磨(마)는 돌을 문질러 갈다, 전(轉)하여 갈다의 뜻으로, ①돌을 갈다(단단한 물건에 대고 문지르거나 단단한 물건 사이에 넣어 으깨다) ②닳다, 닳아 없어지다 ③문지르다 ④고생하다 ⑤연자방아로 찧다 ⑥고생 ⑦연자(硏子)방아(연자매를 쓰는 방아) ⑧맷돌(곡식을 가는 데 쓰는 기구)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없을 무(亡), 사라질 소(消), 꺼질 멸(滅)이다. 용례로는 마찰되는 부분이 닳아서 작아지거나 없어짐을 마모(磨耗), 갈리어서 닳아 없어짐을 마멸(磨滅), 굵은 물건을 갈아서 부스러 뜨림을 마쇄(磨碎), 돌이나 쇠붙이 따위를 갈고 닦음을 마연(磨硏), 옥이나 돌이나 쇠붙이 따위를 갈아서 광을 냄 또는 그 빛을 마광(磨光), 벼루에 먹을 갊을 마묵(磨墨), 맷돌로 돌로 된 물건을 반드럽게 하려고 갊을 마석(磨石), 쇠붙이 따위를 가는 데에 쓰이는 모래를 마분(磨紛), 서로 쓸리어 닳음을 마손(磨損), 석벽을 쪼아 갈아서 글자나 그림을 새김을 마애(磨崖), 갈고 닦음으로 노력을 거듭하여 정신이나 학문이나 기술을 닦음을 연마(硏磨), 부서져서 없어지지 아니함을 불마(不磨), 학문이나 기술을 갈고 닦음을 강마(講磨), 닳아서 줄어듦이나 덜 닳게 함을 감마(減磨), 절구로 곡식을 빻거나 찧으며 떡을 치기도 하는 기구를 구마(臼磨), 깎이고 갈림으로 갈아서 적게 함을 삭마(削磨), 옥 따위를 갈고 닦음으로 수행하여 학문이나 기예나 정신 따위를 향상 시킴을 탁마(琢磨), 옥돌을 자르고 줄로 쓸고 끌로 쪼고 갈아 빛을 내다라는 뜻으로 학문이나 인격을 갈고 닦는다는 말을 절마(切磨),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으로 아무리 이루기 힘든 일도 끊임없는 노력과 끈기 있는 인내로 성공하고야 만다는 말을 마부위침(磨斧爲針), 옥돌을 자르고 줄로 쓸고 끌로 쪼고 갈아 빛을 내다라는 뜻으로 학문이나 인격을 갈고 닦음을 일컫는 말을 절차탁마(切磋琢磨), 때를 벗기고 닦아 광채를 낸다는 뜻으로 사람의 결점을 고치고 장점을 발휘하게 함을 이르는 말을 괄구마광(刮垢磨光), 쇠공이를 갈아서 바늘을 만든다는 뜻으로 정성을 다하여 노력하면 아무리 힘든 목표라도 달성할 수 있음을 나타내는 말을 철저마침(鐵杵磨鍼), 닳아서 없어지는 세월이라는 뜻으로 하는 일없이 헛되이 세월만 보냄을 이르는 말을 소마세월(消磨歲月) 등에 쓰인다.
▶️ 而(말 이을 이, 능히 능)는 ❶상형문자로 턱 수염의 모양으로, 구레나룻 즉, 귀밑에서 턱까지 잇따라 난 수염을 말한다. 음(音)을 빌어 어조사로도 쓰인다. ❷상형문자로 而자는 '말을 잇다'나 '자네', '~로서'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而자의 갑골문을 보면 턱 아래에 길게 드리워진 수염이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而자는 본래 '턱수염'이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지금의 而자는 '자네'나 '그대'처럼 인칭대명사로 쓰이거나 '~로써'나 '~하면서'와 같은 접속사로 가차(假借)되어 있다. 하지만 而자가 부수 역할을 할 때는 여전히 '턱수염'과 관련된 의미를 전달한다. 그래서 而(이, 능)는 ①말을 잇다 ②같다 ③너, 자네, 그대 ④구레나룻(귀밑에서 턱까지 잇따라 난 수염) ⑤만약(萬若), 만일 ⑥뿐, 따름 ⑦그리고 ⑧~로서, ~에 ⑨~하면서 ⑩그러나, 그런데도, 그리고 ⓐ능(能)히(능) ⓑ재능(才能), 능력(能力)(능)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30세를 일컬는 말을 이립(而立), 이제 와서를 일컫는 말을 이금(而今), 지금부터를 일컫는 말을 이후(而後), 그러나 또는 그러고 나서를 이르는 말을 연이(然而), 이로부터 앞으로 차후라는 말을 이금이후(而今以後), 온화한 낯빛을 이르는 말을 이강지색(而康之色), 목이 말라야 비로소 샘을 판다는 뜻으로 미리 준비를 하지 않고 있다가 일이 지나간 뒤에는 아무리 서둘러 봐도 아무 소용이 없음 또는 자기가 급해야 서둘러서 일을 함을 이르는 말을 갈이천정(渴而穿井),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한 듯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아주 다른 것을 이르는 말을 사이비(似而非), 공경하되 가까이하지는 아니함 또는 겉으로는 공경하는 체하면서 속으로는 꺼리어 멀리함을 이르는 말을 경이원지(敬而遠之), 뾰족한 송곳 끝이 주머니를 뚫고 나온다는 뜻으로 뛰어나고 훌륭한 재능이 밖으로 드러남을 이르는 말을 영탈이출(穎脫而出), 서른 살이 되어 자립한다는 뜻으로 학문이나 견식이 일가를 이루어 도덕 상으로 흔들리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삼십이립(三十而立), 베개를 높이 하고 누웠다는 뜻으로 마음을 편안히 하고 잠잘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고침이와(高枕而臥), 형체를 초월한 영역에 관한 과학이라는 뜻으로 철학을 일컫는 말을 형이상학(形而上學), 성인의 덕이 커서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유능한 인재를 얻어 천하가 저절로 잘 다스려짐을 이르는 말을 무위이치(無爲而治) 등에 쓰인다.
▶️ 不(아닐 부, 아닐 불)은 ❶상형문자로 꽃의 씨방의 모양인데 씨방이란 암술 밑의 불룩한 곳으로 과실이 되는 부분으로 나중에 ~하지 않다, ~은 아니다 라는 말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 때문에 새가 날아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음을 본뜬 글자라고 설명하게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不자는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不자는 땅속으로 뿌리를 내린 씨앗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아직 싹을 틔우지 못한 상태라는 의미에서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참고로 不자는 '부'나 '불' 두 가지 발음이 서로 혼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不(부/불)는 (1)한자로 된 말 위에 붙어 부정(否定)의 뜻을 나타내는 작용을 하는 말 (2)과거(科擧)를 볼 때 강경과(講經科)의 성적(成績)을 표시하는 등급의 하나. 순(純), 통(通), 약(略), 조(粗), 불(不)의 다섯 가지 등급(等級) 가운데 최하등(最下等)으로 불합격(不合格)을 뜻함 (3)활을 쏠 때 살 다섯 대에서 한 대도 맞히지 못한 성적(成績) 등의 뜻으로 ①아니다 ②아니하다 ③못하다 ④없다 ⑤말라 ⑥아니하냐 ⑦이르지 아니하다 ⑧크다 ⑨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 그리고 ⓐ아니다(불) ⓑ아니하다(불) ⓒ못하다(불) ⓓ없다(불) ⓔ말라(불) ⓕ아니하냐(불) ⓖ이르지 아니하다(불) ⓗ크다(불) ⓘ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불) ⓙ꽃받침, 꽃자루(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닐 부(否), 아닐 불(弗), 아닐 미(未), 아닐 비(非)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옳을 가(可), 옳을 시(是)이다. 용례로는 움직이지 않음을 부동(不動),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일정하지 않음을 부정(不定), 몸이 튼튼하지 못하거나 기운이 없음을 부실(不實), 덕이 부족함을 부덕(不德), 필요한 양이나 한계에 미치지 못하고 모자람을 부족(不足), 안심이 되지 않아 마음이 조마조마함을 불안(不安), 법이나 도리 따위에 어긋남을 불법(不法), 어떠한 수량을 표하는 말 위에 붙어서 많지 않다고 생각되는 그 수량에 지나지 못함을 가리키는 말을 불과(不過), 마음에 차지 않아 언짢음을 불만(不滿), 편리하지 않음을 불편(不便), 행복하지 못함을 불행(不幸), 옳지 않음 또는 정당하지 아니함을 부정(不正),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속까지 비치게 환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불투명(不透明), 할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것을 이르는 말을 불가능(不可能), 적절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부적절(不適切), 하늘 아래 같이 살 수 없는 원수나 죽여 없애야 할 원수를 일컫는 말을 불구대천(不俱戴天), 묻지 않아도 옳고 그름을 가히 알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불문가지(不問可知), 사람의 생각으로는 미루어 헤아릴 수도 없다는 뜻으로 사람의 힘이 미치지 못하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오묘한 것을 이르는 말을 불가사의(不可思議), 생활이 바르지 못하고 썩을 대로 썩음을 일컫는 말을 부정부패(不正腐敗), 지위나 학식이나 나이 따위가 자기보다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아니함을 두고 이르는 말을 불치하문(不恥下問),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는 나이라는 뜻으로 마흔 살을 이르는 말을 불혹지년(不惑之年), 필요하지도 않고 급하지도 않음을 일컫는 말을 불요불급(不要不急), 휘지도 않고 굽히지도 않는다는 뜻으로 어떤 난관도 꿋꿋이 견디어 나감을 이르는 말을 불요불굴(不撓不屈), 천 리 길도 멀다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먼길인데도 개의치 않고 열심히 달려감을 이르는 말을 불원천리(不遠千里) 등에 쓰인다.
▶️ 磷(물 흐르는 모양 린/인)은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돌석(石; 돌)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粦(린)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磷(물 흐르는 모양 린/인)은 ①(돌 틈을)물이 흐르는 모양 ②험(險)한 모양 ③엷은 돌 ④험하다(險--)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운모雲母를 달리 이르는 말을 석린(石磷), 갈아도 얇아지지 않는다는 말을 마이불린(磨而不磷) 등에 쓰인다.